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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천 가는 길 외1편 / 조영심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1/17 [00:36] | 조회수 : 258

 

▲     ©시인뉴스 포엠

 

모천 가는 길

 

조영심

 

 

 

  푸른 안개 더듬어 갑니다 한 겹의 안개를 열고 또 한 겹

 

  다시 겹겹의 안개를 헤치며 앞인지 옆인지 옆의 옆인지 앞의 앞인지 여긴지 거긴지 발치를 분간할 수 없는 길로 생의 물결이 맴도는 사이

 

  그것이 저것 같고 저것이 그것 같은 애매함을 품고

 

  짓무른 안개의 허리를 틀어 길을 내어 봅니다 안개는 저를 지웠다가 다시 저를 여미며 시작과 끝을 지우고 맙니다 나는 안갯속 물 알갱이의 기억만으로 내 처음 숨결을 떠올릴 뿐 한 발짝 디딘 발길에 다시 한 발을 얹어 한 걸음씩 나아갈 뿐

 

  더딘 숨, 젖을 대로 젖은 남루함  

 

  안개가 안개를 삼키고 내가 안개를 삼키고 다시 안개가 나를 삼켜 이미 들어선 길 놓친다 할지라도 햇살과 달그림자와 별빛으로 각인된 내 모천의 숨길 만은 지워지지 않는 생과 생의 일방 통로    

           

  눈 뜬 채 눈 먼 내 모천은 아득하여  

 

  끝을 알 수 없는 강을 따라 거슬러 거슬러만 갑니다 그곳에 이르는 길이 하, 소삽한 꿈길일지라도 기어이 내가 당도할 거기      

 

  

 

 

 

 

 

동냥 중

 

조영심

 

 

 

  동냥질도 유행하는 패션이 있다 찢긴 벙거지, 때에 전 낡은 옷으론 어림없는 일

 

  미다스의 손을 탄 것일까 머리에서 발 끝 숨소리까지도 금박이 된 한 사내가 지팡이 하나 짚고 허공에 용케 앉아 있다 토굴 속 수도자의 자세로

 

  땅바닥에 엎어놓은 모자가 이 패션의 완성인가 땡그랑, 굴러 떨어지는 둥근 적선에 금가루 시선으로 답례하는 거렁뱅이 신사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든 말든 코앞까지 들어와 눈을 맞추든 말든 손 벌리지 않고 살아가려는 나만의 혹독한 수련의 방식으로 너의 주머니를 열게 할 치열한 생업 정신으로

 

  있지만 없는 듯 없지만 있는 듯 판을 깔고 지금 당신은 동냥 중

 

  우리는 동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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