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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이 파란을 버릴 때 외1편 / 김려원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3/19 [13:51] | 조회수 : 148

 

  © 시인뉴스 포엠



귤이 파란을 버릴 때

 

 

지금은 귤이 파란을 버릴 때

속마음과 겉이 같아지는 때

어느 이름난 마을과 이웃들이 모반을 꿈꾸다

숨긴 생각 모조리 들켜버리는 때

울타리를 버리고 가시를 버리고

집 바깥을 버리고

밭으로 들어간 품종들

 

오래전 야반도주한 우리 집 탱자울타리가

밭 하나를 온통 차지하고는

비좁다, 비좁다, 제 구역 늘리며 노래져 간다.

 

귤은 손을 많이 타는 과일

가시울타리를 밀치고 가출한 오빠 같고

활짝 펴진, 찡그렸던 꼭지들은

양손 가득 선물꾸러미를 들고 돌아올 오빠 같지만

어느 밭에선가 파란을 버리고 있거나

어느 가판대에서 가지런해지고 있을 것이다.

 

하나로도 둘로도 낱개로는 팔지 않는 귤은

일종의 화폐단위인 셈이고 봉지들의 속셈

 

가시를 매단 탱자 울타리들은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옮겨 다니며

추위 근방을 지키고 있다.  

 

 

 

 

 

 

 

 

 

 

적록색약 띄어 읽기

 

 

지구는 대기권 밖에

더 빛나고 비좁은 빛을 둔다.

꼭지는 알겠지만 사과는

제 바깥에서 벌어지는 색깔을 구별하지 못하고

악천후에도 이불 속 솜은

늘 맑은 구름이 펼친 뭉게뭉게의

잠을 예감한다.

 

구름의 배후는 사과꽃받침만큼 잘 기워진

한 채의 이불,

기하학적 무늬들은 구름이 흩어져간 영역까지 불러들여

일관되게 붙어있다.

 

변할 까닭을 모르겠다는 단단한 낯빛으로

캡을 눌러쓴 신호등이 푸르고 노랗고 붉다

그러면서도 익지는 않는 것이

내 어머니의 한탄과 닮았다.

 

손에 들었을 때와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달라지는 사과 색깔을 오물거리며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다투는 일은

잘 기워진 한 채의 이불을 뜯어내는 기분이랄까

어머니가 별불가사리 심사로

총총 다져온 홈질을

쪽가위로 예리하게 자르는 기분이랄까

 

푸르다가 노랗다가 붉어져온 어머니가

뭉게 한 땀 뭉게 한 땀 일몰을 깁고 있다.

 

 

 

 

 

 

 

김려원

2017 진주가을문예 당선. 변방 동인.

「귤이 파란을 버릴 때」 수록지-『얼룩무늬 손톱』 2019 변방 제34

「적록색약 띄어 읽기」 수록지- 『시산맥』 2018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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