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세상 외10편 / 이 위 발 시인

정유진기자 | 입력 : 2019/07/05 [08:38] | 조회수 : 380

 

▲     © 시인뉴스 Poem



꽃의 세상

이 위 발

 

 

 

선술집 미혹에서 사내는 천정에 매달린 백열등에 시선을 둔 채, 얼버무리듯 끊고 맺질 못한다. 고뇌를 짜면 빛이 될 수 있고, 그 빛이 하늘을 나는 새 일수도 있는데잠시 고개를 꺾더니 술잔과 마주보고 있는 변신이란 책 위에 손을 얹는다. 어젯밤 읽은 문장이 사람이었는데,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은 것인데, 꽃이 밖에서 오지 못하는 것은 숙명 때문인데순간 빈 잔을 머리위에 올리더니 소멸해 간다는 것은 낡아가는 것이고, 달을 지고 강을 건너는 것이 업보라면, 숲 속에 집을 짓고 사는 새들은 나뭇가지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사내는 취한 듯 휘청거리며 내뱉는다. 꽃의 세상이 지금이고 꽃의 그림자가 어제라면

 

 

 

 

 

 

사나이 눈물

 

 

 

젓가락을 잡으면 사분의삼박자가 되고

옥수수만 봐도 마이크로 착각하는 사내가

사나이 눈물을 애절하게 내지르며

철문 앞에서 주춤거리고 있다.

사내 뒤로 자신이 다니던 공장 굴뚝이 우뚝 서 있다.

그것이 사내를 더 추레하게 만들고 있다.

투명한 빨대를 사내 목덜미에 꽂은 채

가리지 않고 빨아대던 공장이었다

이른 아침 약수터 풀숲에 오줌 줄기를 선사할 때

상쾌함은 사라지고 사내의 팔뚝 솜털이

긴장감으로 일어서고 있다

우등푸등한 몸에 애면글면 속 끓여온 해고 통지서를

손에 오그려 쥔 채 씨근벌떡거리는 숨소리

세속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주었던

고향의 물두꺼비와 수리부엉이와 하늘다람쥐는

자취를 감추고 가슴을 짓누르는 것은

사나이 눈물이었다.

상처에 소금을 뿌려 마음이 소금밭 되고

생짜로 상처를 문대는 사내는

문 앞에서 아직도 허리춤을 올리고 있다

 

 

 

 

 

      

 

문은 시선이다

 

 

 

 

그는 기차를 타고 있다. 문 너머 퍼즐 조각 같은 자잘한 논과 밭이 보인다. 식칼 같은 햇볕이 문틈으로 깊숙이 찔러 들어온다. 햇볕이 땅을 밟고 있는 시선과 마주친다. 그는 문의 시선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서로 다른 문이 마주보고 있는 길이 보인다. 문이 닫히면 문 뒤로 손 흔드는 사람 보이고, 열리면 보이질 않는다. 문이 열리자 회색빛이 너울대는 문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 웃음을 참는 사람이 허그를 하고 있다. 문이 등을 보일 때는 우는 사람 내보내고, 가슴을 내밀 때 웃는 사람 내보낸다. 그는 문 등에 올라 탄 것도 아닌데, 땅을 밟은 것도 아닌데, 그는 한번 열리면 영원히 닫히지 않는 문 앞에 서 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처럼.

 

 

 

   

 

겨울밤을 보내며

 

 

 

 

문고리가 손가락을 쩍쩍 빨아대는 겨울밤

침묵은 고드름마냥 날카로워지는데

예리한 핀을 찌른 채

방바닥에 누워, 잠자리 표본처럼

살아 꿈틀거리는 지네의 꼬리를 쥐듯

담배꽁초를 벌벌거리며 빨고 있는데

맵살스런 바람이 짙은 허탈감으로 날아와

방안에 재를 뿌린다

 

하늘 한쪽부터 어둠이 썩어 들어갈 무렵

뻑뻑해오는 가슴을 눙쳐버릴 듯

헛배가 끓어올라 부풀어 터지듯

팽팽히 알을 밴 섣달 보름의 만월

바람에 날려 온 눈송이가 뛰룩뛰룩한 눈을 뜨고

유리에 달라붙는다

 

새벽은 판화처럼 유리면에 어리고

몸에 대한 철저한 부정이 살의를 느끼는 순간

까슬한 소름이 꽃가루 번지듯 돋아나는데

여명 속에 유령처럼 박혀 있는

몸은 고기 살을 발라 가려서 다비시키듯

불씨를 가슴속에 담아 불을 피우는

겨울 방은 팽팽하다

 

 

 

 

  

 

치명적인 것은 어둠에 묻혀있다

 

 

 

너의 등에 차고 있던 비수 같은 그림자는

찾아 볼 순 없지만

발정 걸린 고양이처럼

발톱을 보면 안다

눈빛을 보면 안다

얼마나 그 칼을 빼고 싶은지

그 절절함을

마주보고 있는 네 눈빛마저

동조하듯 흔들리는데

어둠을 등에 업고 소리 없이 기어든 이방인처럼

말라버린 들꽃 같은 털로 위장한 채

돌 틈에 숨어 있는 삵 한 마리

발톱을 보면 안다

눈빛을 보면 안다

바다가 푸른빛을 잃은 적이 없듯이

 

 

 

     

 

고백

 

 

 

 

몰래 눈물을 삼켰다

어머니는 아직도 몸속에 결을 품고 있었다.

거미가 체중이 지치도록 거미줄을 풀어내듯

그 결을, 가슴에서 뽑아내고 싶었다

병실 틈으로 산란하게 기어드는 한줄기 빛처럼

어둠의 복도를 따라 빛은 가늘게 뻗어나갔다

결 뭉치는 단단하게 뭉쳐졌다 풀어지면서 가볍고 부드러워 지고 있었다

그 결을 만지면서 허물어진 손등의 무수한 점들이 눈물방울로 희미하게 보였다

꼿꼿하게 누워있는 어머니의 허리는 병원 옆 철길을 달리는 침목 같았다

오늘을 넘기기 힘들겠다는 간호사의 말이 끝나기 전

어머니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귓불로 어눌한 목소리가

전율로 흘러들었다

도마뱀이 몸속으로 기어들어오듯 등골이 서늘한 목소리로

야야! 사랑한데이~”

건너편 침대에 아버지 눈을 닮은 곰 인형이

누군가를 하염없이 부르고 있는 것처럼 어머니 목소리도

결이 녹아내리듯 이승에서 마지막 내뱉은 그 소리는

허공을 하염없이 맴돌고 있었다

 

 

    

 

 

겨자꽃

 

 

 

태어나면서 울어본 적도

정에 감동해본 적도

해와 달을 처음 보고

어우러진 풀숲을 보면서

미소로만 화답할 수밖에

눈길 한번 못 받아도 함부로 목을 꺾지 못했네

피어 있는 날까지 허물과 근심 겪게 될 수도 있겠지만

태어난 것 후회하며 울면서 마음의 위로라도 받아 봤으면

땅 속 깊숙한 곳에서 넓고 환한 곳으로

갑자기 삐져나와 잎을 피우며 기지개를 켜보니

마음은 끝이 없고 기쁨의 눈물이 이런 것인 것을

어찌 억눌러 있던 땅의 기운을

소리 질러 씻어내지 못하는가.

 

 

 

    

 

 

그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이긴 적이 없는 얼굴, 상대에게 의존하면 반드시 불행을 부른다는 직감을 믿는다. 우주가 이끈다는 자신감, 슬픈 꿈처럼 비가 내리고, 양파 같은 너의 맨발이 감자처럼 노란 발가락 사이를 열고, 반디의 무수한 불빛들이 이교도 무리처럼 은밀하게 명멸하고, 미확인된 비밀을 봐버린 것만 같이, 뒤집힌 배처럼 흰 속을 드러내는 잎사귀들, 여름의 비릿한 냄새가 마당에 가득하고, 한낮의 연약한 그늘 속에서 누구를 기다리거나, 요람속의 아기거나, 거름 내 나는 보잘 것 없는 풀꽃들이거나, 그 현기증은 서늘하고 어두운데, 햇볕은 공중에서 설탕이 녹아내리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상추로 싼 밥을 밀어 넣을 때 막막한 표정처럼, 함부로 뭉친 머리카락이 푹 젖고, 문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울타리, 달빛 아래 마주한 하얀 빨래에서 느끼는 전율, 밖을 나서기 전 내 몫이라고 손에 쥐어 주는 한 움큼의 한숨, 그걸 한나절 시간 위에다 데굴데굴 굴리면서 기다렸다. 그 얼굴은 어둠을 빨아들여 언덕을 굴러다니는 눈뭉치로 부풀어, 달팽이가 되어 껍질 안으로 자꾸만 돌아가려고 하는 그 얼굴,

 

 

 

 

 

사바세계

 

 

 

너는 손가락 쥐고 태어나 손가락 펴고 죽듯이, 까무룩 잦아드는 놀을 바라보는, 네 얼굴은 발가벗은 목어 같았다. 네 발 밑에 땅이 움직이고 있었다. 뱀을 밟았는지 흙을 밟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뭇가지들이 후벼 파듯이 불쑥불쑥 나타나고, 억센 들풀은 다리를 친친 감아 당기고, 날개 달린 곤충들은 응답 없이 날아와 깨물었다. 어느 날 너는 국물에 빠진 머리카락이 누구 것이냐고 물었다. 네 것이라고, 내 것은 모두 네 것이라 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하늘을 날고 있는 잠자리가 하늘이 어디냐고, 하늘로 가겠다고 떼쓰는 것과 같았다. 소리로 태어나 소리로 살다 소리 없이 죽는다는 것을, 너는 그 세계를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지하철 2호선

 

 

 

낯설기도 하고 어디서 본 듯한 눈빛, 헐떡이듯 목이 마른 눈빛, 깊은 슬픔에 젖어 초점이 흐린 눈빛, 시린 벌판을 홀로 걸어온 나그네의 눈빛, 적의와 두려움에 가득 찬 어린 짐승의 눈빛, 운명을 조준한 저격수의 고독한 눈빛, 외로움에 손을 내밀기 만을 기다리는 농익은 작부의 눈빛, 달려가 거친 사랑을 나눌 것 같은 외로움이 응축된 눈빛, 늘 사랑을 동경하는 배고픈 눈빛, 아픈 사랑의 비밀을 가슴에 간직한 여인의 눈빛, 그 눈빛을 따라 들어 간 눈 속의 눈빛, 그리고무표정한 얼굴에 박힌 저 눈

 

 

     

 

 

선을 넘어가는 순간

 

 

 

아침에 빛들은 앞산에 내려앉았다. 매듭을 이은 산은 눈동자 속의 선으로 보이고, 산을 넘어가는 구름은 선이 아니라는 것을 고목은 알지 못했다.

 

시야의 정점에서 허상으로 펼쳐진 산과 선, 그 너머에는 꼬리를 달고 또 다른 산이 지나가고, 그 사이가 비어 있어 산은 선이 아니었다.

 

빛들이 산 쪽으로 몰려가자 어두워졌다. 보이지 않는 풀벌레 소리만 들리고, 어둠을 파고드는 고라니 소리 사이로 바람이 산을 넘고, 이슬과 시간이 섞이는 순간 바람의 선은 멈춰버렸다.

 

      

 

 

 

 

    

 

 

 

이 위 발

1959년 경북 영양 출생. 고려대학교 인문정보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졸업.

1993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어느 모노드라마의 꿈, 바람이 머물지 않는 집,

산문집 된장 담그는 시인, 평전 이육사출간. 현재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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