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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의 오독 / 이 수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4/14 [10:49] | 조회수 : 229

  © 시인뉴스 포엠



 

복기의 오독

 

        이 수

 

 

  체온이 아침에서야 지난밤 불빛을 읽고 있어 왜 얼굴들

은 계절마다 다른 표정을 짓는 걸까 빛 기울기에 맞춘 눈

빛처럼

 

  당신 목소리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서사가 탄생하고 있어

그곳에는 왜 태양이 없는데도 그림자만 우글거리는 거야

 

  어제는 발효 중이라서 부풀어 오르고 있어 벽에 창문이

생기는 순간 터진 그녀의 울음처럼

 

  저녁의 바람이 어제 물결을 쓰다듬고 있어 강물에 날아

든 오리를 잊은 듯, 그럼 우리 문장은 어디서부터 오독에

풀린 거야

 

  구멍 뚫린 튜브에서 나오는 검은 바람 때문에 당신 발목

이 묶여 있어  

 

 

 

물의 무덤

 

   이 수

 

 

거기에는 호수 위에 산책로가 휘감겨 있었다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걷다 보니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우리는 흘러가고 있었다

 

물속의 버드나무들이 벌을 서는 듯

뿌리는 물속에 몸통은 바깥으로 고개 돌릴 때마다

 

물의 그림자에는 연둣빛 핏물이 번졌다

 

하얀 벌레 같은 꽃씨들

공중에서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머리와 옷에 달라붙어 있는

꽃씨들의 흡착력은 겁이 없어 슬펐다

 

봄이 동심원을 그리는 계절의 눈이라면

씨앗은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지도의 꼭짓점

물 위로 꽃씨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물결이 무늬를 접으며 흐르고 있었던가

다 접고 나면 종래에는 가라앉는다는 강박에서

모든 것들은 물속에 무덤을 만든다

 

버드나무는 죽으면 머리를 무덤 쪽으로 둔단다

산책로는 물의 감옥일까 비상구일까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꽃씨들의 혼몽 같은 한낮

현기증이 몰려올 때마다

우리들의 얼굴 윤곽이 달라지고 있었다

 

 

 

 

 

 

하수구

 

 이 수

 

 

  너는 버려진 검정 눈물이다 너울너울 모든 빛깔 머금은

영혼들, 가파르게 떠밀려 온 흰빛의 자리 더듬어본다

 

  화려할수록 뒷문으로 통하는 그림자는 하얗게 질렸다 빗

발에 흐느끼는 네온사인, 거리는 구토로 매물되었다

 

  정체 모를 검은 봉지들이 떠내려온다 고양이 발톱이 부러

져있다 어둠의 찌꺼기들이 모여드는 곳

 

 

  숨이 흘러나오는 침출수에서 어제의 그림자가 새어 나온

다 여기는 바닥을 가늠할 수 없으므로 헤어 나오기 어렵다

 

  누군가 너에게 검은 자궁을 닮았다고 했다 버려진 체온

으로 떠도는 여자의 뒷모습, 어떤 슬픔은 전염의 속도가 빠

르다

 

  어디선가 검푸른 바람이 불어온다 늦지 않았다는 듯 풀

들이 아우서치고 있다 밤의 한가운데서 타전된 구조 신호들

 

 

 

 

-시작노트-

 

 

  집으로 가는 길 하천을 따라 걷는다 하천으로는 모든 찌꺼기들이

모여들고 있다 검정물이 하렴 없이 흐르고 있다 다 우리들의 흔적

들이다 냄새를 동반하는 것은 당연할 일 그 하천 한 가운데서 물풀

들이 푸른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자라고 있다 아직 우리에게도 되돌

릴 기회가 있다는 듯이

 

 

 

 

약력:  충남 태안 출생 2017년 시작 등단

           2018년 아르코 창작기금 수혜

      시집 <오늘의 표정이 구름이라는 거짓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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