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비를 보면서 눈물이 흐르네 사람들은 어디에 기대어 살까* / 최정란시인

정유진기자 | 입력 : 2019/06/07 [19:32] | 조회수 : 168

 

▲     © 시인뉴스 Poem



티비를 보면서 눈물이 흐르네

사람들은 어디에 기대어 살까*

 

1

이 프로그램에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만 출연한다

우리 결혼했어요

가상의 신랑과 가상의 신부가 가상의 결혼식을 올리고

알콩달콩 가상의 결혼생활을 이어간다

 

가끔 가상의 늑대가 불 켜진 가상의 신혼집을 넘보고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교묘하게 기획된

가상의 갈등이 뒤엉키고

가상의 문제가 큰소리를 낸다

 

카메라가 꺼지면 끝나는 가상의 결혼

그 정도라면 얼마든지 할만하다

카메라 없이 진행되는 진짜 결혼을 참을 수 없다

 

 

2

새 신발 혹은 신상 명품가방이 아이라 불린다

 

자비롭고 아름다운 엄마는

뱃속에서부터 태교하는 수고를 하지 않고

밤늦게까지 학원으로 아이를 내몰지 않는다

 

출산의 고통도 없이 열 달의 임신도 없이

성령의 잉태도 없이

아프로디테의 몸매를 자랑한다

 

신발의 엄마가 된 여자, 가방의 엄마가 된 여자가

아이를 발에 신고

아이를 팔에 걸고

법랑 밀크팬을 아이라 부르는

유능하고 다정한 작가를 만나러 간다

 

모성은 흘러 넘치는데

진짜 아기를 선물해줄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3

그날 저녁 튤립이 시들었다

 

튤립을 입양한 여자가 죽은 튤립에 물을 주며 울고 있다

왜 나를 엄마라 불러주지 않는 거니

왜 젖을 빨지 않는 거니

 

* 가요의 노랫말

 

< 2019 봄 시와 사상 >

 

 

    

 

 

은행나무 두 그루 있는 집 / 최정란

 

 

이렇게 끝나는 주소를 손으로 베껴 쓴다 밤새워 쓰고 찢기를 반복하며 쓴 손편지를 부쳐야 할 것 같은 주소,

 

은행나무 위 까치집이 대를 잇는 집, 해마다 어린 까치들 노란 입 짝짝 벌리며 먹이를 보채는 집, 그 입들 먹이느라 날개에 땀나도록, 어미 아비 까치 부지런히 드나드는 집, 이따금 자잘하게 속 썩이지만 뿌리 튼튼한 두 그루, 아들 딸, 우뚝 발랄 쑥쑥 자라는 집, 주소가 적힌 흰 봉투를 들고, 오래 전 잃어버린 골목 묻고 물어 초인종을 누르고 싶은 집, 허공에 누운 얕은 잠 내려두고 한숨 푹 자고 싶은 집, 땅에 발붙인 집, 농밀한 어둠에 뿌리내린 꿈 깊고 깊은 집, 가을이면 노란 잎들 뒤덮어 파라오의 무덤이 되는 집, 태양의 집, 풀벌레들 껍질을 묻고 잠들어 새 봄 풀벌레 한 마리에 잎 하나씩 은행잎으로 부활하는 집,

 

Castle, Tower, 궁전 Palace, 공원 Park 으로 추방당한 신귀족들이 영원히 잃어버린 모국어의 주소, 그토록 찾고자 노력하였음에도, 어느새 창궐하는 총독의 언어에 지배당하는 모국어의 주소,

 

이 언어의 식민지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뜬금없이 혼자 외치다 민망해져 나직나직 중얼거리는, 낯익어 낯선 다정한 주소

 

*베르톨트 브레히트 후손들에게 부분- ‘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곧 /그 많은 범죄행위에 관한 침묵을 내포하므로/ 거의 범죄나 다름없으니,/ 이 시대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2019 봄 사이펀 >

 

 

 

 

 

최정란 시인 약력 :

 

경북상주출생

계명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3<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장미키스 3

2016년 제7<시산맥작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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