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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 홍경나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3/12 [16:25] | 조회수 : 127

 

  © 시인뉴스 포엠



 

다음                                    

홍경나

 

 

나는 한눈도 팔지 않고 다음을 생각하네

블루베리 아이스크림을 먹고 영화를 보자고 할까

붐비는 술집 말고 공원에서 저녁산책을 하자고 할까

너에게 가려고

여느 때처럼 청바지에 운동화 회색패딩점퍼를 입을까

내가 너보다 더 커 보일까 봐 신지 않았던

굽 높은 부츠에 레이스스커트를 차려 입을까

준비해간 말은 반도 못했는데

호주머니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는데

너는 다음을 말하네

그 말 너무 환해

나는 더 가까이 다음을 생각하네

내가 먼저 다가가 전화를 기다렸다고 말할까

전화기를 꺼두었다고 너를 기다린 적 없었다고

매일매일 연습해온 시시한 표정을 지어볼까

너는 다음으로 있는데

아직 내 눈 속에 그렇게 있는데

너는 또 그러네          

다음에 보자

너는 처음 말하는 것처럼 다음을 말하네

그 말 너무 생생해

나는 곰곰히 다음을 생각하네

먼눈팔다 들킨 사람처럼

네가 뒤돌아 볼까봐

내 시선에서 네가 사라질 때까지 그냥 있어보는 것처럼 환하게

 

 

 

 

 

 

 

 

 

 

  시작노트                                    

    홍경나

 

  동생이 많은 나는 고령 본가에서 혼자 지내던 친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러다 초등학교 입학을 하려고 대구 부모님 댁으로 올라왔다. 나를 데려다 놓은 다음날 할머니는 시골로 내려갔다. 버스정류장까지 쫓아나가 따라가겠다고 눈물 콧물 범벅으로 매달렸다. "우리 강생이 두고 내 멀리 안갈끼다. 이 할미 사흘 밤만 자고 다시 올끼다. 다음에 올라오면 꼭 같이 살자."하고 우는 나를 달래셨다. 언제나 내손을 꼭 붙잡고 다니던 다정한 그 손으로, 나를 절대 놓지 않으리라 믿었던, 같은 피가 흐르는, 따뜻한 그 손으로 몇 번이나 다음을 약속하고 다음을 약속했다.

  다음, 할머니는 오지 않았다. 사흘 뒤를 약속한, 다음엔 꼭 같이 살거라고 약속한 할머니는 다시는 오지 않았다. 평생을 기다렸지만, 샌날에도 진날에도 무싯날에도  끝내 오지 못했다. 여태도 나를 다음에 남겨둔 채…

 

 

 

 

이름:  홍경나

 

약력:  <심상> 등단 (2007)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창작기금 수혜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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