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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이 타는 냄새 / 박현솔 시인

다솔시인 | 입력 : 2019/04/16 [10:06] | 조회수 : 599

 

▲     © 시인뉴스 Poem



 

혼이 타는 냄새

 

 

 

어디서 혼이 타는 냄새가 나는가

매캐하고 탁한 냄새가 내 입가에 흘러내리네

나를 혼돈에 빠뜨린 시간 속에서 방금 막

치댄 반죽덩어리를 뜨거운 화덕에 붙이는 손길

처음에는 향긋한 빵 냄새가 나는 것 같고

누군가 내 몸을 부풀리는 것 같고

몸의 허물어진 부위에서 냄새가 저며지다가

급기야 혼을 부풀리며 태우고 있네

사그라지는 목소리와 빛이 꺼져가는 눈빛이

멀고 아득한 시간을 부르고 있네

매캐함은 숙성을 놓친 시간 때문이지

혼을 허물어뜨린 불길에 휩싸인 후에야

지나온 시간 속 기억들이 어둠임을 알았네

어디서 혼이 타는 냄새가 나는가

어디서 무수히 검게 그을린

영혼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르는가.

 

 

 

 

  

 

 

시간의 지면에서 발을 떼다

 

 

 

밤이 나를 깨우는 일이 잦아진 것 같아

바닥에 누운 나를 누가 살짝 흔들었어

창을 넘어 들어온 산 그림자 같기도 하고

생을 다 마치고 떠나는 벌레 소리 같기도 했어

두 눈이 떠진 부분에 포스트잇을 붙여야지

다음에 그 부분을 이어서 꿈꿀 수 있으니까

인생의 한 부분이 불면인 것을 사람들은 알까

좁은 방안에서 식구들이 함께 모여 자던 시절

어떤 소리 하나가 내 잠속으로 파고들었지

무거운 눈꺼풀을 조금씩 밀어 올렸을 때

누군가의 부음을 듣고 어머니가 울고 있었어

울음은 문틈으로 빠져나가 어딘가로 흘러가고

눈물이 사라지는 순간에 나는 잠을 깨게 돼

그것은 처마 밑을 스치는 바람이거나

꽃잎 속으로 떨어지던 별의 무리들

시간의 지면에서 발을 떼고 있는 순간이

안타까운 이별이 될 줄 그땐 몰랐어

발바닥이 서서히 지워지고 있는 나무들

오늘밤 누가 내 주변에서 사라지고 있는지

커튼의 주름진 장막을 마주잡은 그림자들이

밤하늘의 크레바스 속으로 미끄러지고 있어

열린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바람의 길을

바라보는 저 사람들은 그걸 감지한 걸까

 

 

 

 

 

 

나무의 火葬

 

 

 

횡성 한우마을에서 고기를 굽는다

벌겋게 달궈진 숯불이 혀를 내밀고

소의 생이 묻어있는 살점 아래

남은 시간을 소진하고 있는 숯불

나무는 영혼을 잃고 흰 재가 되어간다

죽음을 애도하는 것들이

깊은 겨울 속에 세워졌다

나무의 火葬

거대한 그늘을 세운 숯 공장

검은 연기가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고

산 나무들은 죽은 나무들을 추도한다

소들의 죽음과 연계되어 있는 나무들의 죽음

소들이 죽은 해에는 나무들도 많이 죽는다

더불어 살던 딱따구리도, 딱정벌레도,

개미도 함께 넘어진다

연쇄의 고리가 낳은 죽음의 도미노

숯 공장이 종일 검은 연기를 내뿜는다

한 남자가 숯불 앞에 바짝 다가앉아

잘 익은 고기를 크게 벌린 입 속으로 집어넣는다.

 

 

 

 

  

 

 

도화에게로

 

 

 

저 빛깔을 어쩌면 좋은가, 두 팔로 품어

물들고 싶네, 맨발의 설렘으로 다가간 언덕 위에

오랜 약속처럼 도화나무가 있고

전하지 못한 안부들이 도화 꽃으로 만발하네

청춘은 불안하고 무모했으며 위험천만이었다

먼데서 꼬드기던 소리들은 오간데 없고

어떤 향기에는 슬쩍 눈 감을 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도화나무 아래에서 뛰어놀고

강아지들도 꽃잎을 따라다니느라 분주하다

도화 꽃잎들 분분히 날리는 오후의 경사를

꽃물 든 손을 맞잡고 그와 꽃그늘을 거닌다

도화가 우리에게, 우리가 도화에게로 걸어가네

폭풍을 견딘 연분홍 꽃잎들이 황홀하고 향기롭다

도화가지 늘어진 자리에 흘러내리는 꽃물이

두 눈에 차고 넘쳐서 오후의 아이들을 물들이고,

강아지를 물들이고, 경사진 시간의 언덕을 물들이고,

손을 맞잡은 우리들의 맹세를 물들이네.

 

 

 

 

 

 

풍경을 오해하다니

 

 

 

짙푸른 폭포수가 펼쳐집니다

가끔 풍경 밖으로 물이 흘러넘치기도 합니다

아직 여름 숲을 상상만 할 뿐인 벽 너머에서

지루한 장마는 始原을 알 수 없는 물줄기처럼

몇날 며칠 꼬리에 꼬리를 잇고 있습니다

넘치는 계곡물은 바위들의 단련된 근육 위로

지구를 돌아온 생을 한꺼번에 실어 보냅니다

검은 상처들이 가끔 흰 물살 사이로 드러납니다

어디선가 흘러든 나뭇잎이 몸의 균형을 잃고

속수무책으로 휘돌다 빠져들고 있습니다

저 계곡 밑 마을 어귀에선 물이 불어 논밭이 쓸리고

가옥이 침수되어 세간살이가 둥둥 떠다니고 있습니다

검은 바위의 심장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립니다

초록의 녹음이 어깨를 들썩이는 것이 보입니다

두 눈을 질끈 감은 목숨들의 간절한 기도소리가 들립니다

바다가 뒤집히고, 강물이 뒤집히고, 전 생애가

뒤집힌 후에야 새로운 물길이 채워집니다

계곡의 물소리 더욱 깊어집니다

 

 

 

 

 

 

 

붉은 울음, 터진목

 

 

 

뭍과 섬을 오가던 고깃배들이 파도에 출렁인다. 섬의 안쪽에 높이 솟아오른 일출봉. 그 아래에 동굴들이 뚫려 있다.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어 준 곳. 군인들을 피해 동굴에 숨어있던 마을 사람들이 물고기와 해초로 목숨을 연명하는 동안 파도는 수시로 동굴 안을 엿보았다.

 

밀고자는 가까이에 있었다. 동이 트기 전 아이들 울음이 속사포로 터지기 전까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그날의 폭죽놀이. 마을 사람들이 체포되는 동안 구름은 태양을 붙들어서 시야를 희뿌옇게 만들어놓았다. 마을 사람들이 줄줄이 체포되고 난 뒤에야 바다 위를 비추는 태양.

 

군인들이 마을 사람들을 줄 세워서 해안가로 끌고 간다. 모래 위에 걱정과 두려움을 줄줄 흘리며 끌려가는 사람들. 모래 위에 새겨진 발자국들은 어디로 가는가. 점점이 덧씌워져서 지문이 다 닳아버린 발자국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움푹 파인 모래 속으로 파도가 달려들어 떨고 있는 발목들을 자르고 도망간다. 갈매기들이 마을을 향해 끼룩거린다.

 

해안가에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일렬로 세우고 군인들이 멈춰 선다. 뭔가를 예감한 멸치 떼들처럼 사람들이 사력을 다해 도망치지만 거세진 물살은 옴짝달싹 못하게 사방을 조여 온다. 수백발의 총성이 울리고 수평선이 형체도 없이 일그러진 후에 그물 가득 잡힌 멸치떼들.

 

마을 사람들은 바다 쪽을 쳐다보지 않는다. 함께 밭일을 하고 그물을 걷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곳. 빨갱이는 태양을 가리키는 이름일 뿐. 일출봉은 아침마다 붉은 울음을 토해내고 수평선은 참담히 표정을 고친다. 봄마다 붉은 울음이 터져버리는 터진목. 번져오는 슬픔이 뭍을 향해 길을 내고 있다.

 

 

 

 

 

 

동백꽃 제사

 

 

 

동백꽃 하나, 골목에는 동백나무가 서 있고 아이들은 떨어진 동백꽃을 줍느라 왁자지껄하다. 저녁 늦게까지 동네를 쏘다니다가 나도 따라 꽃을 줍고 있는데 친구들이 엄마들의 손에 이끌려서 대문 속으로 사라진다. 그날은 동네 제삿날이었다.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그날이 다가오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슴으로만 슬펐다. 몸을 낮춘 채 칼바람을 맞아야했던 부모님의 시간들.

 

동백꽃 둘, 아버지는 그때를 기억한다. 할아버지의 둘째 동생이 43사건 때 행방불명이 되고 젊은 나이에 고향이 아닌 곳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 일로 소문이 돌았고 아버지 일가는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맑은 날이면 고향땅이 보이는 대마도에서 아버지는 온갖 차별을 견디며 유년기를 보내야 했다.

 

동백꽃 셋, 어머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어느 봄날에 군인들이 장갑차와 탱크를 몰고 와서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학살했다. 외할아버지도 그때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육지로 떠나셨다. 할머니와 함께 남겨진 어머니는 온갖 궂은일에 토벌부역까지 감당해야 했다.

 

동백꽃 넷, 깨끗하게 얼굴을 씻고 새 옷을 갈아입은 아이들이 밤이 오길 기다린다. 창가에 놓인 향로를 향해 묵념하는 동안 향은 멀리멀리 날아가서 하늘로 흩어진다. 죽은 자들은 아이들이 졸음을 참다가 선잠이 들 때 즈음 집을 방문한다. 개들도 짖지 않는 시간이 꽃무늬로 흘러간다. 이 생과 저 생을 잇는 의식이 막바지에 이르면 동백 제사장들이 정성껏 키운 꽃들을 제물로 바친다. 붉은 울음이 밤을 붉게 물들인다.

 

 

 

 

 

 

바다의 나이테

 

 

섬마을의 그늘막으로나 서 있는

은퇴한 배를 보고 있네

 

기관은 녹슬어 고장이 나고

갑판에 개들이 오줌을 싸고

달아나는 낡은 배

 

파도소리는 귓가로 밀려오고

다시 아슴아슴 멀어지고

햇살은 늙어가기 좋게 따사롭고

 

천천히 죽어가기 좋게 눈부시고

 

일출봉은 큰 말씀으로 서서

바다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하고

바람은 귓가에 몰려와서

꿈을 이뤘는지 자꾸만 물어보고

 

늙어가는 일이 사는 것보다 더 어려워라

꿈을 꾸지 않는 일이

꿈을 꾸는 것보다 더 어려워라

 

꿈속에서라도 삐걱삐걱 노를 저어보네

 

저 성화들을 피하는 게 상책이 아닌가

 

 

 

 

 

세한도

 

 

 

소나무의 거친 표면을 훑다 가듯 바람이

내 몸의 열을 내리고 있는 동안 처마 밑에

손을 집어넣어보기도 하고, 먹빛에 절은 정신을

후려치기엔 세찬 싸락눈만한 게 없는데,

눈이 올 것 같은 하늘을 예감하듯이

물에 둥둥 떠서 여기까지 흘러올 줄 꿈에서조차

몰랐구나, 종이에 쓴 글씨는 눈에 남지 않고

마음에 남지 않고 모두 바람에 쓸려가니

광활한 벌판만 아득하게 펼쳐지네, 텅 빈 영혼만

푸른 감옥에 갇히네, 구름이 몰려와서

빗방울이 되는 것, 처마에 머물려고 고드름이

되는 것, 바람에 쓸려서 막다른 길이 되는 것,

모든 것은 내가 찍은 발자국들이니

그 발자국들을 눌러 밟으며 눈이 오려나, 건너가지

못하는 그리움으로 눈이 오려나, 적막을 콕콕

찍으며 새가 날아오지 않을까, 목줄 풀린 개가

킁킁거리며 지나가지 않을까, 마른 나뭇잎들이

제 그림자를 굴리지 않을까, 동백들 떨어지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지는 않을까, 혹은 붉은

열망들이 꿈속에 떨어지지 않을까, 이 고요를

하루 종일 들여다보게 하려고 이 적막으로

수천의 벗을 삼게 하려고 누가 나를 여기로

보냈나, 살아야 할 이유가 참 많기도 하지

 

 

 

 

 

 

 

물빛의 영혼들, 수마포구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빛을 맞으며

먼 바다 쪽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다

갈색의 갈기가 바람의 방향대로 일어서고

일렁이는 빛이 잔등을 쓸어내린다

초록이 일렁이는 언덕을 달려서

숲으로 난 갈래 길을 달려서

불꽃으로 살다가 스러진 묘지들을 달려서

어떤 외침이 바람소리에 묻힌 억새밭을 달려서

시퍼런 파도들을 떠나보내는 절벽 앞

그 앞까지 다다라서 빛은 울먹이다 오는가

해가 떠오르지 않는 날들이라고

어둠 속의 실타래를 풀다가 오는가

하나를 얻고 다른 하나를 잃었다고

두 손을 내려치는 후회로 오는가

빛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고 싶은 걸까

대지의 호흡을 내쉬고 있는 말의 잔등,

금빛의 갈기는 거친 바다를 달리고 싶은지

일어서고 누우며 물빛의 혼을 부르고 있다

포말로 달려오던 파도가 말발굽을 싸안고

바다 위를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다

거친 맥박을 되살리는 해협을 달려가고 있다

갈색의 갈기가 금빛으로 물들어 반짝이는

빛은 여전히 말의 잔등을 쓰다듬고 있다

눈부신 기억 속에서 제멋대로 자라난

제 그림자를 이따금씩 뜯어먹고 있다

 

 

 

      

 

 

박현솔 / 1971년 제주 성산 출생. 아주대 대학원 졸업(국문학 박사). 1999한라일보신춘문예와 2001현대시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달의 영토>, <해바라기 신화>, <번개와 벼락이 춤을 보았다>와 시론집 <한국 현대시의 극적 특성>이 있음. 아르코 창작지원금 2회 수혜. 경기시인상 수상. 현재, 계간문학과 사람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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