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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원 시집 속 작품 및 해설

해설: 장석주 (시인, 평론가)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3/10 [11:14] | 조회수 : 67

 

  © 시인뉴스 포엠



려원 시집 속 작품 및 해설

 

해설: 장석주 (시인, 평론가)

 

 

무화과가 익을 무렵은

칭얼거리는 계절이에요

그래서 무화과나무에서 젖 냄새가 나요

우린 젖꼭지 나무라고 불렀지요

 

열매를 따자 꼭지에서 울음이 터졌어요

끈적끈적한 우윳빛 액체가 방울방울 솟아요

 

마루에 앉아 동생에게 젖을 물리던

엄마 생각이 나요

말랑말랑한 무화과를 부드럽게 한입 물었죠

칭얼거리고 싶었죠

 

열매 안에 숨은 꽃

달달함이 입안에서 뛰어놀고 있어요

 

엄마 살 냄새라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모두 틈의 냄새들이에요

틈틈이 틈을 먹고 자라서

과일 안을 붉은 꽃술이 꽉 채웠어요

 

無花果라고요?

꽃을 따라왔다가

혼자 남겨지는 열매가 있다지만

끝까지 남아서

열매를 토닥거리는 꽃인걸요

 

- 「무화과」 전문

 

 시인은 대뜸 “무화과가 익을 무렵은 / 칭얼거리는 계절이에요”라고 한다. 칭얼거림이 연상시키는 것은 젖을 보채는 아기다. 시인은 바로 다음 구절에서 상상력을 비약해서 “무화과나무”에서 “젖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이 감각은 예사롭지 않다. 무화과를 따자 “꼭지에서 울음이 터”지고, “우윳빛 액체가 방울방울” 솟는다. 시인의 상상세계에서 무화과나무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엄마와 동일시된다. 그런 맥락에서 무화과나무에 달리는 열매는 곧 애기들이다. 이 애기들은 무화과나무라는 “젖꼭지 나무”의 젖을 빨며 자라난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나’는 무화과를 따서 입에 넣으며 “동생에게 젖을 물리던 엄마 생각”을 겹쳐보는 것도 자연스럽다.  

 

 

칠월의 가지에서 자두를 훔쳤어요

새파란 자두가 이제 막 노란 입을 벌리기 시작했을 때

자두는 꼭지가 제일 질겼어요

 

단맛은 썩어가겠다는 뜻일까요

 

꼭지는 두 가지의 방식으로 떨어져요

덜 익은 꼭지는 나무에서 떨어지고

다 익으면 자두에서 떨어져요

 

신 것을 먹자 눈이 덧나더군요

자두는 파랄 때 가장 웅크리는 자세가 돼요

나무는 한 자루의 자두를 매달고서도 균형을 잡았어요

배 같은 건 불러오지도 않았고요

 

나는 빈 숟가락들을 토해냈어요

음식을 먹지 않아도

스스로 고이는 분량이 저울질했어요

자라는 만큼 개월 수를 토해내고

붉은 눈에선 시큼한 냄새가 났어요

비운만큼 배가 불러왔어요

 

처음에 태어난 아기는

파란 자두를 싸며 옹알거렸어요

아이와 나는 신맛으로 울었어요

 

- 「자두」 전문

 

 ‘나’는 자두나무 가지에서 자두를 따는데, “새파란 자두”는 신생의 힘으로 가지를 완강하게 붙잡는다. ‘나’는 “자두는 꼭지가 제일 질겼어요”라고 말한다. ‘나’는 임신을 한 것일까. ‘나’는 “신 것을 먹자 눈이 덧나더군요”라는 구절처럼 신맛을 찾는다. 그 신맛의 매개로 자두를 떠올렸을 것이다. 칠월의 자두나무 가지에 열린 덜 익은 파란 자두는 태아의 “웅크린 자세”라는 상상을 낳는다. 자두나무가 파란 자두를 가지에 달았다고 자두나무의 “배 같은 건 불러오지 않았”다고 쓴다. 자두나무가 아니라 시의 화자가 입덧 현상을 보인다. ‘나’는 “빈 숟가락들을 토해”내고, “배가 불러”온다. 마지막 연을 보면 ‘나’는 아기를 출산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 태어난 아기”는 “파란 자두”를 싼다. 아기의 배설물이 “파란 자두”를 닮았다는 뜻일까? 어쨌든 ‘나’와 아기는 덜 익은 자두의 ‘신맛’에 매개로 엮인다.

 

3.

 

 

 려원 시인에게 시적 영감을 주는 것은 날씨들이다. 날마다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기상 현상은 우리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바가 있다. 날씨와 더불어 계절의 변화는 우리 기분과 영혼을 쥐락펴락하며 감정의 변천사를 만드는 것이다. 궂은 날씨거나 화창한 날씨거나에 따라 우리의 기분도 달라진다. 기후 변화는 수면시간을 늘리거나 줄이고, 식욕부진의 원인이 되며, 체중 감소를 일으키기도 한다. 날씨와 계절들이 우리 생체 리듬에 영향을 주는 한에서 그것들은 여러 ‘생물학적 변수’들을 만든다.1) 이를테면 햇빛은 예민한 영혼을 순수한 기쁨으로 물들게 하지만, 악천후와 어두운 비구름 아래 펼쳐지는 잿빛 풍경은 기분을 무겁고 칙칙하게 하고, 비와 바람 부는 날씨는 마음을 울적하고 스산하게 만든다. 시인은 “사과의 날씨”나 구름 낀 날씨에 대해 어떤 정서적 반응을 보이는가? 사과 한 쪽의 구름」과 「온순한 구름」이라는 시를 보자.

 

사과의 날씨가 지나갔다

 

반으로 쪼갠 사과 한 쪽을 창틀에 놓고 잊어먹고 있었다

 

며칠 뒤 사과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그동안 사과를 지나간 날씨들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반쪽의 빨간 껍질에는 지평선을 넘어가던 노을이 있었고 달은 사과 속을 들락거리며 반달이 되었다가 다시 만월이 되었다

 

달은 사과의 밝기를 주기적으로 조절하고 있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나는 사과씨로 배란일을 계산했다 달이 회전하는 단면과 사과 반쪽의 단면이 만조를 이루던 날, 사과 속살에 둥둥 떠다니는 상현달과 하현달 중 어느 쪽을 고를까 고민했다

 

사과가 쪼글쪼글해지는 시간, 내가 갈라놓은 곳으로 달이 자라서 다시 야위었다 초음파에는 먹구름으로 가려져 있었다

 

내 뱃속에 들어있는 사과가

파란 날씨를 지나 빨갛게 익어가고 있을 것이다

 

- 「사과 한 쪽의 구름」 전문

 

 시인은 “사과의 날씨”, “반으로 쪼갠 사과 한쪽”, “사과의 밝기를 주기적으로 조절하”는 달, 여자의 “배란일”을 겹쳐내며 생명 잉태의 순간으로 상상력의 촉수를 뻗는다. 시인은 사과가 탱탱하던 순간에서 “사과가 쪼글쪼글해지는 시간”에 이르기까지의 사이, 혹은 초음파와 먹구름 사이에 대해 사유한다. 그 사이는 달의 날씨가 지나가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달의 시간”에 어떤 일들이 생기는가? 달은 점점 부풀어올라 만월이 이르렀다가 다시 야위어 하현달이 되는데, 이 변화를 “달이 회전하는 단면과 사과 반쪽의 단면이 만조”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과를 둥글게 익히는 이 “달의 시간”이라니! 이 시간은 여성 화자인 ‘나’의 몸에 생명이 잉태되고 자라는 시간과 정확하게 조응한다.

 

 

당신과 언덕을 올라 양떼를 보러 갔던가요 바람을 끌어모으는 바람개비들은 멀리 보이는 집들과 불빛의 결연을 맺고 있었죠 안개는 언덕까지 올라 양떼들 속으로 숨으려 했죠 그곳에선 당신을 닮은 구름 냄새가 났죠 날씨는 변덕스럽게 매에매에 울어댔죠

 

 우연히 구름 깎는 모습을 보았죠 구름에 네 발이 달리면 구름은 풀밭으로 진창으로 돌아다니다 장발이 되죠 구름을 깎는 사내는 날카로운 햇살을 들고 있었죠 뭉텅뭉텅 구름은 슈트가 되고 머플러가 되었죠

 

우리는, 우리는 그동안 한 방향으로 돌려 깎기를 하고 있었죠

 

 구름을 벗겨내자 꼭 잡은 두 손이 푸른 능선을 타고 올랐죠 무리란 산등성이를 넘어가기 편리하죠 앞과 옆으로 밀리고 밀리다 구름 한 줌 쥐어서 살펴보면 모두 꼬불꼬불 휘어진 털 뭉치들로 바뀌어 있죠

 

 구름은 흐린 날이 되려 한 적이 없죠 다만 한 번도 목욕하지 않은 양 떼가 들판에 온순한 먹구름으로 모여있을 뿐이었죠

 

- 「온순한 구름」 전문

 

 「온순한 구름」에서 돋보이는 것은 시인의 천진한 태도다. 시적 화자는 ‘당신’과 언덕을 올랐던 일을 회상한다. 누군가와 양 떼를 보러 갔다. 마침 구름이 낀 날씨였던가. “날씨는 변덕스럽게 매에매에 울었죠”라는 구절은 양 떼와 구름을 묘하게 하나로 겹쳐낸다. “구름에 네 발 달리면”이라는 구절에 이르면, , 구름이 양 떼의 은유라는 게 보다 또렷해진다. 목부는 양들을 붙잡아 털들을 깎는다. 그 양들의 몸통에서 나온 하얀 털 뭉치들과 구름은 얼마나 닮아 있는가! 양 떼는 무리 지어 산등성이를 넘는다. 그건 마치 구름이 산등성이를 넘어가는 형상과 닮았다. 들판에 모여 있는 양 떼는 “들판[] 온순한 먹구름”들이다.    

 

4.

 

 우리는 먼저 ‘봄’으로써 이 세계--존재의 일원이 된다. 본다는 행위는 눈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는 눈이라는 신체기관을 통해 무언가를 봄으로써 지각적 대상 세계에 연루된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우리가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볼’ 수 있기 때문에 눈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봄’으로서 타자의 세계에 접속하고 참여한다. 보는 눈이 없다면 우리 실존은 크게 제약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바라-봄’ 속에 자연은 그 전체를 열어젖혀 우리 앞에 그 모든 비밀을 개시(開示)한다. 보라, 우리는 타인과 그들이 만든 세계, 그리고 계절과 풍경들을 본다.

 

 

기린과 일지도 모른다

풀을 뜯어 먹으며 마당을 지나간다

빨간 뿔도 없고

뚝뚝 떨어지는 입도 없는 것이

익어가는 온순한 머리를 하고

돌 틈과 구석들을 먹어치운다

평화로운 습성을 지닌 가을,

고혹적인 자세로 들판과 풀숲과

길섶까지 집어삼키며 지나간다

살찌우며 냄새를 풍기며 밤나무들은

불편한 가시 뭉치들을

털어내며 자란다

이슬들이 쫓겨 가고

누룩뱀과 개구리가 서둘러 잠속으로 숨는다

열어놓은 문틈으로 스윽, 들어왔다

다시 나가는 가을의 식욕들

이파리들을 모조리 뜯어먹는다

겨울과 봄과 늦여름까지

소화가 다 될 때까지

꼼짝도 안 하고 은신해 있는 가을

더 이상 뜯어먹을 풀이 없으면

흰 서리꽃이 피고

마당을 기웃거리다 창문들을 들여다본다

곧 흰 눈이 내리면

겨울로 몸을 갈아입고

온갖 발자국들을 먹어치울 것이다

 

- 「가을이 풀을 뜯으며」 전문

 

 사람을 포함한 영장류 대부분은 땅 위에서 산다. 땅은 물적 토대이고, 기후의 조건이자 활동하는 자아들을 배양하는 장소다. 사람은 땅에서 태어나 땅의 변화에 순응하며 산다. “단단한 땅 위에 서 있으려면 아직 멀었다.(니체, 『반시대적 고찰』) 땅 위로 봄여름가을겨울 따위 계절이 순환하며 지나간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포악한 운명의 화살을 가슴에 꽂은 채 비틀거리고 휘청거리는가! 더러는 고갈과 탕진으로 땅 위에 널브러지기도 한다. 땅 위에 바로 서는 것은 쓰러진 적이 있는 자들이다. 그들이 바로 설 수 있는 것은 쓰러진 경험을 통해 바로 서는 법을 익혔기 때문이다. 「가을이 풀을 뜯으며」는 땅의 일들을 포착하는 시다. 이 가을에 뜯어 먹고, 집어삼키는 초식성 동물의 식성에 대해 언급한다. 그게 어떤 동물인지는 정확하지가 않다. 시인은 그게 “기린과 일지도 모른다”라고 모호하게 말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뿔도 없고 이름도 없는 이것은 동물이 아니라 가을이라는 계절이다. 시인의 상상세계에서 “평화로운 습성을 지닌 가을”은 왕성한 식욕을 가진 초식동물같이 들판과 풀숲과 길섶을 다 집어삼키며 지나간다. 이 가을에 밤나무들은 살찌고, 이슬들은 마른 채 사라지고, 누룩뱀과 개구리는 서둘러 동면에 든다. 가을이 끝난 뒤 겨울이 닥칠 무렵 가을은 제 위속으로 들어온 풀들이 소화될 때까지 “꼼짝도 안 하고 은신해” 있다. 그리고 “더 이상 뜯어먹을 풀이 없으면”. “흰 서리꽃이 피”는 마당을 “기웃거리”고 창문들이나 “들여다”보는 것이다. 가을을 초식성 동물로 바꾸는 이 시적 발상의 천진함에 우리는 웃을 수 있다.

  

 

 

 

프렉탈을 먹는 저녁

 

 

 

브로콜리와 양상추를 먹는 저녁

포만과 졸음이 교차하다가 섞이는

이 시간을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닮은꼴로 태어나고 죽는

일란성의 자연계를 뚝 떼어놓을 수는 없을까

 

닮은꼴로 너는 내 안에 생성되기도

내 안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왜 같은 맛의 음식을 매일 먹고

같은 베개를 베고 같은 시간을 정해 잠깰까

서로 크기만 다를 뿐

우주의 별과 별의 간주로 울고 웃을까

 

아직 그곳에서 나를 닮으려 유영하고 있는 너

빛나는 것들은 멀어서 그렇다고

너무 밝아서 우리는 서로 눈을 찡그리고

아련한 것들로 눈을 감으려 한다는 것

 

어린 날에는 왜

큰 상처들만 있는 것일까

 

인간이이서 인간의 고통이 있고

내가 죽어야 할 죽음을 미리 본다는 것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닮았다는 것

 

생일은 어떻게 한 살 더 많은 날을

거르지도 않고 찾아오는 것일까

그러다 버려지는 것일까

 

 

 

 

 

꽃들이 꺼지는 순간

 

 

 

툭 하고 꺼졌다

아버지는 캄캄한 방을 흔들어 촬촬 소리가 나면

불꽃이 수명이 다한 거라 했다

 

할머니에게 주려고 동백을 돌려 땄다

그때 퍽, 봄이 꺼졌다

 

알을 빻은 동백을 삼베주머니에 넣고

쥐어짜던 두 손 사이로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흘렀다

거센 물줄기만 끌어 올리던

할머니의 머리카락은 길게 아래로 흘렀다

 

꽃은 전류를 타고 온다

돌려 딴 동백을 받은 적이 있다고

돌려 끼우면, 백열등은

공중에 매달린 꽃이 된다고 지금도 믿는다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백열등을 돌려

방을 끈 적이 있다

 

떨어질 때 꽃술이 끊어지고

검은 머리카락이 풀렸다

 

꽃가지 하나를 꺾으면

몇 송이의 꽃들이 툭 하고 꺼지는 순간이 있다

 

 

 

 

 

 

려원 프로필

 

2015<시와표현> 등단.

시집: 『꽃들이 꺼지

 

 

1)  사람은 날씨에 따라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한 책은 날씨가 우리 “행동의 많은 부분들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생체 기능 속에서 자신이 처한 환경과, 자연의 순환 주기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자연의 순환 주기란, 지구의 자전과 이어지는 24시간 주기(/), () 주기의 변동이 수반되는,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의 공전과 연결되는 계절 주기들을 뜻한다. ‘생물학적 변수’라 부르는 여러 가지 물질들이 이 순환 주기들에 따라 우리 신체를 통해 생산되며 우리 행동의 많은 부분을 결정짓는다.” 알랭 코르뱅 외, 『날씨의 맛』, 길혜연 옮김, 책세상,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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