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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선박사] 노년의 ‘고독’: 고독은 즐기면 행복이 되고, 괴로워하면 불행이 된다.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3/09 [12:22] | 조회수 : 319

 

  © 시인뉴스 포엠

 

 

 

VIII. 노년의 ‘고독’: 고독은 즐기면 행복이 되고, 괴로워하면 불행이 된다.

 

  외로움이란 인간이 때때로 느끼는 감정으로 삶의 일부이다. 산다는 것은 외로움을 이겨내는 것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이런 감정을 이겨내면서 성장한다. 인생이란 사막을 혼자 걷는 낙타와 같은 존재이다. 키에르케고르는 고독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다. 고독은 인생의 한 부분으로 이를 즐길 줄 모르면 죽음 다음으로 두려움을 주는 일종의 질병이 된다. 고독은 즐기면 행복이 되고, 괴로워하면 불행이 된다. 은퇴를 한 노년은 할 일이 없고, 인간관계가 좁아지며, 가족제도가 핵가족제도로 바뀌면서 1인 가구와 독거노인이 급증함에 따라 고독문제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오늘날 영국에서는 고독을 일종의 질병으로 다루기도 한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는 고독을 즐길 줄 아는 ‘고독력’을 키워야 하며, 국가적으로는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1) 노년에 가장 힘든 것이 ‘고독’의 문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함께 살면서 외로움을 잊고 살아간다. 원론적으로 혼자 사는 것보다는 함께 사는 것이 좋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대인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외로움은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인간은 홀로 태어나서 홀로 돌아가는 원자적 존재이므로 생래적으로 ‘원초적 고독’을 느낀다. 정호승 시인은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고독은 연령대에 따라 다르다. 젊었을 때는 비록 경쟁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때로는 외로움을 느낄 수 있지만, 가정·학교·직장이라는 공동체에서 함께 살면서 고독을 거의 못 느끼며 살아간다. 그런데 노년에는 고독이 가장 힘든 문제이다. 브누아트 그루는 늙는다는 것은 ‘고독한 항해’라고 한다. 노년의 시간과 공간은 고독으로 가득 차 있으므로 고독을 극복하지 못하고는 행복을 생각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건강이 나쁘거나 수입원이 사라지면 고독이 앞을 가린다. 일로써 맺어진 인간관계는 은퇴를 하게 되면 끝나기 마련이다. 게다가 대가족제도가 핵가족제도로 바뀌고, 가족마저 이해관계로 갈라서는 세상이 되었으니 외로울 수밖에 없다. 부부가 배우자를 다른 세상으로 보내고 나면 생활이 불편해지고 더욱 외로워진다. 친구들이 떨어져 나가고 저 세상으로 떠나기 시작하면 또한 외로움을 느낀다.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인사도 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이웃사촌이란 없다. 더욱이 은퇴 후에 얻은 자유가 무엇을 해야 할지 선택이 힘들어 고독을 느낄 수도 있다.

  노년이라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우울증의 70%가 사회적 고립에서 온다고 한다. 이와 같은 소외가 노년에는 고독을 일상화시키고,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정신적 질환을 일으킨다. 그래서 노년에는 성격이 내성적인 성향을 띄게 된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무엇인가에 몰입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권태와 무료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간관계가 힘들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나만의 세계’를 건축하고, 그곳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굳이 불필요한 관계는 줄이는 것이 노년의 행복을 위해 필요하다.

  한국리서치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외로움을 거의 항상 느끼는 사람이 7%, 자주 느끼는 사람은 19%, 가끔 느끼는 사람은 51%라고 하니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고 하겠다. 외로움은 인생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리고 자주 외로움을 느낀다. 절대고독이 외로움을 더 부채질을 한다. 영국에는 이러한 고독의 문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외로움 담당 장관’이란 직책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생겼다. 현대사회에서는 사회적 단절로 인한 외로움이 보편화되어 있고,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질병의 근원이 되기도 함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해야할 필요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부산시의회가 지난 5월에 최초로 고독사 ·자살 등의 사회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부산시민 외로움 치유와 행복 증진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였다. 이러한 입법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야 하며, 단지 지방의회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국회가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하는 입법을 해야 할 것이다. 이제 고독의 문제는 단순한 개인적 차원의 정신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복지 차원을 넘어선 심각한 사회문제로써 국가가 적극적으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인간은 홀로 죽음을 맞이하며,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써 함께 살고 있지만, 마음까지도 함께 할 수는 없다. 이러한 외로움은 인간관계를 해치고 더욱 외로워지게 만든다. 군중 속에서 오히려 고독을 느끼지 않는가? 고독은 인생의 그림자와 같은 존재다. “우리는 모두 한데 모여 북적대며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외로워서 죽어가고 있다.(슈바이쳐) 외로움은 다른‘나’로서 함께 살아가야 할 숙명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인생이란 외로움과 싸워가는 과정으로 늙는다는 것은 고독을 받아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노년에 고독을 극복하지 못하면 발병률이 높아지고 말년이 불행해진다.

 

(2) ‘절대고독’이 노년을 불행하게 만든다.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서면 부딪히는 공통된 문제가 ‘절대고독’이다. 인생의 끝은 죽음이다. 노년에는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고독을 느낀다. 노년이 되면 누구나 크고 작은 질병을 앓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죽음의 문제에 부딪히고 절대고독에 시달린다. 키르케고르는 이를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불렀다. 언젠가는 내 인생도 죽음을 맞이하고 끝날 것이라는 생각에 무한한 고독을 느낀다. 그러므로 노년에는 죽음의 문제를 일찍이 해결함으로써 건전한 삶을 누리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절대고독에 시달리게 되면 여생이 어려워진다. 우울증에 걸리는 등 질병이 되기도 한다. 생로병사는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과정이므로 순리적으로 죽음을 받아드리는 것이 이를 극복하는 최종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이러한 절대고독을 극복하는 것이 노년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고, 노년의 행복의 기초이다.

  핵가족으로 가족형태가 변하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풍조 때문에 만년에는 노인들은 더 고독감을 느낀다. 게다가 부부 중 한 사람을 사별하게 되면 생활 자체가 어려워지고 외로움은 더욱 심해진다. 친구들과 사별을 해도 외로움은 자란다.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없게 되면 고독을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 결과 우울증이 생기면 자살까지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자살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러므로 노년을 잘 보내기 위해서는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건강유지법을 터득하고,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다양한 취미활동을 해야 한다. 일단 우울증이 오면 본인의 마음만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므로 주위의 관심과 약물치료가 필수적이다. 종교에 귀의하게 되면 죽음의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어 안 믿는 사람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      

 

(3) 노년에도 고독은 즐기면‘행복’이 되고, 괴로워하면 ‘불행’이  된다.

 

 

  고독은 신의 축복도 저주도 아니다. 고독은 즐기면 행복이 되고, 괴로워하면 불행이 된다. 문제는 고독 그 자체가 아니라 고독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이다. 노년에는 혼자인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즐겨야 한다. 인생이란 어차피 홀로 걷는 나그네 아닌가? 혼자가 된 자유를 잘 누려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그 자체가 행복이다. 내면의 성숙을 통해 고독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오늘날 가족공동체가 해체되어 외로움이 일상화되고, 사이버공간에서 홀로 일상생활을 하고 있으며, 혼자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특히 노년에는 인간관계가 점차 줄어들기 때문에 홀로 남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현상으로 수용하고, 홀로 사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현재를 나 홀로 즐기며 살자는 ‘욜로족’('You Only Live Once'의 줄임말)이 등장하였다. 한번뿐인 인생 즐겁게 살자는 모토이다. 고독은 혼자 있는 고통이 아니라 혼자 있는 ‘즐거움’이어야 한다.  고독이란 노년에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인가에 몰입하게 되면 고독을 잊게 되고, 그 결과로 얻는 수확에서 기쁨을 느끼게 된다. 본인이 할 수 있고 관심이 있는 그 무엇을 찾아 하는 것이 고독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고독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치지 말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함으로써 노년의 행복을 찾아야 한다.

  고독을 사랑하는 자는 외롭지 않고 오히려 행복하다. 고독은 즐길 줄 모르면 죽음 다음으로 두려움을 주는 일종의 질병이 된다. 우울증은 생래적으로 인간은 고독하기 때문에 오는 질병이므로 이러한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독을 즐길 줄 아는 ‘고독력’을 키워야 한다. 이를 생활화하면 고독을 능히 극복할 수 있고, 오히려 활기찬 인생을 살 수 있게 된다. 노년에는 나만의 시간(= 홀로 있다는 것)을 휴식, 사색과 창조의 시간으로 만들어 의미 있는 인생을 만들어가야 한다. 홀로 있는 시간을 적극적으로 만들고 활용함으로써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노년에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4) 노년의 고독은 ‘창조의 원동력’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피카소는 “나는 예전에 나를 위해서 고독을 만들었다.”고 하면서 고독을 창조를 위한 시간으로 활용했다. 육체적 노화야 피할 수 없지만, 마음의 젊음을 유지하면서 사는 것이 항상 새로운 에너지를 제공하는 길이다. 고독이 인생을 괴롭히는 부정적 정서가 아니라 긍정적 정서로서 ‘창조의 원동력’으로 승화될 때 노년은 행복해진다. 소로는 대화는 서로를 이해하게 하지만, “천재를 만드는 것은 고독이다”라고 함으로써 고독이 창조의 원동력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가끔은 고독해야 하고, 고독을 즐기며 살아야 한다. 괴테는“인간은 사회에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영감을 받는 것은 오로지 고독 속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했다.

  노년이 되면 인지능력이 점차 떨어지고, 창조적인 일은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인간의 창조성은 30대에 가장 강하고, 그 후에는 10년 단위로 쇠퇴한다는 견해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노년에도 지적수행능력이 유지되어 창조적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연구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고독의 눈으로 볼 때 새로운 것이 보이고, 고독의 귀로 들을 때 새로운 소리가 들린다. 고독한 마음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고, 창조적인 힘이 솟아나온다. 고독이 오히려 창조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고독감을 고독력으로 승화시켜 창조적 에너지를 활용함으로써 노년은 행복을 만들어낼 수 있다.  

  니체는 고통을 자기 인생의 원동력으로 승화시켰다. 그는 가난, 고독과 질병으로 고통을 받았지만, 이러한 고난 속에서 나름대로 천국을 만났으니 그곳은 자신의 철학세계였다. 중요한 사실은 고독 속에서 진정한 자유함을 누릴 수 있고, 그 힘을 창조의 원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때에 인간은 한 단계 성장하고, 행복에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철학자 쇼펜하우어, 작가 카프카, 음악가 베토벤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들로써 예술작품이나 철학은 바로 고독의 산물이었다. 노년이야말로 고독을 창조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요 최후의 선물이다. 저자도 혼자 있는 시간을 고독에 맡기지 않고 독서를 하고 글을 쓰면서 행복을 누리고 있다. 그 근본적 동인은 무엇인가에 몰입하게 되면 고독은 도망쳐버린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고독 속에서 무엇인가를 창조하면서 자기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야말로 저녁하늘에 떠있는 일몰처럼 빛날 것이다.

 

 

(5) 노년에 고독을 벗어나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외로움을 스스로 관리하는 방법을 찾고 생활화해야 한다. 외로움은 생산적인 시간이 되도록 해야 한다. 고독감이 아니라 고독력을 키워야 한다. 고독을 관리하는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을 개발하고 습관화해야 한다. 관계의 시작이 외로움 방지의 시작이다. 영국의 외로움 방지협회 ‘엔드 론리네스’(End Loneliness)는 관계의 시점을 ‘나’가 아닌 ‘우리’로 바꾸는 데서 찾고 있다. 최근에는 ‘Be More Us’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우리를 강조하고 우리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소속감을 키워 고독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배움, 취미, 공공활동 참여, 자원봉사 등 그 방법은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다.

  영화 ‘본 투 비 블루’의 주인공 쳇 베이커의 고향을 찾은 연인 제인은 허허로운 벌판 앞에 서서 그의 고향을 보니 과거 영상이 스크린처럼 지나간다. “외로웠겠구나. 형제도 없이.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그러나 베이커는 반전을 시킨다. ‘아니’라고. “트럼펫이 있었지. 음악도 있었고. 라디오도 있었어.”트럼펫과 대화를 나누고, 음악 작업에 몰입하고, 라디오가 친구가 되니 베이커는 고독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관계가 중요하고, 관계 속에서 고독을 잊으며 살아가지만, 사람이 주변에 없다고 결코 외로운 것은 아니다. 인생의 목표가 확실하고, 희망을 항상 간직하고 있으며,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면 결코 외롭지 않다. 그 일에 몰입함으로써 자신을 망각하게 되고, 결과를 이루어냄으로써 성취를 통해 얻는 즐거움은 행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결코 외롭지 않았다. 고독이 창조의 원동력이 되었으므로.

  “난 결코 외롭지 않아. 고독이 함께 있으니까”(무스타키의 노래, 나의 고독). 고독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고독 속으로 여행을 하는 것이다. 노년은 그 어느 시기보다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시기이다. 그런데 고독이 마음이나 육체의 질병을 유발하는 경우에는 탈피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을 때 고독은 가슴속으로 침잠해버린다. 모든 것을 사랑할 때 고독은 바람처럼 사라져버린다. 큰 틀에서 자신을 사랑하고, 환경을 개선하며, 자신에게 즐거움을 선물해야 한다. 나아가 원만한 인간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정서를 키워야 한다. 그 방법은 운동 등의 신체적 활동, 음주 등의 스트레스 해소, 독서 등의 지적 활동, 미술 등의 창작 활동, 대화 등의 대인관계 등 다양한데,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가장 중요한 방법이 자기의 내면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은 마음의 평화를 불러오고, 새로운 활력을 얻는 귀중한 시간이 될 수 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 항상 자긍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길을 걸어가라. 열정적으로 일하라. 진정한 사랑을 하라. 인간관계를 잘 관리하라. 폭넓은 봉사활동을 하라. 끝까지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살아가라. 꿈이 있는 한 외롭지 않다.

 

  궁극적으로 고독이라는 공간을 메울 수 있는 것은 자신의‘마음’뿐이다. 홀로 있을 때 마음의 평화를 느끼고, 마음이 자신 안에 가득 찰 때 행복은 함께 한다. 고독이라는 빈 공간을 희망과 열정으로 채울 때 고독은 사라진다. 몰입이 그 원동력이다. 또 하나: 종교를 가지게 되면 하나님과 함께 하므로 고독을 넘어설 수 있다. 신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것이 아니라 한두 가지만 열중할 것이 있으면 고독을 넘어설 수 있다. 그러므로 평온한 마음을 갖고 스스로 고독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행복을 만들어가야 한다.

 

(6) ‘상상’은 성찰의 시간이요 창조의 원동력이다.

 

  특정한 곳을 향하여 떠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고, ‘상상’ 속에서도 여행을 할 수 있다. 상상의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갈린다. 노년의 경우에는 시간이 많으므로 이를 고독과 고민의 시간으로 소비하지 말고, 그리움과 즐거움을 상상함으로써 행복을 만드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즐거운 상상을 하면 즐거워지고, 괴로운 생각을 하면 슬퍼진다. 아인슈타인은 “지식보다 중요한 것이 상상력”이라고 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위해서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듯 정신적 프라이버시를 위해 상상의 공간이 필요하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은 자신의 성찰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상상을 함으로써 정신세계는 확장되고, 상상을 통해 인생의 폭은 넓어진다. 자기의 인생관을 정리하는 시간은 바로 이 때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 아이디어를 찾는 기회이기도 하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도 바로 이 때이다. 외로움을 달래고, 그리움을 이끌어내는 이 순간은 아름답다. 남은 시간을 고민과 번뇌의 골짜기에서 헤매지 말고, 낙관적인 상상을 하면서 즐겁게 사는 것이 노년의 특권이요 행복이다.

  상상은 인생의 양식이요, 약이 될 수 있다. 상상력은 바로 창조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상상하면 그러한 미래가 다가올 것이다. 낙관적으로 희망적인 상상을 하면 현재의 기분도 좋아질 수 있다. 불확실한 것을 상상해도 미래에 대한 기대가 솟아오르고 현재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상상 그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경험을 하고, 아이디어를 이끌어낼 수 있다.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가기로 하고 상상을 하면서 계획을 세우면 얼마나 황홀한 기분이 되는가? 여행 전에 상상을 하면서 계획을 세울 때 더 행복감을 느낀다. 그래서 여행을 미루면 더 행복을 누릴 수 있는데, 이를 마이클 노턴은 ‘공짜 행복’이라고 부른다.

  하버드대 출신들이 성공한 하나의 비결은 바로 상상에 있다고 한다. 자신을 엘리트라고 생각하고 그들처럼 공부하고 행동하고 일함으로써 성공한다는 것이다. 위대한 인생은 상상에서부터 시작된다. 상상을 통해 자신만의 세상을 설계한다. 사색을 통해 통찰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한 발 물러나서 사태를 바라보면 해답이 보인다. 상상을 하는 동안 마음에 평화가 오고, 그것에 몰두함으로써 행복할 수 있다. 이런 상상을 자주 그리고 깊이 하는 것이야말로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7) ‘명상’은 새로운 구도의 방법이다.

 

  노년에는 시간의 여유가 있으므로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명상’이다. 명상(瞑想)이란 한자로는 눈을 감고 차분한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한 백과사전에 의하면 마음을 자연스럽게 안으로 몰입해서 내면의 자아를 확립하거나 정신을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명상은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진정한 자아와 만나는 것이다. 명상을 하면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되고, 순수한 자화상을 만날 수 있다. 생각을 모두 내려놓으면 온전한 휴식이 된다. 명상을 하면서 모든 번뇌를 털어버리고 앞날을 설계한다. 명상은 일종의 휴식인 동시에 수양이기도 한다. 나를 비움으로써 새로운 것을 채우는 방법이다. 이것이 명상의 본질이다.

 

  명상을 통해 평소에 느끼지 못한 많은 사실들을 깨닫게 된다. 조용하게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우린다. 그러나 처음에는 훈련이 안 되어 있으면 정신을 집중하고 생각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므로 훈련을 통해 명상하는 법을 스스로 익혀야 한다. 반복된 훈련을 통해 명상은 가능하게 됨으로 수련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모든 잡된 생각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거듭난다. 그러면 마음의 평화가 생기고, 자기 안에 에너지가 발생한다. 나아가 명상은 스트레스와 질병 증상을 완화시켜주고, 면역기능을 강화해주기도 한다. 그리하여 명상을 계속 하게 되면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행복으로 다가가게 된다.    

  서양에서는 종교가 몰락하고 있지만, ‘명상’은 서구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종교 차원을 넘어 정신적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수련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제 명상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도구로서 역할을 할 것인가? 종교마다 그 형태는 다르지만, 자신의 마음을 바로 세우고 구원으로 가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공통된다. 불교에서는 수행의 한 형태가 ‘()’이고, 이것이 곧 명상이다. 유교나 도교에서는 ‘靜坐(정좌)’의 형태로 행하고, 기독교에서는 ‘祈禱(기도)’의 형태로 행한다. 항상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명상은 이를 해결하는 중요한 방법이 되고 있다. 명상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할 수 있다. 마음명상을 비롯해서 걷기명상, 자연명상, 음악명상 등 다양하며, 심지어는 자비명상을 들기도 한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명상을 하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고, 보다 행복한 생활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8) ‘산책’은 마음을 건강하게 만든다.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피로하면 산책을 나간다.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고 글이 안 써지면 또한 산책길을 걷는다. 특히 외로움이 몸속으로 파고들면 산책을 나간다. 불교의 명상법 중에 ‘경행’이라는 수행법이 있는데, 이는 가볍게 걸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는 명상법을 말한다. 이를 통해 정신을 집중시키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고독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 다비드 르 부르통은 걷기는 생명의 예찬이요 인식의 예찬이라고 했다. 걷기는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길 위를 걷다보면 영감이 떠오르고,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된다. 혼자 걸으면 인생은 어차피 혼자라는 사실을 산책은 가르쳐준다.

  인생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발로 걸어가는 것이다. 걸어라. 인생은 여행이고, 세상은 길이다. 세상을 걸어서 건너가는 것이 인생이다. ‘나는 걷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 누구도 걷는 법을 배우지 않고 걸어간다.(이반)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먼저 배우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길 위에서 걸어가는 법을 익히듯이 살아가면서 사는 법을 배운다. 자신의 길을 믿고서. 노년이야말로 걸으면서 인생을 관조하고 자아를 완성하는 시기이다. 걷고 걸으면서 건강도 챙기고 행복도 만들어갑시다.

  걷기는 성인병을 예방하고 체중감량에도 좋지만, 무엇보다 뇌를 젊게 단련시킨다. 밖으로 나가 햇볕을 쐬면 자외선이 흡수되어 비타민 D3를 만들어내고, 심장병과 암 발생의 위험을 줄여주며,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보고가 있다. 자연을 마주하면 세상일은 다 잊어버리고, 무아지경에 빠진다. 자연과 만남으로써 친구가 되고, 대화를 통해 배우고, 자연 속에서 치유를 받는다. 명상 중에서도 자연 속에서 하는 자연명상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산길을 걸으면서 사색을 하고 그 과정에서 내 마음은 성숙해진다.

 

  산책 하면 루소의 생각이 떠오른다. 루소는 자연 속에서 산책을 하면서 그의 인생과 자연에 대한 철학의 줄기를 세웠다. 산책을 하면서 베토벤은 작품을 구상했으며, 소로는 고독의 철학을 세웠다. 오늘은 길이 아니라 숲 속으로 들어간다. 녹색 잎을 보면 눈의 피로가 가시고 마음에 평화를 얻는다. 심리학자들은 녹색이 가진 심리적 효과를 말하는데, 과학자들은 사람들의 인지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숲의 효과라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많은 천재들이 숲으로 들어가 인지능력을 키운 사례들을 볼 수 있다. 다빈치·가우디 등 위대한 예술가들이 많은 걸작을 남겼고, 뉴턴·다윈 등 과학자들이 위대한 발명을 하였다. 이러한 숲의 효과를 상기하면서 내 인지능력도 향상되리라는 기대를 하며 숲속을 걸으니 행복하기 그지없다. 노년이 가는 길을 푸르게 만들어주니 희망이 솟아오른다. 그러므로 산책을 하면서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일구고, 고독이라는 노년의 병을 치유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9)  ‘등산’은 인생을 빼닮았다.

 

  노년에도 등산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런데 노쇠해지거나 무릎관절이 망가져 산에 오를 수 없게 되면 노년에 겪는 서글픔 중 하나를 맞보게 된다. 이제 ‘늙었구나!’ 하는. 산에 오를 수 있는 노년은 그것만으로도 행복을 누리기에 충분하다. 누군가는 관절만 튼튼하면 행복할 수 있다고 했는데, 산에 오르지 못하면서 그 말이 실감이 난다. 산에 오르면 건강에 좋고,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등 정신건강에는 최고의 명약이다. 자연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마음속 빈곳을 채울 수 있으므로 잠시나마 공허감을 극복하고 활력이 넘치게 된다. 산은 스승이고 의사이며 예술가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자주 오르는 것이 인생을 살찌게 만든다.  

  인간은 목표를 정해놓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 땀을 흘리며 정상을 향하여 올라가는 등산은 너무나 인생을 빼닮지 아니하였는가? 정상에 오르는 것이 등산의 목표이다. 정상에 올라 느끼는 성취감과 희열, 대자연 앞에서 느끼는 외경심: 그것이 등산하는 사람의 행복이다. 인생이란 홀로 걷는 등산과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발을 옮긴다. 삶의 길이 그곳에 누워 있다. 자연과의 대화를 나누며 오른다. 성전 스님은 “걸음은 삶의 오만을 버리는 기도이고, 번뇌를 죽이는 죽비이고, 평화를 건네는 풍경소리가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등산은 수도와 같은 것이고, 인생도 수도하는 기분으로 살아가야 한다.

  사람들은 빨리 정상에 오르기 위해 쉬지도 않고 기를 쓰며 허겁지겁 산을 오른다. 등산을 통해서 마음을 닦고 수련을 통해서 삶의 모습을 가꾸어 가는 것이 등산이 주는 최대의 선물이다. 그러나 행복은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과정에서 느껴야 한다. 샤하르는 “행복은 정상을 향하여 올라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서서히 오르면서 자연을 관조하고 사색을 하면서 그 과정을 즐겨야 한다. 오를 때는 힘이 들고 땀이 나지만, 정상에 오른다는 목표가 있고 희망이 있기 때문에 기꺼이 오를 수 있다. 정상에 올라 누워서 하늘과 얼굴을 마주하면 자연의 일부가 되어 희열을 느끼고, 나아가 무아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러다 보면 끝내 ‘자신과의 만남’에 이르게 된다.

  정상에 오른 기쁨은 잠간이고, 다시 비탈길을 내려와야 한다. “어떠한 오르막길에도 반드시 내리막길이 있다.(유태 격언) 인생도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긴 세월 노력하다가 성공을 하면 곧  정상에서 내려오게 되어 있다. 노년에는 자신을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된다.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위험하고 사고가 많이 난다. 내려올 때 관절이 더 나빠지고, 나쁜 관절은 통증을 느낀다. 성공을 거둔 뒤 갖추어야 할 것이 ‘절제’와 ‘겸손’이다. 그렇지 못하면 성공의 결실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헤럴드 멜처트는 “매일 등산하는 것처럼 인생을 살아라.”고 주문한다. 등산하는 자세로 하루하루를 살면 그 노년은 아름다운 인생을 마감할 수 있을 것이다.

 

 

(10) ‘취미생활’이 노년을 행복하게 만든다.

 

  노후에는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고독을 극복하고 행복을 만들어 가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시간을 단지 소비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일을 함으로써 노년을 아름답고 보람되게 만들어가야 한다. 노년에는 취미와 여가 활동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노년기의 취미생활의 유형은 다양하다. 한 사회조사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등산·스포츠·헬스·요가·조깅·산책 등 운동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40%). 다음으로 친구 모임·동창회·동호회 등의 교류(35%)와 영화·연극·TV 등 관람(18%)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최근에는  여행·오지 탐험·유적지 관람·박물관 방문 등 관광활동이 늘고 있고, 독서·글쓰기 모임·음악 감상·미술관 방문·사진 찍기 등의 교양활동이 늘어나고 있다. 여성들의 경우 요리·다도 등의 취미활동을 하기도 한다. 그 활동이 낭만적일수록 행복은 커진다.

  교양활동을 통해 문화적 행복을 누림으로써 행복의 질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년에는 부부 사이에 대화의 소재도 줄어들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갈등이 심해지거나 무관심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노년에는 부부 사이에도 취미생활을 함께 하는 것이 대화의 기회를 넓히고, 함께 생활할 수 있게 만들므로 바람직하다. 취미생활을 하면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고독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인간관계 위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 생산성이 있거나 보람을 느끼면 더 의미 있는 인생이 될 것이다. 이러한 취미생활을 함으로써 노년을 즐거운 인생으로 만드는 것이 마지막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쾌락적응현상 때문에 재미를 잃어버릴 수도 있는데, 그럴 때는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좀 더 보람 있게 삶을 마감하려면 개인적 행복만을 추구하지 말고, 전문성을 살리거나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 사회에 더 기여할 수 있으므로 바람직하다. 노년의 시기는 행복도 진화를 시켜 기부·나눔·봉사 등을 통한‘이타적 행복’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아야 한다. 봉사활동을 통해 공동체적 행복을 누림으로써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신은 돈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는지를 보고 인생을 평가한다.”고 한다. 의미 있는 인생을 보낸다는 것은 바로 공동체적 행복을 추구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남은 시간을 행복의 질을 높여가는 데 투자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으로 가는 길이다.

 

 (11) ‘여행’은 인생의 교육의 현장이고 치유의 교실이다.

 

  매일 아침 여행하는 기분으로 길을 나선다. 길 위에서 여행자가 된다. 그러면 하루하루가 새롭고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인다.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여행하는 장소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이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예전 것들이 새롭게 보이는데, 그 이유는 환경이 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변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무거운 짐 다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걷는다. 날씨가 아무래도 상관없고 어디를 가도 좋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거닐면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여행이 즐거워진다. 여행자로서 사는 지금 행복을 누리게 된다. 은퇴 후 새로운 인생은 오롯이 여행과 같다. 행복을 누리며 걷는 길 위에 새 세상이 펼쳐진다.  

 

  여행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교육의 현장이고, 치유의 교실이다. 인간은 두 번 태어난다고 하는데, 한번은 자궁으로부터, 다음은 여행길 위에서 태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넓게 생각하면 인생이 곧 여행이다. 인생은 ‘여정’이요, 세상은 ‘길’이다. 인간은 세상이라는 길 위에서 오늘도 인생을 여행하고 있다. 그래서 노년에도 사정이 허락하면 여행을 자주 하는 것이 좋다. 자신이 갇혀 살고 있던 좁은 세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면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이 많다”는 어느 기업가의 책제목이 떠오를 것이다.

  괴테는 여행의 목적이 해방·자유·행복과 구원에 있다고 했다. 낮선 곳에서 걸으면 일상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서 해방감을 느끼고, 아무런 구속이 없는 자유함을 누리며, 더 없는 행복감을 만끽하게 되고, 자신의 내적 세계에서 구원에 이를 수 있다. 칼 야스퍼스는 “철학은 길 위에서 행해진다.”고 했다. 여행지에 도착해서 낮선 곳을 걷게 되면 호기심이 생기면서 사색을 하고 철학을 하게 된다. 특히 걸으면서 짐이 가벼울수록 여행하기가 좋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비움의 진리를 깨닫고 행복으로 가는 길을 걷게 된다.

  그곳 문화 속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보고 배운다. 문화에는 그 나라의 역사가 묻혀 있다. 문화 속에 역사가 숨 쉬고 있으므로 그들의 지혜를 살펴보고 역사를 배운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짊어지고 세상을 돌아보니 비로소 그 해답이 도출된다. 나라마다 환경이 다름에 따라 적응방법이 다를 뿐, 인간이 사는 것은 모두 동일하다는 사실을. 그러면서 우리 문화를 돌아보고 비교하게 된다. 여행을 하고 나면 문화를 이해하고 적응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여행이란 길을 거닐면서 인생을 돌아보고, 자연과 문화를 바라보며 사유하는 과정이며, 그 체험을 통해 자신과 만나고, 배우고 치유하는 선물을 받는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또한 여행의 즐거움을 준다. 그 나라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여행자들의 경험을 듣는 등 새로운 형태의 배움이 있다.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나를 만나러 가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나를 발견하고 치유하며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다. ‘나’란 존재를 확실하게 알게 된다. 자연 속에 진리가 숨어 있다.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왜소한가 생각을 하면서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게 된다.  

  여행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오솔길을 걷는다. 솔닛은 “마음은 일종의 풍경이며 실제로 걷는 것은 마음속을 거니는 것”이라고 했다. 반드시 여행지를 찾아가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다. 책 속에서도 여행을 할 수 있고, 상상 속에서도 여행을 할 수 있다. 창문을 열고 산을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한다. 마음속에 세계가 있고, 아니 우주가 있다. 마음속을 거니는 것이 여행이라면 그 방법은 무수히 많다. 여행하는 기분을 가지고 하면 무엇이든 여행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무엇인가를 추구하고 자신과의 만남을 이룰 때 이들은 훌륭한 여행이 된다. ‘나는 걷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결론을 얻는다.

  여행자는 소유하지 않고 세상이 주는 것을 누릴 뿐이다. 최소한의 필요한 물건만을 챙겨가지고 떠나는 그 비움 속에 여행은 새로운 것들로 채워준다. 여행을 할 때 이 진리를 가장 선명하게 깨달을 수 있다. 여행자는 길 위에서 모든 것을 누리며 걸으니 그 순간은 세상이 다 그의 것이다. 욕망을 내려놓고 걷는 것: 그것이 여행의 본질이다. 그 과정에서 걷고 배우고 느끼는 것이 여행의 본체이다. ‘어디에 있는가?’ 이런 질문을 하면서 걷고 걷는다. 걸으면서 상상을 하는 과정이 여행의 진수요, 그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이 여행의 결실이다.

 

  마음이 답답할 때 어디론가 떠나고 싶으면 섬으로 가는 것도 좋다. “태양과 바다: 이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뻬꾸, 배움 18) 그 목적은 바다에 떠 있는 섬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섬’을 만나기 위해서다. 성전 스님은 “바다처럼 낮아져 모든 것을 섬기며 살겠습니다. 바다처럼 넓어져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살겠습니다. 바다처럼 깊어져 모든 것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성인의 길을 따라갈 수야 없지만, 노년에 새롭게 자신을 돌아보고 바다처럼 넓은 가슴으로 모든 것을 품는다는 마음의 다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섬 여행은 보람을 느낀다. 가장 낮은 곳에서 포용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드리니 바다는 선생이 된다. 바다가 되어 섬을 품으면 행복은 파도처럼 춤을 추게 된다.

 

(12) ‘사이버 공간’에서 여행을 하다.

 

  지금 우리는 정보사회에 살고 있다. 사이버공간에 모든 정보는 쌓여 있으며, 정보 없이는 살 수 없다. 컴퓨터를 켜고 들어가면 그야말로 이곳은 ‘정보의 바다’이다. 원래 컴퓨터는 군사용 통신수단으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모든 정보가 모이고 유통되는 정보 장비가 되었다. 이러한 정보를 얻기 위해 우리는 매일같이 사이버공간으로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다. 노년들도 예외는 아니다. 소극적일 뿐.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의 매일같이 오랜 시간 사이버공간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러한 가상여행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고 이를 활용해서 살아가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 되었다.

  이제 정보사회에서는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은 쓸모가 없어지고, 어떻게 필요한 정보를 신속하게 얻느냐가 성공의 열쇠가 되었다. 정보가 바로 경쟁력의 원천이다. 이러한 정보사회에서 세계는 국가ㆍ기업ㆍ개인을 불문하고 정보를 얻기 위해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다. 홉스가 말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이곳에서 재연되고 있다. 이제 사이버공간은 더 이상 국가와 동떨어진 가상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생활공간으로서 우리는 그 안에서 쉴 새 없이 활동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정보를 통해 발전을 추구하고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 오늘날 노년들의 과제이다. 그런데 노년들이 디지털에 익숙해져서 모든 정보를 접하고, 급변하는 디지털 문화에 적응 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으므로 노년이 디지털 문화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배려해야 한다.

  인터넷상의 정보가 잘 활용되면 생활이 편리해지는 등 순기능을 하지만, 악용되면 역기능을 하여 많은 병리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속하는 사항들이 ‘사물인터넷’에서 모두 집적되고 여과 없이 공개되고 있다.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언어폭력을 일삼기도 하고, 유언비어를 퍼트려 명예훼손은 고사하고 죽음으로까지 몰아가고 있다. 고의적으로 악플을 달고, 심지어는 이를 비즈니스로 하는 무리들이 있다. 더욱이 인터넷상에서는 그 확산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피해는 더 심각하여 행복을 해치는 역기능을 하고 있다. 아직 자정능력이 부족하고, 이를 통제할 법적 ‧ 제도적 장치도 잘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다.

  그런데 인터넷상의 정보는 단순하거나 잘못된 정보들이 범람하고 있어 올바른 정보의 선택이 어렵다. 그러므로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을 이용하되, 지나치게 이에 의존하지 말고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 중요한 정보는 활자를 통해 얻어야 하고,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컴퓨터를 잠시 끄고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울프 교수는 권고한다. SNS 등을 통해 글을 읽는 것은 ‘읽기’가 아니라 ‘보기’라고 한다. 보르헤스는 인터넷을 ‘가장 멍청한 신’이라고 비판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인터넷세계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운 영혼이 활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인터넷세상이 부닥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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