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화유감 외1 편 / 이경애시인

정유진기자 | 입력 : 2019/06/27 [22:53] | 조회수 : 151

 

▲     © 시인뉴스 Poem



탄생화유감

 

이경애

 

 

 

꽃 앞에서 걸음이 멈춰지면 늙는 거라고

 

꽃나무 아래서 하염없이 바라보는 건 저승의 향기를 맡는 거라고...

 

그런가, 그런가 하다 문득 궁금해지는 나의 꽃자리

 

검색창에 입력해서 찾았다 미나리아재비

 

천진난만이라는 꽃말에 얹힌 하필,

 

! 가벼운

 

 

 

세기말에 더듬더듬

 

보호종료아동처럼 세상으로 나왔지만

 

갈 곳도 잘 곳도 사랑할 곳도

 

도무지 찾아갈 수 없었다

 

거리에서 사랑을 하면 이 되고

 

어둠 속에서 울면 전과가 붙는

 

숙명이라는

 

처절한 음절에 걸려 수천 번 고꾸라져도

 

나는 가 될 수 없었다

 

 

 

예쁘게 돌려깎은 사과처럼

 

달게 살고 싶다고

 

그 속살에 연녹색 애벌레처럼 박혀

 

사각사각 살고 싶다고

 

고백할 때

 

 

 

멀찌감치 뒷걸음질쳤던 나의 젊은 애인이여

 

 

 

나는 아직도 작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그래도 사람 사는 마을 어귀에서

 

천진하게 흔들린다

 

노오랗게 나부낀다

 

 

 

 

 

 

 

 

 

밤기차의 이방인에게

 

이경애

 

 

 

욕망이 처럼 무거운 오월의 밤

 

짙게 포개지다 사라지는 어둠은 무엇일까

 

얼굴도 없이 귀만 가진 그대는 차창 밖에서

 

나를 듣는 것인가, 아니 나의 폐를 뚫고

 

나와 변방의 배경이 되어주는 것인가

 

 

 

밤기차의 이방인이여

 

들어보라

 

 

 

호두나무로 지은 법당에 살던 그 여름에 대하여

 

은밀하게 저지른 숱한 사랑들에 대하여

 

종신계약서 내밀 듯 화두를 던지고 파계한

 

속승俗僧에 대하여

 

내 가슴팍에 모란꽃처럼 피어 있는 화상흉터와

 

모든 비탄적 열망과 분노,

 

죽음보다 깊은 비밀에 대하여

 

 

 

(그러나

 

이승의 것은 이승에 두고 가자

 

탈선을 일삼는 밤기차에 실린

 

인생이며, 사랑이며

 

발각되지 않은 나의 과거까지도)

 

 

 

이방인이여,

 

나는 이제 바라나시에서 환승한다, 그대는

 

그 가벼운 입술에 소금과도 같은 전리품을 물고

 

비밀의 결계지結界地로 달려가라

 

 

 

 

 

 

 

 

이경애

 

전남 곡성 출생

현대시문학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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