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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선의 시평-1 / 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 이 건 청

서대선교수 | 입력 : 2020/04/10 [23:20] | 조회수 : 102

 



 

 

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

                     

                        이    

 

 

곡마단이 왔을 때

말은 뒷마당 말뚝에 고삐가 묶여 있었다.

곡마단 사람들이 밥 먹으러 갈 때도

말은 뒷마당에 묶여 있었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꼬리를 휘둘러 날것들을 쫒거나

조금씩 발을 옮겨놓기도 하면서

하루 종일 묶여 있었다.

 

날이 저물고, 외등이 환하게 밝혀지고

트럼펫 소리가 울려 퍼질 때까지

말은 그냥 뒷마당에 묶여 있었다.

곡마단 곡예사가 와서 고삐를 풀면

곡예사에 끌려 무대에 올라갔는데

말 잔등에 거꾸로 선 곡예사를 태우고

좁은 무대를 도는 것이 말의 일이었다.

 

크고 넓은 등허리 위에서 뛰어오르거나

무대로 뛰어내렸다가 휘익 몸을 날려

말 잔등에 올라타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는데

곡예사는 채찍으로 말을 내리쳐

박수소리에 화답해 보였다.

 

곡예사가 떠나고 다른 곡예사가 와도

채찍을 들어 말을 내리쳤다.

말은 매를 맞으며 곡마단을 따라다녔다.

 

곡마단 사람들이 더러 떠나고

새 사람이 와도

말은 뒷마당에 묶여 있었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꼬리를 휘둘러 날것들을 쫒거나

조금씩 발을 옮겨놓기도 하면서

평생을 거기 그렇게 묶여 있을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채찍에 길들여진 실존

 -이건청 시인의 「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를 읽고

 

                                      서 대 선(시인)

 

 

  ‘도망쳐, 염소야. 도망쳐’

수 십 마리의 땅벌들이 목 젓에 달라붙은 것 같은 통증에 시달리며 악몽 속에서 간신히 탈출한 새벽, 임파선과 목 젓이 부어 침도 넘어가질 않았다. 오래전 중국 최남단 섬인 하이난도를 여행했을 때, 여행상품에 끼어있던 서커스단 곡예를 별 생각 없이 따라가 앞줄에 앉았었다. 공산국가에서 기예를 익힌 인간 서커스의 기교는 가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사회자가 자신의 서커스단에만 있다며, 마이크를 삼킬 듯이 커다란 소리로 자랑한 ‘염소의 외줄타기’.

 

  무대 위에 2미터 정도 높이의 외줄이 설치되고, 채찍을 휘두르며 번쩍이는 의상을 입은 자의 뒤에서 조용히 따라 나오는 염소 한 마리가 눈에 들어 왔다. 외줄 끝 사다리를 뒤뚱뒤뚱 올라간 염소는 가느다란 외줄 앞에 섰다. 무어라 외치는 소리와 함께 채찍이 허공을 동그랗게 말았다가 염소의 엉덩이에 풀어 놓자, 염소는 갈라진 발톱 사이로 밧줄을 끼우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중간쯤에 이르자 염소는 잠시 주저하는 자세를 취했다. 다시 한 번 채찍이 우아하고도 단호하게 허공을 말아 쥐자, 흠칫 놀란 염소는 질금질금 오줌을 지리며 마지막 남은 줄을 건넜다. 곧이어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인간의 기예보다 더 큰 박수와 환호를 뒤로하고 조용히 채찍을 따라 무대 뒤로 사라진 염소. 여행기간 내내 오줌을 질금거리던 염소가 따라다녔고, 사는 일이 힘들 때마다 꿈속을 찾아오곤 했다.

 

  외줄을 성공적으로 건넌 염소가 바란 것은 관객들의 환호였을까? 힘차게 울리던 박수소리에 대한 성취감이었을까? 아니면 허기를 메울 한 끼 나뭇잎 더미였을까? 아니다. 틀렸다. 무엇에도 묶이지 않은 염소가 서커스단을 탈출하지 못하는 것은 모든 희망을 포기한 깊은 좌절감 때문인 것이다. 외줄에서 떨어질 때마다 전신을 훑고 가던 전기충격이었거나, 살 속  을 파고들던 채찍을 통해 학습된 무력증(learned helplessness)에 의한 것이었으리라. Seligman(1991)은 실험용 개가 자갈을 물린 채 가죽 끈으로 묶여 여러 번 반복된 충격을 경험하는 동안 그 충격을 피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었을 때, 이 개는 깊은 좌절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을 발견 하였다. 그 후, 개를 묶었던 고리를 벗겨놓아도 탈출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포기하는 무기력을 학습하게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인간의 경우도 자신 스스로 통제력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고통스런 경험을 반복하여 당하게 되면 무기력해지고 좌절하여 낙담하게 되는 것이다. 현실에서 억제 당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외적 요인 때문이라고 인식하여, 마치 “곡마단 사람들이 더러 떠나고/새 사람이 와도” 자신은 “묶인 말”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채찍에 “매를 맞으며”, 자신의 내면 깊숙이 묻혀버린 자유의 의지(freedom of will)를 꺼내어 쓰지 못한 채 “하염없이, 하염없이” “평생을 거기 그렇게 묶여 있”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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