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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상* / 정우림 시인

정유진기자 | 입력 : 2019/04/30 [00:00] | 조회수 : 416

 

▲     © 시인뉴스 Poem



범상*

-남한산성

 

 

오래전부터 날개를 접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그곳에는 거대한 한 마리 새가 산을 품고 있다

 

바람과 안개의 길 따라 성곽이 펼쳐지고

가파른 돌담은 둥근 길의 나이테가 되고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가는 손과 눈사람을 올려주는 손이

날지 못하는 날개에 기대어 먼 집을 가늠하기도

 

여기서 잠시 쉬기로 하자

칠흑 같이 깊은 샘을 찾아 혼자 노래 부르며

눈물이 이끼가 되고 뼈가 가벼워질 때까지

 

잊지 말자 잊지 말자 무망無忘의 누각을

여기서 살아남아 본 것은 죽은 자의 천공

멱을 따고 뺨을 잃고도 숨쉬는 범상*의 날갯짓

 

새의 깃축을 타고 오르는 노란 감국이 새의 복족을 옥죄는 칡덩굴이

 

누구도 추살을 멈출 수 없는 여기

산성의 안과 밖 경계 사이를 조심스레 들어설 때

길 잃은 새 되어 숨어들고 싶을 때

부척跗蹠으로 숨쉬게 되는

 

바위의 피를 빨아먹고 자라는 소나무

꽃의 씨앗을 삼킨 단풍나무

위험한 가지 사이에 새를 키우며

과거를 돌고 돌아 혼자 또는 여럿이 얽혀 있다

 

지붕 없는 산성 안 능선의 날개가 비상하는 초어스름엔

햇빛의 깃털이 산산이 뿌려지고

그 깃을 품고 비탈진 도시로

 

삭망의 날개에 깃들어 사는 벌레와 오래 눈 씻고 있는 새를 남겨둔 채

 

 

*범상은 새가 날개를 편 채 날갯짓을 하지 않고 상승 기류를 이용해 나는 방법

 

 

 

 

 

1 . 4

-이중섭의 방

 

 

배 위에서 놀아 보아라 흔들리는 것은 따뜻하다

 

막 지은 밥처럼 기운을 돋아줄 손을 다오

 

배 위에서 그네를 타는 너를, 발가벗은 너를, 흰 물결처럼 그려주마

 

그림자의 싹은 햇살, 어깨에 돋은 구름의 날개

 

아들아, 아버지는 삭은 배 한 척으로 먼 바다를 건너 가련다

 

갈매빛 새들이 나무 위에서 잎 되어 떨고 있다, 날개를 접었다 폈다

 

부엌보다 더 비좁은 방, 가난한 웃음이 방구들 들썩이고

 

은하수는 지붕 위에서 놀다 동백나무 부리가 되고 날개가 되어

 

그릴 것이 없구나, 너희는 바람이고 하늘이고 무한한 바다

 

걸음이 느린 환상이 서귀포의 물빛으로 뒤척인다

 

아버지는 모자를 쓰고 화폭처럼 출렁이며 집을 나선다

 

날개를 잃고 어깨를 얻고 손을 내주고 발가락을 얻는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방바닥에 배 깔고 종아리 펴고

 

 

 

 

 

정우림 시인 약력:

 

2014열린시학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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