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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귀이개 외1편 / 김 승 기 시인

정유진기자 | 입력 : 2019/07/08 [23:00] | 조회수 : 243

 

▲     © 시인뉴스 Poem




이삭귀이개 1


 夕塘 김 승 기

 

 


혹시나 그대가 내게로 오는 길을 잃어버리거나 나도 그대에게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싶을 때는
빛 한 줄기 없는 가운데 종유석이 자라고 있는 동굴을 생각한다

흐르던 용암이 멈추고 死火山으로 굳어지면서 耳鳴으로 귀 근질거리고
어둠 속 가난한 주머니마저 비어져 더 이상 광합성작용은 어렵겠다 싶어질 때 동굴 천장에서 문득
허리에 차고 있던 바구니 속으로 박쥐 한 마리 툭,
떨어지던 것을 기억한다

내 생애 황금박쥐는 없을 거라고,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이 꿈도 꾸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어느 날 내게 들어온 그대와의 사랑을 오늘도 단단히 깁고 깁으며
이제는 나에게도 우렁각시 있음을 믿는다

지금은 가닥가닥 여기저기 줄을 늘이며 쳐 놓은 통발 들어 올릴 때마다 이삭들이 가득가득
그대가 있어, 이만큼이라도 스스로 광합성을 하며 다시 꽃 피울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한다

혹시나 그대를 잃는 날 앞으로 온다 할지라도 어둠의 천장에서 박쥐 떨어지던 추억 하나만으로도 남은 생애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음을, 나는 온달 그대는 평강이었음을 비망록으로 남긴다







여우주머니




나는 백년 묵은 백여우, 구슬주머니를 감춰야 해요

총각의 精氣를 내 몸으로 빨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그래서 사람 되면 미세먼지로 가득한 이 세상을 맑은 하늘의 역사로 바꿀 수 있게 하는,
파란 구슬
하얀 구슬
빨간 구슬
까만 구슬
그리고 노란 구슬까지, 오색구슬이 들어 있는 복주머니를
들키지 않게 감춰야 해요

사람이 되고 나면, 당신과 함께 발레를 추고 싶어요 삼바도 좋아요 왈츠라면 더 좋고요 하나하나 돌아가며 춤을 추다 보면 금세 오르가즘에 이를 거예요
춤은 에너지의 근원, 겨울잠에서 나온 뱀과 개구리가 매가리 없는 몸으로도 제일 먼저 짝짓기 춤판으로 새 생명을 낳듯이
발레 삼바 왈츠
혼자서는 출 수 없는 춤
좋은 세상 만드는 일에 당신이 함께 있어야 하거든요

여우가 사람 되면 세상이 망한다니요?
카오스를 코스모스로 바꿀 거예요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이야기에서는 생목숨 가지고 노는 못된 나쁜 년이라 손가락질 받으며 말들 많지만, 천만에요
희생 없는 역사 어디 있겠냐는 변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총각의 精氣 잠시 빌릴 뿐, 사람 되고 나면 恩人의 그 총각 구슬 다섯 개로 다시 살려낼 수 있거든요
누가 뭐래도 당신은 오직 내 편, 믿어 줘야 해요

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백년 묵은 백여우, 지금은 카오스 앞날의 코스모스를 위해 구슬주머니를 감춰야 해요
멀리 남한산성에까지는 갈 것 없고, 그렇지, 바로 코앞 등잔 아래 당신이 서 있는 마당 풀밭에서 잘 띄지도 않는 쬐그만 꽃으로 둔갑해 한동안 숨어 있어야겠어요





프로필
1956년 강원도 속초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1995년 황금찬, 허영자, 이성교 추천으로 계간마을등단
저서 :
한국의 야생화 시집 ①『옹이 박힌 얼음 위에서도 꽃은 핀다
한국의 야생화 시집 ②『빈 산 빈 들에 꽃이 핀다
한국의 야생화 시집 ③『눈에 들어와 박히면 그게 다 꽃인 것을
한국의 야생화 시집 ④『꽃보다 아름다운 것이 어디에 있으랴
한국의 야생화 시집 ⑤『울어본 자만이 꽃의 웃음을 듣는다
한국의 야생화 2인 별책 시선집그냥 꽃이면 된다
수상 : 2006년 제2회 세계한민족문학상(심사위원 : 허영자, 고원)
한국시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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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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