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항 외10 편 / 박 병 두시인

정유진기자 | 입력 : 2019/06/24 [00:01] | 조회수 : 450

 

▲     © 시인뉴스 Poem



출 항

 

 

 

 

박 병 두

 

떠나가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정박은 단지

큰 바다로 나가기 위한 묵묵한 준비였을 뿐

그저 한가로이 휴식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제 다시

뚜우뚜우 힘차게 용트림을 시작하고 있다.

태양이 새벽을 밀어내고

아침 바다를 햇살로 물들이며

힘차게 떠오르듯이

어제 머물렀던 배는

망망한 대해, 태양을 바라보며

온몸으로 대양(大洋)을 밀어내고 있다.

떠나감은 그러나

돌아오기 위한 출발일 뿐

망망한 바다 어딘가에서

오래 머물고자 함이 아니다.

돌아와 넓은 곳의 바람과

풍랑과 세상의 풍성함에 대한

이야기를 창고 가득 싣고 오기 위한 것일 뿐.

떠나가고 있다.

그것이 이별일 수 없는 것은

헤어지자는 사연을 싣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다.

거룩하기 때문이다.

저 장엄한 태양과 바다

노도와 같이 몰아오는 파도도 실은

출항의 거룩함을 위한

합창일 뿐,

물결을 진동시키며

우리가 엮어 나가야 할 세상으로 향하는

힘찬 출발에 대한 찬가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작은 헤어짐이 실은

더 큰 만남을 위한 묵묵한 준비라는 것을.

저 바다가 하나이듯이

이 작은 헤어짐조차

우리가 대해에서 만날

약속이라는 것을.

출항하고 있다.

그 행진의 서곡에

천 마리 만 마리 비둘기를 풀어

태양이 찬연하게 떠오르는 바다 위에

훨훨훨 날게 하라

 

 

 

 

 

그대는 지금 어디있는가

 

박 병 두

 

어김없이 오늘도

해가 떠올라

젖고 어두웠던 땅을 데우고 있다.

밝히고 있다.

 

지친 몸으로 어제 집으로 돌아갔던 사람들은

저 햇살 아래

새와 나무와 바람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이웃의 웃음 속으로 나와

새로운 날을 맞고 있다.

 

국밥을 끓이는 식당과

한 잔의 술이 기다리고 있는 술집은

또다시 하루를 맞고

동장군이 오고가는 거리에는

푸른 아이들이 입김을 날리며

내일 무엇이 될 것인지

이야기하고 있다.

 

그대의 동료들 또한

어제와 다름없는 정복을 입고

안전과 질서, 평온과 안돈을 위하여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그 속에 그대는 없다.

어제만 해도 사무실의 컴퓨터처럼

길 위의 순찰차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대는 지금 없다.

앞으로도 그대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까만 소식이, 그 비보가

밤의 어둠을 뚫고 들려왔다.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임무를 마친 뒤

꽁꽁 언 손을 후후 불며 돌아와야 했을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따스한 방으로 돌아와야 했을 그대는 왜

아직도 귀가하지 않고 있는가?

 

우리는 알고 있다.

직무수행을 위해 그대가 오목천을 향해

떠나던 때에도 칼바람이 불었던 것을.

우리는 또 알고 있다.

그 며칠 전부터 매서운 한파가 이 지상에

엄습했다는 것을.

그대가 마지막으로 서 있던 도로 위에도 필시

날 선 바람이 불었다는 것을.

 

그런데도 우리는 손난로 하나 마련해주지 못했었네.

보온병에 따스한 커피 한 잔 담아주지도 못했었네.

다만, 잘 다녀오라고, 무사히 다녀오라고, 수고하라고

평상시의 인사만 몇 마디 던져주었을 뿐이었네.

 

어둠과 날 선 바람이 부는 곳

그곳이 우리의 일터였지만

그것을 탓하지는 않았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우리는 가야 했고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우리의 일터였으니까.

 

밤하늘에 퍼져나갔을 그대의 비명

그대의 아픔이

이제 남은 이들의 가슴을 후비고 있다.

그대를 지켜주지 못한 회한이

지금 이 지상을 떠돌고 있다.

어제와 다름없이 되풀이되는 일상 속에

그대의 아픔이 아로새겨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여기 남아 있는 그대의 메아리

그대가 이루지 못한 몇 가지 꿈들

그리고 몇 가지 사연을

이제 그대의 머리맡에 뉘여야 한다.

비통을 참으며

그대를 보내야 한다.

이 추운 날 그대가 사랑하던 사람들 곁에서

그대를 멀리 보내야 한다.

 

입술 터지는 바람 속에서

그대의 체온이 아직 남아 있는 이곳에서

그러나 우리는 그대를 영영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잊을 수 없는 추억들

살아 있는 동안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그대와 함께 떠나보낼 수는 없다.

 

저 낯선 기운이 그대를 앗아갔지만

밑도 끝도 없는 무서운 바람이 그대를

우리들 곁에서 떼어놓았지만

살아 있던 날들의 따스한 기억들과

아직도 그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속으로 그대는 다시 돌아오리라.

다시 이 지상 이 사람들 곁에 머물면서

그대 또한 환히 웃고 있으리라.

 

 

      

 

 

 

박병두 해남 가는 길 연작시

 

해남 가는 길

-노을에 기억이 뜨고-

 

박병두

 

해남 가는 길에 보았다.

이미 사라졌을 거라는

광주의 5월과 비명이

노을로 불타고 있었다.

죽음의 기억을 겹겹이 떠올리고

누가 노을빛 화염을 일으키는지

누가 저녁이면 거리에 나와 연쇄방화를 하는지

누구의 다비식을 하는지

해남 가는 길은 노을로 붉디붉었다.

내 유년의 기억이 불타오르고

금남로에서 총알 밥이 되어간

대학생이었던 사촌형이 스스로 분신하는지

뼈마디 마디가 불꽃을 일으키는지

해남 가는 길은 온통 붉디붉었다.

 

불타는 긴 그림자를 질질 끌고

해남으로 가는 길

마늘 순마저

붉디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해남 가는 길

 

-소쩍새가 길을 밝히고 -

 

박병두

 

소쩍새 한 마리가 밤을 지킬 때가 있다.

소쩍소쩍 하나둘 어둠을 읽으며

삼밭 위에 떠도는 별을

소쩍소쩍 울음으로 닦으며

밤귀 밝은 개마저 새근새근 잠든 밤

소쩍새 한 마리 깨어 있을 때가 있다.

가도 가도 끝나지 않는 해남 가는 길

긴긴 겨울잠을 주무시는 어머니의 꿈속에서는

할머니가 꿈을 똑똑 뜯어내어 수제비 뜰 텐데

가도 가도 보이지 않는 해남 가는 길

밤이 너무 깊어 길을 물어볼 데 없어도

소쩍새 한 마리가 길을 지킬 때가 있다.

달빛 같은 울음으로

끝날 듯 끝날 듯

해남으로 이어지는 길을 밝힐 때가 있다.

누구의 원혼인지 소쩍새 한 마리로

소쩍소쩍 울며 캄캄한 길을 밝힐 때가 있다.

 

 

 

 

 

 

해남 가는 길

 

-해남은 어디인가-

박병두

 

 

해남은 해의 남쪽인가

해남 가는 길

푸르던 내 마음 붉은 꽃으로 피어난다.

아니면 바다의 남쪽인가

해남 가는 길

소금꽃 끝없이 피어나는 가슴

낙타등 같은 하루를 두드리며

해남 가는 길

발바닥에 물집 잡히듯 잡히는 그리움

해남 가는 길

가면 갈수록 끝없이 목마르다.

 

 

 

      

 

 

해남 가는 길

 

-연어 -

박병두

 

해남에 가면서

해남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 그를 추억한다.

단숨에 청춘을 마셔버리고

낡은 지느러미를 푸덕이며

네가 천천히 거리를 박차고 떠난 날에는

첫눈이 이념같이 끝없이 내렸다.

네가 막차로 도착한 터미널까지 미행했던 어두웠던 날

생이란 어차피 모천을 찾아가는

연어 한 마리의 일생 같은 것이라며

해남을 향해

끝없이 저물어가고 싶다던 너의 말에

누구나 네가 떠날 것을 예감했지만

그렇게 빨리 떠나갈 줄은 몰랐다.

현실이란 고삐를 풀고

낡은 지느러미를 푸덕이며 네가 천천히 떠나갈 때

너를 붙잡아야 할 어떤 명분도

우리에게 없다는 것을 알았다.

네가 해남을 떠날 때 우유부단했던 우리는

한 마리 연어처럼 유영하지 못했다.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같이

너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고 해남 찾아가는 길

끝없이 비 내리고 있다는 해남에는

저녁 밥 짓는 연기가 자욱하겠다.

 

 

 

 

  

 

해남 가는 길

 

-그곳에 가고 싶다-

박병두

하늘 푸른 날

푸른 하늘 이고 지고 해남 가고 싶어진다.

몇 켤레 그리움을 갈아 신으며

쩔뚝거리며

하늘빛 물든 푸른 이마 꼿꼿이 세우고

하늘을 질겅질겅 씹으며

하늘빛 끝없이 되새김질하며

푸른 하늘 밀고 당기며

짙푸른 하늘에다 쑥떡을 먹이며

씨벌 씨벌 해남 가고 싶어진다.

로맹가리새처럼

해남으로 죽으러 가고 싶어진다.

 

 

 

 

   

 

 

해남 가는 길

 

-붉은 길 -

박병두

 

누가 저리 마음 붉어져 갔나.

해남 가는 길

해당화 붉게 피는

누가 저리 피 철철 흘리며 갔나.

노을마저 붉은

 

저물면 새떼가 갈대숲에 내려앉듯

저물며 저물며 해남 가는 길

해당화 붉게 피는

 

앞서 가는 그 누가 있기에

발자국 발자국마다

해당화 붉디붉은

휘날리는 노래마저 붉은

 

해남 가는 길은 끝날 수 없는 길이다.

끊어질 수 없는 길이다.

소쩍소쩍 붉디붉은

소쩍새 울음마저 붉은

 

발바닥에 잡힌 물집이 수없이 터지고

누가 앞서 가고 있는지

긴긴 그림자마저 붉은

해남 가는 길은 온통 붉은 길이다.

 

 

 

 

     

 

 

해남 가는 길

 

-불멸의 길 -

박병두

 

해남 가면 꿈꾸고 꿈꾼다.

끝끝내 이름 하나 봉분으로 남겨졌지만

저 죽음마저 삭히고 삭혀

기어코 죽음을 툭툭 털고 일어나

녹음방초로 부활하기 바란다.

생이 순례의 시작이고

죽음이 푸른 순례의 길이라는 것을

저 나부끼는 풀이

저 허공으로 차오르는 새가

어둠을 헤치며 노래하지 않아도

뼈에 사무치기를 바란다.

생과 죽음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억겁을 건너고 건너

불멸의 사랑으로 가는 것임을

잊지 말길 바란다.

 

이 넓은 망망 세상에서

해남 가는 길

생과 사가 어우러져

저 묘지 위에 푸른 하늘을 담금질해 내어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불멸의 청춘으로 가는 것임을

잊지 말길 바란다.

불멸의 길로 가는 것임을

잊지 말길 바란다.

 

 

 

  

 

 

해남가는 길

 

-그리움의 길 -

박병두

 

해남 가는 길

하늘에 자욱한 날벌레여

숨찬 생명의 춤이여

하루살이여

하루살이가 가진 하루 분의 욕망이여

하루 분의 인연이여

불구의 목숨이여

 

해남 가는 길

저 자욱한 제비 떼여

제비 떼가 물고 오는 푸르른 여름이여

장마며 태풍이여

젖은 우산이여

젖혀진 우산이여

빨강우산이여

노랑우산이여

우산을 받쳐도 젖어드는 몸이여

궤도를 이탈해 오는 저녁이여

유실되어 가는 이념의 밭뙈기여

모가지가 꺾이는 강아지풀이여

수수여

길이 끝날 때까지 동행을 고집하는 사이비 같은 웃음이여

웃음 뒤에 가려진 눈물이여

 

해남 가는 길

가도 가도 가고 싶은

그리운 길이여

 

 

 

 

  

 

 

해남 가는 길

 

-해난의 길 -

박병두

 

해남 가는 길은 해난의 길인가

가도 가도 잠들지 않는 파도

가도 가도 멈추지 않는 멀미

순풍이 사라진 바다

해남 가는 길은 해난의 길인가

 

 

 

 

 

                    

 

박 병 두 (朴 秉 斗) 약력

 

1964년 전남 해남 출생, 월간문학 당선, 현대시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해남 가는 길 외 3 , 소설 그림자밟기, 인동초, 인파이터 등

경찰행정학 박사, 고산문학상, 이육사문학상, 전태일문학상 등 수상

수원문인협회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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