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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탁본하다 / 김건화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3/10 [11:02] | 조회수 : 48

 

  © 시인뉴스 포엠



 

 

천년을탁본하다

 

 

마른처마아래연꽃핀다

 

잠시비를피해들어선절집

연향인그대손길은

기억속으로번진다

 

손꼽아기다리던

원앙금침아래누울초야

베개마구리에새기던무늬가  

먹빛침묵으로하늘을본다

 

먹먹함에고운한지얹고

당신무심의심장을향해

탕탕!솜방망이로두드리면

빙그레웃는수막새를만날있을까

 

모래바람

서역떠날

절반을나누어가졌던

서늘한기억

 

손바닥깊숙이

버들문양새긴다

 

-해설

 

이 한지韓紙 탁본은 단순히 물리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당신(그대) 무심의 심장”이라는 대목이 암시하듯이, 그 연꽃향기가 거느리는 ‘무심無心의 경지’까지 담아내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그 수막새의 미소는 천 년 전에 “절반을 나누어 가졌던” 미소로, 이미 아득한 세월 동안 화자의 “서늘한 기억” 속에 자리매김하고 있다고도 여긴다. 아마도 그래서 시인은 이런 꿈에다 미래를 향해 “손바닥 깊숙이 / 버들문양도 새긴다”고 보태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같은 우주감정과 시공을 초월하는 환상(상상력)은 그의 시에 은밀하게 관류貫流한다. 때로는 안에서 밖으로 번지고, 그 바깥이 다시 자연현상이나 우주로 퍼져나가며, 때로는 그 확산과는 반대 방향으로 끌어들여지고 스며드는 양상을 보인다.

 

 

개심사 왕벚꽃

 

 

멀찍이서 바라만 보던 나를

개심사로 불러들인 왕벚꽃

 

쇠북에 등지느러미 꿰인 물고기

단청 속에 숨겨 놓고

주위의 벌들까지 들뜨게 한다

 

겹겹의 오색으로 내다 건 꽃등

몸짓으로 다 말할 수 없는 설법은

비틀거리는 바람의 소맷부리

온몸으로 부여잡는다

 

그대에게 가는 길은 멀고

이대로 꽃잎 다 진다 해도

영영 모르고 살아도 좋을 봄날

 

꽃잎마다 봄을 앓는 열병

갈피갈피 접어놓은 그대 향한 길

참으로 멀기도 하여라

 

-해설

 

개심사開心寺와 ‘그대’로 지칭되는 왕벚꽃이 환기하는 이미지를 아우르면서 이 시인의 시적 지향을 시사하는 이 시는 왕벚꽃이 개심사로 화자를 불러들이고 그 속에 들어 주위의 별들과도 함께 들뜨는 열망의 길을 나서게 한다. 하지만 여전히 멀고 먼 길임을 절감하게 되는 건 그 정황情況이 ‘그대(왕벚꽃)’가 쇠북()에 등지느러미가 꿰인 물고기를 단청 속에 숨겨 놓은 데다 그 꽃잎들마저 ‘봄을 앓는 열병’을 갈피갈피에 접어놓고 있는 바 그 비의 때문일 것이다.

이 때문에 시인은 왕벚꽃처럼 절정絶頂을 향한 열병을 앓으면서도 그 이데아에 이르는 길은 멀 뿐이라는 한탄恨歎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 한탄은 “그대를 향한 길”에의 열병이 얼마나 뜨거운가를 역설적逆說的으로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은유는 이 시인의 시를 향한 부단한 열망과 지향을 에둘러 떠올리는 경우에 다름 아니기도 하다.

 

 

 

 

 

 

 

 

삼각김밥

 

 

둘둘 말아 싸던 김밥 뾰족한 산으로 세워볼까

 

들끓던 내 안의 잡동사니 감정들

꾹꾹 눌러 두었던 욕망들도

산봉우리 위 구름으로 날려볼까

 

김밥은 둥글어야 한다는 생각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삼각김밥

오늘은 내 뾰족한 마음의 각을 덥석 물

삼각김밥이 먹고 싶다

 

삼각 틀에 눌린 차가운 밥이

김과 비닐을 사이에 둔 불편한 삼각관계

비닐 벗겨내자 불쑥 들이미는 모래의 산

모래의 웅성거림이 차곡차곡 쌓여

피라미드 같다고 해야 할까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세 개의 삼각주를 가진 당신은

나를 덥석 물고도

백사장 한 귀퉁이를 먹었다 하겠지

 

겉돌던 모래 알갱이 앉혀둔 강물

고라니 한 마리

새벽의 목을 축이듯

 

-해설

 

삼각김밥은 ‘뾰족한 마음의 각’을 물고(품고) 있는 반면 시인은 그 김밥을 먹고 싶어 하는 관계일 뿐 아니라, 이윽고 그 삼각김밥은 모래의 웅성거림이 차곡차곡 쌓인 피라미드 같은 존재로 환치換置(비약)되기도 한다. 게다가 밥, , 포장 비닐은 상호 불편한 감각관계에 놓이며, 밥은 그 관계(삼각 틀) 속에 갇힌 모래로 그려지고 있다.

시인은 순도 높은 이데아를 추구하면서도 그 이데아를 피라미드 형상으로 구축하는 내용물(밥⟶언어)은 수많은 모래같이 삼각 틀 안에 차곡차곡 억제(절제)된 채 쌓여 있다고 본다. 나아가 삼각김밥을 ‘뾰족한 산’으로, 다시 ‘모래의 산’(피라미드)으로 환치해서 바라보며, ‘밥⟶모래⟶언어’로 비약하는 은유의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삼각김밥=시적 지향’이라는 등식을 빚는다. 시인의 상상력은 이같이 ‘내면세계나 심상풍경’(내포)들을 밖으로 확산시키면서 ‘삼각김밥이나 모래의 산(피라미드)(외연)과 같이 거시적인 대상으로 바꿔 바라보면서 지향하는 바의 시법詩法을 가시적인 형상으로 떠올려 보인다.

 

 

 

 

도화를 깨우다

 

 

봄날 여느 나무

환하게 지는 꽃잎에

열매 맺지 못하는 복숭아나무

엄지발톱만 부풀어 올랐다

 

겹겹 동여맨 꽃잎 열어 만개할

화산 같은 내 안의 도화는

어찌 깨울까

 

호랑나비는 꽃감옥에 들어

소식 감감하고

시름시름 앓고 있는 이 꽃몸살을 어쩌랴

 

기다림에 아려오는 명치끝

꿀샘 탐하는 벌새

수시로 날아들어도

그냥 허울만 복숭아나무일 뿐

 

몸속 도화는 물컹물컹 짓무른다

불어온 실바람에 복사뼈 자리

 

진물은 찔끔찔끔

지나가는 개미를 가둘 뿐

내 안의 도화 잠들지 않는다

 

그대여 더는 꽃망울 움츠리지 않게

달그림자로 숨어들어

꽃망울 활짝 터트려주오

 

 

-해설

 

 봄이 오자 북숭아꽃이 만개하지만 화자의 몸속에서는 짓무르는 정황을 대비하면서도 개화開花에의 소망을 접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도화稻花의 꽃망울이 화산火山 같은 폭발력을 예비(내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비록 몸속(내면)의 도화가 짓물러 그 진물에 벌이 아닌 개미가 찾지만 ‘그대’가 활짝 터트려줄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붙들면서 기구하게 된다. 이 기도의 자세는 절대자를 향한 것이기도 하고, 초극의지의 발로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장마

 

 

검은 손바닥 구름들 음모가 수상하다

 

적막을 깨뜨리는 야생의 말발굽 소리

투구로 무장한 적들이 몰려온다

 

두려움에 몸을 움츠렸던

유순한 한 남자가 들어 올린 도끼날이

허공에서 번쩍이며 내려온다

 

발목을 덮는 흙탕물은

뿌리째 뽑힌 비탈의 나무를 데리고

불온의 하수구로 흘러든다

 

비의 말씀은 길게 늘어져

당분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세

이런 때는 엎드려 숨을 골라야 한다

 

소란도 잠시, 장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

부서진 우산살만 남기고

담장 위로 올라가 능소화 피웠다

 

손바닥 구름 쓸어 낸

짙푸른 나무의 몸통에서 매미 울음은

더 요란해졌다

 

-해설

 

‘비구름’을 손바닥 뒤집듯 수상한 음모를 하는 ‘검은 손바닥 구름’으로 읽는 시인은 천둥과 함께 쏟아지는 소나기를 투구로 무장武裝한 적들이 야생의 말을 타고 몰려오는 것으로 보는가 하면, 번개를 유순柔順하고 두려움이 많은 한 남자가 도끼날을 번쩍이며 내려오는 것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다시 하늘이 말끔히 개는 변덕을 부리면 ‘부서진 우산살’(상처)만 남길 뿐 담장 위에는 능소화가 피고 짙푸른 나무에서 매미 울음이 더 요란해지니 장마가 수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파

 

 

비스듬히 등 눕히던 소파에서

성난 물소 콧김 내뿜는 소리가 들린다

등가죽 쩍쩍 갈라진 걸로 보아

아프리카 동물 중 가장 힘센 물소가

감당할 수 없는 생의 무게에 짓눌려

야생의 눈빛 마저 흐릿해졌다

축 늘어져 누워 있는 뱃살

한때 사자도 물리치던 뿔은 간곳없고

과적 선박 허리께처럼 삐걱거린다

건기의 초원을 닮아가는

정년이 임박한 낡은 소파

동물의 왕국에 체널을 맞춘다

주택담보대출의 채무만 남아서일까

진흙 말라붙은 무기력한 몸을

적막한 야자수인 내게 기대온다

비스듬히 누워 졸고 있다가

누군가 불러낼 강물 같은 전화벨 소리에

코를 벌름거리며 귀를 쫑긋 세운다

 

다시 깨어날 야생을 위하여

 

 

-해설

 

아마도 관용과 화해의 이면에는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야생野生에의 꿈’이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화자는 편안하게 졸면서 소파에 등을 기대어 눕히고 있지만, 그 물소가죽 소파의 본래적인 야성을 감지하게 되는데다 자신의 내면에 잠재돼 있던 야성을 “강물 같은 전화벨 소리”가 일깨워주는 촉진제가 되어주는 게 아닐까. 그 일깨움도 순리에 따라 아래로 흐르는 강물에 비유된다. 시인이 이르는 여기서의 야생은 더 나은 삶에의 꿈이며, 그 꿈꾸기는 시를 쓰는 행위와 연계되고 있어 더욱 주목된다.

 

 

 

 

손톱의 진화

 

 

첫눈 내릴 때까지 남아 있는

봉숭아 꽃물 든 손톱에서

기다림 노을은 여러 번 익었다

잊을 만하면 몸 밖으로 자라는

가시 때문에 여자들은

손끝이 근질거려 바가지를 긁고

일확천금 꿈꾸는 자는 복권을 긁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동물의 본능으로

칼로 물 베는 싸움에서

손톱 함부로 세우기도 하지만

슬픈 진화일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손톱일수록

더 진한 매니큐어가 칠해지고

그 다양한 색깔만큼 아픔들이

절망의 손톱 위에 덧칠해질 때

손톱의 난해한 은유는 풀기 어려워

그 옛날 가려운 등 긁어주던

어머니의 뭉툭한 손톱이

나 무척이나 그리운 이유

 

-해설

 

손톱과 손톱 물들이기의 함수관계를 여성 특유의 감성과 언어감각으로 희화화한 이 시는 봉숭아 꽃물 든 손톱에서 매니큐어를 짙게 덧바른 손톱까지의 “슬픈 진화進化”를 그리고 있다. 상당 기간 지워지지 않는 봉숭아 꽃물은 순수한 손톱 치장治粧이지만, 짙은 매니큐어는 상처를 주고받은 여성의 심리를 반영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남편(또는 누구나)에게 바가지를 긁거나 손톱을 함부로 세워 상처를 준 경우일수록 더 진한 매니큐어가 칠해질 뿐 아니라 아픔이나 절망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색깔이 매니큐어가 덧칠된다는 논리다. 그야말로 난해한 ‘손톱의 진화’에 대한 은유다.

 

 

 

 

김건화 시인

경북 상주출생

2016년《시와 경계 》신인상 등단

<형상시학회>회원

대구 시인협회 회원

시집 『손톱의 진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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