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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등 외1편 / 정인선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2/19 [22:27] | 조회수 : 324

 

  © 시인뉴스 포엠



굽은 등

 

 

눈발 성긴 윤이월

지난 여름내

골을 지어 튼실하게 키워주던 배추밭은

빛바랜 잎사귀들만 묵은 진오기굿판처럼

바람에 펄쩍펄쩍 뛴다

둔덕에 할아버지처럼 우뚝 서있던

다닥다닥 소나무는

지난 여름날 밑둥치가 잘려나가

청상靑孀의 눈물같이 흘러내린 송진이

하얗게 군데군데 자국으로 굳었다

황량하다

움푹움푹 패인 흔적만을 붙들고 있는

굽은 능성이 밭

식은 밥덩이 들고 앉은 할머니 등줄기 같다

할머니는 언제 끝나게 될지 모를 주문을 듣고 계시는지

한 점 한 점 떨어지는 각질을 셈하시는지

도무지 잠잠하다

피부건조의 가려움만은 잊으라고

메이는 목 축여보라고

성깃성깃 푸설 눈이 내리고 있다

 

 

 

 

 

들풀이 살아가는 법

 

 

들풀은

땅의 거죽을 덮고      

서로들 부둥켜안고

탄광촌 쪽방의 일곱 식구들처럼

꿈을 꾸다가도

발을 뻗어 더듬다가 오그리다

서로들 부비며 촘촘히 산다

고난이라는 단어는 너무 낡아

도배지 위에 쓰지 못한다

뜯기다가 밟히다가

자동차 바퀴에 짓이겨졌어도

 

다시는 별을 볼 수 없을까봐

칠흑의 막장에 앉아 잠시 울었을 뿐이다

진창에 떨어진 별똥별 하나까지

꿈의 행렬에 세워두고

늦은 밤 빨간 털장갑을 뜨개질하던

누이의 손에 들린 코바늘을 따라 나선다

앞길 막아선 조막돌

깨진 장독의 사금파리에 눌리어

줄기하나 세우지 못하던 여름을 넘겨봐도

게으른 아침은 없었다

고요를 이기지 못한 땅거죽이  

이른 아침 삐죽이 솟아 오른 날도

서로를 보듬으며 끌어안으며 살아간다

 

 

 

 

 

 

 

정인선 시인 약력 :

삼척 출생. 2008년 『문파문학』 등단.

시집 : 『잠깐 다녀올게』, 『거기』, 『오른쪽이 무너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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