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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 테라스 외 1편 / 홍계숙시인

정유진기자 | 입력 : 2019/06/05 [19:53] | 조회수 : 1328

 

▲     © 시인뉴스 Poem



▲     © 시인뉴스 Poem



라이스 테라스 외 1

 

홍계숙

 

 

저 산의 서랍을 누가 다 열어놓았나

 

마닐라에서 9시간, 끊어질듯 이어진 산허리 외길 끝

해발 1200미터 불가사의가 훌훌 외투를 벗는다

구름의 그림자로 지은,

 

바타드에서는 돌담도 꽃이다

 

불가사의의 다른 이름은 난해한 오후 햇살, 그것은 고립과 생존의 가파른 중턱에 존재한다

 

산의 뼈를 깎아 목숨을 잇던 이푸가오족이

이천 년 차곡차곡 쌓아온 천수답, 산안개가 머리를 풀고 수직의 계단을 오른다

 

신은 칸칸 서랍을 열어 무엇을 찾으려 했을까

 

빛줄기와 빗줄기를 번갈아 심던 산자락을 벅찬 호흡으로 올라

융기한 고요의 서랍 속을 숨죽여 들여다본다

 

논두렁길로 지구 반 바퀴를 쉬지 않고 걸어온 우렁이의 시간이 몸을 둥글게 말아 논물 속에 잠겨있다

 

나유타의 길들이 급경사로 이어지고

구름숲의 뿌리가 물의 발목을 잡고 내리사랑으로 차곡차곡 서랍을 채우는 동안

 

논은 수천 개의 물그릇이 되어 하늘을 담고 사람을 담고 나무와 구름과 해를 담았다

 

저 서랍 속에는 검은 절벽과 추락의 발등이 가득하다

 

척박한 비탈에도 감사를 심으면 알곡이 피는가

 

비가 그치고 테라스 밖으로 걸어 나온 하늘이 흙물 든 두 손을 환하게 흔든다

 

 

 

 

 

과육의 내부자들

 

홍계숙

 

 

꽃들은 과육의 안쪽에 있었다

 

좁은 틈으로 좀벌들이 드나들었다 초여름 밤의 깊숙한 내부에서 일어난 일, 만져지지 않는 안쪽은 부풀고 있었다

 

바깥에서 꽃을 본 사람은 없다 빽빽한 꽃들에 닿기 위해 벗어둔 좀벌의 날개와 더듬이가 입구에서 발견되고

 

어둠의 안채엔 붉은 꽃이 피었다

 

감춰진 렌즈 속에 침대가 생겨나고 미끄러운 악취가 있었다 좀벌들은 암술의 미래에 구멍을 내고 춤의 스탭을 밟으며 몽롱한 꽃 속을 헤집고 다녔다 좀벌과 과육, 그들은 공생이었다

 

  봄날이 낙엽으로 내려앉았다

손 글씨 증언을 남기고

 

  꽃을 버린 무화과가 먼 길을 떠나고 꽃가루를 묻힌 소문들이 익어갔다 꼭지에서 흘러나온 끈끈한 유액이 입술에 닿아 소문이 부르트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다고 꽃이 없다던

 

벌은 벌대로 하루살이는 하루살이대로 저만큼 무아지경을 탐하던 밤이 지나가고

 

해묵은 과욕의 껍질이 서서히 벌어지고 있다

 

 

 

 

- 시와반시2019 여름호 홍계숙 소시집 신작시 20편 산문 1

 

 

 

홍계숙 강원 삼척 출생, 경기 일산 거주

- 2017 시와반시등단

- 시집 모과의 건축학2017, 책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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