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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홍련*, 고려에서 온 편지 외 1편 / 송연숙시인

정유진기자 | 입력 : 2019/05/15 [21:47] | 조회수 : 282

 

▲     ©시인뉴스 Poem

 

 

 

아라홍련*, 고려에서 온 편지 1

 

 

창가에 서서 등불을 켰다 껐다 반복합니다. 어느 행성에서 누군가 이 별을 알아본다면 압축된 폐지처럼 눌린 시간의 핏줄에도 혈기가 돌 것입니다. 가끔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봅니다. 밖을 내다본다는 것은 눈동자가 서성인다는 뜻이지요.

 

씨앗 하나가 매일 매 시간 물었을, 지금은 어느 계절인가요? 700년이 지나도록 계절은 오지 않아서 나도 감감무소식입니다.

 

별을 빚어 아미타불에게 드립니다. “인간의 생을 잃지 않고 중국의 바른 집안에서 태어나되 남자의 몸을 얻게 해주소서.”** 우표도 주소도 없는 기도는 불꽃의 심지가 되어 떠돌이별처럼 밤하늘을 맴돕니다. 유리온실에서 바라보는 별은 타들어가는 심장처럼 팔딱입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현생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면 나는 차라리 진흙에서 뒹구는 바람이고 싶어요. 수드라처럼 진흙 바닥에 엎드린 나는 어금니에 씨앗을 꽉 물고 몇 개의 왕조를 건너갑니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한 여자의 말이 홀씨처럼 날아다닙니다. 터를 잡고 앉는 곳이 내 소유의 땅이라면 나는 어느 곳에 뿌리를 내려야 하나요. 태아처럼 웅크린 700년의 잠에도 물이 올라 오소소 온 몸에 가시가 돋아나는 여름입니다.

 

      

 

* 아라홍련: 2009년 함안산성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연씨가 피운 연꽃

** 1301년 고려시대 창녕군 부인 장씨가 쓴 발원문(發願文)

 

  

 

 

 

삼각별

 

송연숙

 

 

 

거푸집에서 갓 태어난 별을

방파제 끝에서 쌓고 있는 인부들

거대한 기중기가 움직일 때마다

별들은 얽히고설킨다

 

얽히고설킨 그 별들은 파도를 달래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한다

지구의 바다가 출렁거리고

넘칠 듯 넘치지 않는 물 끝

파도들은 저 삼각별에 와서 잘게 부서질 것이다

 

문득 저 하늘에도 저런 별 촘촘히 쌓여 있어

지구의 세파가 은하 근처까지

밀려갔다 흩어지는 건 아닐까

까마귀 울음처럼 어두운 밤이 오면

창가에 기대어 나를 바라보는 별

저 별에는 파도처럼 쉬지 않는 이름이 산다

책갈피에 꽂아둔 기차표가 출렁인다

얽히고설킨 끝으로 잘 살고 있다는 안도가

테트라포드처럼 쌓여 있지만

아득히 수평선으로 지워지는 갈매기

그 갈매기처럼 해풍을 타는 하루의 점점들도

저 먼 별까지 밀려갔다 되돌아온다

사이렌의 음높이로 높아졌다 떨어지는 사람

어깨를 두드리며 잠 못 드는 불빛

모두 거푸집 안에 접어 넣는다

 

울렁거렸던 일이나

출렁거렸던 일들

잠잠히 가라앉혔던 일들 되돌아보면

그곳, 그때마다 삼각별

아득한 미궁의 역할들이었음을 알겠다

 

 

 

 

 

송연숙

 

약력

2016 <시와표현> 등단

2019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 시와표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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