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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지연 시집『건너와 빈칸으로』

한영제 기자 | 입력 : 2019/01/07 [08:30] | 조회수 : 978

 

 

 

 

묵음의 트랙에서 탄생하는 자기(I-Self)의 타인들

 

문신(시인, 문학평론가)

 

 

시는 모든 것을 말하지만, 어떤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다는 문장을 사랑하는 시인이 있다고 하자. 우리는 그의 시에서 특별한 비밀을 발견하기를 기대하지만, 훗날 헐렁한 우리의 주머니를 뒤져 보면 손가락에 걸려 나오는 것은 닳고 해진 몇 개의 시어일 확률이 높다. 반면 시는 어떤 것을 말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는 문장을 품고 있는 시인도 있다. 그의 시에서 우리는 남다른 감각의 명쾌함을 찾아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 읽기가 끝나고 나면 우리는 한밤의 불꽃놀이가 막을 내린 뒤 갑자기 밀어닥친 어둠처럼 막막한 허무에 갇히게 된다. 앞의 경우는 모든 것을 말하고자 하는 욕망이 현실의 구체에 밀착하지 못할 때 발생하고, 뒤의 경우는 시와 삶을 대하는 서툰 자세가 문제되는 경우라고 하겠다.

우리에게는 아직 시는 어떤 것을 말하지만,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같은 문장이 남아 있다. ‘어떤이나 아무같은 낱말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자의(字義) 그대로의 순수함이다. 지시하지 않고 호명하지 말자는 것. 조금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말해져야 할 비밀을 철저히 은폐하자는 뜻이다. 그렇다고 비밀을 아예 봉인해 버리자는 의도는 아니다. ‘어떤이나 아무속에서 우리는 더러 비밀을 발견해 낼 실마리를 건져 올리는 경우가 있음을 안다. 그러한 실마리는 공감할 줄 알고 상상할 줄 아는 이들의 손끝에 걸릴 확률이 높은데, 지연 시인이 그 경우에 해당한다. 지연 시인은 어떤것을 말하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모순 화법을 시적 방법론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웃음을 구우려면 몇 도의 어둠이 필요한가

 

갓 피어난 꽃잎은 몇 바퀴를 돌아야 대중적으로 웃는가

 

웃음은 담기는가 깨지는가

 

가스 창고 모서리에 목련꽃 핀다

―「당신이 내내 전화를 받지 않아전문

 

비밀은 언제나 발견하는 자의 몫이거니와, 발견하는 자는 또한 질문하는 자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리고 우리는 질문하는 방법이 발견하는 방법이라는 사실도 안다. 발견은 질문에 응답하는 메아리처럼 주어지는 것이다. 칼을 휘두른 자리에서 자상(刺傷)을 발견하는 것처럼, 질문과 발견은 거의 언제나 인과의 운명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구도는 어떤것을 말하면서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방법론의 특징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아무를 매개하는, 말하면서도 말하지 않는 방법적 모순이다. 이 모순을 무엇이라고 지칭해야 옳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지연 시인에 따르면, 그와 같은 모순은 모르지 않는 것을 질문함으로써 발생하는 것 같다. 당신이 내내 전화를 받지 않아에서 반복되는 저 물음의 화법이 필연적인 궁금함을 견인한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저 물음표 없는 질문 화법에는 어떤아무사이에 배치해 놓은 시적 발견의 경이(驚異)가 준비되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어떤것을 말하든, 발견되는 것은 경이를 거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모르지 않는 것이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 까닭에 필요한가’ ‘웃는가’ ‘담기는가 깨지는가처럼 반복되는 질문 끝에 가까스로 닿은 가스 창고 모서리에 목련꽃 핀다는 전언이 새롭게 발견된다. 이러한 전언 속에는 말해지지 않은 경이로운 비밀이 은폐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비밀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눈 밝은 독자의 몫이겠지만, 적어도 지연 시인의 시를 읽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이 비밀과 언제라도 마주칠 준비를 해 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비밀을 발견하기 위한 질문의 형식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말했다시피 지연 시인은 모르지 않는 것을 묻는 일에 남다른 언어 감각을 발휘한다. 거듭 말하지만, 아는 것을 묻는 것이 아니라 모르지 않는 것을 묻는 일이다. 아는 것과 모르지 않는 것의 차이는 명백하다. 아는 것은 보편적 앎으로, 나를 포함한 세계가 모두 알고 있다. 모르지 않는 것은 개별적인 것으로, 그 주체는 유일하다. 오직 질문하는 자만이 모르지 않을 뿐, 나머지는 모르는 것이다. 지연 시인의 시적 질문이 모르지 않는 것을 내용으로 삼는다고 한다면, 거기에는 타자의 모름이 전제되어 있으며, 지연 시인의 시는 그 모름을 앎으로 발견하는 경이의 순간을 준비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불이 꺼졌어 사람들이 팝콘을 씹으며 웃고 있어

오 사 삼 바삭, 다시

오 초의 시간이 부푸는 동안 야광 문이 열렸어

나는 비상구 속에서 영화를 봤어

 

동네 어귀의 대문들이 눈을 감고 있었어 나도 따라 눈을 감고 더듬었어 파충류 등을 피해서 문고리에 손을 넣었어 울퉁불퉁한 정글 침묵이 나를 집어삼켰어 바람이 나를 덜컹이게 했어 맹렬하게 비가 내렸어 나는 문을 찾지 못하고 진흙에 빠진 초록 토끼 높이뛰기 하는 비에게 뛰어갔어 열려 있어도 나는 늘 갇혀 있나 생각하면서 닫혀 있어도 열려 있는 웅덩이를 찰방 밟았어

 

바삭, 나를 깨무는 팝콘 소리

―「비상구전문

 

모든 발견의 순간은 캄캄한 어둠이 배경으로 놓일 때 극적 효과를 만들어 낸다. 이때 어둠은 빛이 부재하는 자연법칙의 형식 속에서 완성되지만, 상징적인 의미에서 어둠은 인간 이성과 감성의 상실 상태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신화에서 알 수 있듯, 지금까지 인간이 상상해낸 거의 모든 종류의 서사가 어둠과 맞선 인간의 이성과 감성의 투쟁이었다는 사실은 어둠이야말로 모든 극적 드라마의 산실임을 증명한다. 문학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시는 ()의식의 블랙아웃 상태에 놓인 우리들에게 어둠을 관통하게 해줌으로써 새로운 사태와 사건을 발견하고 그 세계로 진입하게 한다. 따라서 시 비상구에서 우리가 읽어 내야 할 것은 어둠의 실체가 아니라 그 어둠에 은폐되어 있는 새로운 사태의 징후이다. 징후는 언제나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경이이고, 징후는 발견하는 자를 언제나 새로운 사태 속으로 견인해 가는 형식이다. ‘비상구는 그와 같은 무수한 징후 가운데 하나이다.

비상구불이 꺼지는 순간 존재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순간에 새롭게 발견되는 것이 또 있다. “바삭거리는 소리다. 화자는 불이 꺼지는 순간 시각적 존재에서 청각적 존재로 개체의 성질을 옮겨 간다. 이러한 변화는 어둠을 대하는 인간 존재의 투쟁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화자는 어둠에서만 존재론적 위상을 확보하는 야광 문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되고, “비상구라는 새로운 시각적 존재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1연은 (외부의 압력에 의한) 시각 상실(내적 필요에 따른) 청각 작동(다른 존재 형식을 지닌) 새로운 시각 획득이라는 다소 변형된 형태의 변증법적 인식을 보여주는데, 그렇게 해서 탄생하게 된 새로운 시각 내용이 2연의 서사를 이룬다. 따라서 비상구라는 야광 문적 시각에 포착된 2연의 내용은 상실되기 이전의 시각으로 바라본 일상 세계와 다를 수밖에 없다. 많은 경우 2연의 세계를 환상이나 기이함 같은 용어로 담아내려 하지만, 지연 시인은 그 상황을 타자의 부름”(참새 걸음으로 비가 오는데)으로 환기해낸다. 중요한 것은 타자가 다른 존재 형식을 지닌 자기(I-Self)라는 사실이다. 아이-셀프(I-Self)로서의 자기는 자기(self)를 스스로 타자화할 때 도달하게 되는 극복된 존재이며, 자기(self)에게서 발견해 낸 현실 초과적인 상태로서의 존재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둠 속에서 시각을 상실한 자기가 비상구를 통해 새롭게 발견한 시각적 존재를 지연 시인은 타자라고 부른다. 발견된 타자는 언제나 도래하지 않는 가능성이자 곧 도래할 징후가 된다. 비상구에서 그 징후는 3바삭, 나를 깨무는 팝콘 소리를 통해 분명하게 돌출되는데, 알다시피 나를 깨무는일이란 시각 상실의 자기가 타자로 갱신되는 순간과 다르지 않다.

안녕, 한때의 별은 징후로서의 타자가 탄생하는 과정을 다룬 서사로 읽힌다.

 

누구나 별은 다른 모양으로 태어나네

주인이 전세금을 들고 말없이 떠났네

귀 밝아지고 눈 밝아졌네

대밭에 별이 찍찍거리네

나는 별을 키우기로 했네

별들이 울타리를 갉아대네

천장에 별들이 그렁그렁하네

내 방은 울타리가 되어가네

낮 동안 나는 별에게 줄 밥을 찾네

별들은 더듬이를 먹고 싶어 하네

나는 망초 꽃잎을 떼어 한 입 먹였네

주인은 돌아오지 않네

대나무는 수시로 몸을 흔들었지만 뭐 어때?

별은 몸통이 사라지고 점점 이빨이 자라네

낯선 사람들이 술병을 던지네

남학생들이 침을 뱉네

나에게는 번들거리는 이빨이 다섯

별을 문틈으로 내보냈네

그들은 엄청나게 찍찍거린다고 도망을 가네

나는 이제 주인을 기다리지 않네

오늘 구름이 몽실거리네

비닐조각 같은 하루를 찢으며

나도 별이 되어가네

―「안녕, 한때의 별전문

 

이 시를 읽으면서 떠올린 생각은 탄생이라는 사건의 역사적 분절성이다. 탄생이 새로운 존재의 나타남이라고 할 때, 그 존재는 나타남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부재(不在)라기보다는 미재(未在)의 의미에서-것이다. 그러므로 탄생하는 것들은 어제까지의 세계를 알지 못하고, 탄생이라는 사건은 존재가 역사적 시간 속으로 갑자기 뛰어드는 형식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탄생의 원인이나 기원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데, 대개의 경우 기원의 자리에 놓인 것은 신화를 비롯한 상상적 담화일 때가 많다. 이렇게 모든 태어나는 것들은 태어남과 동시에 존재로서의 독자적인 역사와 시간의 주체가 된다.

중요한 것은 탄생하는 일이 존재의 원인이나 기원과 단절을 시도하는 행위라는 점이다. 지연 시인은 탄생의 후폭풍을 재치 있는 상상적 서사로 포착한다. 알다시피 안녕, 한때의 별의 기본 구도는 누구나 별은 다른 모양으로 태어나네로 시작해서 나도 별이 되어가네로 끝난다. ‘태어나되어가는 존재론적 확장을 가능하게 한 것은 역설적으로 떠나가는 존재이다. 그것은 탄생 이전의 세계이다. 탄생과 더불어 새롭게 시작된 역사적 시간은 그렇게 떠나가는 것과의 결별 속에서 비로소 탄생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다. 이 시에서 태어나자마자 곧장 주인이 전세금을 들고 말없이 떠났다는 진술은 탄생의 개시를 증거하는 사건이다. 이렇게 떠나간 것들이 결국에는 신화의 서사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주인으로 상징되는 존재 기원과의 결별을 통해 탄생하는 것들은 귀 밝아지고 눈 밝아질 수 있었고, “별을 키우기로다짐할 수 있었다. 이 시에서 이 무엇을 지시하는지, 혹은 어떤 것을 환기해 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은 태어나는 것이고, 태어나서 찍찍거리그렁그렁하더듬이를 먹고 싶어 하는 존재이다. 이쯤 되면 은 하나의 생명체를 연상하게 하지만, 지연 시인의 시에서 하나의 시어가 어떤 사건이나 사물과 명쾌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은 상상적 서사를 발생시키는 모든 것이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따라서 은 상징을 넘어 상상이고, 단절된 기원을 향한 상상적 서사 덩어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 이마가 서늘해지는지

왜 가늘고 긴 담배를 태우고 싶은지

왜 느리게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지

왜 낮달을 스쳐가는 새를 부르고 싶은지

왜 에스프레소를 청동 잔에 따르고 싶은지

왜 감잎 그늘에 한나절 앉아 있고만 싶은지

왜 마당에 내 이름을 끄적이고만 싶은지

왜 찌그러진 개 밥그릇 앞에 무릎을 꿇고만 싶은지

왜 내 그림자 위에 그대를 앉혀 두고만 싶은지

낙엽 하나가 사막에 고요히 묻히듯

바람에 사구가 허물어지듯

 

왜 초록의 비늘 오래 씹고만 싶은지

―「가을이면전문

 

상상적 서사와 사적 욕망을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들은 후설이 지향성(intentionality)으로 제시한 개념 속에 포섭된다. 지향성은 어떤 대상의 의미는 그것을 향한 누군가의 의식 속에서 이미 형성되어 있다는 개념이다. 상상하는 일이나 욕망하는 일이 모두 상상과 욕망의 주체에서 발현한다는 점에서 그것들은 의식이 지향하는 바를 드러내는 일과 다르지 않다. 지연 시인은 이와 같은 주체의 지향성이 실현되는 방식에 관심이 크다. 가을이면에서 반복되고 있는 라는 사유는 상상적 서사의 본질이 의심하고 질문하는 데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왜 이마가 서늘해지는지라고 묻는 일은 가을을 향한 화자의 상상적 욕망을 반영한다. 이 욕망은 가을의 존재론적 본질을 넘어서는 지점에서 상상적으로 구축되는 서사이다. 따라서 이후에 발생하는 상상적 욕망의 기표들은 어쩌면 가을의 본질과는 무관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의 의식이 가을을 가둘 수 있을 만큼 전면적이지도, 혹은 가을이 누군가의 의식 속에 자신의 존재를 고스란히 노출할 만큼 범주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 시가 1연에서 아홉 번에 걸쳐 반복적으로 라는 상상적 서사를 전개하는 것은 가을과 가을을 지향하는 인간 의식이 일차 방정식으로는 답을 구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복적인 대응 구조는 종결 지점을 지속적으로 유예해 가는 방식으로 낙엽 하나가 사막에 고요히 묻히듯/바람에 사구가 허물어지듯잠시 사유와 상상과 욕망의 휴지(休止)를 전략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전략은 그동안의 질문과는 다른 차원의 를 드러내기 위한 숨고르기이다. 숨고르기 끝에 연을 바꿔 탄생한 초록의 비늘은 가을의 상상적 서사로 읽힌다. 1연에서 반복적으로 제시된 의 욕망이 가을의 상징적 기표라는 점에서 초록의 비늘은 그 모든 가을의 상징을 초과해 버린 상상적 욕망이 된다. 지연 시인이 존재론적 본질과 그것을 넘어서는 상상적 서사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시집 󰡔건너와 빈칸으로󰡕에 실린 시편들이 탄생하는 것들을 지향의 중심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눈여겨볼 지점은 탄생을 예비하는 지연 시인의 시적 방식이다.

 

손가락이 잘렸다 그녀는

오른손 검지를 배에 심었다

 

배의 조각을 떼어 오는 일에 열중하던

검지가 잔뿌리를 내밀며

수액 같은 진물을 흘렸다

배에 붙어 있던 꽃씨가 검지를

따라왔다는 것을 그녀는 알지 못한다

 

(중략)

 

아무도 꽃이 피는 걸 보지 못하였으나

검지 끝에는 꽃을 떨군 꽃대가 검다

―「검지에 핀 으아리꽃부분

 

이 시에 따르면, “손가락이 잘렸을 때, 자기 배의 조각을 떼어이식함으로써 새로운 손가락은 탄생할 수 있다. 자기를 떼어 오는 일”, 다시 말해 스스로를 타자화함으로써 새로운 자기(I-Self)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지연 시인은 타자화를 통한 자기 탄생의 계기를 능숙하게 포착하고, 그것들의 흔적을 심층의 차원에서 상상적 초월에 이르는 폭넓은 시적 스펙트럼으로 조직해 낸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역사적 시간이 꽃이 피는 걸 보지 못하였으나/검지 끝에는 꽃을 떨군 꽃대가 검은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처럼, 지연 시인은 언제나 그림자는 나를 기억하고/나는 그림자를 기억하지 못해/어둠 속에서 하얀 하품”(창밖에 눈사람이 있어)을 만들어 낸다. 이때 하얀 하품은 역사적 시간을 초월하여 지연 시인이 지금-여기로 소환해 낸 타자화된 자기 서사, 다시 말해 어떤것을 말하면서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는 묵음의 발화가 아닐까?

시집 󰡔건너와 빈칸으로󰡕에서 지연 시인은 산도에서 길을 잃”(투각)타인이 되어가는 나를 오래 배웅”(배웅)하는 상상적 서사의 탄생을 무겁지 않은 어법으로 기록하고 있다. 지연 시인이 상상적 서사를 통해 우리 시대가 타자의 시대임을 증명하는 동안, 시인의 사유와 감각 속에서 탄생한 시도 시인을 떠나 점점 타인이 되고 있다. 시가 타인이 되는 일은 어떤 것을 말하지만, 결국에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겠다는 시적 지향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므로 지연 시인의 시를 읽고 돌아보면 나마저 타자”(가벽)가 되어 있는 경이의 순간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그 순간은 한 편의 시가 죽고 사는 묵음의 트랙”(B의 터널)으로 우리의 몸속에서 재생되는 지점이다. 그러므로 지연 시인의 시가 말하지만 말하지 않겠다는 상상적 서사를 우리는 묵음의 트랙으로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시집 속 시 10편

 

 

 

 

 

당신이 내내 전화를 받지 않아

 

 

웃음을 구우려면 몇 도의 어둠이 필요한가

 

갓 피어난 꽃잎은 몇 바퀴를 돌아야 대중적으로 웃는가

 

웃음은 담기는가 깨지는가

 

가스 창고 모서리에 목련꽃 핀다

 

 

 

 

 

 

 

 

비상구

 

 

불이 꺼졌어 사람들이 팝콘을 씹으며 웃고 있어

오 사 삼 바삭, 다시

오 초의 시간이 부푸는 동안 야광 문이 열렸어

나는 비상구 속에서 영화를 봤어

 

동네 어귀의 대문들이 눈을 감고 있었어 나도 따라 눈을 감고 더듬었어 파충류 등을 피해서 문고리에 손을 넣었어 울퉁불퉁한 정글 침묵이 나를 집어삼켰어 바람이 나를 덜컹이게 했어 맹렬하게 비가 내렸어 나는 문을 찾지 못하고 진흙에 빠진 초록 토끼 높이뛰기 하는 비에게 뛰어갔어 열려 있어도 나는 늘 갇혀 있나 생각하면서 닫혀 있어도 열려 있는 웅덩이를 찰방 밟았어

 

바삭, 나를 깨무는 팝콘 소리


 

 

 

 

 

 

구름의 서쪽

 

 

눈사람은 어디에 스며드나

 

수많은 낮과 밤의 응결

저 구름 속에

내가 만난 누군가의 눈사람

 

차갑게 웃는

이 도시가 저 도시로 흘러가는

 

내 주름은 몸에서 사라진 물이 있다는 증거

그 물은 구름의 서쪽 여행지에 당도했다

 

구름은 스스로 가렵네

슴슴한 습()의 나이이므로

구름은 자주 아파 쏟아지려 하네

 

몸이 마더가 되어 지배를 받으면서

머리가 마더였던 때를 그리워하네

 

대화에 땀이 나 발목이 시리네

사람 사이를 오래 걷지 않아서

사는 일이 가렵게 젖어가네

 

 

 

 

 

 

 

 

이편의 식사

 

 

살아서 우리는 등에 영정 사진을 달고 다니는 것이어서

죽어서나 앞모습으로 사는 것이어서 

안녕, 원형 향으로 꽂고

나는 불경스럽게도 영정 사진을 본다

왜 영정 사진에는 손발이 없나?

 

문살 발랐던 창호지에 어른어른 반찬들

겹꽃을 묵상하듯 조문객들이 반찬을 집어 올린다

한때 거처를 오간 문처럼 네모난 상

누워 있는 문 앞에 산 자들이 발로 걸어가

입으로 망자의 꽃잎을 삼킨다

씹으면 씹을수록 알게 모르게 꽃잎은 날리고

꽃으로 가득 채운 산 자의 배는

내 것이 아닌 망자의 것이라 아무리 먹어도 허기지다 

 

손발도 없이 손발도 없이 많이 자시고 가시게

등을 토닥일 것만 같은 장례식장

네 네 검은 마침표처럼 앉아 나는 상 위의 꽃들을 헤적거린다

 

지난 시간을 저편에 두고

우리도 언젠가는 웃음을 각진 액자 안에 담겠지만

뭉텅 등으로 쏟아지는 혈육의 울음, 듣기도 하겠지만

꽃잎은 제 그림자에 포개진다

문 너머 햇나락같이 장례식장에 가면 안부를 묻는다

손발도 없는 안녕! 이 짤막한

 

 

 

 

 

 

 

안녕, 한때의 별

 

 

누구나 별은 다른 모양으로 태어나네

주인이 전세금을 들고 말없이 떠났네

귀 밝아지고 눈 밝아졌네

대밭에 별이 찍찍거리네

나는 별을 키우기로 했네

별들이 울타리를 갉아대네

천장에 별들이 그렁그렁하네

내 방은 울타리가 되어가네

낮 동안 나는 별에게 줄 밥을 찾네

별들은 더듬이를 먹고 싶어 하네

나는 망초 꽃잎을 떼어 한 입 먹였네

주인은 돌아오지 않네

대나무는 수시로 몸을 흔들었지만 뭐 어때?

별은 몸통이 사라지고 점점 이빨이 자라네

낯선 사람들이 술병을 던지네

남학생들이 침을 뱉네

나에게는 번들거리는 이빨이 다섯

별을 문틈으로 내보냈네

그들은 엄청나게 찍찍거린다고 도망을 가네

나는 이제 주인을 기다리지 않네

오늘 구름이 몽실거리네

비닐조각 같은 하루를 찢으며

나도 별이 되어가네

 

 

 

 

 

 

 

 

투각(透刻)

 

 

산도에서 길을 잃었다

 

팔다리뺨혀손가락발가락이 세상과 비대칭으로 자랐다

 

칼로 흙벽을 도려내다 쓸모없이 쓸쓸해서 그림자를 숟가락으로 떠낸다

 

안으로 들어오는 빛이 울렁거린다 집이 시차 없이 우주에 매달린다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불균형이 궤도를 돌아온다

 

벚꽃이 날린다 우주를 떠도는 행성같이 놀러 왔다가 구멍 난간에 일그러져 와글거린다

 

왼쪽 다리가 웃음으로 흔들린다 뭐 있잖은가 한바탕 웃고 돌아서면 휑한 거 웃음처럼 무거운 게 없다는 거

 

내 몸은 웃음으로 가득 차 있다 엄마는 진통이 왔을 때 냉장고 반찬들이 차곡차곡 웃었다고 했다 아빠는 엄마 울음소리가 개 울음소리인 줄 알았다고 했다

 

벚꽃이 떨어진 자리 잎사귀는 꽃의 의족 지금은 사라진 별빛 빛은 별의 의족 웃음은 울음의 의족

 

빛나는 밤 나를 파내는 구멍마다 그림자가 의족으로 번식한다

 

 

 

 

 

 

 

 

자개농에 발자국을 끊으며 들어가겠어

 

 

벌레가 모과 속으로 들어간 자국을 본 적 있어

솔잎 구멍처럼 작았다가 커진 자국

 

비칠거리며 울다가 왜 우는지 증거 불충분이 되어서

울었던 무늬가 진짜인가 가짜인가

몸을 뒤척였을 것만 같은

 

비가 핼쑥하게 왔어

비가 오지 않아도 비는 타발대고 있었으니

다녀가지 않은 모습으로 나도 나를 듣고 걸을 만하겠어

 

오목한 표정으로 모과 벌레처럼

고개를 갸웃거려도 좋겠어

자개농에 발자국을 끊으며 들어가도 좋겠어

 

새의 부리는 단단하게 젖어 매끄럽게 흘러가니

바닥을 핥은 해는 모란으로 피어나니

 

천년송이 닳아지도록 나는 조개 발의 자세로 손을 내밀겠어

아래로 아래로 어둠은 자개로 깨어나니

 

 

 

 

 

 

 

 

 

가을이면

 

 

왜 이마가 서늘해지는지

왜 가늘고 긴 담배를 태우고 싶은지

왜 느리게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지

왜 낮달을 스쳐가는 새를 부르고 싶은지

왜 에스프레소를 청동 잔에 따르고 싶은지

왜 감잎 그늘에 한나절 앉아 있고만 싶은지

왜 마당에 내 이름을 끄적이고만 싶은지

왜 찌그러진 개 밥그릇 앞에 무릎을 꿇고만 싶은지

왜 내 그림자 위에 그대를 앉혀 두고만 싶은지

낙엽 하나가 사막에 고요히 묻히듯

바람에 사구가 허물어지듯

 

왜 초록의 비늘 오래 씹고만 싶은지

 

 

 

 

 

 

 

 

검지에 핀 으아리꽃

 

 

손가락이 잘렸다 그녀는

오른손 검지를 배에 심었다

 

배의 조각을 떼어 오는 일에 열중하던

검지가 잔뿌리를 내밀며

수액 같은 진물을 흘렸다

배에 붙어 있던 꽃씨가 검지를

따라왔다는 것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췌장암 삼 년째인 그녀 남편은

검게 누른 장판에 등 돌리고 앉아 있다

미납 고지서와 청첩장을

그녀가 보지 못하게 꼬깃 접는다

문풍지 흔들리는 모습을 보던 그녀는

다시는 발걸음 하지 않겠다던

한약 공장에 들어선다

 

출렁이는 배에 오른손을 얹고 호흡을 고른다

잘라 내던 헛개나무가, 오갈피가, 가시를 세운다

검지가 퍼레져서 기계를 가리킨다

잘린 손끝이 그 속에 있을 것이다

 

기계에 등 돌리고 푸른 줄거리를 덖는다

바짝 빨개진 검지 끝이

터질 듯 부풀어

불의 빗소리를 듣는다

겉절이를 숟가락에 휘휘 감아올리는

밥상에, 식솔의 손가락을 울타리 삼아

으아리, 큰으아리꽃 고개 든다

 

아무도 꽃이 피는 걸 보지 못하였으나

검지 끝에는 꽃을 떨군 꽃대가 검다

 

 

 

 

 

 

 

 

 

 

B의 터널

 

 

 

 

고드름이 정수리에 박힌다면 울음의 속살에 닿을 수 있겠다

그녀가 다녀갔다는 대나무 얼음 터널

온몸 털 뭉치가 풀려나가기 시작한다

각질이 떨어진다

 

엉덩이를 끌며 나오는 아버지

요강에 소변을 누는 소리

만도라 무늬로 번지는

붉은 실 노란 실

 

뜨개질을 하다 보면

적란운이 실뜨기 코에 감기다

팔다리가 건선으로 하얗게 들뜬다

 

임신하고 허락받은 결혼

어머니를 실로 끌고 다녀도

가출한 행복처럼 어머니는 행적이 없다

 

내려오지 마, 고드름에서 떨어지는 물들

아버지, 제가 시집가면 아버지 요강은 누가 비운대요?

피나게 긁어도 남아 있는 가려움

 

어제는 오늘은 내일은

어느 때인가

면역 체계가 무너지지 않는

저녁놀의 실을 풀어 너를 만들었다

아버지는 나를 창가에 앉혀 두고 말했지

 

떨어진다

앉았다가 일어서면

아치형 안에 수직이 등 뒤에 흐른다

다르마타 바르도*

죽고 사는 묵음의 트랙

내 몸에 풀린다

 

 


 

 

*죽음과 새로운 탄생 사이에 있는 본성의 광휘

 

 

 

 

 

 

 

 

지연 시인

1971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2013년 시산맥》 신인상으로 등단했고, 2016년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다15회 시흥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8 전북문화관광재단 문예진흥기금을 수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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