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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 말라가 / 정선

정유진기자 | 입력 : 2019/05/03 [08:25] | 조회수 : 200

 

▲     © 시인뉴스 Poem



 

말라가, 말라가

 

정선

 

 

 

머리 위에 낡은 구두를 얹고

페르낭드를 시작해야지

말라가는 사랑을 발효하는 곳

자클린,

어디에서도 불거진 광대뼈로 말라가를 노래할 것이야

 

마름모꼴 눈동자에 동그란 점을 세 개 찍는다면

우리의 귀는 같은 방향으로 길어질까

도라, 묻고 물으면 물음표가 새처럼 날아올라 싱싱해질까

 

말라가는 사랑이 농익어 잿빛으로 터지는 곳

그렇게 함축적으로, 마리

 

오 센티만 기다리면 어둠이 새벽이 되고

낯섦도 설렘이 되는 말굽모양 광장에서

예의 바른 파라솔에 침을 뱉고

오늘 아침 설교는 생략하기로

아름다움을 훼방 놓고자 하는 심리

과감하게 프랑수아즈,

엇박의 긴장을 즐기고 있어

 

어쩌면 뮤즈와 호구는 붓질 하나 사이

올가, 말라가는

꺼지지 않는 불이다

주체할 수 없이 솟아나는 붉은 마음을 읽는 거다

 

거친 붓질에 심장을 또 한 번 베이는

나의 페르낭드올가마리도라프랑수아즈자클린

그리고 에바들

 

안녕하세요 피카소 씨

아직 엔딩 크레디트를 올릴 수 없어요

 

 

 

달걀 한 알

 

정선

 

 

달걀을 받았습니다 달걀은 금이 가 흰자위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초점 없는 눈동자는 창밖 날짐승의 시간을 하염없이 통과했습니다제 속이 곪아 자존이 줄줄 새는 줄도 모른 채 달걀은 무엇을 바라보았던 것일까

 

흰자위는 근성이었고 자긍이었고 맥아리였습니다

 

달걀은 무심코 쳐다봐도 상처를 입습니다 눈빛에 온기를 듬뿍 담아도 눈빛은 튕겨 나갈 수 있습니다

달걀 파동 이후 사람들은 촉수가 예민해졌고 유기농과 무항생제와 농가에서 자란 닭이 낳은 달걀만 골라갔습니다 차가운 눈길에 외면당하기 일쑤인 달걀은 세상에 대한 면역결핍으로 자꾸만 제 안에 숨습니다 불안은 친구인 양 손 내밀어 등을 토닥토닥 쓰다듬어주었습니다

 

꿈속을 굴러다닌 달걀은 맨질맨질합니다 켁켁, 숨구멍이 막혀 발버둥 칩니다 악취를 풍깁니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속울음 아우성이 들립니다

 

무관심은 슬픈 폭력입니다

 

둥지가 꺼끄러워 못살겠다던 달걀 스스로 껍질을 깨보겠다고 뛰쳐나간 달걀 수상한 공기가 뭉쳐 얼굴에 박태기꽃이 피었던 달걀 몸속 주머니가 많은 달걀 주머니가 많아서 평생 몸속 방울 소리가 명랑한 달걀 그 공명이 붉은 강을 이루는 달걀 붉은 강을 따라 흐르다 눈부신 설산 아래 안락을 꿈꾸는 달걀 환한 안락을 위해 일출과 일몰과 1224일을 견디는 달걀

 

깨진달걀을 받았다는 것은 온몸의 세포들과 신경이 예속되었다는 것

더 이상 세상으로부터 다치지 말라고

썩어가는 달걀의 곤내까지 감싸 품는 것이 어미닭의 미련한 사랑입니다

 

달걀은 곧 너의 심장입니다

 

 

 

 

<약력>

2006작가세계등단.

시집 랭보는 오줌발이 짧았다(2010), 안부를 묻는 밤이 있었다(2019)

에세이집 내 몸속에는 서랍이 달그락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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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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