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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이 맛있다 외1편 / 오 현 정

정유진기자 | 입력 : 2019/09/28 [09:52] | 조회수 : 401

 

▲     © 시인뉴스 포엠



수첩이 맛있다

 

오 현 정

 

 

 

파랄수록 아껴 먹었다

실천만이 진정한 약속이라고

망고 얼룩이 갈색 반점을 둥글게 그려나갔다

 

익지 않은 말이 시간의 눈썹을 지나 그늘의 소유자가 되었다

 

구속당하지 않으려고 식은 열이 오른다

한쪽 넘길 때 그 안에 웅크리고 있던 옹이가 떠다니는 숨을 당긴다

 

숙성된다는 건 목젖에 걸려있는 말꼬리에 먼지를 닦는 일이다

 

봉인되지 못한 여백의 청가시를 꺼내 접시를 닦고

너를 돋우는 따끈한 소반 정갈하게 차리고 싶어

 

주어진 재료로 무엇을 만들지 까칠한 입맛까지 부르면

아침햇살에 기억의 거미줄을 걷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그 순간들

 

창고 속 단감상자 위에서 신메뉴를 출시 중이다

 

기호와 암호를 푼 요리는 담백하지만

굴릴수록 혀에서 꼭대기로 천천히 고솜고솜 올라온다

 

-<예술가 2019년 가을호>

 

 

 

 

 

 

 

 

화성에 가기 전에

 

오 현 정

 

 

와디럼 사막부터 사귀어야지

심장이 더 무뎌지기 전에

 

숯불로 달궈놓은 사막의 구덩이에 세 시간을 견디면

곧 떨어질 것 같은 버섯바위도 제 집을 짓는다

 

그냥 내버려 둬 수맥 찾아 가게

모래보다 먼저 달리는 바람도 가게 놔둬

 

바위산의 와디는 내가 살아온 하루하루

따라붙다 멀어지는 베두인 짚 차도 손가락질하지 마

 

제 꼬리 밟고 맴도는 여우는 가지 위에 앉고

외로운 너구리는 바람 타고 굴을 뚫는다

 

귀에서 뇌까지 너 아닌 나에게 불 지피는 불꽃

렛잇비, 렛잇비 사막별은 혀를 굴린다

 

비틀즈의 해체를 모궁은 예감했다

나를 당기던 너, 너에게 끌리던 나

원소에서 또 다른 원소로 윤회를 거듭하는 바람과 빛이다

 

너를 가장 닮은 와디럼은 사람들이 양고기를 뜯는 동안 울었다

뻑뻑한 모래의 눈이 붉다 못해

지나가는 안녕을 맴도는 형광으로 춤추다

돌아가는 뒷자락에 스러지는 불씨의 결 하나를 지핀다

 

그냥 내버려둬, 그냥 내버려둬

가슴별은 달무리 삼키며

, 너를 당긴다

 

화성으로 가기 위해 와디 하나 긋는다

심실을 머금은 모래 입술이 이슬을 깊숙이 빨아들인다

풀의 태동소리, 너 있는 별에도 오아시스가 터지겠다

 

-<모든시 2019년 가을호>

 

 

 

오현정(吳賢庭) 포항 출생. 숙명여대 불문과 졸업. 1978, 1989현대문학2회 추천완료로 등단. 시집라데츠키의 팔짱을 끼고』『몽상가의 턱』『광교산 소나무』『고구려 男子외 다수. 애지문학상, PEN문학상, 월간문학 동리상, 숙명문학상 등. 숙명여대 취업경력개발센타 강사, 한국문협 이사 역임. 한국시인협회 이사,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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