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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 筍 외9편 / 정재리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2/02 [23:25] | 조회수 : 309

 

  © 시인뉴스 포엠

  

 

 

엄나무야

어금니를 물지 않고

모음만인 듯

입을 다물면 귀가 밝아져

수천 마리 새가 일제히 부리를 닫고서

바람에 씨가 날아와 저절로 태어난 나무라는 얘길 들었지

바람에게 아빠, 부르려다 말고 다시 뾰족해지는 저 가시나무

단서를 찾는다

건들거리는 통나무다리 앞에 주저앉아

주저하는 발 끝

허공은 허술해

두려움으로 컹 컹 먼저 짖는 개처럼

전체가 깨진 걸로 덮여 있는 액정이 있었다

맨발로 밟으면

개울물은 흘러오되 도착하지 않는 방식으로

밀고 나온 뼈가 나무껍질 위로 솟아

숲 속 최초의 발성,

달 속에 찔러 넣자 명명백백

비탈을 지켜내는 저 얼굴을 보겠다

 

 

  

 

 

이별 칸타타

 

 

서초와 방배의

중간쯤

어색해서 꼬이는 혀

그놈의 효령로

효령로의 그놈  

놈이 일어서자

운율이 살아난다

건반 위에서

오르막과 내리막을 버리고

흐르는 계단  

맨발의 기분으로

늑대 무리가

나무를 누비며 지날 때

휘날리던 음표

숨을 몰아쉬며, 숨표

어디까지 가니

중간은 꼭 끝을 보고 싶어 해

약속도 없이 달려 나가지만

돌아서는

도돌이표

출발과 도착이

서로 다른 악보를 들고

이별을 작별로 간주하는

이곳 효령로에서

 

 

 

 

 드로잉을 위하여

-1분 크로키

 

옷을 다 벗고도

더 벗을 무엇이 남은 듯한

저 포즈 고양이처럼

점점 교묘해지네

 

멀어지면 안 되고

닿을 수도 없는

벗은 몸과 입은 몸이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대에겐 야옹야옹 맘껏 울 허공이 필요해

 

내 손엔 화살이 있지, 길고양이 등짝을 관통시킨

예리한 직선의 죄를

자수로 면하지 못하게 하리라

곡선으로 후려치리라

급소만을 겨냥하리라

 

목을 돌린 1

먼저 간 그대에겐 우아한 시간

허겁지겁 포즈를 핥으며 뒤쫓는 나는 손이 떨리고

백 개의 시선에서 도망치는 우리

이목구비는 빠르게 생략하자

 

달리는 맨발이 덫칠에 걸릴 때

조용히 조명이 꺼지고

 

검은색의 다함을 아는가

타버린 시간

화살나무의 소신공양을

 
 
 
 

건너편

 

건너편은 나비가 되어

두근거리지

 

마음에 안 드는 선물을

받은 사람처럼

복잡한 표정

 

맞은편과 건너편의 차이는

모호하고

번져

평평한 등으로 멀어지는 당신

 

안녕

손 흔들지 않아도 이별이 펄럭이는데

 

계단과 난간은 미끄러져

행인이 되고

 

등을 기다리는

벽의 본성은

부스러지는 주먹을 지켜주지 못해

 

더듬거리는

건너편은 누구 편도 들지 않는 편

 

 

 

 

  저편

     

     

어서 들어가, 손등을 내보이며

연락할게, 그런 류의 인사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버스가 지나간 뒤

꼬리뼈의 행방에 대해 의문을 품는 정류장

버려진 몸통에는

반드시, 반듯이 척추가 있다

모로 눕거나 몸을 일으킬 때, 충고를 받아들이고

고개를 처박고 토할 때도 긴요한,

느슨해서 유연한 저

고양이 척추가 부럽기만 한

정류장은 부동자세로

꽃이 핀다

자존심이 높아지는 사람이나

자존감이 상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농담과 조언이 균형을 잃고

바닥을 뒹굴며

까끌까끌한 혀로 손가락을 핥아대던 발정

머리카락 사이로 열 손가락을 깊이 넣어 스며드는 뱀

칼눈을 뜨고

저기 완벽한 버스가 통째로 오고 있다

     

       

 

  

유성 ( 有聲 , 流星 )

 

   

 

목청 떨리는 마음이라고 했다, 마음을

 

미음과 이응으로 가르면 울림소리

 

흐르지 못하는 것들의 흐린소리

 

버찌가 사과 향과 체리 향으로 갈라지는 것처럼 흠, ,

 

떨어지기 전에 갈라서는 것이다 점심약속을 어기고 멀리까지 나가보는 것이다

 

순순히 해가 지고 밤눈 어두워지고

 

고아처럼 많은 상상으로

 

허기지면

 

사막에 별이 뜬다

 

, 툭 이다가 주욱

 

칼로 긋듯

 

그런 눈물

 

시력이 다른 두 눈으로 별똥별을 관측하는 사람이 나타나

 

저 물음표 형상을 한 낙타가 어째서 인간과 함께 걷다가

 

우아한 무릎을 꿇고 쉬고 있는지 조용히

 

물어보는 것이다

 

 

 

 

네 개의 침대가 놓여 있는 게르

 

 

바닥에 그것이 있었죠

 

몸을 벗고

선택된 양 머리 하나가

 

난로 아래 피가 돌듯 미소 지으며 설핏

귀를 열어놓고

 

목이 없으니 기다림도 없을 터

 

손님 자리는 왼쪽

 

난로가 따뜻하네

주전자가 뜨겁네

위험하겠어

 

밖엔 바람소리

꾸짖듯 짖는 검정 개

 

캄캄한 눈을 뜨고 눈을 감고

숨을 죽이면

 

똑똑

침대를 두드리는 윤곽 없는 양의 발자국

 

양의 탈을 쓰면 배고픈 늑대가 된다고 배웠습니다만

 

달리는 법을 다 익혀버린

둥근 배치는

천창天窓 밖으로 날아가

 

뾰족한 것은 다 별

모서리에 귀가 닳죠

 

미동도 없는 저 오른쪽 침대는

무엇이 항상 옳은걸까요

 

 

 

초식

 

 

 

 

뱀의 맹독이 두꺼비 독을 집어 삼키면 안전할까요, 필살기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우툴두툴 새벽마다 일기를 써요

 

 

 

                           어렸버어잃 을별

 

                           지갔나어튀 이별

 

 

 

떠나게 내버려두는 일은 밤눈이 어두워

 

우왕좌왕 넘어지면서

 

 

 

그럴 땐 딴생각 하면 돼요

 

 

 

바둑판처럼 일사불란하게

 

제자리를 고수하는 기억력

 

 

 

한 칸만 옆으로 물러나 준다면 나는

 

서럽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둘째딸로서

 

 

 

밤이면 등이 가려워 팩소나딘정 한 알을 삼키고

 

안전합니다, 뿔 난 것들은 누구를 잡아먹지 않아요

 

까칠한 혀를 나뭇잎처럼 다물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눈

 

 

 

독과 약은 같은 말이죠

 

 

 

칭찬 잘하는 목소리를 갖지 못한 사람이 목을 내놓고

 

왼쪽이 왼쪽을 왼쪽으로 밀어내는 동안

 

더듬더듬 오른손이 따라오고요

 

글자와 활자가 서로를 되새김질 해대는 끈질긴 혼종의 게임이에요

 

 

 

   

 

 악어

 

 

!

가로입니까 세로입니까

 

손가락이 입술을 떠날 때

하모니카가 문득 함구할 때

 

옆에 옆에 너 말고 너 옆에 그 옆에

키스처럼 나는 속았지

 

자장가 연주 때문에 잠이 달아나던 모래 위의 낮잠은

사막여우처럼 예민해져서

 

잃어버린 아기 코끼리 투마가 무리를 찾아 돌아오고 있어요

반 토막 난 코를 조금 흔들며

목마른 강가 사라진 이틀과 코에 대하여 모르는 냄새에 대하여 혼자에 대하여 당신은

 

질문하지 않는 사람

 

꽉 다문 입 속에 무엇이 있다

 

투마의 말랑한 코와 볖 뢀 뱐 샇 줃 괆 횽 ...... 이런 아이들이

어둠을 다 빨아 먹고

안에서 걸어 잠근 감옥

 

밖에, 멸종한 하모니카가

골다공증의 뼈처럼 놓여있다

 

 

 

 

 

오감

 

 

 토마토에 바나나를 넣어 주스를 만들면 어때 좀 뻑뻑하면 어때 시큼한 단맛 언니는 왜 날 비웃지 껍질과 껍데기가 따로 생겨났다 우리 옷을 바꿔 입고 함께 외출하자

 어른들을 만나면 쓸데없이 큰 목소리가 된다 어른들은 놀라신다 엄마는 귀가 어두워 정면을 보다 눈이 동그래지고

 입은 안일까 밖일까 너무 많은 것들이 출몰하고 있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돌아서는 장소, 해가 뜨면 달리기로 먼 곳까지 가보는 마사이족의 낮은 신발이 떠오릅니다 사자사냥을 멈추기 위해 다리가 길어지는 마사이족입니다 우유에 소 피를 넣어 마신 뒤 왼손에 쥐고 떠나는 저 막대 끝엔 뭐가 있을까 속도와 벼랑 끝, 가시나무, 남발하는 동정심 그리고

 어릴 적 우린 서로의 일기장에 손대지 않기로 손들고 맹세 했었지 또 뭐가 있을까 언니, 우린 아빠가 없지

 청각만 남은 아직 식지 않은 시신의 마지막 신념에 대해 말하려다 목이 아파와

 돌아보면

 후각만 남고 오감이 사라진 부드러운 갈색 개가 있다

 

 

 

 

정재리

 

1999 한국문인협회 수원 지부 시 부문 신인상

 

2017 서정시학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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