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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떠돌다 외9편 / 이문자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1/27 [14:27] | 조회수 : 999

 

  © 시인뉴스 포엠



 먼지, 떠돌다 / 이문자

 

 

얼마 전까지 사람의 온기로 가득했던 방 안에 냉기가 가득하다

 

낡은 가구가 있던 빈자리엔 가구들의 살점이 고여 있다

 

먹빛 살점은 떠난 사람의 사연이다

 

그는 일용근로자

 

집에 있는 날보다 나가는 날이 많다

 

비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이면 불안을 안고 산다

 

방의 모든 물체가 자리를 잡지 못한 채 불안에 떤다

 

그는 부스러기 돈을 모아 방세를 낸다 큰 덩어리였던 월세 보증금도 줄고 줄어 조각만 남았다

 

광고지가 쌓인 두께만큼 한동안 문도 열리지 않고 인기척이 없다

 

티끌 모아서 태산을 만들었던 주인 할머니

 

티끌을 줍기 위해 그 방을 열었을 때 방안이 비어 있었다

 

방 벽에 붙은 종이에 "주인 할머니 죄송합니다"라고 다 맺지 못한 조각 같은 글이 쓰여 있었다

 

방 벽에 쓰인 많은 전화번호 자리 잡지 못하고 떠도는 먼지처럼 아무 번호도 연결되지 않는다

 

사람 흔적 없이 푸석푸석 버려진 그의 지난했던 날만 남았다

 

 

 

 

슬픈 다리 / 이문자

 

 
넌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엄마의 말씀이다

 

주워와서 나만 미워한다 믿으니

 

어릴 땐 금세 눈물이 고였다

 

지금은 안다

 

뼈만 앙상하고 휘어져 있는

 

엄마 다리라는 것

 

자식들 바로 세우느라

 

스스로는 낮아져

 

살 날보다 먼저 누운 엄마의 다리

 

직립의 생각을 버린 듯

 

끝없이 휘기만 하는

 

어머니의 다리에

 

마음의 곧은 다리를 이어보는

 

자식들의 심정

 

 
 
 
 
방화수류정에서 /  이문자

 

 

소담한 연못에

 

속삭이듯 비 내립니다

 

비의 귓속말에

 

풀잎이 고개를 끄덕이고

 

수련도 수면에 귀를 대고

 

이야기에 젖습니다

 

​ 
말하기보다

 

들어주는 마음처럼

 

나지막한 연못에

 

둥글게 비가 차오릅니다

 

 

 

 

해바라기 / 이문자

 

 끝없이

 

위로만 향하던 눈이

 

아래를 보고 있다

 

해를 향한 날들로

 

무거워진 머리가

 

고개를 꺾었다

 

노을 지는 들에 서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속죄의 기도를 하고 있다

 

 

 

나사 / 이문자

 

 
목표에 못처럼

 

도달하고 싶지 않다

 

한번에

 

빠르게

 

빈틈없이

 

 

그렇게 감정 없이

 

다다르고 싶지 않다

 

한참 돌아서 가고

 

비틀거리며 흔들려도

 

실패만은 아니듯

 

자음의 희망에 모음의 내가 한 몸으로

 

ㅁㅗㄱㅈㅓㄱㅈㅣ에

 

닿고 싶다

 

  

 

폭설 / 이문자

 

 
그는 말이 많다

 

세상을 가릴 만큼 퍼붓는다

 

조곤조곤할 때도 있지만

 

잠시 흥분될 뿐 남는 게 없다

 

헤어질 때면

 

오물을 덮어쓴 느낌이다

 

 

 

 

깍두기 / 이문자

 

​ 
각진 남자가 있다

 

어린 시절은 싹둑싹둑 잘려나간

 

쓰라린 기억으로 절여졌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 끼지 못한 채

 

낮에는 빈둥대고 밤이면 눈이 반짝인다

 

늦은 시간 일그러진 그의 얼굴과 마주친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비명은 모서리가 있는 붉은색이다

 

밤새 노름판의 한 판 승부를 위해 사는 삶

 

무엇이 나올지 모를

 

주사위의 한 면 같다

 

어떻게 나와도 결국 붉게 물들 주사위

 

그가 있는 곳은 사방이 벽인 주사위

 

거울이 없고 창문이 없고 시계가 없다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가 없다

 

각진 그들은 머릿속 방 하나를 잃은 채

 

어둠 속에서 술수와 비굴을 양념 삼아

 

오늘을 버무린다

 

 

 
하늘에 쌓이는 눈/  이문자

 

 
눈이 오네요 달콤한 느낌에 빠져들어요

 

그러면 눈은 설탕일까요 사실 눈은  검을지도 몰라요 희다는 생각은 빛의 파장이나 눈의 착시 때문이에요 나는 감미로운 설탕의 꼬임에 빠져 너무 많이 먹게 돼요 희다는 선한 생각 때문에 참지 못했거든요

 

눈이 내려요 눈 아래서 눈을 보면 천지가 나를 보는 눈이죠

 

눈이 쓰레긴지 내 눈이 쓰레긴지 지상에 닿는 순간 흙탕물이 되네요 세상이 온통 눈일 때 눈이 오는 게 아니라 눈을 거둬가는 것  같아요 하늘에만 쌓이는 눈이에요

 

 

  

공터/ 이문자

 

늦은 시간 집으로 가다가 아파트를 보니

 

빈 거 같다 그 많은 사람들이 저 안에

 

있을 텐데 내 앞에 거대한 상자는 공터

 

채우기 위해서 오늘을 태웠을 사람들

 

실적의 부피와 명예의 무게로

 

내일을 채우기 위해서 오늘을 비우기도 하고

 

오늘을 채우기 위해서 내일 비워야 할 때도 있다

 

몸을 비우고 마음을 채우는 일

 

마음을 비우고 몸을 불리는 일이 저물고 있다

 

어둠이 공터로 남지 않는 순간이 있었던가

 

이웃이 문이 아닌 벽으로 보이고 모르소 부호 같은

 

층간 소음만이 그들만의 대화

 

어둠 속 아파트가 말문을 닫는 공터로 남는 밤

 

 

 

아버지의 의자/ 이문자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가시던 아버지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셨다 걸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아버지에게 의자는 올무였다 육신의 무게로 의지했던 의자는 어느 순간 의자의 무게로 남겨졌다

  

의자의 달콤함과

 

더 나은 안락을 위해

 

나를 잊고 정글처럼 살았던 날들

 

자식의 자리를 위해

 

당신의 자리를 잃은

 

아버지 생각을 하면

 

귓전에 휠체어 끄는 소리 먹먹하다

 

 

 

 
<프로필>

 

이문자

 

ㆍ시집: <푸른혈서>, <삼산 달빛연가>

 

ㆍ한국문인협회 종로지부 이사

 

ㆍ한국문예협회 사무국장

 

ㆍ2017년 수원시 창작시 공모전 수상

 

ㆍ2018~2019년 서울시 지하철 창작시 공모전 당선

 

ㆍ2015년 <경의선 문학>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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