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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문상 외9편 / 조갑조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2/02 [23:14] | 조회수 : 260

 

  © 시인뉴스 포엠



21세기 문상

 

 

늦밤 전화기에서

친구의 울음이 빗소리로 꽂힌다

 

십오 년간, 꺼억, 꺽

그녀는 끝말을 잊은 채

별로 간 아이의 사연을 쏟아내는데

가슴 위로 너럭바위가 앉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머리를 들자, 영정사진에서

네 발이

풀밭 위를 마구 뛰어다닌다

 

내 눈의 불줄기가

저 놈을 잡으려 뛰쳐나간다

 

나는 지금 멍멍이님을 弔喪하고 있습니다

 

 

 

 

그림자를 뽑다

 

 

이른 봄 새벽 두드리는 틈새

상처를 메우려 못을 박지만

슬픔은 그 자체로 끓어 오른다

 

어둠이 심장에 그림자를 쏟아 붓는다

 

눈동자에 새벽이 앉을 무렵

기다림은 틈새로 올라오는데

흡입기를 뽑아도 뽑아도

흘러 넘치는 끈적한 액체

혈관 마디를 좁혀가며 가래가 들끓는다

 

문지방을 잡고 뱉어내는

침묵의 내성

뽑아 버리지 못한 심연이

햇살 바닥에 굴러 다닌다

햇살이 틈을 비집고 그림자를 찾아 다닌다

 

 

 

 

버리는 연습

 

 

요양병원 창가

훨체어에 앉아 세월의 보폭을 손가락으로 곱는다

그의 보플라기 이는 삶

그녀의 주위를 맴돌며 어지럽힌다

그의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새까맣게 닳은 손톱

얼굴을 향해 끄는 걸음걸이가 그녀를 스쳐

혈관 마디마디 통증으로 다가온다

 

생솔가지가 늘어진다

줄기가 욱신거리는데

또 다른 칸나의 혀를

그는 병실에서 맛보는구나

 

“버리지 않으면 느끼지 못한다”

 

니체가 등짝을 확 후려치고 간다

 

                 “ “ 니체의 말

 

 

 

 

 

봄비처럼

 

 

무게에 짓눌린 어깨쭉지가

봄비로 내린다

 

넋 놓고 앉아 있는

당신의 호흡이 내는 건 침묵이 침묵이 아니다

 

눌린 어둠이 무섭다

누를수록 솟구쳐 오르는 가슴벽의 상채기가

말라 붙어 얼룩이 된다

머릿속 통증을 읽지 못하는 밤의 파편들이 제멋대로 흩어져

갈증을 더하는 밤

 

하얀 시트가 어둠과 빛 사이에서 서로 펴다가 널브러지고

진혼곡이 흐르는 당신의 말들은

과녘을 비껴나간 화살로 떨어진다

 

늪에 찌려 허우적거리는 당신을 끌어안아도

보는 나는 숨이 차다

 

비가 내린다

낡은 옹이에서 그래도 싹이 돋는다

내안의 페허가 머언 시간 밖을 돌아

당신을 불러낸다

,

어쩌겠나,

당신을. 당신을 창살로 가두어야겠다

 

 

 

 

서쪽으로 기운 나무

 

 

당신의 웃음소리가 멀리서도 가까이 들려

인파들 속에서 찾았어요

자잘한 얼굴들 사이에서 당신은

왼쪽으로 자꾸 방향을 트네요

 

두 걸음만 걸어도

눈은 소 말뚝처럼 또 한 곳에서 멈칫하네요

 

구골나무 흰꽃이 먼저였나요?

주저않는 당신이 먼저였나요?

 

산소가 흐르는 동안

구글나무 흰꽃이 수액을 넣어 주었나요

 

우리들의 이야기 속 구글나무 흰꽃이 있네요

 

어쩔 수 없는 어둠과 빛 병실 안 절벽은 아득하고

빛이 있는 곳마다 하루를 엎드리게 해요

 

물푸레나무 아래서 이제 달떳든 가슴을 목욕합니다

 

 

 

 

세운암 흰나비

 

 

엄마의 수건은 세원암을 향한다

 

떡잎은 아직 자라지 않는대,

꽃밭에서 수레를 몰고 나간 엄마는

영축산 넘어 무지개를 따라 가버렸다

 

떡잎에 바람이 몰아쳐 잎들은 찢어지고

꽃도 엄마를 따라 일부는 수술도 날아가 버렸다

 

과거의 한때,

시장 점포에서 수건을 쓴 채 쿨럭이던

배추 한 포기의 각혈을 뱉어낼 때

우는 나를 잎으로 감싸 안는다

그동안  몸속에 쌓인 흙더미가 숭숭 떨어져 나가

배춧잎에 떨어진다

 

엄마의 치마가 나비에 붙어서

하늘하늘 날개를 친다. 햇살은 차고

 

세운암 꽃 축제는 낮이다.

 

 

 

 

씨앗 품은 달

 

 

먹물 든 말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핑계로만 살던 당신

띵동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죠

당신의 짧고 낮은 외마디가 동통을 몰고 왔어요

나는 들판에 홀로 선 나무가 되었죠

날카로운 채찍

그저 달그림자로만 봤어요

내 눈 쪼이던 말에 끙끙 알았죠

아침이 바람이었죠

내 편은 먼데서만 있네요

껍질 속에는 미운 세월과

긴 세월이 얽혀 있어요

우리도 한 번 합쳐 볼까요

당신의 환상통에 단단한 피부가 되었지요

효모는 언제나 속으로 부풀잔아요

이제야, 당신의 말

야문 씨 담은 걸, 없으니 알았어요

늑골 밑에 쓰러진 바람이,

속찬 말을 담아 당신에게 날려 보내요.

 

 

 

 

쪽문

 

 

지난 여름 말들이 막 도착했다

 

사람이 동물을 키운다는 건

 

한 쪽 문을 열어 젖혀 다른 쪽 문을 보는 일이지

 

그녀 아이의 영상을 끌어들여

햇발 속에 섞는다

유리창에 붙어서 아이의 영상을 그린다

 

저 집에 누군가를 들일 수도 이겠다

 

흙먼지 있는 화분은 다른 풍경을 말한다

 

그녀는 쪽문을 활짝 열었다

 

 

 

 

화가의 구성법

 

 

그녀의 땅 끝에서

운무에 쌓인 능선은 있되 보이지 않고

남해가 청산도를 끌어 안는다

 

허리춤에 늘어난 땅따먹이 놀이가

그녀를 바닷가로 데러간다

돌을 머리에 인 고동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

 

바랜 모래톱

여긴 내방, 부엌, 엄마방

 

소금기가 절여진 방에서

파도를 세우고 넓혀 파란집을 짖는 그녀

손끝에서 평수가 줄고 늘어난다

 

땅 부자 김 말희

 

지금 비내리는 창가에 앉아 해변을 그리는 화가의 손을 생각한다

 

그날 밤 신문에서 김 말희 초대전을 보았다

 

 

 

 

화장술

 

 

팍팍한 시집생활에

외로움을 달래는 햇살을 마시면서 시작한 일리예요

 

기지개를 한껏 켜고 거울 앞에 정좌를 하고

얼굴엔 한바탕 소동을 치곤했죠

 

방은 마루 끝에 들어앉은 내방,

잘 들리지도 않고 찾는 이도 없었죠

 

 손장난은 무체색에서 유체색 그리는 일이었어요

급한 손놀림 때문에 자꾸 경계가 무너지고

마구 분칠에는 웃고픈 계획이 들어있지요

 

 비밀스런 웃음의 비애. 어머니의 외출 시에만 계속되었지요

둘이서 외출 할 무렵

 

‘얼굴이 그게 뭐꼬, 오데서 방앗간 밀가루 부대 뒤집어 썻노’

 

나는 깊은 召처럼 느낀 어머니의 말씀을 삼켰어요

다음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부대 뒤집어쓰는 일을 반복했지요

 

친정엄마의 최고 자랑인

내 얼굴에서 노을이 뚝뚝 떨어지는 시절이었죠

 

약력: 마산출생, 문예운동-2011 (부산대)

      강사로 활동

시집; 달개비 보랏빛도 그리웠다

      까만 창틀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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