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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선박사] 자유의 행사에도 ‘과유불급의 원칙’이 적용된다.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1/19 [11:29] | 조회수 : 450

 

▲     ©시인뉴스 포엠

 

 

(7) 자유의 행사에도 ‘과유불급의 원칙’이 적용된다.

 

  어느 시인은 “일탈한 자 별똥이 자유롭다”고 노래하고 있다. 그야말로 시적이고 비유적이다. 그런 표현을 하는 것은 시인의 자유다. 상상의 날개를 펴고 사고의 폭을 넓히며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자유란 이처럼 자연 상태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연적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유는 로빈슨 크루소가 누린 것처럼 무인도에서나 가능하지, 사회공동체 안에서는 인정될 수 없다.     루소는 사회계약을 통해 시민사회에 들어옴으로써 인간은 자연적 자유를 포기하고 진정한 자유를 찾게 된다고 했으며, 진정한 자유는 시민적이고 도덕적이며 법의 지배에 복종하는 데 있다고 했다. 개인적 자유는 사회공동체 안에서 황금률인 ‘공생의 원리’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 개인적 자유는 무한적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사회질서를 파괴해서는 안 되는 공동체 가치와 조화되는 범위에서 허용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에 민주화의 토대를 쌓아왔고, 개인의 자유가 상당한 수준에서 보장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유의 남용과 방종을 일삼으며, 자유를 앞세워 ‘법과 질서’를 파괴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다. 사회질서에 위배되거나 사회윤리를 무시하는 행위는 방종 또는 일탈이지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집회의 자유를 내세워 불법적으로 시위를 하는 경우이다. 세상에 경찰이 데모대에 의해 폭력을 당하고, 경찰차량들이 파손되며, 파출소가 파괴되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오늘날에는 이처럼 자유의 일탈 또는 과잉이 오히려 문제가 되고 있다. 자유는 중요한 가치이지만 ‘절대적 가치’가 아니며, 질서와 평화, 다른 사람의 인권 등 공동체 가치와 조화를 이루는 선에서 보장되고 행사되어야 한다. 자유는 ‘법과 질서’(law and order) 안에서 보장되는 상대적 가치이다. 자유도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過猶不及). 자유의 행사에도 ‘중용의 법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명심해야할 경구이다.

 

  우리 헌법은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는데, 그 제한은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도록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372).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의 범위와 그 구체적인 한계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정하는 법률에 의해 결정된다. 엄정한 입법과 공정한 집행을 통해 건전한 공동체가 작동할 때 행복을 온전하게 누릴 수 있다.

 

(8)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자유는 그 자체가 하나의 권리로써 무제한의 것이 아니라 내재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독재정치와의 오랜 투쟁을 통해 인류는 자유를 획득했지만, 자유에는 고독과 책임이 뒤따른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자유를 누리면서 행복을 추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모든 사항을 결정함에 있어서 무한한 고독을 느끼며, 자기가 선택한 사항에 대해서는 무한의 책임을 져야 한다. 자유 시간을 이용할 줄 모르면 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어려움을 느끼고, 많은 사람들이 절망을 하게 된다. 여기에 자유의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구조적 실업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신자유주의 깃발 아래 후진 국가들은 심각한 경제적 위협을 받게 됨에 따라 이들에게 형식적 자유란 의미가 없으며, 자신의 자율성을 지키는 데는 어려움이 생겨 결코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먹고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실질적 자유를 요구하게 되었는데, 이를 헌법상 보장한 인권이 ‘생존권’이다. 그리하여 인권의 성격은 단순한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소극적 자유’ 뿐 아니라 국가의 간섭을 통한 자유의 실현을 의미하는 ‘적극적 자유’를 포괄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개인의 고립감과 무력감은 더욱 증대되어 왔다. 그리하여 개인의 자율과 자유는 국가의 목적 또는 세속적 권위에 종속됨에 따라 개인은 적극적인 자유를 행사할 수 없는 한 자유로부터 도피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도피의 중요한 통로로 프롬은 파시스트 국가에서 보급된 ‘지도자에의 예속’과 민주국가에서 널리 퍼진 ‘강제적 순응’을 들고 있다. 권위주의의 특징은 인간의 삶이 자아를 초월하는 어떤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데, 인간이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이러한 힘에 복종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이처럼 권위주의 하에서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고 도피하면서 권력에 순응함으로써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잘 설명하고 있는 저서가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이다. 소비에트연방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와 독일·이태리·일본 등의 전체주의 국가에서 인류는 쓰라린 경험을 했다. 2차 대전 후 신생국가들은 민주주의와 함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지만, 아직도 참된 자유를 누리기에는 길은 멀기만 하다. 개인들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나아가 자율성을 존중받기 위해서는 투철한 ‘자유의식’을 가지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노년에도 이러한 자유의식을 가지고 진정한 자유인으로서 자유를 만끽하면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9) 궁극적인 자유는 ‘욕망’을 내려놓을 때 느낄 수 있다.

 

  오늘날 우리들은 국가로부터 아무런 간섭이나 강제를 받지 않으니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개인의 자유가 헌법에서 광범하게 보장되고 있고, 민주화가 상당한 수준에 올라서면서 국가가 권력을 남용하여 인권을 유린하던 관행도 거의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아직도 무엇인가에 대한 집착과 욕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선택을 하면 어느 정도까지 행복도는 높아지지만, 그 한계점을 넘어서면 선택 만족도는 떨어진다. 어떤 선택도 반복하게 되면 신선도가 떨어지고, 만족감이 줄어드는 것이 인간의 심성이다. 일종의 쾌락적응현상이다.  

  에픽테토스는 “자유는 욕망을 채움으로써가 아니라 버림으로써 얻어진다.”고 했다. 욕망만 내려놓으면 마음이 자유롭게 된다. 진정한 자유는 최종적으로 ‘마음의 자유’를 통해 누리게 되는데, 이성의 힘을 통해 스스로 욕망을 통제할 때 얻을 수 있다. 루소에 있어서 최종적인 자유란 물질적 의존이나 정신적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궁극적으로 자신으로부터 해방되어야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자유는 내적 자유를 의미하고, 궁극적으로는 ‘심리적 문제’에 속한다. 이러한 간단한 사실, 아니 진리를 깨달아야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고,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비움’을 실천하며 살아야 인생이 자유로울 수 있다. 연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스스로 감당할 만한 빗방울만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이 욕망으로부터 해방될 때 진정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으며, 무엇을 하든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간단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욕망의 노예가 되어 세상을 방황하고 있다. 그릇은 빈 공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담을 수 있는 것처럼 사람도 빈 마음을 가질 때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다. ‘비움’이 곧 채움이란 진리를 깨닫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러한 비움의 자세를 갖추게 되어 욕망을 추구하지 않음으로써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 노년의 축복이다.

  

(10) ‘그리움’은 인생의 값진 자산이다.

 

  노년에 있어서도 그리움은 무형의 값진 자산이다. ‘그리움’이란 미지의 세계에 대하여 동경하는 마음을 말한다. 그리움 때문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떠올리고, 무엇인가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행복은 그리워하는 순간에 있으며, 그리워하는 마음에 있다는 것을 반추해본다. 가슴속에서 그리움이 숨 쉬지 않고 있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황막할 것인가? 그리움은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기고, 삶의 원동력이 되며, 소망을 키우면서 보다 질 높은 행복을 제공해준다. 그리움의 대상은 따로 없으며, 구체적인 모습은 스스로 형상화시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 보고 싶은 사람, 미지의 세계, 만들고 싶은 세상. 모든 것들의 재료는 그리움이다. 유토피아도 그리움으로 우리들 가슴속에 항상 떠 있다.  

 

  노년에도 그리움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나 있으며, 내 마음속에서 형상화될 때 기대감과 즐거움을 준다. 과거의 사연들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으면서 행복의 한 자락을 깔아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의 그리움이다. 자신이 그리움을 키우는 만큼 행복도 자란다. 비록 그리움 때문에 마음이 아플 때도 있지만, 그것이 자라면 희망이 되고, 사랑으로 피어난다. 노년에도 그리움의 집을 짓고 그 속에서 행복의 꽃을 피우며 살아가자. 적어도 그리움은 인생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으니 항상 간직하고 사는 것이 좋다. 노년에도 그리움만 간직하고 있다면 행복의 꽃은 내 마음의 정원에서 가득 피어오를 것이다.

  그리움은 우리들 ‘가슴속’에 있다. 지금도 추억이 머물고 있는 그곳이 그립다. 눈 감으면 불현듯 나타나고 눈을 뜨면 곁에 있는 듯 그리움이 유혹하는 곳: 해후의 기쁨과 함께 이별의 아픔을 감수해야 하는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다. 대지에도 바다에도 창공에도 어디에나 그리움의 징표는 있지만, 실제로 그것이 머무는 곳은 ‘가슴속’이다. 그리움이 찾아가는 곳은 결국 한 사람이다. 괴테는 “자신이 절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신을 완전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한 사람의 여성을 추구하게 된다.”고 했다. 그리움은 마음을 움직여 그곳으로 달려가게 만든다. 그리움으로 그대에게 다가가 고독이란 옷을 벗어 버리고 구원을 얻고 싶다.

 

(11) ‘그리움을 향한 독백’이 행복을 선물한다.

 

  그리움은 상상의 날개를 펴고 세상을, 아니 우주를 여행한다. 그리움은 삶에 활기를 불어넣고 희망을 선물한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산이 그리움이다. 아무 곳도 막힘이 없으니 자유다. 그리움이 지나가면 길이 된다. 그곳은 무한대의 공간이요, 막힘없는 시간이다. 모든 것이 자유로우니 그곳은 해방공간이다. 상상력이 그 주인공이고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 그 순간순간에 미망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바라보며 미래를 열어온 것이다.

  그리움은 과거를 품고, 미래를 열며, 현재를 살아간다. 그리움이 있기에 가슴은 뛰고, 희망이 생기며, 내일이 기다려진다. 그리움은 상상의 세계를 그린다. 그리움이 형상화되어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 그리움은 사랑의 씨앗으로 사람들을 이어준다. 그리움이 고리가 되어 관계를 만들어낸다. 그리워하는 마음이 곧 행복이요 정신세계를 살찌게 만든다. 그리움 속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행복은 완성될 것이다.    

  그래서 그리움을 형상화해 본다. 시가 아니어도 좋다. 독백이어도 괜찮다. 어떤 시인은 법언 같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그리움이 있기에 이런 시가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움을 키워 가면서 지속적인 행복으로 가는 인생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움은 행복을 실어다주는 마차이므로 이것을 타고 인생길을 달려가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그리움의 동산에서 행복의 꽃을 키우며 유토피아를 건설합시다. 그리움은 내 가슴속에 있으니 내 안에 천국이 들어설 것 아니겠는가?    

 

 

그리움을 향한 독백

 

그리움이란 내일을 기다리는 마음

사랑을 그리는 마음

그대를 향한 마음입니다

 

그리움 때문에 오늘이 즐겁고

가슴이 뜨거워지고

그대가 그립습니다

 

미래가 있기에 그리움은 오늘에 머물고

사랑이 있기에 그리움은 계속 자라고

그대가 있기에 그리움은 형상화됩니다

 

그리움이 없다면 내일은 없을 것이고

사랑은 메말라버릴 것이며

그대는 망각의 세계로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움을 키워야 밝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고

사랑의 불꽃을 피울 수 있으며

그대 곁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리움은 미래에의 관문이고

사랑의 열쇠이고

그대의 분신입니다

 

그리움으로 당신에게 다가가

자유함을 누리고

구원을 얻고 싶습니다

  

(12) 그리움은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

           

  노년에도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남은 시간을 소비하는 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창조의 시간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로베르 미스라이는 노년들에게 ‘늙는 법’을 재교육시켜야 한다면서 기쁨, 죽음과 함께 ‘창조’를 들고 있다. 나이가 들어도 사고의 창조성은 시들지 않는다. 항상 마음에 젊음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면 창조의 능력이 발현될 것이다. 그 영역은 자신이 추구하는 영역이면 어디서나 가능하다. 다만 예술·철학·과학 등 정신적 영역이 더 적합할 것이다. 위대한 사람들의 작품이나 발명품은 말년에 나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룰 수 있으리니.

  그리움은 상상의 날개를 펴고 떠돌면서 새로운 세계를 그린다. 천경자 화백은 결혼에 여러 번 실패를 했다. 상대방이 있는 남녀 간의 사랑에는 실패를 했지만, 사랑의 감성은 무한한 것이기에 사랑이 작품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한마저도 평생 작품을 그리는 데 힘이 되었다. 그래도 자기 인생을 이끌어준 것은 ‘꿈, 사랑과 모정’이라고 했다. 꿈은 그림과 함께 호흡을 해왔고, 이것을 뒷밭침해준 것이 사랑과 모정이었다. “그린다는 것은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리움은 그림이 되고 그림은 그리움을 부르지요.(바람의 화원 중에서) 이처럼  모든 예술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과학자든 예술가든 위대한 사람들은 바로 그리움이 낳은 인물들이다.

 

  소의 화가 이중섭은 바다 건너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와 그 여백에 그린 그림에서 애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 이처럼 그리움은 정신적 고통일 수 있지만, 또한 창조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그의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그의 아내 일본인 야마모토 마사코와의 인터뷰 기사가 신문에 실렸는데,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킨다. “우리의 사랑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당신과 함께 할 거예요. 우리는 운명이니까.70년이 지나도 남편의 따스한 품은 아직도 생생하다는 그 마음, 귀중한 사랑의 표본이 아닐까?

  그리움이 사람들을 예술의 세계로 이끌어내고, 예술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선물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움은 예술세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며, 사랑을 유도하고 인생에 꿈을 주는 매체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그리움을 느끼지 못하는 인생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처럼 얼마나 황막한 것인가? 그러니 행복한 인생을 꿈꾸려면 그리움을 만들고 간직하며 살 일이다. 우리 모두 그리워하자! 자연을, 사람을, 아니 모든 것을... 그리움을 간직하고 사는 인생은 항상 희망이 있고, 에너지가 넘치며, 지속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노년에도.

  인생이란 어쩌면 기다림의 연속일지 모른다. 노년에도 기다림을 통해 희망을 키워가며 살아가야 한다.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분명한 것은 사람들은 누구나 주인공들처럼 ‘고도’를 기다리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누구이며 어떤 자세로 기다리고 있는가가 다를 뿐... 그것은 내일이고, 소망이며, 그리움으로 인생의 나침반이 되고 등대가 될 수 있다. 마음속에 ‘고도’가 들어올 때 사람들은 희망을 가지고 위안을 받으면서 행복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인생은 이처럼 기다림의 연속이다. 자신만의 ‘고도’를 그리는. 노년에도 항상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희망이 행복이라는 선물을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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