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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mm 외1편 / 최재훈

정유진기자 | 입력 : 2019/10/03 [12:25] | 조회수 : 132

 

▲     © 시인뉴스 포엠



265mm

 

 

최재훈

 

 

 

 

 

 

엄지발가락이 휘고

새끼발가락이 구부러질 때까지

 

구두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구두처럼 생각하고

구두처럼 울다가

 

맨발과 구두 사이가 헐거워질 때까지

헐거워지고도 한참을 더

구두처럼 살다가

 

드디어 맨발이 되어서

생각하지도 울지도 않는

착한 맨발이 되어서

 

휘어지지도 헐겁지도 않은

검은 구두 속으로 들어가

가만히 누워서 또각또각

 

천장을 가로질러 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구부러진 눈을 감으며

 

나와 맨발 사이가 헐거워질 때까지

헐거워지고도 한참을 더

맨발처럼 누워 있다가

 

매대 위에 맨발을 올려놓는

점원의 창백한 손을 바라보다가,

 

 

 

 

     

 

 

 

나의 슬픈 키다리 실버*

 

 

 

최재훈

 

 

 

 

 

 

 

그때 지구는 커다란 물혹, 사람들은 모두 그 안에 갇혀 있어. 아가미 없는 것들. 욕조에 배를 띄웠어. 맴돌기만 해. 다리가 둘인 물고기만 그물에 걸려. 그물 위에서도 달리는 걸 멈추지 않았지.

 

- 도망가는 중일 거야, 도망으로부터.

 

갈고리 같은 눈망울로 선장은 말했어. 휘어진 눈빛들이 발밑에 수북해. 유리병에 그것들을 주워 담았어. 아무도 없다면 갑판 위엔 별들이 떨어졌지.

 

비닐을 뒤집어쓰면 숨소리를 들을 수 있어. 죽어버렸을까, 서로에게 비닐을 씌워줘. 하늘이 꼭 검은 비닐 같아. 너덜너덜한 바람이 숭숭 새어 나와. 욕조에 얼굴을 담그면 숨소리가 보여. 물방울 모양으로 살아있는데, 숨을 참고 있어.

 

- 꼬마야, 눈알을 아름답게 망가뜨렸구나.

 

꼭 그림자처럼 굴었지. 캄캄해진 눈을 보여줬어. 유리병에서 꺼낸 눈빛을 내 눈에 걸어줬어. 오른쪽 어깨에서 앵무새가 떠나자 선장은 어수선해졌어. 침묵에도 일일이 말을 덧칠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바다가 가장 생각난다는 같은.

 

- 고래는 없어, 고래가 눈앞에서 몸부림쳐도.

 

최선을 다해 죽어가다 그 말을 믿어버리겠지. 그게 고작 최선이라니. 갑판 위에 떨어진 건 유리 조각 같은 별만은 아니었어. 작고 물컹한 것들을 몰래 밟아 보았지. , , 터지면서 발등에 올라와. 그때 머리 위로 천천히 내려오는, 검고, 거대한, 우리의, …….

 

배수구 마개를 열면 아가미 없는 슬픔이 꾸르륵꾸르륵, 빠져나가. 지도 위에 낙서하다 잠이 들고 말았어. 목발 잃은 외다리 실버가 꿈속을 지나갔어.

 

 

* R. L. 스티븐슨의 보물섬에서

 

 

     

 

 

 

 

 

 

* 약력 : 2018년 계간 <시산맥>으로 등단. 3회 정남진신인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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