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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空 외9편 / 강성은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3/06 [17:03] | 조회수 : 272

 

  © 시인뉴스 포엠



날아가는

  

강성은

 

 

 

 

공을 힘껏 던지자

단단히 닫혔던 공기의 포문이 열린다

 

포물선을 그리며

바람의 속력을 읽어가는

공의 발성법이 곧, 공기의 몸짓이다

 

한순간 공은 빈 채로 무중력에 사로잡혀

허공에 둥둥 떠서 견고한 밧줄처럼 팽팽한 긴장을

움켜쥐었다가, 긴 미로 끝 출구를 찾아

숨가쁘게 날아간다

 

속 빈 것들은 제 안의 울림만으로도

가득한 함성을 쏟아내어 우뢰를 만들고

너와 나 사이를 관통하며 비상을 꿈꾸기에

 

공의 동공은 까맣게 멀다 공기의 핵을 품은  

, 그 나선의 형질을 따라

세상 상처들을 꼬옥 보듬고

돌고돌아, 여기

지구의 중심을 곧추잡고 있다

 

 

 

 

 

 

 

오래된 지척

 

  강성은

 

 

 

오래된 철길은 지척에서도 아득하다

역 방향으로 사라지는 것은 희미하게 길어진 그림자

흘러간 머-,

 

구름처럼

안부조차 잠잠하다

푸른 이끼를 키우며 붉은 깃발을 흔들던 그 언덕엔

작약이 저홀로 피었다 지고

어제는 발자욱도 없이 안개비가 다녀갔다

 

몸이

조금씩

깊어진 시간을 건너간다

여름의 끝을 첫발처럼 내디디면

비스듬히 내려앉은 지붕 아래로 얼비치는 저녁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내 어깨에 얹은

당신의 손을 빌려

한 귀가 떨어진 악기를 켠다

 

쪽잠에서 깨어나 더듬는 꿈이

발설키도 전, 낡은 벽지처럼 진부해질 때

 

멀고 가까운 곳

마른 담쟁이로 덮여 쇠락하는

떠도는 족적들을 따라간다

 

오래된 길은 몸에서 얼마나 먼가 -

 
 
 

사라진 귀

 

 강성은

 

 

 

 

잎그늘이 너무 짙다 했더니, 어느 새

귀를 잃어버렸다 깜깜하게

서 있는 동안 가을이 스쳐갔다

 

감금된 시간은 소리를 쟁여두지 못했다

바람을 밀치면

문의 안쪽은 변방이 되었고

 

여린 손짓으로 다시금 바람을 불러 모았지만

나무는 가지를 부여잡고 가늘게

떨고 있는

귀를 하나씩 떼어내버렸다

 

초록에서 주황까지

색에 색을 덧칠하던 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11월의 새들이 날아와 남은 색을 쪼는 동안

햇살이 등 뒤에서 무더기로 무너져 내렸다

소리 없이도 스스로 가위눌린 색들이라니_

 

없는 귓바퀴에서 바람이 구르는 소리가

환청처럼, 웅웅거렸다

거기 텅빈 잎자국이 묻어났다

 

 

 

 

 

구름 난간에서

 

강성은

 

 

 

누가 흔들어댔던가_

잠깐 사이 배경이 뒤집혔다, 순식간에

 

햇빛의 어금니 몇 개가 부러졌고

꽃들은 여백도 없이 사라졌다

그늘로 몸 바꾼 지평, 그리고

구름의 지문이 새겨진 허공

 

하늘은 스스로 내려 조용히 옷 벗고 바닷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

 

뒷모습이 보여준 언어는 침묵이었으나

장면을 읽어내는 바람의 결귀

유추하건데

아귀가 맞지 않는 생이란

평지와 구릉이 닿는 모서리, 사거리의 변

빛의 선, 어둠의 벽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이 순간

지구를 누군가 반으로 접었는지

한 귀가 잘린 창백한 낮달이 납작 엎드려 있다

남반구에 걸쳐진 가운은 다소 헐렁하다

 

풍랑을 따라 흔들리다 보면

수평선을 넘 듯

과 음을 몰아오는 바람의 현, 그 음역으로

시간은 깊어간다

 

 

 

눈동자의 방

 

강성은

 

 

검은 눈동자의 방을 찾아든다 눈 감고도

익숙한 길이다

일찌감치 햇살을 살라먹고 입술을 훔친

달은 애꾸눈이다

 

차양 아래 눈꺼풀을 들추면 67.5° 만큼의 조리개가 열려

찰칵, 하고 눈인사를 건넨다

고여 있던 침묵이 발딱 일어났다 제자리를 찾는 동안

나는 커튼을 젖힌다  

바깥 풍경이 오롯이 굴절되어 들어온다  

 

맹점은 창 밖 흰 눈 속의 겨울눈이다

 

안개 속 미로를 달리는 차량들의 급브레이크에 놀란

별들의 눈동자가 휘둥그렇다  

망막에 부딪힐 때마다

기억의 통로는 자꾸 좁아져서

소란스레 부풀던 한낮의 쟁점들이 제 무게를 잃고

부표처럼 떠다니다 소멸한다

하얗게 시력을 잃어가는 풍경, 풍경들……    

 

아랫목은 오목눈이다

어둠을 덧입고 내가 꿈속으로 다리를 뻗는다

꿈의 덫은 완강하다 발버둥치는 동안

또 다른 눈동자가 자꾸 생겨나서

 

이 밤은 낱낱이 해부된다

 

동이 트기 전,

동공이 먼저 열리고

눈썹 끝에 슬어놓은 벌레의 알들은

내 눈 속의 외계外界의 상이다

 
 
 

, 들이다

 

강성은

 

 

 

마라토너가 아스팔트 위를 달린다

그의 손엔

길의 고삐가 잡혀 있다

 

그는 앞에서 가볍게 달리고

길은 가죽끈에 목이 매인 채 뒤에서 끌리듯 간다

그의 발끝이 걷어차는 반동에

길의 복근이 불거지고 힘줄이 도드라진다

길 위에 선명하게 내리찍히는 발자국들, 그 위로

사냥개 짖는 소리가 포개어진다

 

그의 시선은 아득한 지평선에 닿아 있다

길은 납작 엎드린 자세로

그의 손아귀에서 순하게

 

,들여진다

 

그의 속력이 점점 빨라진다  

낯선 원경들이 휙휙, 꽃을 피워 물고 그에게로

달려든다

모로 누워 있던 좌우 산들이 먼지를 털며

푸른 관절을 일으키고

돌돌 말려 또아리를 틀고 있던 앞선 길도

화들짝 몸을 풀어 꼬리를 감춘다

 

그의 가속도에 손의 고삐가 바짝 당겨진다

길이 팽팽해진다  

가위눌린 길의 동공이 커진다

 

길이 뒷걸음치며 자꾸 꼬리를 잘라낸다

 
 
 
 

잎의 입

 

강성은

 

 

 

잎을 입이라고 헛발음을 할 때마다

바람이 쏴-, 하고 나뭇가지를 흔든다

 

나뭇잎들이 일제히 파열음을 내며 술렁인다 가만히 보니

잎들은 입을 달고

날카로운 이빨과 붉은 촉수를 지녔다

 

바람이 없는 날에도

가지는 저홀로  흔들리다 몸 휘어 늘어지는데

당겨 속잎 물든 단풍 하나

누군가 내뱉은 말의 각진 모서리를 핥고 있다

까슬한 결,

마음 한 끝이 벌레 먹은 잎사귀가 된다

 

회색 두건을 쓰고 쪽얼굴을 내민 구름 떼들이

이리저리 몰리다 흩어진다

푸른 잎술, 붉은 문장 속에서

마른 어휘들이 각질처럼 푸석푸석 일어난다

 

한차례 쏴-, 폭우 쏟아진 후 나무는

우화를 예감한다

비로소

 

잎의 귀가 트이는가

 

입술 없는 입술을 달고

잎에서 입으로 가지 친 무성한 말들이

나무의 몸에서 떨어져 잎잎이 흩어져 간다

잎맥의 스러진 주름도

짙은 엽록葉綠의 기억도 모두 내려놓는다

 
 
 
 

물고기 곁눈 속에 든

 

 강성은

 

 

 

 

이 지상에 방생된 지 벌써

수십 년이 흘러간다

 

수족관의 물고기들은 밤새도록 뜬눈으로

나의 사생활을 염탐한다 물고기들은

저희들 눈 속에 아예 나를

감금해버린 것이다 나는 물고기들이

 

스스로 기르는 지느러미 밑에 숨긴

기억의 미세포 혹은 긴 섬모로

찰칵찰칵 몰카를 찍어대는

그 수작을 최근에야 눈치챘다 집요하게

오물거리며 시간을 토해내는

그들의 아가미가

요즘 들어 자꾸 무한분열하기 때문이다

 

물고기의 눈알들이

내 몸의 과녁에 화살로 꽂혔는지

둥둥 수면 위로 떠오르는 건

물고기의 부레를 이식 받은

내 몸이다, 이제

 

날개를 달지 않아도

이승의 저 너머 어디까지든

날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비의悲意

 

 강성은 

 

 

 

이렇게 우수수 지고 마는 날엔

창 넓은 꽃잎 그늘을 받쳐들고 걷습니다

 

길에서 만나는 홀씨 하나는

어릴 적 여름이 놓친 봄입니다

 

잘 있으라, 잘 가시라

부유하는 말들에 울컥, 목이 메입니다

 

지난 날의 얼룩이 투명그림자를 지웁니다

어찌 할까요?

의 뒷면에 새기는 비의 음소를요

나는,

 

바람에 꺾이는 빗소리를

낙화하는 꽃잎의 족적 위에다 받습니다

 

그리움과 고독은 근친이어서

환절기의 잔기침처럼 따라 옵니다

 

서풍의 진술은 오늘따라 비음鼻音입니다

잔뿌리를 뻗어가는 꽃의 오랜 내력은 진초록인데

향기는 어디다 두고_

 

귀를 열어

무더기로 무너지는 꽃들의 오후 세 시 방향에서

그니의 풍문을 듣습니다

 

 

 

 

이슬의 무게

 

 강성은

 

 

 

 

이슬은 이별의 무게를 견디느라 투명해진다

 

이 별에서의 이별

낯선 대면에도 익숙한 웃음으로 가장하는

그래서 이슬과 이별은 이음동의어異音同意語

 

풀잎에 안간힘으로 매달렸던 미혹의 손끝

번개 혹은 낙뢰의 공포를 말아쥐고

 

제 몸 보다 더 큰 신새벽을 건너는 중이다

 

이슬이 머물 자리에, 누가

하룻밤의 작은 별궁 한 채를 축조해 두었나

 

햇빛의 반사각은 시간을 끌어당겨

막 잠에서 깨어난 꽈리들을 부풀린다

 

또르르

낙하의 속도에 얹힌 유성음들이

잎맥을 타고 구른다

 

비로소 몸이 가벼워지고 있다

 

 

 

 

 

- < 약력 > - 강성은

 

 

본명 :  강초우

1965년 대구 출생

1986년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3<미네르바> 시부문 신인상 당선

2005<월간문학> 아동문학(동시)부문 신인상 당선

2016[세계문학상] 아동문학(동시)부문 대상 수상    

저서 : 「피어나다」, 「한국을 빛낸 문인」, 「올해의 시인 100선」, 「섬과 바다」,

     「까치발로 오는 눈」, 「바람과 햇빛과도 손을 잡고」 등 공저 다수

현재  강북문화대학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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