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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무덤 외9편 / 우재호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1/22 [16:04] | 조회수 : 457

 

  © 시인뉴스 포엠



 

보랏빛 무덤 / 우재호

 

 

낮에만 해도 밭에 있던 도라지

밤에는 내 곁에 앉더니

꿈속까지 따라 들어와 동침을 한 도라지

 

청도라지꽃을 따라 꿈속에 들어와

꿈속이 환했다

바람은 벌나비를 데리고 날아들었다

 

햇빛 달빛이 키워낸 도라지

땅속에서 켰던 보라꽃등을 꿈속에서도 켰다

 

꽃 속에서

살며시 걸어나온 보랏빛 여인

내 품을 파고드네

보랏빛 향기에 불콰하게 취한 밤

보라 보라 보라 날좀 보라

발가벗은 알몸으로 풀풀 암내를 내는

저 쭈욱 뻗은 몸매

꿈을 안고 뒹굴고 있는데

 

어디선가 신호를 보내는 소리

찌르릉 찌르릉 질긴 도라지 닮은 소리에

한바탕 흥건하게 놀다 깬 꿈

道倮知

도를 깨우쳐 알고 보니 모든게 발가벗은 꿈이라 말하며

보라스럽게 웃는 저 앙큼한 여인

청도라지

 

 

  

 

 

탐나부인 / 우재호

 

 

내겐 옷 입기를 싫어하는 애인이 있다

 

얼마전 월남 갔다올때

작고 귀여운 여인을 보쌈 해왔다

 

발가벗고 자는 여인을 가방속에 집어넣어  

인천공항을 통해 몰래 국내에 데려왔다

 

집에도 들리지 않고

숙소로 달려가 가방을 열자  

푸푸 거친숨 몰아쉬는 풍만

벗은 몸이 부끄러워 한다

 

옷 한 벌 챙길 여유도 안준 죄책감에

동대문 시장에 가서 빨간 비단천 끊어

달린옷 한 벌을 만들어 입히고 탐나부인이라 이름 지었다

때로는 남댁, 달부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녀는 밤을 좋아한다

달빛 아래서는 기꺼이 홀라당 다 벗는다

나를 위해서

달빛비린내 폴폴 풍기며 살그머니 빗장을 연다

 

뽀얀 목덜미

탱글탱글 젖내음

미끈한 허벅지를 걷으면

별빛도 들어오고 풀벌레 울음도 창문을 넘어온다

 

창을 넘지 못한 꽃들은

그림자로 벽을 흔들고 있다

사랑은 웃전을 거슬러주지 않는다.

 

 

 

 

비에 젖은 밥줄 / 우재호

 

 

 

매일 아침 어둠이 짙은 공장 앞엔 따뜻한 밥 한 그릇이 배고픈

노인들을 길게 줄 세웠다

 

다이어트 제품이 방송을 타고

비만 걱정해 아침  는 세상에

찬 새벽 한끼 뱃속을 채워줄

더운밥 한 그릇이 절실한 사람들이 있다

 

새벽찬 공기가 살을 에는 2

밥공장이 아직 불을 밝히기도 전에

식당 앞에 길게 늘어선 줄 위로 갑자기 찬비가 쏟아져 내린다

 

노인들

둘러멘 가방 안에서 조립식 집의 한 귀퉁이를 찢어

이름표를 붙여 자신이 서있던 자리에 놓곤 비를 피해 처마 밑으로 자리 옮긴다

 

순식간에 밥줄들이 빗속에

징검다리를 놓지만 곧 잠수교가 되어 물속에 잠긴다  

 

멀직히 떨어져

자신의 밥줄들을 지키고 있는 시선들

혹시나 빗줄기에  밥그릇이

떠내려갈까 근심어린 표정으로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생 피 네 / 우재호

 

 

 

어릴적 살던 동네에 생피네가 살았다

 

붉고 비린냄새가 날것같은 생피

 

철이 들고 생피네 내력을 알았다

과년한 딸이 시집을 갔다

병을 안고 친정엘 왔다

농사철이 되자 철철 울어야 했던 그녀

애비의 강간은 붉었다

애비의 강간은 딸을 저승으로 데려갔다

 

동네에선 멍석말이도 못하고

쯧쯧, 혀차는 소리만 설설 끓었다

 

낳아주고 빼앗아간 애비는

물먹은 바람이 되었다

 

그녀가 떠난 후

온동네엔 붉은비가 내렸다

집앞에 핀 봉선화엔 푸른 귀기가 서렸다

 

밤낮

흐느끼며 슬피우는 붉은 울음

봉선 봉선,

생피색으로 물들고 있다.

 

 

 

 

  

유품정리사 / 우재호        

 

 

저승으로 이사 가는 사람이 두고 간

물건을 정리해 주는 사람

 

연고 없는 20대 사망자 유서를 일년 후

읽을 때도 있고

 

얼굴 모르는 호적 아버지 유품 정리 의뢰를

아들에게 받기도 한다

 

삶이 끝나면 보이는 것들

만난 적 없는 사람도 보인다

그 사람 성격이, 좋아하던 것들이

 

마침표 하나에 동그랗게 말려 생은 끝나지만

그가 한일은 영원히 남는다

아무도 대신 할 수 없는 몫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40대 남편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온 순간

아내는 듣는다

 

‘여보 나 왔어요’ 말소리

구두를 벗고 마루에 올라오는 소리

세면장에 들어가는 소리

 

주인 잃은 칫솔이 치약 면도기가 어지럽게 흩어져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헤멘다

 

살아서 귀하게 사용하던 흔적들

여기 저기 굴러다니다 이사람 저사람 옮겨 다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살아 숨쉬는 것들은 모두 물렁하다

흔적은 발걸음을 아장아장 옮기는 신들의 등불이 된다

 
 
 
 

파란웃음꽃 / 우재호             

  

착하고 이쁘고 살림 잘하는 여인

사내는 노름꾼 이었다

 

초가지붕 위로 으스름달이 처연한 저녁

몽땅 털어 노름판의 배를 잔뜩 불렀다

노름밑천이 떨어진 남편

 

온 집안을 다 뒤져

마당 거름더미 속에 숨긴 돈을 찾아낸

남편의 분노가 미친개로 변했다

 

머리끄댕이 잡아 장작불이 타고 있는 아궁이에 던졌다

불길은 정신줄을 까맣게 삼켰다

 

그녀는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자신 속에 꽁꽁 숨어버렸다

 

눈동자는 슬픔만 울컥울컥 쏟아냈다

하얀웃음을 허공에 던지며 알아듣지 못할 말을 궁시렁 거렸다

 

개밥바라기가 샛별로 바뀔 때까지

이슥하도록 이슬을 만지며 긴 그림자를 끌고 온 동네를 휘저었다

 

초겨울 천둥지기에 보리를 파종 하려다 누군가 밤새 뭔가 뿌려 놓은 것을 알았다

 

밤이 새도록 그녀가 밀을

뿌려놓은 것을 알고는 그냥 흙을 덮었다

 

봄이 되니

밀밭은 그녀의 삼단 같은 머리털을 닮아

무성하게 잘 자라 주었고

 

못다 피운 삶이 자리를 옮겨  

파란웃음꽃으로 자랐다.

 
 
 
 

패자에게 보내는 응원 / 우재호

 

 

 

악어 두 마리 목숨 건 혈투 벌리고 있다

붉은 피 떨구며 독기로 안간힘 다해 싸운다

 

암놈의 사랑을 빼앗기 위한 숫놈들의 싸움

 

학교 갓 졸업하고 제철소 건설의 꿈을 안고 전국의 기술자 들이 모여들던 포항

나도 그 많은 기술자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

 

현장 작업반에서 신참 옥이를 만났다

갓 상고를 졸업한 시인 5월 종달새는 내 마음을 훔쳐 가버렸다

시집을 선물하며 고백했는데, 사랑이 있단다

 

종달새 애인을 불러냈다 무릎 꿇고 애원 했다 협박도 날렸다

돌아온 건 싸늘한 표정 한 줄 뿐이다

 

악어 두 마리 암놈 두고 싸웠다

한 놈은 지키기 위해서 한 놈은 빼앗기 위해서

암놈 한 마리를 위해 모든 걸 던졌다

 

밤이 새도 승부는 끝나지 않고 두 마리 다 지쳐서 얼음판에 널부러졌다

 

저울은 눈금을 하얗게 뜨고 있다

 

온몸 상처투성이가 되어 성인봉에 올라 하늘을 패다가 군 입대를 했다

목숨 건 치열하던 투쟁

종달새는 날아가고 악어는 제 집으로 돌아가고 늪만 눈을 껌뻑이고 있다

세상의 모든 기록은 승자의 것

슬픔은 패자에게 다가온다

 

지금 어디선가 포로롱 포로롱 푸른 하늘을 날며 살아갈 종달새

내 핏줄을 따라 돌며 살고 있는

숫놈의 안부가 빼꼼하게 얼굴을 내민다.

 

 
 
 

도 마 / 우재호

 

 

도마위에 올려진 목숨

 

공포에 질린 몸 부르르 떤다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바닷속을 헤엄치던 시절을 생각하는지 눈빛이 반짝인다

 

바닷물보다 시퍼런 칼날에 목이 잘린다

몸뚱이는 또 한번 있는 힘을 다해 꿈틀거린다  

 

망망대해를 맘껏 휘젓고 다닌 일

꿈속의 일인 듯 잘라진 목으로 피 울컥 게워낸다  

 

배를 가르자 내장 꿈틀 거린다

마지막 유언 붉게 흘린다

 

유언의 비린 맛을 없애기 위해

파 마늘 양파 갖은 양념을 도마에 올린다

도마는 재빨리 다른 것들을 먹는다

살아남는 방법이다  

 

나무 도마에는 칼날이 집을 짓는다

이름은 칼집이다

 

식칼이 살아간 흔적은 도마에 있다

식칼이 대를 이어 살아가는 도마

모진 칼날 다 받아 움푹 파였다

 

날카로운 칼날 다 받아내며 굳건하게 버티는 저 배짱

나무도마는 자신의 살을 비상만큼 잘라내어

살아있는 목숨에게 먹여 키운다.

 

 

 

천리를 달리는 눈 / 우재호

 

 

눈은 사람들에게서 떠나간다

폭염 치맥 미투가 장악하는 도시

 

눈이 떠나간 자리엔 또 다른 눈이 자란다  

 

눈이 살아있는 사람과 떠나간 사람의 사이

눈을 잃어버린 사람이 많을수록

눈을 잃지 않은 사람은 약자가 된다

 

눈 떠나간 도시에서 눈 갖는다는 건 보이는 고통이다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싸움에선

늘 보이지 않는 쪽이 이긴다

 

눈 뜨고도 눈을 감아야 하는 삶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 차이

 

눈 잃고 마음의 눈을 채운 집단은

눈 가지고 마음의 눈을 잃은 집단을 마음껏 조롱한다

 

사유와 깨달음과 객관적 상관물은

성장과 통찰을 통째로 삼킨다

욕망이 붉게 날아다니는 악마의 도시

 

보이지 않는 자가 만들어낸 세상

보이는 자가 장님이 되고 보이지 않는 자가 정상이 되는

보이지 않는 자는 보이는 자에게

세상을 잘 볼 수 있는 힘을 실어나른다

 

사람은 관심으로 본다

따뜻한 곁으로 본다

귀로 마신 차 한 잔으로 본다.

 

 

 

끈끈한 협착 / 우재호

 

 

 

산길이 새벽이슬을 걷어찬다

유리벽보다 더한 위장술로 몸을 감췄다가

길 걷는 순간 불쑥 튀어나와 내 몸 휘감는 그것

 

밤새 쳐놓은 그물에 매번 걸리는 것은 나다

 

엎질러진 달빛 줄줄이 꿰어 은빛물줄 매달린 목록들

 

고비마다 발목을 걸고 그물을 당기고  

정제되지 않은 욕심들 옭아매던 거미줄

 

잠을 눕혀도 악착같이 둘러붙어 팔베개를 하던 상처들

 

너무 눈앞에 것만 이용한 것은 아닌지

바람 불고 풀들 흔들리면 죽은자 콧털이 흔들린다

거미줄에 악착같이 붙어살아야 하는 바람

 

내 앞을 가린 거미줄 걷어버리고

줄 끝에 매달린 작은 거미는 다시

나무위에 올려준다

 

오늘 나는 가느다란 거미줄에

킬리만자로보다 더 높고 무거운 어제를 걸어놓고 왔다

 

내 발자국을

나를 쉼 없이 따라온 내 그림자를

질기고 질긴 억겹의 아픈 인연을

지우고 싶은 내 과거의 족적들

아무도 없는 산에 홀로 두고 왔다.

 

 

 

 

 

 

성명 : 우재호

경북 문경 출생

서울과기대 산업대학원 건축공학과 졸업

한국방송통신대 국문학과 졸업

2011년 월간 문예사조 신인상 등단

2011년 문경시민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최우수상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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