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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남쪽으로 8시간 5분 / 이소호 시인

한영제 기자 | 입력 : 2019/04/23 [03:03] | 조회수 : 260

 

▲     © 시인뉴스 Poem

서울에서 남쪽으로 8시간 5

 

시진아 

언제부터 흉터가 우리의 놀이가 되었을까?


싸워서 얻는 게 당연하잖아


삶은 지옥

평화는 초현실


남반구와 북반구

우리는 서로의 환자가 되고 


적도에서 즐기는 치킨게임” 


언니 입 조심 하는 게 좋을 거야

요즘 나에 대해서 함부로 말 하고 다닌다며


나도 들었어 그 소문


동생은 도끼를 들고 새빨간 군화를 툭툭 끊고 빨갛게 물들고 나는 

엉거주춤 울었다 


다리를 잃었으니 이제 

걷지도 기지도 못할 거야

당할 일만 남은 거지 


나는 잘린 다리로 콩콩 뛰었다 나의 싸움은 전설이 되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더러워지고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커다란 폭탄 하나를 시진이 땅에 묻고 저지르고 눈을 감았다 셋 둘 하나 빵


케언즈산 코카인 300달러에 1그램” 


언니 잘 들어 우린 중독된 거야 

내가 영원히 집에 못 돌아가게 머리를 다

날려버릴 거야 


슛슛 

뱅뱅


배신자에게는 혁명도 동지도 없을 뿐이라네


집행대 위에서


나는 행잉행잉 춤을 

추고 춤은 나를 

추고 


더 세게 묶어줘 더는 떠돌아다니고 싶지 않아 


알아 

엄마 아빠는 역시 우리를 버렸나봐 

말해 뭐해 언니 너도 날 버렸지 


하필 우리 살아 있으니까 

겨누는 일을 멈추지 못하니까 


슬펐어 

 

우리는

없는 명분을 만들어 서로의 귓구녕에 대고 

쏘았다 갈겼다 바쁘니까 


 아침 먹고 점심 먹고 드디어 저녁 먹고 땡


자 이제 우리 누구 손목에 선이 더 많은지 세어볼래?


너는 말년 병장이구나 나는 고작 이등병인데


별을 보려면 얼마나 많은 밤을 치고 

받아야 하는 걸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는 서로의 승리를 위해 기도했다 

하시시 웃으며 빙글뱅글 춤을 

추며


언니 세상에 사랑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이제 알았지

베드로도 사랑했어 예수를


고백할게


사랑해


그러니까 다시는 살아나지 말자 다시는 깨어나지 말자 다시는 눈 뜨지 말자 다시는 빤스도 흔들지 말자 다시는 투항도 포기도 하지 말자 쫄지 말자 울지 말자 잡지도 잡히지도 말자 다시는 다시는 살아서 보지 말자 누구든 쓰러져 죽으면 


그게 이기는 거야

 

 

 

 

 

 

 

 

 

사라진 사람과 사라지지 않은 숲 혹은 그 반대

 

 너는 쓴다


아름드리나무 사각사각 부서지는 햇볕 속에 

당신은 나 홀로 종이 위를 걷게 하고거기 섬나무다리 없는 의자아귀가 안 맞는 조개껍데기무리를 짓다 홀로 툭 떨어져버린 새 한 마리를 

쓴다 페이지의 끝에서 너는 

마침표 한 줌을 사고

 

다시 

나는 적힌다 

만남이 커피로 맥주로 침대로 

너무나 익숙해진

그렇고 그런 사람으로


원래 인물이란 입체적인 거잖아

변하는 게 뭐가 나빠


나는 따옴표를 열고 

너의 문장으로만 울었다 


좋은 사람좋은 사람 그럼에도 좋은 사람


바닥에 널브러진 뻣뻣한 빨래들처럼

아무렇게나 구겨지고 흩어지다 마구잡이로 입혀진다

너의 알몸 그대로 나는


슬픔이 리듬을 잃어가는 일을 묵묵히 바라보며


서로의 눈동자 속을 잠영하는


이제 우린


인사는 가끔 하고 안부는 영영 모르는 세계로 간다


이 빼기 일은 영  


아무것도 아닌 채로

적힌다소호야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색색깔로 칠 해봐밀가루 반죽처럼 온종일 치대다 어거지로 뚝뚝 떨어졌던 시간을그려봐멀고도 먼 눈을손을 그 보다 더 멀리 멀리 놓여질 등을상상해봐검은 크레파스로 덧칠한 우리 둘만의 밤을잘 봐 이제 거길 클립으로 파서 단 하나뿐인 세계를 만들자 


어때 이정도면 더는 슬프지 않지


우리는 숯처럼 새까만 숲을 걸었다

네 뒤를 졸졸 따르며 가끔 

내가 실수로 

클립으로 

도려낸 너의 마음에 

가슴을 대었다 

떼 본다


춥다










이소호 시인 

2014년 현대시로 등단김수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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