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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 외9편 / 서영택

정유진기자 | 입력 : 2019/11/15 [07:19] | 조회수 : 442

 

▲     © 시인뉴스 포엠



고향집

서영택

 

 

 

 

 

달의 뒤편에서 흙먼지가 일었다

 

기다리지 않지만 가야하는 길처럼

저장된 추억의 바퀴들이 굴러갔다

 

난 어디를 돌아서 다시 고향으로 가는가

가물거리던 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날린다

나는 고향집으로 간다

 

잘 닦이지 않은 어제의 길 위에서

되새김질하는 풍경들을 만난다

따라오는 비닐봉지가

들리지 않는 콧노래를 부른다

 

졸린 잠을 견디지 못한 낮달이 기울고

망각의 손쉬운 기억법으로

수시로 등 뒤를 돌아본다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장판 밑에서 찾아내듯

고향집에서 첫 인사에 집중해 본다

 

나는 휘파람을 불면서

고향의 얼굴을 더듬고 더듬으며 집으로 간다

 

 

 

     

 

구두수선공 K

서영택

 

 

 

 

그는 검은 돋보기를 쓰고 벌어진 구두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손가락에 뱅뱅 감은 실은 구두의 입구를 열었다 닫는다 늙어 고장 난 구두의 시간들이 광나는 구두약을 바르자 환하게 빛났다 어둔 하늘, 빗방울이 구두의 꿰맨 봉제선을 따라 지나가자 가로등 아래 발자국을 찍고 멀어지는 밤의 족적들, 쇼윈도의 구두들이 창밖으로 낮게 내려온 저녁을 내다보고 있다 재개발 공사가 시작된다는 공고가 바람에 휘날리고 반 평짜리 구둣방을 지켜온 50년 이마에 어둠이 둥근 활처럼 휘어진다

 

시한부 구두의 시간은 다시 연장이다

 

 

 

 

      

돌 속의 울음

 

서영택

 

 

 

 

누가 있는 가, 저기 돌 속에

뜨거운 울음이 새어나오고 있다

 

새들의 날개를 생각했다

 

거친 도시를 횡단하며 고압선을 지나 육중한 삶의 무게를 들고

 

돌의 울음은 왜 소리가 나지 않나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고 들려도 말하지 않는 계절을 돌고 돌아

돌로 머무는 순간들

 

다시 소리로 태어나는 방법이 있을까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어두워지는 길모퉁이로 번지는

어떻게 깨워야 하나 저 깊은 잠을

 

침묵의 그늘을 깔고 앉아 떨어진 운석처럼

돌의 옷을 입고 잠든 자

 

눈물이고, 절망이며, 입을 틀어막은 비명으로

휘몰아치는 칼날 속에서도 베이지 않는 울음을 간직한

 

저 돌 속에 누가 있는 것 같다

 

 

 

      

 

햇살의 신발

서영택

 

 

 

 

 

뒤축이 닳아 얇아진 햇살

 

오후의 그림자가 위태롭게 걸어간다

나는 신발을 벗고 창밖을 본다

 

삶의 무게를 체크하며 걸어가는 발자국들

길을 만들거나 지우며 홀로 바닥의 삶을 견딘다

 

이제 퇴진하고 다른 신발에게 의무를 넘길까

 

바람이 갈피마다 나뭇잎을 넣는 것처럼

신발들이 현관에서 날마다 뒤척인다

 

어디에도 닿지 못한 길들이 꿈속을 떠다닌다

 

뜨거운 맨발이 나란히 돌아오는 아침

구부러진 길들이 가득한 현관에서

 

기약 없는 시간들이 신발을 신고 있다

 

 

 

 

 

그림자 남자

서영택

 

 

 

한 번도 불 켜진 적 없는 그 남자

그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모두 여기 있다

 

어둠으로 된 가면을 쓰고

지하로만 다니는 사람

출근시간은 있으나 퇴근시간은 없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이

요즈음 어떠냐고 물어오면

잘된다고 말하며 이마의 주름을 만지는

 

시도 때도 없이 사람을 만나고

때론 벽에 붙어 옆 건물로 건너가거나

계절이 바뀌어도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지는 해에 앉는 새들을 보며

발끝에 묻은 쓸쓸함을 떼어내느라 잠들지도 못하고

만지는 꿈마다 흑백이 되어버리는

 

누군가 밟고 지나가도 일어서지 않는

납작 엎드린 그 남자

 

다시 어둠이 움트는 밤이 오면

알 수 없는 방향이 등 뒤로 쏟아진다

 

그림자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바닥이 몸을 구부리기 시작한다

접혀진 계단이 펴지고 있었다

 

저기. 그림자를 주머니에 구겨 넣고

뛰어가는 한 남자가 있다

 

 

 

 

 

 

침묵에 대하여

서영택

 

 

 

 

 

언젠가 침묵을 지갑에 넣고 다니다

내게 있던 모든 침묵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침묵은 바람을 닮아 만질 수 없지만 볼 수 있어 좋다

 

아지랑이 시끄럽게 피는 봄날

나는 침묵에 잠겨 추억을 꺼낸다

 

어여쁜 여인이 미소를 보내면 가벼운 침묵을 삼키기도 하고 화장실에서 신문을 보며 짧은 침묵을 읽기도 한다 해가 지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때, 누군가 나에게 잘난 척할 때 나는 열심히 침묵을 부른다 하지만 내가 주산을 놓고 정답이 아닐 때는 짜증과 함께 침묵을 마구 던지기도 한다 그림자가 서서히 야위어가고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지 모를 때 어두운 침묵은 묵묵히 나를 따라온다 이룬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 들 때 세월 속 길고 긴 침묵은 시가 되어 날아가고

 

한 생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이 될 때

침묵은 세상을 온통 푸르게 물들인다

 

 

 

 

 

담장 위를 걷는 남자

서영택

 

 

 

 

 

거리마다 쏟아지는 텅 빈 그림자들

 

남자는 잉여의 시간을 한잔 입에 털어 넣는다 풀과 물을 찾아서 수 천리를 이동하는 동물들을 본다 앞만 보고 걸어가는

 

끝없이 이어지는.

메마르고 갈라진.

커다란 어둠에 쫓기는.

풀 한포기 뜯다가.

산채로 잡아먹히는,

 

얼마나 아프냐고 눈빛 젖어 오가는 말도 버거웠다 괜찮다 괜찮다고 팔을 흔들어보지만 길을 잃어버린 나는 이내 연료 떨어진 엔진처럼 멈추고 말 것이다 늘 밟히고 무너져 내리는 이기와 독선의 하이에나 벌판에서

 

삶이란 활처럼 흰 허리에 등짐을 얹는 것인가

내 몸무게만큼의 그림자를 끌고 걸어간다

 

되돌릴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등 뒤로 기어오르는.

환상이 살지 않는.

 

멈출 수 없는. 담장이

끓고 있는, 담장이 나를 삼킨다

 

 

 

 

   

 

 

폐차장

 

서영택

 

 

 

 

그 남자는 코끼리처럼 웅크리고 있다

 

길게 자란 권태의 숨소리가 쭈글거리는 콧등을 흘러내린다 일상의 속도를 잃어버린 다른 차들도 어깨를 기댄 채 차례로 무너진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아는 듯 무겁게 내려온 하늘에 햇살 한 조각 반짝인다

 

지나온 정글의 시간이 뜨겁게 고여 있는 웅덩이, 그 한 조각을 연료 삼아 다시 시동을 걸어본다 후회의 신음이 어깨와 무릎에서 무늬처럼 피어난다 뿌연 차창 속 갇혀 있는 시계가 철없이 째깍거리고 야생의 시절은 돌아오지 않는다

 

코끼리의 울음은 오래도록 투명하게 퍼져나간다

 

 

 

 

 

 

 

 

시 한편의 등대

서영택

   

 

 

 

문자를 쌓아 올려 등대를 만든다

 

별을 세다 지친 어둠이 나의 이정표였다

그을음이 몰려오는 날의 등대는 더 희게 보인다

바위에 새겨진 이름 아래 해조류의 꿈이 춤추고

무성한 기억의 파도가 나를 밀고 당긴다

 

잠든 등대가 있나

 

성난 바다가 해안을 삼킬 듯 휘몰아쳐도

짙은 안개로 침묵하는 등대

불빛의 간격으로 뱃사람에게 신호를 보낸다

내가 보낸 신호들은 어디에 닿았을까

밀물과 썰물 사이 해무가 피어나고

어제의 등대가 흐린 나를 바라본다

 

문장과 문장의 끈을 놓지 않는 빛이 내게 오고 있다

      

 

 

 

 

하늘을 건너다

 

서영택

 

 

 

은 이토록 고요한 것일까

 

절정을 향해 오르는 길

허베이성 백석산 2096m

발자국도 없는 햇살이 정상을 안고 있다

 

거친 바람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바위틈에 뿌리 내린 소나무

저편에 자리 잡은 구름을 바라본다

 

곳곳에 단단한 밧줄이 전설처럼 얽혀 있다

황산을 설계한 사람은 누구일까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재를 운반하느라

어깨에 패인 수많은 바퀴자국들

 

난 등짐 진 짐꾼처럼 초라하다

 

밧줄에 매달린 내 그림자 속으로

눅눅히 지나온 시간들이 구부러져 있다

 

아슬아슬한 잔도*의 위태로움이 정적을 만든다

 

건물은 아래에서 위로 공사를 하지만

잔도를 만들 때는 위에서 아래로 만든다고 한다

밧줄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10년 설계에 공사기간은 4년이라니

 

삶의 정상에는 새소리 물소리도 없다

캄캄한 밤 천둥과 번개가 대신 울어주는

 

어느 지나온 하늘이 나를 받쳐줄 것인가

 

한 걸음 한 걸음 다시 흔들리는 허공에 발을 내딛는다

 

* 절벽과 절벽사이 사다리처럼 높이 걸쳐 놓은 다

  

 

 

 

 

약 력

. 경남 마산 출생

. 시산맥등단 2011

. 시집 <현동 38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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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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