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 손창기시인

정유진기자 | 입력 : 2019/05/07 [08:23] | 조회수 : 412

▲     © 시인뉴스 Poem



 

구름

손창기

 

 

구름 한 뭉치를 어머니는 절구통에 넣고 있었다. 절구질에 구름이 가끔 튀어 오르기도 했다. 자궁 속처럼 시간이 갈수록 구름은 곱게 빻아졌다. 구름은 자기끼리 뭉치고 헤어지곤 했다. 흙담을 드나드는 안개처럼 몸속에서 물기가 맴돌았으면 했다. 잘 빻아진 구름이 햇살과 함께 증발하기 시작하자, 구름이 어머니의 물기를 빨아 들였다. 구름이 허파를 점점 조여들게 하더니 어머니를 삼켰다. 부지깽이 두드리며 장작불을 지피자 굴뚝이 연기를 마구 뿜어냈다. 연기 품은 구름이 점점 부풀어지자 어머니를 내놓았다. 프라이팬에 참깨를 볶듯이 마당에서 물방울이 춤을 추었다. 몸속에 물방울이 맺힌 어머니가 식구들에게 슬픔의 구간區間을 줄였는지 모른다.

 

 

 

 

 

밤비 신드롬*

 

 

마루 밑, 흰둥이가 낳은 새끼 몇 마리

홀로 나온 강아지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쓰다듬어 주니 온기에 눈을 감는다

손결에 누운 털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미 개는 다시는 그 새끼를 받아주지 않았다

사람 냄새가 몸에 배어든 것이다

 

어미 개가 뿌려놓은 몸내를 내가 지워버린 것인가

애무에도 독한 치사량이 숨어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죽음을 불러들이는 그런 애무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되겠다, 아픈 눈빛으로 바라본 여인이 울음 터트릴 때

바로 곁에 두고도

끝내 손 한 번 잡지 못하는 이유를 알겠다

 

마음 감추는 것이 더 어려울 때

컴컴한 마루 밑으로 얼굴을 들이밀고는

코를 킁킁거려본다

향기와 맛이 코끝에 매달려 있다

어둠에게 육신을 맡기니 냄새와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나를 더듬고 있다

 

반죽덩이처럼 아주 부드러운 손이

때론 사랑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다

 

 

* 펠릭스 잘텐의 동물소설 밤비의 주인공이자 아기사슴. 죽음을 불러오는 애무를 일컬음.

 

 

 

 

착란錯亂

 

 

청춘 남녀가 줄무늬 옷을 입고 지나간다

공원 잔디밭, 저들은 얼룩말 같다

서로의 숨결과 향기가

색깔에 맞으면 저렇게 어룽질 것이다

 

무늬와 민무늬 사이, 한번쯤

늙은 하이에나가 되어 급소를 노려보지만,

숨근이 펄떡거릴 때마다

무늬가 부풀어 아주 큰 덩어리로 보인다

저들은 이미 초원에서 사랑을 진화시켜왔으므로

우리 시야를 흐리게 만든다

 

흔한 빛깔을 지녔다면

언덕으로 몰아가 아랫도리라도 세우지 못했을 것,

뗄 수 없는 줄이 있기에 누군가

저 틈바구니에서 미각을 잃어갈 지도 모르겠다

 

얼룩말처럼 지워지지 않는

몸에 뒤틀리지 않는 바코드, 혹은 영혼

별들도 얼룩져 있기에

제각기 제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을

 

저 별들이 지상에 내려와

발자국을 찍어 놓은 것이 사랑의 무늬라면

찢어지고 끊어질 그 지점이

바로 급소일 것, 물어뜯는 순간까지

어슬렁거리며 심장에다 점박이를 새겨 넣는다

 

 

 

 

 

청갈 바람불기 전에

 

 

우수와 경칩 사이, 백태가 낀다

숭어도 내외간이 있는데

수컷이 마누라를, 마누라도 수컷을 몰라 본다

 

공모共謀와 순수 사이, 어슬렁거릴 때

잡다한 생각의 아가미마저 삼켜 버리는 백태

수놈이 옆집 암놈의 알에다 마음껏 정자를 뿌린다

 

전부를 볼 수 없는데 전부가 보이는,

마지막 꿈틀거림이 봄 바다에 있다

지루한 눈짓이 싫어, 차라리 눈 떨다가 멀겠다

 

겨우내 숭어가 몸에다 지방을 쌓듯

바라봄과 눈멂 사이, 불륜을 저장해 왔는지 모른다

수컷은 봄에 죽어도 봄인 줄 모른다

 

눈꺼풀 벗겨질 때, 당신 눈빛에 데일까봐

뻘에다 머리를 들이밀고 파르르 떤다

 

숭어 눈 맑아질 때 청갈 바람 다시 불고

바다 속이 확 뒤집어진다,

봄 바다의 밑바닥까지 하얘진다

 

 

봄에 부는 세찬 남서풍으로, 물고기가 있다가 사라짐.

 

 

 

   

 

입을 따다

 

 

그대의 갈고리를 넣어 입을 따 보라.

 

짠물이 빠지도록 간이 알맞도록

박달대게, 홍게의 입을 따 보라.

사각의 찜통 안에서도

사지육신四肢六身이 떨어지지 않고 바탕이 설 테니

 

쿠싱한 냄새를 끌어당기는 김살은

도드라진 모서리를 갉아 먹고 있다.

 

배 한 척이 섬의 입을 따고 들어간다.

배가 지나간 자리에 마블링이 끊어지지 않는다.

저 섬은 곧 삶기고 있는 중이다.

김살을 뿜어내며 섬은 둥글어진다.

 

짠물이 몸에 가득하니 입을 따 보라.

섬 안에다 쟁기를 댈 수 있을 테니

 

어떤 이유든지 입을 닫지 마라.

시퍼런 식칼로 객귀客鬼를 풀어낸 적 있어

사지 멀쩡하고 입에 밥알 들어간다.

 

 

 

 

      

 

 

얼음이 운다

 

 

한파에 저수지 얼음이 울고 있다

그녀의 눈이 붓고 있는 것이다

눈물이 눈시울에서 말라가고 있는 것이다

얼음을 녹일 수 있는 건 눈물뿐인데

차가운 그녀는 어쩐지 적막하고 쓸쓸하다

하늘에 떠있는 눈물샘을 촉촉이 해 주려고

순간을 잡고, 그녀는

물과 공명共鳴이 되어 쩡쩡 울고 있다

얼음 숨구멍이 그녀의 아감딱지이므로

울음의 장단이 잘도 맞아 떨어진다

둥글게 모여드는 울음은 어떤 빛깔일까

나는 아감딱지에 손을 넣어 보기로 한다

얼음 위 눈물 자국에 발이 얼어붙은

한 마리 거위가 되고 만다

중년의 눈썹에 느닷없이 눈물이 난다

따듯해지는 나는 누군가의 얼굴을 더듬어 본다

그녀의 숨구멍이 금세 제 얼굴을 지운다

어떤 말을 걸어 봐도 딴소리로 답하는

이미 찰랑대는 물

 

 

 

   

 

 

천수관음무千手觀音舞

 

 

춤을 알기 전 소리를 먼저 들어야 했다

소리 없는 북의 진동을

 

듣지 못하는 왕이메이*는 소리를 본다

스테레오에서 각기 다른 노래가

빛깔과 더불어 적셔오는 걸까

저 빛깔이 노래한다고 받아들이는 걸까

몸속에 온갖 꽃물이 물들여져 온다

소리는 공기와 물 사이에 놓여 있는 셈이다

소리의 물줄기를 맞는 순간,

그녀의 몸이 화르르 꽃으로 피어날 것 같다

 

춤은 노래를 표현할 또 하나의 언어言語

진동과 리듬을 지닌 그녀, 춤의 영혼이다

 

무용과 음악을 한곳에 모을 수 있는 건

심장의 속삭임,

심장을 앞사람 등에 포갠 채 그녀는

고요와 격렬한 고동소리로 천수관음을 일구었다

마흔두 개의 손을 펼치고 거두는 동안

바다를 들여 놓는 듯 파도가 인다

객석마저 바다의 체 속으로 잠겨든다

관대한 고통들이 한꺼번에 씻겨나간다

 

 

* 중국 장애인예술단에 입단한 청각 장애인.

 

 

 

 

 

 

 

탁목啄木

 

 

나무는 그에게 대장간쯤 될까

도끼날을 갈 듯

죽은 나뭇가지에다 부리를 쪼아댄다

뚜루루루루룩, 뚜루루룩

소리를 내며 튀는 톱밥보라는 불꽃같다

 

새의 몸집이 작을수록 소리가 맵다

나무는 구멍을 내주고

매운 소리까지 먹느라 화덕처럼 열에 들떠 있다

옹이에다 구멍 파는 건

서툴다는 징후다, 도끼를 내려치는 것처럼

나무의 굳고 무른 그 결을 잘 타야 한다

도끼의 이빨이, 새의 부리가

뭉텅해지고 날카로운 만곡점을 수없이 지나야

마음의 결을 탈 수 있다

 

수컷이 후보 나무에 작은 구멍을

몇 개 파놓고 그대를 기다린다

안쪽 벽에다 진흙을 다져 물길을 튼다

그대 마음에 든 구멍은

불에 닿아 있기에 잉태할 수 있겠다

 

쪼아댈수록 딱따구리는 편두통이 없어지고,

사랑의 충격 흡수장치가 견고해진다

새의 복부腹部도 오동나무도

불을 감추고 있어 무늬와 빛깔이 새겨진다

 

 

 

 

 

어슬녘 귓바퀴가 젖어야

 

 

쓸데없는 소리들은 집이 다 잡아먹는다

 

맑은 어둠이 내릴 때 집은

큰 범종을 걸어 놓는 걸까, 음관音管이 생긴다

소리의 혀를 내밀어 잡음을 걸러내는 중이다

소용돌이치던 공기도 슬몃슬몃 가라앉는다

 

어스름이 냄새와 빛깔까지 잠시 붙잡아 둔다

순간, 귀에 익은 소리들

아이들 공차는 소리, 마지막 풀벌레 소리

 

맑은 소리만 잡아두었다가 내뱉는다

혀가 짧은데 더 멀리 퍼져 나간다

소리에 끌려가는 시간이다

어릴 적 저녁밥 먹으라는 어머니 소리가,

먼 들판에서 놀아도 흑백사진처럼 들린다

 

이미 달을 갖고 싶어 하는 시간이므로

돌담집이나 동해 바다나,

달빛 스미는 돌의 외침까지 품고 있는 게다

 

먼저 귓바퀴가 젖어야

달빛이 물로 변하는 소리까지 또렷이 들을 게다

 

 

 

 

 

 

사랑

 

 

사랑한다는 건

벌새처럼 거미줄을 훔치는 것

점액질 그물에 걸려드는지도 모른 채

그리움의 한 줄을 찾으러 가는 것

 

1분에 6000번의 횟수로

심장 속에 벌새의 날갯짓을

새겨 넣는 것

 

그대가 비워둔 마음 한 줄에

한 가닥의 실을 얻어

겨우

자신의 둥지를 꿰매는 것

 

그 한 줄도 얻지 못해

끈적이는 둥근 거미줄에 걸려

몸이 다 빨아 먹힌 줄도 모르는 것

 

이런 일들조차 떠들어대면

그 기억마저 사라질까봐 두려운 것

 

 

 

 

 

 

 

약력> 손창기 - 경북 군위 출생.

2003현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달팽이 성자가 있음.

jangoyes@hanmail.net

 

 

 

 

  • 도배방지 이미지

시집 소개

더보기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