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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질문 외 9편 / 어향숙

정유진기자 | 입력 : 2019/09/16 [19:45] | 조회수 : 616

 

▲     © 시인뉴스 포엠



마지막 질문 외 9

 

 

니 돈 있나

 

당신 얼굴에 쓸쓸함이 스쳤다

파도에 밀려오듯 빚쟁이에 떠밀려

딸이 알바 하는 해안가 레스토랑으로 찾아온 아버지

빛바랜 헐거운 양복이 뼈만 남은 손마디를 다 덮진 못했다

휑한 눈은 푹 눌린 구두코를 내려다보고

바싹 마른 입술은 회전목마 수레를 끌고 싶다 말했다

까마득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월급날 아직 멀었다고 퉁명스럽게 쏟아냈다

거무스레한 얼굴이 발밑에서 일그러지고

당신의 허허로운 웃음이 비틀거리며 파도 따라 밀려나갔다

레스토랑 모퉁이에 쪼그려 앉아 꽁초마저 피우고 떠났다

그 연기는 오래도록 떠난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다음날 당신의 부음 소식에 바닷물은 회전목마처럼 넘실거렸다

당신이 머문 모퉁이에서 손님이 남긴 돈가스 조각을 입안에 구겨 넣었다

허기진 배는 목구멍에 걸린 딱딱한 조각을 울음으로 삼키며

멀어져가는 목마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오늘도 목마타고 내게 와 묻는다

 

니 돈 있나

 

 

 

 

시엄마 증후군

 

 

만두를 먹으면 잔소리가 씹히지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이 붉어져 눈물을 쏟지

 

힘이 센 과부 시엄마가 만든 만두 긴긴 겨울밤 커다란 홍두깨로 반죽을 밀어 스텐 밥그릇 꾹꾹 누른 만두피에 빨간 김치소를 넣은 왕만두 밤새 졸음으로 빚은 매워 매워하며 앉은 자리에서 한판 거뜬히 먹어치운 만두

 

자 들어가는 시금치는 먹지 않는데 김밥에는 시금치 대신 오이면 충분한데 시래깃국은 너무 질긴데 시루떡만 먹으면 목이 메는데 헛소리 가득 나열된 시집은 덮는데 매일 똑같은 훈계를 늘어놓는 시계에 귀를 닫는데 한쪽으로 기울어진 시소는 오르지도 않는데 올라가면 금방 하고 떨어지는데

 

이상한 일이야 그 시엄마가 만든 만두를 나는 일 년 내내 만들어 팔이 아파도 잘게 김치를 다져

 

우리 집 냉동실에는 시큰거리는 팔목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지

 

 

 

 

 

오복사우나

 

 

30년 된 동네 목욕탕

 

잘 나갈 때는 24시간 영업도 마다않더니 몇 해 전부터 저녁 9시면 문을 닫는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밀어낸 때 대신 불만 하나씩 묻히고 목욕탕을 나왔다

 

울컥 쏟아내는 수도꼭지

곰팡이가 앉은 천장

얼룩이 남아있는 수건

미지근한 사우나 온도

시설보다 앞서 뛰는 요금

 

그나마 꾸역꾸역 그곳을 찾는 건 작은 불가마 때문이다 여자들이 가슴에 쌓인 화를 뜨겁게 달구면 쓰디쓴 기억은 몸 밖으로 떨어져 나온다 빨대로 쭉 빨아올린 서늘한 소문도 팅팅 불어 수다로 밀려나간다

 

고무대야 가득 이고 간 고달픔을 방망이로 펑펑 내리치며 찌든 땟물을 씻어냈던 그래도 남은 찌꺼기는 이바구로 헹궈낸 공동빨래터의 수다가 오복사우나로 옮겨왔다

 

그런데 개업 이래 처음으로 문을 닫았다

 

누군가는 내부수리중이라 하고 손님이 없어서라고 하고 곧 시작될 재개발 때문이라고 주인 없는 말들이 웅성거렸다

 

그러건 말건 밀려나간 때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찾아온다

 

 

 

 

지화자 여사

 

 

어정쩡한 몸짓으로 뒤뚱거리며

연신 땀을 훔치는 지화자여사

 

에어로빅 교실 맨 뒤에서

앞사람이 떨어뜨린 동작

얼른 주워 몸에 껴입는다네

 

평생 생선가게에 갇혀 있던 일흔이

지난달 신입으로 들어왔다네

비린내를 털고 이곳으로 나왔다네

 

가게에 누워있는 생선도

생선보다 더 오래 누운 한물간 영감도

오래전 가출한 아들도

요 시간만은 심장을 빠져나가네

박힌 불덩이 하나 몸 밖으로 쑥 흘러나오네

 

몸은 시장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몸 안에 갇혀 씩씩거리는 춤

박자를 놓치고 몸보다 먼저 튀어나와

발목을 삐기도 한다네

출렁거리는 뱃살이 걸음 옮길 때마다

무릎을 욱신거리게 하네

 

오늘도 시원스런 동작들은

눈동자 위에서만 쭉쭉 뻗어나가네

음악에 맞춰 어깨만 들썩여도

흥에 겨운 아침이

흔들흔들 제멋대로 지나가네

 

 

 

 

호박나이트

 

 

05번 마을버스 타고

양지빌라 언덕길 내려올 때

 

호박나이트 홍보차량

늙은 호박 한 덩이씩 이고

오색라이트 번쩍이며 줄지어 지나간다

 

흥겨운 트로트

쩌렁쩌렁 마을버스 문을 열고 들어온다

승객들 손을 사방으로 잡아끌며

화려한 조명 아래로 몰고 간다

엉거주춤 흔들리며 함께 춤춘다

백미러가 씨익 웃는다

 

나이트클럽 문턱에도 못 가본

소아마비 춘자 언니

물 흐린다고 문 앞에서

쫓겨난 막내고모

절로 어깨를 들썩거린다

 

귀에 익은 뽕짝메들리가

마을버스를 끌고 앞서 달린다

 

버스도 덜컹덜컹

엉덩이를 흔든다

 

 

 

 

 

위로가 필요해

 

 

부풀어 오른 공기를 코로 힘겹게 들이마십니다

마취제 묻은 날숨이 따갑게 목구멍에 걸립니다

입을 동그랗게 만들어 내보냅니다

눈물이 귓바퀴를 타고 흘러내립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창밖에서 스며든 어둠이 6인실을 잠재웁니다

 

고향 친구도 아니고

학교 동창도 아니고

사회에서 건너건너 만난

민찬맘이 침대 옆에 앉아있습니다

 

이제 괜찮아

어서 가보렴

 

차갑게 식은 발 주무르며

민찬맘이 툭 던집니다

 

걱정 꽉 붙들어 놓으셔

남는 게 시간이야

늙어가는 우리

이제 서로 비비며 살자

필요하면 언제든지 이용하셔

자유이용권이야

시간제한 없는 무한이용권이야

 

헐렁한 환자복 한기를 밀어냅니다

발이 뜨끈해집니다

 

 

 

 

가족사진

 

 

청바지에 흰 남방 맞춰 입고 나비넥타이 메고

우리가족 사진 속으로 들어간다

밖에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벚꽃이 안에서 만발했다

일 년 내내 지지 않을 꽃그늘 아래 긴 의자가 기다린다

 

활짝 웃으세요

 

사진사의 환한 목소리 따라

서투른 포즈가 어색하게 웃는다

 

아버님, 어머님 팔짱 끼세요

다정하게!

아들들, 바라보세요

좀 더 사랑스런 눈으로!

 

아침 해가 건너편 교회 뒤로 숨었던 날

병원에서 병명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집안 구석구석을 덮쳤다 핸드폰 너머가 아득했다 가족 식단이 바뀌고 약속은 미뤄졌다 조바심이 하루하루를 잠식했다 빽빽한 일정에 수술 날짜가 잡히고

 

아내의 성화에 사진을 찍는다

그동안 이런저런 핑계 대며 빠져나가던 아이들도 순순히 따른다

 

수술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사진이 먼저 와 있다

새로 태어난 가족이 콘솔 위에서 팔짱끼고 다정하게 웃는다

인화되지 못한 병이 사진 주위에 머문다

 

 

 

 

  

 

흔들의자

 

 

거실에서 밀려나

베란다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가벼운 손끝에도 삐걱거리는

오가는 몸짓이 힘겨운

 

아이들에게 피노키오도 읽어주고 자장가도 들려주던 의자

 

밖에서 묻혀 온 마음의 얼룩을 지워주고

식구들끼리 엉킨 실타래도 가지런히 정리해줬다

 

흔들림 끝에는 늘 고요가 온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앞산은 물감을 풀어 제 몸을 채색했다

의자는 그 풍경을 끌어와 창가에 걸어두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속도로 움직인다

그 반복되는 흔들림은

불안한 잠을 고르게 빗어줬다

 

다녀간 흔적들을 떠올리다가

시간의 그림자를 더듬어보다가

다시 어두워진다

 

푹 꺼진 빈자리에

서쪽하늘 개밥바라기

잠시 머물다 간다

 

 

 

 

 

나의 남자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길

잠깐 졸았다 앞에 서있던 남편이 사라졌다

 

놀란 눈이 사람들 사이를 빠르게 돌아다닌다 점점 숨이 막히고 앞이 하얗게 내려앉는다 낯선 이들이 다가와 짓누른다 일어서려는 순간 건너편 의자에 앉아있던 아버지와 오빠가 나를 향해 나란히 걸어온다

 

늙은 아버지 쉰둥이 막내딸 발등에 올려놓고 천자문을 읊으신다 손잡고 걸으며 꾹꾹 눌러 쓴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발자국마다 새겨져 방안 가득 빙글빙글 돌아간다 우주가 내 안으로 들어온다 담뱃진 밴 손가락 잡고 따라가다 보면 머리가 노래지고 천장에 별이 뜬다

 

점점 커진 내 발이 아버지 발등을 덮는다

 

아버지 발등을 딛고 오빠의 다락방에 오른다 책상 위에 놓인 지구본을 따라 커진 머리를 갸우뚱, 돌린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사방연속무늬 벽 사이로 별이 내려와 머문다 달은 주위에서 기웃거릴 뿐 들어오지 않는다 길을 찾아 나선 오빠는 캄캄한 지구본 속으로 들어가고 키가 멈춰버린 나는 별 하나를 움켜잡는다

 

남편이 머뭇거리는 내 손을 꽉 잡고 지하철에서 내린다

 

 

 

 

 

가방끈

 

 

긴 가방끈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방끈이 긴 아버지는 언제나 양복을 폼 나게 입고 다녔다 역마살이 끼어 전국을 돌아다녔다 보증을 잘못서서 바람과 함께 집문서도 날아갔다 식구의 불안들은 셋방 단칸방에 포개서 잠을 잤다

 

아버지는 가방끈이 긴 사람들과 둘러앉아 마작(麻雀)을 즐겼다 판에서 패를 섞을 때마다 대나무 숲 참새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날은 문밖에서 새벽이 말을 걸어왔다

 

아버지를 찾으러 길을 나섰다가 메고 있던 끈이 긴 가방을 소매치기 당했다 택시를 타고 오토바이를 쫓아갔지만 가방은 보이지 않았다 다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 운전기사가 미터기 요금만큼 위로해 주었다

 

사라진 집문서를 찾은 것도 우릴 학교에 보낸 것도 가방끈이 짧은 엄마였다 너희는 가방끈이 길어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가 혼잣말로 원망하던 긴 가방끈 아침이면 구겨진 원망을 펴듯 아버지 양복이 반듯하게 다려져 있었다

 

지금도 나에겐 숄더백이 없다

 

 

 

 

어향숙

 

강원도 속초 출생.

2015년 경희사이버대학교 대학원 미디어문예창작과 졸업.

2016년 김유정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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