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무늬 짐승 / 연명지 시인

한영제 기자 | 입력 : 2019/04/18 [14:30] | 조회수 : 283

 

 

물결무늬 짐승

 

 

상도동 살 때의 일이다

닦아놓은 방과 마루에

물결무늬 짐승의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진흙탕을 지나온 듯

건기를 피해 우기를 찾아온 듯

갈피를 못 잡는 발자국으로 보아

쉽게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희귀종이거나 멸종위기의 짐승이 분명했다

손잡이를 구별한 걸로 보아

다섯 개의 손가락이 있는 유인원

옷가지를 흩트려 놓은 것으로 보아

주둥이를 쓰는 짐승

순서와 경우와 예의가 없는

불법의 짐승

 

물 한방울 없는

물결무늬 발자국은 가벼웠다

가벼웠다는 건 빈손의 상징이지만

배후엔 또 배고픈 짐승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

물결무늬 발자국이 흔들리는 것은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는

열 한시의 종소리였을까

모든 원인에는 배후가 있음으로

모든 행위에 대해 분노를 유예했던 일

그리고 며칠 뒤, 구석에서 떨고 있는

미쳐 닦아내지 못한

발자국 하나가 떨고 있던 일

 

상도동 살 때의 일이다

 

 

 

 

 

 

 

 

 

 

-세월호 5주기에 부쳐

 

 

아직 어린 너는 영장산 가슴에 잠이 들었지

바람이 이곳 저곳 몰려 다니며

우우 우는 기슭에 잠겨 있지

산벚꽃 지면 봄도 지워지고

연두의 언어들 무성하게

너는 여전히 꽃처럼 팔랑팔랑 걸음마 중이지

산새들도 서성거리지

서로의 허공을 쓰다듬다 돌아서면

팔랑, 따라 나서는 산벚꽃

젖은 눈 속을 어린 네가 들락거리지

감은 눈 속에 네가 서 있고

 

지독한 감옥, 거기 석방은 없지

 

 

 

 

 

 

 

 

 

연명지 시인

2014시문학등단.

시집가시비』『사과처럼 앉아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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