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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 꽃피었다 외9편 /김영길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1/30 [17:34] | 조회수 : 358

 

  © 시인뉴스 포엠



튤립 꽃피었다/김영길

 

 

햇빛과 물을 잘 섞어서

잎줄기뿌리 온 힘 모아

꽃대에 올려 보낸다

모래주머니 들고 오래 버티기 하듯

역기() 들고 서있는 역사

 

강추위 이기고 기다려

따뜻한 봄날

원색의 마음 드러내어

그대에게 다가서는 것이다

 

순이가 웃는다

튤립 꽃이 웃는다

맹물마시고

하얗게

빨갛게

노랗게 웃는다  

 

 

 

  

 

 

큰 바람이 분다/김영길

 

 

큰 바람 불고 다시 아침

푸른 피 냄새가 난다

제자리에 있는

제자리를 떠난 것들이

새벽 술상처럼 어지럽다

해바라기가 바람의 방향을 말한다

벚나무 한 그루는 길을 막으며

앞 동네를 가지 말란다

가죽이 벗겨진 아카시아

이파리들이 마당을 접수했다

장독 덮개를 열고 장맛을 보고 갔다

 

마당을 쓸고 장독 뚜겅을 덮자

숲은 숨 고르는 모습이 역력하다

새들은 바람을 이기고 아침을 연다

어제 바람은 오늘 아침까지 불지 않았다

우리는 쓰러지는 해바라기가 되지 말자며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고

썩은 등걸을 치우고 길을 낸다

바람은 바램이 아니다

가죽 혁대 한 칸을 조인다

 

 

 

 

 

 

 

 

 접으세요/김영길

 

 

최대한 접으세요

미리 접어야죠

우산을 펴지 마세요

그 땐 이미 늦어요

행사도 파리솔도

다 접으세요

접다보면 꽃이 떨어질 수 있어요

그래도 접으세요

링링*은 장난꾸러기예요

비와 바람을 들고 타원을 그리며

우리에게 덤벼요

몸집을 불려서 맞서지 마세요

해바라기도 몸을 움츠리라 하세요

,

바람은 구멍을 내 보내고

배수구는 접지마세요

 

 

 

※ 링링 : 201997~8일 사이 한반도를 관통한 중형급 태풍

 

 

 

  

 

불돌/김영길

 

 

울릉도에서 독도 가는 배를 기다리는 동안

용암이 끓어 굳어진 돌을 만지다가

둥글게 된 사연을 물어보다가

불감을 만지는 마음으로 돌 쌓기를 한다

실패를 거듭하며 균형을 잡아

돌 속에 중심을 헤아려본다

기껏해야 백년도 못살면서

물수제비 함부로 떴던 기억과

돌팔매질했던 회한이 인다

 

오래전 태어났던 돌들

우산국은 화강암

일본섬은 석회암

뿌리와 근본을 모르는 그들에게

불돌 쌓기를 가르친다

 

 

 

 

 

 

밀입국한 조약돌/김영길

 

 

 파도에 밀리는 소리

 발자국에 찍힌 문양

 상현달을 닮은 알키온 비치(Alkyon Beach)*

 디오게네스와 소크라테스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아를 만난다

 엄지 검지 중지 사이에서

 달빛 불빛 물빛 새겨 넣은 조약돌

 밀입국을 하자며 꼬드겼다

 

 상현달이 중천에 떠오를 때까지

 내 행적을 알고 있는

 심장만 남은 조약돌

 서랍 속에서 침묵하다가

 눈 부릅뜨고

 해변으로 내 손 이끌고 가

 그 날 그 곳 그 일

 가슴 누르며 말하겠다

 

 

* 그리스 코린토스만에 있는 해변

 

 

 

 

 

 감은 없다/김영길

 

 

까치밥 얼었다 녹았다

가을은 겨울로 풍경을 바꾸겠다

감사할 줄도 모르고 감을 따면

감사의 길을 갈 것이다

까치가 살을 헤집어도

이제는 물러터지면 된다

 

가을 햇살에 놓인 정물

벌거벗은 알몸이 눈부셨다

순응했다, 감사했다

하루아침에 날벼락 같지만

한 잎도 거역 없이, 소리 없이

알몸으로 입동(立冬)을 맞이한다

 

300 전사가 창을 들이대도

방패는 감은 있으나 감은 없다

()은 된서리로 명령했다

모두 내려놓아라

 

 

 

 

 

  

화살나무/김영길

 

 

 

하늘로 오르기 위한 것이라는

가시가 날개로 변했다는

귀신이 쏘는 화살이라는 설도 있으나

한 곳을 겨누지 않는다

몇 년 전에 이 세상을 이별한 동생 놈이

약으로 쓴다기에 베어 주려했는데

그만 먼저 세상을 떠난 후

아직도 마당 한 구석을 지키고 있다 

어느 가을이나 붉은 단풍이 들 때 보면

활활 타 오르는 것 같다

붉은 열매는 새가 먹어

이산 저산 자손이 번성하다

등산길에 새싹을 한 바구니 따서 먹기도 했는데

홀잎나무가 되었던

참빗살나무가 되었던

가을이면 '형님 나 이렇게 뜨겁게 잘 살고 있소'

하고 버티는 폼이 영낙없이 세상을 향해

삼국지에 나오는 여포의 얼굴인가

저 세상 사람이 된 동생의 모습인가

쏟아지는 화살이 내 심장에 꽂힌

 

 

 

 

 

 겨울 장미에게/김영길

 

 

 반갑네

 이 겨울 왠일인가

 다른 이들은 때를 아는데

 당신 왜 이제야 왔나

 화장도 안 받는 얼굴에

 루즈는 뭐 그렇게 진해

 당신의 뜨거운 마음은 알겠는데

 다 때가 있지 않겠나

 지금 피면 서리만 맞겠지

 그냥 침묵하면

 젊은 시절 얼굴이라도 생각날 텐데

 그 얼굴 다시 떠오를까 겁나네

 아쉽지만 가슴에 추억을 담고

 꽃눈 잎눈 꼭 싸매고 겨울 건너

 봄이 오거든 그 때 우리 만나세

 다시 봄이 오지 않아도 어쩔 수 없고

 

 

 

 

  

문산천/김영길

 

 

문산천 하루가 얼레에 감긴다

서해로 떨어지는

해에 줄을 매달아

하루를 잡아당긴다

경의중앙선 전철은 줄아위에서 손 흔들고

화력발전소 연기도 끌고 가

어울렁더울렁 임진강을 만난다

하늘도 구름도 기러기 떼도

문산천 물거울을 들어다보며

매무새를 가다듬고 지나간다

봉암, 아가메 들판 다 먹여 살리고

흐르다 쉬다 또 흘러

 

 

* 파주시 광탄면과 양주시 백석읍의 꾀꼬리봉(425m)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임진강에 합류하는 하천.

 

 

 

 

 

 

깜박하면/김영길

 

'글로리아 벨'이란 영화를 보는데

'깜박하면 가게 돼' 라고

어머니가 중년 딸에게 이른다

비행기는 흑해를 지나고 있다

남은 비행시간은 한 시간 삼십 분

깜박하면 가는 걸 모른는 사람은 없으나

영원히 살 것처럼 산다

다시 안전띠를 여미는 대신 책을 편다

생명이 보장된 시간은 없다

팔십을 산다면 이만구천이백 일

백 년을 살아도 짧기는 마찬가지

땅 위를 걷는 게 아니라

언제나 하늘을 날고 있다

훅 불면 가니까

 

 

시인 김영길

 

 

* 시집 『봄날에 다시 걷다』 로

   작품 활동 시작

* 명지대학교 문화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석사 졸업

* 파주시 공직자 문학회장 역임

* 한국문인협회 파주시 부회장 역임

  (회장 직무대리)

* 경기도 문학상 수상

* 파주 예술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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