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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의 저쪽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3/09 [11:53] | 조회수 : 45

 

  © 시인뉴스 포엠



 

1. 안개의 저쪽

 

 

 

안개가 잠 없는 말을 먹어버린다

입이 먼저 사라지고 귀마저 닫힌다

팔다리까지 뜯어 먹는다

시간의 가로등에 철조망까지 쳐놓고

도시를 탐색하고 있다

가끔 철조망 사이로 탐조등이 독수리 눈으로 훑고 간다

말 잃고 귀 잃은 눈빛들이

주의 깊게 서행하는 중이다

 

안개는 점령군이다 권력의 추다

점령군에게 잡아먹히는 몸뚱어리들

지척을 분간하기도 힘든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저 흐린 사물 뒤편에 숨어있는 눈빛들

불쑥 주먹을 내미는 나무들

발톱을 세우고 물어뜯듯 달려들던

밤샘 노숙에 지친 익명의 그림자들이

안개의 권력을 신문지처럼 덮고 있다

 

 

안개는 세계의 중심을 향해 전진하지만

그 중심을 흐리고 있다는 것을

안개 자신도 모를 것이다

안개의 저쪽이 문득 그립다

 

 

 

 

 

 2.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고 있다

 

 

 

바늘구멍으로 태초의 빛이 보인다

저 빛 속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드나들었을까

어디에도 있으나 어디에도 없는

허수아비가 시간을 맥박에게 자꾸 권한다

너무 오래된 시간은 질겨져서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게 되었다

혀에 착 달라붙어 호흡곤란을 일으킨다

남은 시간은 폐기처분이 될 것이다

햇살이 남은 시간을 긴 손가락으로 훑어내고 있는 벽면에는

버려질까 겁에 질린 공기들이 기어오르다 떨어지다가

쥐어뜯은 살점들과 오줌 지린 흔적들로 가득하다

한줄기 믿음이 눈동자 뒤편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종일 씹혔던 시간이 빳빳하게 펴지며 호흡을 덮어버린다

목구멍에는 독한 가래가 끓고 있을 것이다

저녁이 소리 없이 어둠에게 묻는다

우리가 태양을 외면한 적 있었어?

낙타는 아직도 바늘구멍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어둠 속에서 말씀을 잃고 미궁을 헤매던 마지막 들숨이

비로소 빛의 죽음에 걸어놓은 물음표

 

 

 

 

 

3. 번개팅

 

 

 

번개가 걸터앉는 창턱에 비도 들어와 비껴 앉는 저녁

 

  오늘번개어때요 마리부친상금요일발인 연희돌잔치초록뷔페 경아와혁이가결혼합니다축하해주세요*^^* 725정오국민초등동창회 엄마지금도착했어요내일은몰타로들어가 언니비피해없수? 띵동 까똑 띵동 까똑 띵동

 

탄생의 문자와 죽음의 문자가 악수합니다

언니 우리 딸이 방금 아들 낳았다구요ㅎㅎ

산부인과 회복실과 장례식장 특실이 교신합니다

졸고 있는 상주의 꿈속으로 몰아치는 비바람이

웨딩드레스를 마구 짓밟고요

리무진에 씌웠던 화관들을 후드득 뜯어내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정중하게 문을 여닫습니다

입관이 곧 시작되오니 상주는 내려오시랍니다

조문객 떠난 장례식장 복도가 텅 빈 동굴 같습니다

그 동굴 안으로 천둥이 굴러옵니다

푸른 섬광에 드러난 문자들이 서로 낯설어서

까똑까똑 어색하게 인사 나누다가

 

까또그르르르…자지러집니다

번개가 마구 꽂히는 기지국 북한산 관악산 남산 도봉산

피뢰침들도 부르르 몸을 떨지요

 

전화기는 젖어도 이미 떠난 문자는 젖지 않는다

무제한 요금제 속 터널에서 데이터의 꼬리가 진저리를 친다

 

나도 창턱에 귀신처럼 걸터앉는다

오늘 번개 어때요?

 

 

 

 

  

4. 케냐, 문 닫을 시간 

 

 

 

카페 케냐

검은 대륙의 눈물을 후후 불며 마신다

임팔라도 원숭이도 얼룩말도 코뿔소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창밖으로

흰 광목천에 싸인 관을 가득 싣고 용달차가 지나간다

저승을 납품하러 가나 저 속에는 어느 짐승이 들어가나

창밖은 자카란다* 장미 향이 케냐의 혓바닥처럼 피어오르고

 

바퀴 구를 때마다 꽃잎들 함께 구르며 깊게 절한다

파르르 떨기도 한다

보랏빛 형광으로 반짝이다  

꿈결인 듯 안개 속인 듯 점점 묽어지다 사라지는 길

용달차 푸르스름한 전조등이

꽉 막힌 도로에서 멈칫멈칫 두리번거린다

노잣돈이라도 받으려는 듯

 

밀림은 어두워가고

멀리서 하이에나 우는 소리 들려온다

 

 

맹수들이 살생부 정리하는 소리 요란하다

성에 낀 유리창 긁어대듯 철제의자 잡아당기고 탁자 끌어당기고

흐린 조명 스위치도 하나둘 내려진다

눈꺼풀은 아직 천근만근

용달차가, 보랏빛 길이, 온 세상이, 보이지 않는,

이곳은 카페 케냐

킬리만자로 봉우리 너머로 무더기무더기 빨려가는 별똥별

산등성이 오랜 눈이 녹아내리고 광목천도 벗겨지고

코뿔소 뿔 뽑힌 구멍 같은 시커먼 창 닫히는 소리

 

 

* 자카란다/아프리카의 벚꽃. 케냐의 국화이기도 하다

 

 

 

 

 

 

5. 안개출몰지역

 

 

 

대낮보다 더 환히 흔들리는 벚꽃에 ‘안’자가 가려져

보이다 말다 한다

이 지독한 안개를 고무 지우개로 지우고 싶다

지워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자동차 매캐한 매연이 상상력의 질감을 울퉁불퉁하게 치대놓을 때

여기저기 개들끼리 컹컹대는

개다발지역 개잦은지역

안개 속에서 빼꼼히 벚꽃 구경하는 수많은 개지역들

밤에도 빛나는 저 푸르른 야생의 눈빛들

얼핏얼핏 드러나는 붉은 잇몸 사이 번쩍이는 날카로운 덧니들

그 덧니들에 찍히고 찢어질 삶과 죽음 사이

너는 4기통 나는 6기통의 본능을 갖고서

낮고 느리게 짖어대는 끝날 줄 모르는 욕설들

점점 지축이 흔들린다

들개 한 마리

로켓포 추진기 발사체가 된 엉덩이 뒤로

바짝 뒤쫓던 들개끼리 엎치락뒤치락

지우려고 용쓰다 지우지 못해 더 지저분해진 사고 다발지대의

 

백내장 걸린 감시카메라 속에 ‘사자의 서’가 누워있다

개다발지역 너머 졸음휴게소 너머

십자가를 짊어진 견인차 줄줄이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6. 급행은 신반포 건너뛴다

 

 

 

“반값에서 또 반값 단돈 오천 원이요”가 더듬더듬

문풍지처럼 떤다

미처 내리지 못한 신반포, 급행과 일반행 사이

멀어지는 역

팔리지 않은 방수 비옷이 수레 안으로 슬그머니

주저앉았다 일어난다

내리는 승객 귓등마다 구구절절

보이지 않는 에어커튼 달았나 겉도는 구구절절

자 미간에 평생의 빗물이 흐르는 오천 원짜리 남자가

빗방울 털어내듯 머리를 세게 흔들며 내린다

급행도 정차하는 신논현역

수레가 껌벅껌벅 기어나간다

우산 몇 개가 흘려놓은 물기에 빗금을 그어가다가

젖은 인쇄물 같은 그 빗금

흐려지다가

먹이를 찾는 야생의 번득임을 감춘 작은 손수레

다시 일반행으로 스며들고 있다

거뭇거뭇 땟국물 흘려놓은 발자국들 밟으며

 

 

 

  

 

 

7. 세상 모든 시리우스에게

 

 

 

불행만으로도 배부르던 그 골목

어둡고 축축한 골목이 술 취한 고개를 꺾을 때

몸 가누지 못하는 뒤통수가

휘어진 길을 벽 짚어가던 사람

파멸의 단초를 없애려고 도망치던 지하방엔

울음의 척추를 꺼낼 열쇠가 있었으나

노래방 간판이 바뀌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세상의 모든 길이 변하듯

자물통이 바뀌었어도

기억 속 그곳에는 검은 서리가 앉아있다

열쇠는 내 손에서 흰 비늘을 빛내며

떨고 있는데

별똥별 하나까지 모두 마셔버리고 취한 겨울이

지상에 내려와 비틀거린다

점점 노곤해지는 밤의 흰자위

밤의 속눈썹이 어둠의 눈매를 깊게 한다

회칼 치켜든 바람은 겨울의 전류에

 

푸른 입김을 뿜어대고

시퍼렇게 창자 속부터 얼어가지만

얼음 파편을 튕겨내면서 겨울은 굴러간다

차창 가득한 성에꽃들 얼음 심장으로 고독을 견딜 때

차창에 가만히 입김을 불어주다가

성에꽃 꽃밭으로 봄을 불러보면

달리는 바퀴 사이로 아지랑이 감겨오고

내 꿈이 핏빛 입술 들이대며

밤의 빙판을 활활 불태울 때

멀리 뜨거운 시리우스도 꿈속에 들어와 안길 것이다

 

-창작21. 2018 여름호 시인연구 편-

 

 

 

 

 

 

** 약력 : 2015년 시와문화 신인상.

창작21 작가회. 시와문화 작가회.

우리시. 한국작가회의 회원. 현대시학회.

 

 

 

 

시인론

 

안개의 저쪽이 궁금하다

 -현대라는 이름의 스모그-

 

-김은옥 시인연구

 

조길성│시인

 

 

안개가 잠 없는 말을 먹어버린다

입이 먼저 사라지고 귀마저 닫힌다

팔다리까지 뜯어 먹는다

시간의 가로등에 철조망까지 쳐놓고

도시를 탐색하고 있다

가끔 철조망 사이로 탐조등이 독수리 눈으로 훑고 간다

말 잃고 귀 잃은 눈빛들이

주의 깊게 서행하는 중이다

 

안개는 점령군이다 권력의 추다

점령군에게 잡아먹히는 몸뚱어리들

지척을 분간하기도 힘든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저 흐린 사물 뒤편에 숨어있는 눈빛들

불쑥 주먹을 내미는 나무들

발톱을 세우고 물어뜯듯 달려들던

밤샘 노숙에 지친 익명의 그림자들이

안개의 권력을 신문지처럼 덮고 있다

 

안개는 세계의 중심을 향해 전진하지만

그 중심을 흐리고 있다는 것을

안개 자신도 모를 것이다

안개의 저쪽이 문득 그립다

「안개의 저쪽」 전문

 

  안개는 우리를 사물로부터 분리하지는 못하지만, 눈을 흐리게 한다. 흐리게 해서 풍경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질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이 시에서 안개는 우리 눈을 흐리게 하고 또 사물로부터 멀어지게 해서 우리를 어떤 가치나 판단으로부터도 흐리게 하고 또 그 가치나 판단으로부터 멀리 떼어 놓기도 한다. 여기에 아침저녁으로 밥 짓는 연기라도 깔리게 되면 그 마을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던 마을을 떠나 어떤 다른 세계의 입구로 안내하는 느낌이 들게도 한다. 이제 그런 마을은 우리 곁에서 쉽게 볼 수 없다. 안개는 도시화 되고 스모그를 동반한 미세먼지와 더불어 불안한 기운으로 다가오곤 한다. 그러나 한편 안개 자욱한 마을이나 들판을 바라보자면 수묵화를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아침 해뜨기 전이나 저녁 해지기 전, 그리고 밤안개는 한 폭 그림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온갖 색채에 길든 눈을 쉬게 한다. 현대는 기계화와 도시화를 피해갈 수 없다. 안개인지 황사인지 미세먼지인지 아니면 스모그인지 불분명한 현상도 수묵화 기법으로 그릴 수 있을 것이다.

 

  현대중국 수묵화를 대표하는 자유푸賈又福교수는 베이징 고궁박물원에서 처음 공현 (1618~1689)의 작품을 보았을 때 학생 한 명이 작품을 보고 놀라서 “어쩌면 이렇게 현대적인 작품 같습니까?”라고 하자 “고금을 관통할 수 있는 거시적인 시점으로 보면 현대라는 시간적 개념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굳이 고대와 현대를 가르는 시간적 잣대로 볼 필요는 없다.”고 대답한다. 덧붙여 “예술 창조의 세계란 고대와 현대가 하나가 되어 시공을 초월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며 “‘옛’ 것에 대한 지혜로운 자의 이론은 이미 그 속에 있는 쓸데없고 불필요한 부분은 제거한 후에 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유푸교수와 수묵화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안개가 가진 속성을 말하기 위해서다. 안개는 모든 것을 흐리게 하고 사물로부터 멀어지게도 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우리가 명징하게 안다고 생각했던 사물에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한다. 그 새로운 이미지는 곧 그대로 날 것이 되어 우리 눈우물 속에서 은빛 지느러미를 푸드덕거리며 살아날 수 있다. 안개는 수묵화는 우리가 실재라고 믿는 현상을 일그러뜨려서 새로운 실재,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왔던 것이다. 그것도 몇 천 년을 우리 곁에 독특한 미학으로 존재해 왔던 것이다.

  수묵화가 먹물의 농담과 여백에 기대고 있는 것은 상식이다. 안개 낀 자연도 수묵화의 세계와 닮아있다.

 

  사전에 보면 안개의 첫째 의미는(기본의미) 지표면 가까이에 아주 작은 물방울이 김처럼 부옇게 떠 있는 현상, 둘째로는 어떤 사실이나 상황이 가려 있거나 드러나지 않아서 모호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고, 셋째 의미는 눈에 어리는 눈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정의되어 있다. 물론 물방울로 이루어진 첫 번째 의미의 ‘안개’가 없으면 둘째 셋째 의미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안개는 세계의 중심을 향해 전진하지만/그 중심을 흐리고 있다는 것을/안개 자신도 모를 것이다/안개의 저쪽이 문득 그립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안개가 세계의 중심을 향해 전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중심을 흐리고 있다’며 세계의 중심을 향해 전진하는 행위가 오히려 중심을 흐린다고 이야기한다. 얼핏 이 시의 진술 과정을 떼어놓고 보자면 마지막 연은 현대의 수묵화를 위해 수묵화의 큰 가능성과 성취를 향한 세계로 전진하지만, 오히려 그 중심을 흐리고 있다며 한발 뒤로 빠지는 자세를 취한다. 이 엉거주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안개는 점령군이다 권력의 추다/점령군에게 잡아먹히는 몸뚱어리들”에서 ‘점령군’이 안개이며 권력의 추인데 그 안개가 어떤 몸뚱어리들을 잡아먹는다. 어떻게 잡아먹는지 시의 도입부에 표현되어 있다.

  “안개가 잠 없는 말을 먹어버린다/입이 먼저 사라지고 귀마저 닫힌다/팔다리까지 뜯어 먹는다” 이 몸들은 어떤 몸들이어서 ‘점령군’에게 뜯어 먹히고 있을까 안개가 사물을 흐리듯 시를 읽어나갈수록 모호하고 몽롱해진다.

 

 

  여기서 자유푸교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황빈홍은 ‘그림이란 정확하고 또렷하게 그리기가 어렵고 모호하게 그리기는 더욱 어려우나, 반드시 분명하거나 모호해야 한다.’라고 말 한 바 있다. 공현의 그림을 자세히 보면 그가 말한 혼륜渾淪의 이치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여기서 혼륜渾淪이란 흐림에 잠기다, 빠져들다의 뜻으로 읽을 수 있다) ‘혼륜’과 ‘몽롱함’의 정도 차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처음 공현의 작품을 대하면 몽롱함과 혼륜을 구분할 수 없지만, 좀 더 세심하게 관찰하면 흐릿한 가운데에도 참신함이 돋보이면서 혼륜의 정신적 의미를 느낄 수 있다. 그의 작품에 나타난 필은 하나하나 힘과 기백이 넘치며 혼연渾然의 세계를 보여준다. 만일 여기서 과하거나 부족한 필을 사용했다면 흐릿한 몽롱함으로 혼륜을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유푸교수의 글에서 ‘흐릿한 몽롱함’과 ‘혼륜’은 차이가 있는 개념으로 읽힌다. 흐릿한 몽롱함이 스스로 깊어지고 짙어져서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저쪽’이 ’혼륜‘의 세계가 아닐까, 여기서 안개를 흐릿한 몽롱함으로 읽으면서 안개의 ‘저쪽’을 혼륜으로 읽어 볼 수는 없을까, 그럴 수 있다면 시 ‘안개의 저쪽’을 읽기가 수월해질 것이다.

 “저 흐린 사물 뒤편에 숨어있는 눈빛들”은 이미 흐릿한 몽롱함으로 일그러진 얼굴에서 새어 나오는 눈빛들일 것이며, “불쑥 주먹을 내미는 나무들”이거나 “발톱을 세우고 물어뜯듯 달려들던/안개의 권력을 신문지처럼 덮고 있는” “밤샘 노숙에 지친 익명의 그림자들” 또한 흐릿한 몽롱함으로 일그러진 사물들의 얼굴일 것이다. 시 ‘안개의 저쪽’에서 시인은 오로지 궁금할 뿐 너머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저쪽’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흐릿한 몽롱함으로 일그러진 사물의 얼굴은 시인의 시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반값에서 또 반값 단돈 오천 원이요”가 더듬더듬

문풍지처럼 떤다

미처 내리지 못한 신반포, 급행과 일반행 사이

멀어지는 역

팔리지 않은 방수 비옷이 수레 안으로 슬그머니

주저앉았다 일어난다

내리는 승객 귓등마다 구구절절

보이지 않는 에어커튼 달았나 겉도는 구구절절

자 미간에 평생의 빗물이 흐르는 오천 원짜리 남자가

빗방울 털어내듯 머리를 세게 흔들며 내린다

급행도 정차하는 신논현역

수레가 껌벅껌벅 기어나간다

우산 몇 개가 흘려놓은 물기에 빗금을 그어가다가

젖은 인쇄물 같은 그 빗금

흐려지다가

 

먹이를 찾는 야생의 번득임을 감춘 작은 손수레

다시 일반행으로 스며들고 있다

거뭇거뭇 땟국물 흘려놓은 발자국들 밟으며

 「급행은 신반포 건너뛴다」 전문

 

 

  급행은 현대를 대표하는 이미지다. 뒤돌아보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표정이다. 안개의 권력이 이중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미지다. 안개는 모든 것을 일그러뜨리지만 그 표정은 급행을 주저하게 만드는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엉거주춤 이다.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안개를 걷어내야 하지만 이 안개는 발목을 잡고 더는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우산 몇 개가 흘려놓은 물기에 빗금을 그어가다가

  젖은 인쇄물 같은 그 빗금

  흐려지다가

  먹이를 찾는 야생의 번득임을 감춘 작은 손수레

 

  시인을 주저하게 만드는 풍경은 ‘야생의 번득임을 감추는 작은 손수레’에 머문다. 그런데 ‘젖은 인쇄물’은 시인의 시에 줄곧 등장하는 말에 대한 생각의 연장선에서 읽힌다. “팔리지 않은 방수 비옷이 수레 안으로 슬그머니/ 주저앉았다 일어난다” 오천 원짜리 남자가 팔리지 않는 비옷으로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난다. 먹이를 찾는 야생의 번득임을 감춘 밀림에서 밀림으로 향하는 익명의 남자가 물기를 떨구며 손수레의 빗금을 남기며 어디로 가고 있나.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안개가 걷히고 나면 사내가 남긴 물기는, 손수레의 빗금은? 사전적 의미에서의 세 번째 눈에 어리는 눈물에 시인의 시선이 닿아 있다.

 

 현대의 수묵화는, ‘흐릿한 몽롱함’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시작된다.

 

대낮보다 더 환히 흔들리는 벚꽃에 ‘안’자가 가려져

보이다 말다 한다

이 지독한 안개를 고무 지우개로 지우고 싶다

지워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자동차 매캐한 매연이 상상력의 질감을 울퉁불퉁하게 치대놓을 때

여기저기 개들끼리 컹컹대는

개다발지역 개잦은지역

안개 속에서 빼꼼히 벚꽃 구경하는 수많은 개지역들

밤에도 빛나는 저 푸르른 야생의 눈빛들

얼핏얼핏 드러나는 붉은 잇몸 사이 번쩍이는 날카로운 덧니들

그 덧니들에 찍히고 찢어질 삶과 죽음 사이

너는 4기통 나는 6기통의 본능을 갖고서

낮고 느리게 짖어대는 끝날 줄 모르는 욕설들

점점 지축이 흔들린다

들개 한 마리

 

로켓포 추진기 발사체가 된 엉덩이 뒤로

바짝 뒤쫓던 들개끼리 엎치락뒤치락

지우려고 용쓰다 지우지 못해 더 지저분해진 사고 다발지대의

백내장 걸린 감시카메라 속에 ‘사자의 서’가 누워있다

개다발지역 너머 졸음휴게소 너머

십자가를 짊어진 견인차 줄줄이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안개출몰지역」 전문

 

백내장 걸린 감시카메라 속에 ‘사자의 서’가 누워있다

개다발지역 너머 졸음휴게소 너머

십자가를 짊어진 견인차 줄줄이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현대는 백내장 그 흐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수술이 필요하다. 감시가 필요하다는 집단 무의식을 부추기고 있다. 개다발지역, 개출몰지역 이며 개잦은지역 이다. 이빨을 드러내며 짖어대는 위험한 곳이다. 대낮보다 더 환한 벚꽃 흔들리는, 그 아래 십자가를 짊어진 견인차 줄줄이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냉정한 세상이다.

 

불행만으로도 배부르던 그 골목

어둡고 축축한 골목이 술 취한 고개를 꺾을 때

몸 가누지 못하는 뒤통수가

휘어진 길을 벽 짚어가던 사람

파멸의 단초를 없애려고 도망치던 지하방엔

울음의 척추를 꺼낼 열쇠가 있었으나

노래방 간판이 바뀌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세상의 모든 길이 변하듯

자물통이 바뀌었어도

기억 속 그곳에는 검은 서리가 앉아있다

열쇠는 내 손에서 흰 비늘을 빛내며

떨고 있는데

별똥별 하나까지 모두 마셔버리고 취한 겨울이

지상에 내려와 비틀거린다

점점 노곤해지는 밤의 흰자위

밤의 속눈썹이 어둠의 눈매를 깊게 한다

회칼 치켜든 바람은 겨울의 전류에

푸른 입김을 뿜어대고

시퍼렇게 창자 속부터 얼어가지만

얼음 파편을 튕겨내면서 겨울은 굴러간다

차창 가득한 성에꽃들 얼음 심장으로 고독을 견딜 때

차창에 가만히 입김을 불어주다가

성에꽃 꽃밭으로 봄을 불러보면

 

달리는 바퀴 사이로 아지랑이 감겨오고

내 꿈이 핏빛 입술 들이대며

밤의 빙판을 활활 불태울 때

멀리 뜨거운 시리우스도 꿈속에 들어와 안길 것이다

「세상 모든 시리우스에게」 전문

 

  흐릿한 몽롱함으로 일그러진 사물들의 얼굴은 시인에게 먼저 사람으로 읽힌다. “불행만으로도 배부르던 그 골목/어둡고 축축한 골목이 술 취한 고개를 꺾을 때/몸 가누지 못하는 뒤통수가/휘어진 길을 벽 짚어가던 사람”은 최첨단 현대식 건물이나 빌딩 숲에 사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 ‘골목’은 휘어져 있는데 골목도 골목이지만 ‘휘어진’은 ‘굴곡 많은’과 동의어가 아닐까. 그 사람은 “별똥별 하나까지 모두 마셔버리고” “지상에 내려와 비틀거리”는 겨울을 살았으리라. “회칼 치켜든 바람은 겨울의 전류에/푸른 입김을 뿜어대고/시퍼렇게 창자 속부터 얼어가지만”, “차창 가득한 성에꽃들 얼음 심장으로 고독을 견”디며,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살아내야 한다며 “얼음 파편을 튕겨내면서 겨울”을 굴러갔으리라

  ‘개똥으로 굴러도 이승이 낫다’ ‘죽은 정승이 산 개보다 못하다’는 속담도 있듯, 그나마 이 ‘사람’은 검은 서리가 내려앉은 바뀐 자물통을 바라보며 자물통에 맞지 않는 열쇠를 지니고서 포기하지 않고 아직도 ‘휘어진’ 골목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보면 시인의 손에서 흰 비늘을 빛내며 떨고 있는 열쇠는 ‘저쪽’으로 가고 싶은 염원의 열쇠가 아닐까 아니 ‘저쪽’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열쇠가 아닐까 더 나아가 “핏빛 입술 들이대며/밤의 빙판을 활활 불태”우는 데 필요한 꿈꾸는 열쇠가 아닐까.

  그래서 끝내는 이 열쇠를 통해 지독한 안개를 뚫고 ‘흐릿한 몽롱함’ ‘저쪽’인 ‘혼륜渾淪’의 세계를 바라보려는 것 아닐까.  

 

습관처럼 질주하던 말이

오늘도 이십 사 시간 불 밝히는 식당을 기웃거린다

말끼리 한 잔 또 한 잔에

속내를 트림하는 말

위장의 쉰내는 우리들의 말을 서로 반복하게 한다

서로의 냄새에 무척 민감한 어미 다른 말들

뒷발에 걷어차인 소리로 언론사

윤전기 위에서 날뛴다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인 활자들이 울부짖는다

몸부림치다가 고삐를 풀고 뛰쳐나간다

신호등 하나 껌벅이는 시간에도

말들은 수만 마리 새끼를 낳는다

초원의 말들은 살기가 없다

당근을 독점한 유비통신들이 꼭두새벽부터

갓 낳은 새끼들에게 모종의 살기를 불어넣는다

강한 말은 펜 끝에서 나온다

 

가장 더러운 말도 펜 끝에서 나온다

 

새끼들 입에서 거미줄 같은 말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말이 말 타고 달리는 새벽

죽음도 모르고 날뛰는 말들 사이

진정한 말은 펜 끝에서 죽는다

「죽음으로 향하는 말도 있다」 전문

 

  다시 시 「안개의 저쪽」으로 가보자. 안개가 잠 없는 말을 먹어버린다/입이 먼저 사라지고 귀마저 닫힌다/팔다리까지 뜯어 먹는다” 첫 행부터 말이 나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안개가 뜯어 먹는 말은 풀 뜯어 먹는 짐승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여기서 “잠 없는 말”은 어떤 말일까. 실제 들에서 사는 말이나 경주마나 승마용 말들은 깊은 잠에 들지 못한다. 유전자에 각인된 맹수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들에서 말해지는 ‘말’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다. 그렇다면 잠 없는 말은 어떤 ‘말’일까

  시 「죽음으로 향하는 말도 있다」를 보자. 습관처럼 질주하던 말이” “뒷발에 걷어차인 소리로 언론사/윤전기 위에서 날뛴다/이리 채이고 저리 채인 활자들이 울부짖는다/몸부림치다가 고삐를 풀고 뛰쳐나간다” 「안개의 저쪽」에서 “잠 없는 말”은 「죽음으로 향하는 말도 있다」에서 “습관처럼 질주하던 말이” 아니라 “몸부림치다가 고삐를 풀고 뛰쳐나”간 말이다. 그것도 흔한 잡담이 아닌 “윤전기 위에서 날뛰”던 말이다. 그러나 “윤전기 위에서 날뛰”던 말도 “가장 더러운 말도 펜 끝에서 나온다”며 그 말의 “새끼들 입에서 거미줄 같은 말들이/줄줄이 쏟아져 나온다”고 불신하고 있다. 게다가 그 말이 “죽음도 모르고 날뛰는 말”이라 한다.

  다시 한 걸음 더 가보자. “잠 없는 말”을 안개가 왜 뜯어 먹었을까 “잠 없는 말”은 깨어있는 말이다. 그런데 ‘흐릿한 몽롱함’ ‘저쪽’을 들여다보려면 깨어 있는 말을 타고 안개를 뚫으며 가야 하지 않을까. 이쯤에서 우리는 아직 안개의 ‘저쪽’이 아닌 ‘이쪽’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쪽’에 있는 말은 어떤 말이며 ‘저쪽’에 속하거나 ‘저쪽’을 지향하는 말은 어떤 말일까. 위에 인용한 시는 이렇게 끝난다. “죽음도 모르고 날뛰는 말들 사이/진정한 말은 펜 끝에서 죽는다”

  김수영 시인이 누군가의 시를 극찬할 때 “그의 시에서는 죽음의 음악이 흐른다”고 했다. 진정한 말은 죽음의 통과의례를 거친 말이어야 한다는 것을 시인은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흐릿한 몽롱함’을 지나 ‘저쪽’인 ‘혼륜渾淪’의 세계로 나아가려면 세상 모든 말들이 죽어야 한다. 이 죽어야 하는 말들은 하이데거가 이야기한 소문이나 불안이나 세론 등에 물든 현존재의 안이함을 극복해야 하는 말이다.

 

카페 케냐

검은 대륙의 눈물을 후후 불며 마신다

임팔라도 원숭이도 얼룩말도 코뿔소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창밖으로

흰 광목천에 싸인 관을 가득 싣고 용달차가 지나간다

저승을 납품하러 가나 저 속에는 어느 짐승이 들어가나

 

-중략-

밀림은 어두워가고

 

멀리서 하이에나 우는 소리 들려온다

 

- 중략-

코뿔소 뿔 뽑힌 구멍 같은 시커먼 창 닫히는 소리
「케냐, 문 닫을 시간」 부분

  세상은 안개 속에서 “밀림은 어두워 가고/멀리서 하이에나 우는 소리 들려오는” 밤이다. 이 밤은 사람의 밤이며 말들의 밤이며 현대문명의 밤이다. “흰 광목천에 싸인 관을 가득 싣고 용달차가” “저승을 납품하러 가”는 밤이다. 코뿔소 뿔 뽑힌 구멍 같은 시커먼 창 닫히는 소리 들리는 이 밤, 시인은 혹시 ‘안개의 저쪽’ 휴전선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자유푸 교수에게로 가보자

  “한 번은 밤에 한적한 산길을 걷게 되었다. 칠흑같이 캄캄한 밤이었는데, 온 사방이 신비롭기까지 했다. 뭔가를 보려고 하면 뚜렷하지 않아 더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그러는 한편 이상한 위협마저 느껴져 온몸이 오싹해지는가 하면, 묘한 재미와 흥미가 일기까지 했다. 캄캄한 밤은 바로 나에게 미지의 세계였던 것이다. 반대로 환한 대낮의 나무숲과 정자를 또렷이 본다면 무슨 재미가 일겠는가. ‘검은 가운데 검은 것이 가장 묘함으로 들어가는 문이다.’라는 노자의 말은 결코 단순한 검은색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어쩌면 이 말은 어떤 세계의 크나큰 매력을 가리키는 듯하다. 마치 칠흑 같은 캄캄한 밤이 사람으로 하여금 미지의 세계에 대해 탐색하고자 하는 충동을 일으켜 그 묘(: , , )한 뜻을 구하게 만드는 것과도 같다. 예술가란 이렇게 어두운 밤길을 걷고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시인은 어두운 밤을 홀로 걷고 있는 사람이다. 이 세계의 밤을 홀로 걷는다는 건 참으로 외롭고 힘든 길이다. 이 길은 어쩌면 묘와 현이 어우러지는 순간일 수도 있겠다. 그중에서도 천자문에서 이야기하는 ‘검다’를 순 우리말로 ‘가믈다’라고 이해해야 한다. 선인들은 이것을 우주의 빛이라고 말했다. 안개는 우리를 흐리게도 하고 ‘검다’는 것은 우리를 지울 수도 있지만, 흐릿한 몽롱함이 아니라 혼륜渾淪과 맞닿아 있는 저쪽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 ‘가믈다’는 현묘妙玄랄지 혼륜渾淪이랄지 아니면 말로 할 수 없는, 그 저쪽으로 가보고 싶다. 우리가 안개의 ‘저쪽’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흐릿한 몽롱함’을 지나 ‘저쪽’인 ‘혼륜渾淪’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이 바라보고자 하는 「안개의 저쪽」이 더욱 궁금해진다. 

 

 
 

** 조길성 시인 / 창작21 2006년 등단.

                 시집으로 『징검다리 건너』 『나는 보리밭으로 갈 것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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