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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어깨 외 9편 / 홍수연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3/01 [15:55] | 조회수 : 249

 

  © 시인뉴스 포엠



 

불온한 어깨

 

 

 

  나는 바다에 누워있다 파도를 머리에 괴고 무작정 흘러가고 있다 막 입춘의 구름을 떠나보낸 뒤였다 밤은 까마득하다 까마득하다는 말이 위안과 불안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파도는 좋은 베개가 아니어서 거북목의 통증을 때때로 일깨운다 하늘의 표정을 읽어내기에 파도는 곧잘 방해가 되곤 한다 어찌하랴 나는 떠내려가고 있는 중이고 별에게 기댈 수밖에 없으므로 하늘의 표정을 헤아리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까마귀가 깍깍 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깍깍 하늘을 읽고 있다 날아다니는 것과 떠다니는 것들에겐 불온한 어깨가 있다 그 어깨의 한가운데에 하늘이 있으므로 까마귀와 나는 끝내 하늘의 동의를 얻지 못한 채, 오늘밤 밤의 모포 끝자락에서 잠을 청할 것이다

 

  다시 까마득하다라는 말로 돌아온다 대체 까마득하지 않은 것이 인생일까 가까운 삶이란 없다는 생각 또한 내게 불안과 위안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내가 까마귀가 어쩌다 툭 떨어뜨린 한 오라기 깃털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이윽고 해가 지고 망망대해에도 밤이 찾아왔다 정처 없는 것들에게는 밤이 아침이었으므로 나는 베고 있던 베개를 떨치고 비틀비틀 해안가로 걸어나왔다

 

  나는 내가 날지 못하는 거북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옷걸이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려다 분리수거해 놓은 옷걸이를 보았네

서른을 갓 넘었을 적 나 한때 옷걸이가 좋다는 소리를 들었네

시장에서 산 원피스를 입어도 명품처럼 보인다는 칭찬을 들었네

(정말 칭찬이었을까)

 

그때 나의 어깨는 봉긋이 치솟았고 뾰족구두는 강가 풀섶을 걸었네

사람들은 내 눈을 보는 대신, 허리 잘록한 감색 원피스를 보았네

샘물처럼 나풀거리던 꽃무늬 원피스

 

 

사람들은 옷걸이와 대화하고 옷걸이의 점수를 매기고 옷걸이의 회식에 대해서 말했네

(내 그렁한 두 눈은 보지 못했네,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네)

나는 옷걸이의 그림자, 옷걸이의 하수인

(누구의 잘못일까)

 

옷걸이가 모딜리아니처럼 여리고 긴 목으로

당신과 세상을 향해 물음을 던지는 갸웃한 표정의 얼굴이라는 것은 알지 못 했네

(알려고도 하지 않았네)

 

옷걸이의 둥근 듯 단단하고 날렵한, 검정 깃털은 죽어도 만질 수 없었을 것이네

(언제나 슬픔은 혼자만의 몫이라네)

 

 

 

 

불구의 사랑

 

 

               

어느 날인가부터

말 못하는 치즈 같은 것 투명한 비닐 같은 것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벽 같은 것을 사랑하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나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저 바라보거나 한 번씩 이빨자국을 내어주기만  하면 만족하는

다루기 쉬운 상대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어요

가슴을 훤히 다 내여 보이고도

정절을 빼앗겼다며

책임을 전가시키지도 않아요

그저 한 번씩 눈길만으로 생사를 확인하면 그 뿐,

키는 온전히 나의 것이예요

그이를 사랑하느니 벽에 달라붙은 액자를 사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닫는 요즈음이예요

소파와의, 보일러와의 플라토닉한 사랑

플라토닉,

누구나 꿈꾸는 사랑 아니던가요?

에로스를 넘어 플라토닉한 모래 언덕으로 오기까지

무수히 피워낸 목단꽃

유리 화병 아래에서 첨벙대던 하얗고 붉은 장미

장미라고 다 에로스를 표방하는 것은 아니예요

별도 운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어요

 

몸 섞은 슬픔으로 우는 달

 

, , ,

, , ,

움직이지 않는 무대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벽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플라토닉한 벽에게

잘 있느냐,

잘 있다,

 

안부를 묻습니다

 

플라토닉하게, 플라토닉한, 플라스틱한,

 

 

 

 

,

 

 

                                       

참 좋은 세상이예요

톡톡 클릭 한 번으로 내게 이주한 아이비

톡톡 클릭 한 번이면 고양이도 강아지도 내 것이 될 수 있어요

 

모니터 화면에서 내게로 이주해온 콘솔 잡지꽂이

귀이개 주방타올 서대 멸치 떼…

모질게 마음만 먹으면 남자도 톡, , 살 수 있어요

 

어제 장바구니에 넣어둔 사내를 오늘 다시 꺼내보아요

어제의 날씨와 오늘의 날씨가 다르듯

그를 삭제해버려요

다른 남자를 살 거예요

더 젊고 더 기운 좋게 생긴 종마를 고를 거예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떡하느냐고요?

걱정은 붙들어 매세요

우리들에겐 반품과 교환의 찬스가 있으니까요

아예 환불도…

 

시들해져버린 부부관계로 괴로우시다고요?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다른 부부를 찾을 수도 있어요

 

ㅇㅇ넷엔 애인의 여친의 정부의 아내의,

기묘한 사진을 사고팔죠

그 때의 아내는 집에 있는 안해가 아니예요

 

어느 날은 급기야 모니터에 진출한 나를 보고,

황급히 전원을 끊어버린 일도 있었어요

 

사고팔고 사고팔고,

 

바람 없는 날

바람을 파는 최후의 김 선달이나 될까 보아요.

 

바람 한 봉지, &&

 

 

 

 

소유  

 

 

 

바다가 좋다, 라고 쓰고

미역귀를 자른다

물미역에서 나는 바다향이 참 좋다, 라고 쓰고

 

미역의 허리를 자른다

좋아한다는 것과 훼손한다는 것은 다르다

지난여름 천변을 거닐다

아 예뻐하며 모가지를 꺾은 토끼풀

아 예뻐하며 갈비뼈를 분질러뜨린 능소화

좋아한다는 말은 피를 보고서라도

소유하고 싶다는 말과 동의어인지도 모른다

 

산산조각 내어버린 미역 줄기에

나만의 조리법으로 갖은 양념을 한다

 

단지 좋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나를 마음대로 요리한다

 

 

 

 

 

허공에 길을 내다  

 

 

         

모든 애인은 말할 수 없는 애인*입니다

애인이 생기자,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합니다

내게 비로소 하나의 세계가 생겨난 거죠

모든 애인은 비밀스러운 애인입니다

모든 애인은 바다보다 멀리 있는 애인입니다

나는 심장에 새 방을 하나 더 가진 듯 합니다

지상에는 없는 방,

모든 애인은 세상 너머에 있습니다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그 자리,

자지러질 듯 황홀한 그 자리,

나는 비로소 허공에 길을 냅니다

비눗방울처럼 아련히 떠있는 방,

픙선 껌처럼 커졌다 갑자기 훅 주저앉기도 하는 방,

 

모든 애인은 우주 너머에 대롱대롱 매달린

고개를 돌리면 마주치는

아슴푸레한 창, 그 너머에 있습니다

 

모든 애인은 세상의,

데일 듯 뜨거운 심방에 있습니다

 

 

* 김이듬「말할 수 없는 애인」인용

 

 

 

  

 

부끄러운 일

 

 

                     

새벽에 일어나서 소피를 봅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하는 일이

그 볼 일 뿐이라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배가 뒤집어질 걱정도 아니하고

정규직 신분증 걱정도 아니하고

무엇보다 이생망, 이생망* 읊조리는 파랑새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소피만 보고 다시 잠 들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어느 비 내리는 토요일

수하물을 배달하다

다세대주택 계단에서 미끄러져

바다에 빠져 죽은 집배원

그의 죽음은

얼마나 개죽음입니까?

할 일이 그의 명복을 비는 일 뿐이라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이부자리에 누워 오 분 안에 잠들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대의 일터는 얼마나 차며

내 잠자리는 얼마나 따뜻합니까?

   

* 이번 생은 망했다는 뜻의 2030세대의 신조어

 

 

 

 

어느 좋은 날

- p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햇살은 따뜻하고

 

커피를 내리는 아침

무엇보다,

이제 겨우 새해 둘째 날이야

라디오의 볼륨을 높여,

무엇보다,

찬거리와 과일이 배달되었어

오후 한 시에서 세 시까지는 나를 잊을 거야

물미역과 오이를 무치고

대파 장조림을 만들고

꽃게탕을 끓일 거야

그 시간만큼은

나에게 돌려줄 거야

무엇보다,

겨우 정신을 차렸어

p의 말대로 나는 식물이 아니야

딱딱한 꽃게 다리를 씹으며

다리 힘을 올릴 거야

사랑도 할 수 있겠지

병원에도 갈 수 있을 거야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볶고 데쳐낼 거야

어슷 썬 동초에 들기름과 맛간장을 붓고

자작하게 무쳐낼거야

그 때 아무도 모르게 딱딱한 내 머리카락도

두 어줌 섞을 거야

숱 많은 머리카락은 언제나 나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모든 것이었어

불타는 머리카락

완벽해

라디오의 볼륨을 높여,

나는 살아 있고

혼자라서 더 생생히 살아 있고

 

오후 한 시에서 세 시 사이에는

나를 찾지 마세요

나는 주방에서 생강이나 파프리카와 함께 있을 거예요

이제 겨우 정신을 차렸어요

나는 식물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동물도 아니에요

그냥 나는 나일뿐이에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요

따뜻한 햇살과

냉장고 가득한 먹거리

 

무엇보다 새해

둘째 날이고요

 

따뜻한 햇살은

순전히 마음의 것이에요

 

 

 

 

썩 괜찮은 관계

 

 

 

우리는 항상 초면이다

처음 만난 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는 너를 모른다

네가 나를 모르듯이  

그러니

우리는

피장파장인 셈  

내가 너에게 화를 낼 때

네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듯

나 또한 네가 나를 비난할 때

너에게 어리둥절할 뿐이다  

설령 우리가 태고 적

아담과 이브로 만났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항상 초면이다  

내가 너에게 화를 내는 것은

실은 나에게 화가 났기 때문,  

네가 나를 비난할 때

잘 생각해보라

실은 너는 나 아닌 너를 비난하며

속으로 울고 있는 것이다  

오십년을 넘게 만난 가족들이

문득, 오늘 처음 만난 듯 낯설게

느껴져 본 적은 없는가  

살을 섞고 서로의 타액을 교환하며

 

수십 년을 한 침대에서 잔 부부  

그들도 초면이긴 마찬가지,  

누가 누구를 조롱할 것이며

누가 누구를 판단할 것인가  

매순간 처음 만나는 우리  

, 말레나

아름다움이 죄가 된 말레나,  

모니카 벨루치*  

우리는 우리에게

또 다른 말레나일 뿐,  

부디 용서하기를,

우리는 어제도 오늘도

처음 만났다

 

* 영화“말레나” 의 여주인공

 

 

 

 

식육견

 

 

 

눈이 다가왔다

 

한없이 큰 눈이었다

 

눈과 마주치자 나는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깊은 눈이었다

 

우리의 눈은 왜 그렁그렁한가

 

그는 흘러내리는 콧물을 닦지 않았다

 

울 수도 없는 생도 있다

 

우리의 눈은 왜 그렁그렁한가

 

줄기차게 묻는 눈이 있다

 

 
 
 
 
 

 

. 『모던포엠』등단, 시집으로『즐거운 바깥』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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