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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밑동 외1편 / 이성목

정유진기자 | 입력 : 2019/09/30 [21:32] | 조회수 : 316

 

▲     © 시인뉴스 포엠



 

나무 밑동

 

 

의자를 두고 가서 슬프다

밤새 함박눈이 내렸다

거기, 나이테 얼룩은 내부로부터 왔으니

내려앉은 눈송이들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사라지면서 의자를 두고 가서 슬프다

의자라서 슬프다

뿌리로 빨아올린 물은

몸에 고여 무슨 파문을 일으켰나

깔고 앉는 슬픔이 슬프다

축축해지는 슬픔이 슬프다

몸에서 결만 남겨두고 물을 전부 퍼낼 수 있나

톱이라면 그럴 수 있나

도끼라면 그럴 수 있나

핏자국 하나 없이

너를 내 안에 앉혀야 하는데

바닥이 몸이라서 슬프다

 

 

 

 

토담이 무너지는 동안

 

 

어느 여름 장맛비 사나흘에

젖은 토담이 스르르 무너졌다

누군가 세웠을 옹색한 높이며

거처의 안팎이나 구분 지었을 허술한 경계가

조용하게 흙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훗날 당신이 나를 떠나는 하루나

내가 당신 떠나는 절명이 저리 순했으면 싶어

몇 날 며칠 담이 무너진 곳을 서성거렸다

흙탕물 범벅이었던 자리

물이 길을 내고 바람이 공중을 여는 것인지

망촛대 하나 툴툴 털고 일어서

둥글게 허리를 젖히고 있었다

 

 

 

 

 

<약력>

 

이성목

1996자유문학으로 등단. 시집 뜨거운 뿌리(문학의 전당, 2005), 노끈(애지, 2012, 아르코우수문학도서), 함박눈이라는 슬픔(달아실출판사, 2018,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도서)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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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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