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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선박사] ‘예술’을 입힌 노년: 한 차원 높은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4/19 [10:29] | 조회수 : 293

 

▲     ©시인뉴스 포엠

 

 

XIV. ‘예술’을 입힌 노년: 한 차원 높은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작업이다. ‘미’는 진·선·성과 함께 4대 절대 진리 또는 가치에 속한다. 아름다움을 보면 즐거움을 느끼고, 그 순간 행복이 함께 한다. 이처럼 예술은 정신적 가치인 동시에 행복의 조건이다. 노년들이여!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겨라. 자연이든 인공적인 것이든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다. 21세기를 ‘예술의 세기’라고 부른다.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예술이 다양화되고, 예술 환경이 광범하게 조성되고 있다. 마음 문을 열고 바라보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 자신의 마음상태가 결정한다.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은 더 귀한 작업이다. 아름다움으로 자신의 마음을 채색하게 되면 노년도 아름다워지고 행복이 함께 할 것이다. ‘문화적 행복’: 한 차원 높은 행복을 누리는 길이다.

 

(1) 예술이 ‘문화의 세기’를 주도하고 있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인간은 문화적 동물로써 한편으로는 문화를 창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를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다양한 문화 활동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삶을 풍부하게 만들고, 행복을 한 차원 높여준다. 이러한 문화적 행복을 ‘4차원적 행복’이라고 부른다. 노년들도 경제발전 덕분에 생활의 여유가 생기면서 문화를 즐기며 행복한 생활을 지향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어떤 화가는 예술이란 “입맞춤도 섹스도 숨 쉬는 것도 사는 게 예술 아냐?”라고 묻는다. 그런데 사는 것이 곧 예술이 아니라 인간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동물로써 예술은 인간사회를 아름답게 만들고, 사람들의 문화생활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예술이란 “청각과 시각을 통해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예술은 제한된 현실 속에서 정신적 자유와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술의 본질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 있지만, 예술도 시대정신에 따라 그 형식과 내용이 변화하고 있다. 과학 ‧ 기술의 발전은 사진 ․ 영화 ․  텔레비전 ․ 비디오 등 새로운 예술영역을 넓혀가고 있으며, 특히 사이버공간에서 디지털매체 예술이 번창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근본정신은 변함이 없으며, 예술은 힘든 인생·황막한 세상을 벗어날 수 있도록 만드는 도구적 역할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문화적 동물로써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이상의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데, 바로 그 영역이 ‘예술’이다. 괴테는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하루 한 편의 좋은 시와 음악과 미술을 접하도록 권유했으며, 도스토예프스키는 “인생은 위대한 예술이다. 산다는 것은 자신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아름다움에 몰입할 때 즐거움을 느끼는데, 때로는 엑스터시를 느낄 때 행복은 최고조에 이른다. 사르트르도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완전한 자유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예술작품처럼 창조해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노년에는 시간이 많으므로 각종 예술을 즐기며 살 수 있으며, 나아가 인생을 예술처럼 사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인생이다. 노년에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것이 곧 성공이요 행복이다. 노년의 행복은 물질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골몰하지 말고, ‘정신적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행복의 차원을 높이는 것이 자아로 가는 길이다. 문화에 대한 관심을 넓힐 수록 행복의 영역도 넓어진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예술작품을 감상하거나 직접 창작활동을 함으로써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이 ‘문화적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2) 예술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

 

     

  비디오 예술의 세계적 거장인 백남준은 “예술은 싱거운 것입니다. 짭짤하고 재미있게 만들려고 예술을 하는 거지요.”라고 말했다. 노년에는 인생을 즐겁고 보람 있게 만들기 위해 예술과 관련된 취미를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술 활동은 스트레스를 풀어 주고, 단순한 생활에 윤기를 불어 넣으며, 나아가 외로움을 극복해주고, 삶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어준다. 최근에는 마음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아트 테라피’가 확산되고 있다.

  사람마다 소망, 취향, 능력, 환경 등이 다르므로 어느 장르든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선택해서 감상하며 즐기면 되고, 직접 창작활동을 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워야 하며, 용기와 도전이 필요하다. 배움의 시기는 따로 없으며, 언제라도 결코 늦지 않다. 노년에는 시간이 많으므로 뜻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평생 배우면서 사는 인생이 풍부해지고 행복해진다. 문화생활을 취미로 하게 되면 그 속에서 행복감을 누리게 되고, 자신의 행복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다.

  배움으로써 예술에 대한 기법이나 지식은 물론 영감을 얻게 된다. 노년에는 이처럼 인생을 즐기는 취미를 개발하여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면서 부족한 행복을 보완할 수 있다.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도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 커피 마시고 음악 들으며 대담하고, 심지어는 술 마시며 독서하는 카페가 유행이 되고 있다. 먹고 마시며 작품을 감상하는 미술관도 있고, 화랑처럼 그림을 전시하고 있는 카페들이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예술가들과 점심을 함께 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곳곳에서 ‘길거리 문화행사’를 함으로써 도시를 예술로 입히고, 사람들의 마음을 예술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복합공간이 곳곳에 생기고 있다. 이처럼 예술 감상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추구하면서 인간은 성숙해 간다. 노년이란 기간은 이처럼 인생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들의 행복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3) ‘문학작품’을 읽으며 위로를 받는다.

 

  대중들에게 가장 보편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분야가 ‘문학’이다. 문학에는 시·소설·희곡·수필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잘 빚은 문학작품은 마음을 카타르시스 한다.” 고 했다. 노년에 문학작품을 읽으면 경험을 토대로 그 스토리에 재미를 느끼고 위로를 받는다. 시를 감상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치유하는 것은 인생을 행복의 길로 인도하는 방법 중에 하나이다. 이반 일리히는 공생에 필요한 세 가지 요소로 자전거, 도서관과 함께 시를 들고 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이 단지 젊은이들의 감상을 자극하는 데 머물지 않고,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나 시를 읽음으로써 마음을 치유하고 정화시킬 수 있다.

  노년에도 작품을 통해 자신의 아픔을 카타르시스 하고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이때 그 스토리에 몰입하게 되면 영감을 받고 황홀감을 느끼며, 최고의 행복을 누리게 된다. 무엇보다 마음이 적막 속으로 들어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간접 체험을 하면서 살아있는 지식을 넓혀간다. 등장인물들 중에서 자기의 이상형을 발견할 수도 있다.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단지 소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간접체험을 통해 인생의 폭을 넓힐 수 있으며, 문화적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최근에는 독서를 통해 정신질환을 치유하는 ‘독서치료’가 널리 전개되고 있다. 전문지식이 없어도 읽을 수 있고, 나름대로 판단하면서 즐거움을 누린다. 책 속에서 여행을 할 수 있고, 세상의 모든 스토리를 접할 수 있다. 자신의 취향에 따라 장르를 선택하면 된다. 감수성이 예민할수록 시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노년에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문학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최선의 소일방법이 되고, 자신을 행복의 경지로 끌어올릴 수 있다.

 

 

(4) 작품 속에는 ‘인생의 길’이 숨어 있다.

 

  고전적인 문학작품을 읽으면 그 속에 인생의 길이 숨어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한가의 단면을 보여준다. 좋은 작품을 많이 선택해서 읽을수록 자신의 내면세계는 풍부해지고, 행복으로 가는 길을 시사 받을 수 있다. 시간이 허락되는 노년에는 문학작품들을 다독하는 것이 스스로를 구원하는 좋은 방법이다. 노년에도 문학작품을 읽는 중에 내면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면 간혹 엑스터시를 느낀다.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인공행복’ 못지않게 흥분되고 큰 기쁨을 맛볼 수도 있다.

  “이제 무얼 하지. 고도를 기다려야지. , 그렇지.” “음 갈까? 그래, 가자.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베켓트의 희곡‘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제다. 꿈을 잃고 절망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관계가 끊어지고, 소통이 안 되고, 모든 것을 상실하고, 절망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현대인들. 누구나 고도를 기다리며 살고 있다. 인간의 숙명이다. , , 희망, 사랑: 고도는 누구인가?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지만, 자신이 선택하면 된다. 행복에 다가가는 방법, 구원으로 가는 길, 자신이 원하는 고도를 선택하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면 되니까.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는 우리들에게 하나의 교훈을 준다. 조각배 타고 단신으로 고기잡이 하는 노인, 84일째 고기 한 마리 못 잡고 바다에서 시간만 낚고 있다. 운이 안 따른다. 85일 째 되는 날‘오늘은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며 어느 때보다 일찍 바다로 나가 해질 무렵 드디어 대어를  낚았다. 녹새치 배보다 더 큰 워낙 커서 배가 오히려 바다로 끌려 나간다. 그러나 항구로 들어오는 동안 상어 떼가 나타났다. 상어 떼와 싸우면서 중얼거린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고. 안간 힘을 다해 싸웠지만 녹새치는 뼈만 남았다. 소년이 찾아와 위로한다. 노인은 피로에 지쳐 잠들었고, 라이온 꿈을 꾼다.

  괴테의 명작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텔레스는 파우스트에게 쾌락적 삶을 선사하고 영혼을 넘겨받기로 신과의 약속을 한다. 청년이 된 파우스트, 순수한 처녀 그레트헨을 만나 세속을 방황한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것이다.’ 이 명제를 입증하듯이. 인간 파우스트에게는 두 개의 영이 갈등을 한다. 하나는 음탕한 애욕에 빠지고, 다른 하나는 숭고한 선의 영역에 오르고. 그 투쟁과정이 파우스트의 일생이다. 젊음은 사라지고 눈도 먼 채 늙은이로 돌아온 파우스트, 인간의 지혜로 마지막 선택을 한다. 세속적인 권력욕을 숭고한 인류애로 승화시키기 위해 신에게 하사 받은 땅을 비옥한 땅으로 개간하기로. 하늘의 은총을 받은 속죄의 여인 그레트헨의 사랑이 그를 구원한다. 사랑만이 사랑하는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 긴 역정을 마감한 파우스트, 천사들의 합창소리 들으며, 천상으로 올라간다.

 

(5) 문학작품을 ‘쓰며’ 행복을 누린다.

 

  최근에는 젊은이들 뿐 아니라 노년들도 직접 글을 쓰면서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대학의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비롯해서 백화점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문화센터 등 문학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이 늘어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심지어는 정상적으로 학교교육을 받지 못한 노년들이 자격시험을 통해 대학에 들어가고, 자기가 하고 싶은 전공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배운다는 것은 그 자체가 기쁨을 주고 행복으로 인도한다.

  글쓰기에 몰입하는 것은 작가가 되는 것 이상으로 자신을 구원하는 성스러운 기능을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스런 작업이지만, 다 쓰고 난 후에는 보람과 기쁨이 행복을 가져다준다. 일상적으로 쾌락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정신활동을 통해 자아완성으로 가는 것이야말로 높은 단계의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그러므로 노년에도 문학작품을 직접 쓰면서 자신의 인생을 가꾸는 작업이야말로 아름다운 예술이요 자신을 행복의 세계로 인도하는 성스러운 작업이다.

 

  수필은 누구나 쓸 수 있다. 문자 그대로 붓 가는 대로 쓰면 되는 것이 수필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고 쓸 수 있는 것이 수필이다. 일기를 쓰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으며, 자서전을 쓰는 사람도 많이 있다.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동시에 글쓰기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여행을 하면서 여행기를 쓰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여행을 하면 길 위에서 해방되어 자신을 만나 비로소 자유함을 느끼고 행복감을 누리게 된다. ‘이곳’에서 누리는 ‘지금’이 내 인생이요, 여기에 만족하면서 여행하는 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것을 몸소 경험하게 된다.

  최근에는 시를 직접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노년에도 시를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도 행복을 누릴 수 있지만, 그 인생은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는가? 일본의 시바다 도요 할머니는 92세에 시를 쓰기 시작해서 7년 만에 시집을 출간하였는데, 세계적으로 회자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다. “인생이란 언제라도 지금부터야. 누구에게나 아침은 반드시 온다”는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노년들에게도 용기와 힘을 주고 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바로 시작할 때이다. 누구나 지금 시작하면 행복으로 가는 길이 보일 것이다.

 

(6)  ‘음악’은 영혼에 즐거움을 선물한다.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발산하고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수단이고 방법이다. 음악만큼 사람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어 감동을 주는 것은 없다. 예로부터 음악은 사람들의 흥을 돋우는 수단으로 주술·노동·운동·종교 등에서 ‘원시적 자극제’로 이용되어 왔다. 공자의 예악사상에 의하면, 음악은 가난하면서도 즐길 줄 알고 부자이면서도 예를 지키면서 사는 교화의 기능도 수행하였다. 그래서 모든 행사에서는 음악프로그램이 있어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하나로 화합시키는 기능을 한다.

  음악미학자 한슬리크는 음악은 단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정신세계를 보여준다고 했고, 베토벤은 음악이 어떤 지혜나 철학보다 더 높은 계시를 준다고 말했다. 많은 위인들이 음악을 들으면서 위대한 작품을 남겼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의 행복도가 그렇지 아니한 사람들보다 높다. 그래서 누구나 음악에 열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추어져 있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음악을 즐기면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음악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를 선택해서 들으면 된다.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마음의 평화를 누리면서 행복해지면 된다. 일반인들에게는 음악 감상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들으면 된다. 다만 음악에 대한 지식과 선호도에 따라 듣는 장르가 다르고 감상하는 방법이 다를 수 있다.

  음악은 피로를 풀어주고, 안정감을 주며, 사색을 하게 만들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해준다. 음악인의 95%가 때로는 황홀감을 느낀다고 한다. 노래를 직접 부르면 스트레스가 풀릴 뿐 아니라 면역력이 생기고, 기쁨을 줄 뿐 아니라 노래 그 자체가 항우울제 역할을 한다. 악기 연주를 배우는 것은 가장 확실한 행복 레시피 중에 하나라고 한다. 음악은 최고의 문화적 행복을 누리는 도구이다. 누구나 쉽게 접하고 누릴 수 있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음악으로 감정에 덧칠을 하면 그 인생은 더욱 행복해질 것이다.

 

(7) ‘음악 감상’을 하며 삶의 리듬을 얻는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들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노년에 음악 감상을 하며 소일하면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데,  그런 노년은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가? 플라톤은 음악과 체조를 정신적 치유법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많은 위대한 인물들이 음악을 통해 치유를 받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 창조의 밑거름 역할을 한다. 언제부턴가 저자도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고 있다. 이 시간 마음은 영혼과 만나 아이디어를 얻게 되고, 행복의 골짜기를 비상한다. 오늘날 ‘음악 치료’가 유행을 하고 있으며, 특히 노년에게 효과가 있다.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러한 치유방법을 실시하고 있다. 음악은 뇌의 발달을 돕고, 고통을 덜어주며, 엔도르핀을 생산하고, 신체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음악 치료는 심장병․ 뇌졸중․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기분 장애 등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음악 치료는 비용이 들지 않으므로 경제적이고 쉽게 활용할 수 있다. 건강이 좋지 않거나 장애가 있는 노년에게는 더 좋은 방법이 없을 것이다.

 

  어디서 언제든지 자기가 원하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 현대인들에게는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은 그 종류가 다양하여 모든 사람들이 다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맞는 장르를 선택해서 즐기면 된다. 노래방에 가서 직접 노래를 부르는 것도 스트레스를 푸는 좋은 방법이다. 노래를 부르고 있는 순간 이 세상은 내 안에 없으니 나는 천국을 거닐고 있는 것이다. TV 프로그램 중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불휴의 명곡이 인기를 얻더니 히든 싱어, 복면가왕, 듀엣 무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나와 음악예능의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여러 모습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청중들이 연호하는 것이다. 노래에 공감을 하면 그만큼 행복지수도 올라간다. 여기에 몰입을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 속에서 한 줌의 행복을 누린다. 'almost paradise'를 들으며 거의 천국에 간 기분으로.

 

(8)  ‘미술관’을 유람하며 마음에 채색을 한다.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문화적 행복을 누리는 좋은 방법이다. 아름다움이란 시각적으로 기쁨을 주는 것이라고 할 때, 이것은 ‘미술’을 말한다. 그러나 작품의 세계로 들어가 화가의 의도나 사상을 생각하게 되면 작품 속에서 여행을 하게 된다. 화가들은 창의적 작품을 그리기 위해 고심을 함으로써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 과정에서 몰입을 하게 되면 또한 행복을 느낀다. 헤르만 헤세는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을 치유했다고 한다.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일차적으로는 눈을 통해 미적 감각을 느끼게 되고, 일단의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참된 미술 감상은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으로 그림과의 대화를 통해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 때로는 작품에 몰입하면서 엑스터시를 느낀다. 회화의 종류는 실로 다양하지만, 그 세계를 섭렵하면서 미를 감상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대표적인 문화적 행복에 속한다. 노년에는 시간의 여유가 있으므로 미술관들을 섭렵하며 미술작품들을 감상하는 것이 행복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다.

  현대 미술의 경향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데 있으며, 창조성을 추구하기 위해 새로운 소재나 기술로 영역을 넓혀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종래 미술과 과학은 각기 미와 진리를 추구하므로 서로 이질적이고 배타적으로 인정되어 왔지만, 오늘날 이들은 서로 교차하면서 공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새로운 예술영역이 생겨났는데, 사진술이 그 대표적인 영역이고,  영화 ‧ 비디오 ‧ 텔레비전 기술의 발달은 여러 유형의 설치미술을 가능케 만들었다. 심지어는 인터넷의 발달로 가상세계를 무대로 하는 ‘디지털 매체 예술’이 날로 번창하고 있다. 과학과 미술의 숙명적 만남은 예술영역을 확장시키고 있으며,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보고 즐기는 세상이 되었다. 덴마크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은  “내 작품에서 관람객들은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이자 작가이고, 나는 기계 제작자일 뿐”이라고 말했다. 제작자의 의도를 밝히느라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권유한다. “당신이 느끼는 감정이 바로 예술이니까.” 이처럼 다양한 미술작품을 관람하면서 마음을 치유하고 희열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차원을 한 단계 높이는 것이다.

 

 

(9) ‘미술작품’ 속에서 인생을 읽는다.

 

  국민화가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이중섭, 백년의 신화’를 보러 갔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골판지나 담뱃갑 은박지에 그린 그림들이고, 캔버스에 그린 유화는 거의 없다. 가난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고, 끊임없이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추구한 결과라고 큐레이터는 설명한다. 일제치하의 억압적 생활, 북한에서의 고립된 생활과  6.25전쟁 중 궁핍한 생활 속에서 대형 유화를 그릴 수 없었다는 것이 아쉽다. 만년에는 정신질환으로 다섯 번이나 병원에 입원을 했었고, 마지막으로 적십자병원에서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하는 비운의 예술가였다. 그의 나이 40. 그의 작품 속에서 흐르고 있는 작가정신은 ‘그리움’이었다. 일본으로 건너간 가족들에 대한 사랑과 만나지 못하는 그리움이 그의 손을 통해 작품으로 승화된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에 들리니 르누아르의 개인전 ‘르누아르의 여인’이 열리고 있다. 단일작가를 테마로 하면서 ‘여성’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다. 여성을 그린 작품들로만 전시되어 있다는 것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과연 르누아르에게 여성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까? 어린 아이에서부터 여성노동자, 평범한 여인들, 가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그렸다. 여성은 삶을 상징하는 존재로서 그의 예술의 원천이 되었다. 인상파의 거장답게 “나에게 그림이란 사랑스럽고 즐겁고 예쁘고도 아름다운 것이어야 하며”,  “그림은 영혼을 씻어주는 선물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 문장 안에 그의 미술이 지향하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는 말년에 류마티스로 고생을 하면서 더욱 아름다운 작품을 남겼는데, “고통은 지나간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남는다.”는 말로 인생을 정리하고 있는 듯하다.      

  인사동의 한 화랑에서 열린 동양화 전시회에 갔다. 조그만 화랑에서 하는 전시회라 규모가 작고 작품도 많지 않다. 그러나 동양화의 참맛을 즐기기에는 아주 좋다. 서양화가 덧칠을 해서 화폭을 가득 채우는 데 반해 동양화의 미적 특징은 ‘여백’에 있다. 그림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촐한 모습에서 더 깊이를 느낀다. 여백은 그림에 있어서 ‘비움’을 의미한다. 비움을 적당하게 배경으로 둠으로써 그림을 채우는 것으로 이것이 미를 창조하는 것이다. 화가가 무엇을 표현하려는 의도가 있든 없든 간에 그 의미를 해석하여 채우는 것은 관람객의 몫이다. 그래 인생도 매한가지다. 삶에 여백을 잘 만들어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자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간다. 지금 그림들을 감상하면서 다시 배우며 행복으로 건너가고 있다.  

 

(10)  다양한 ‘영화’를 보면서 새로운 세상을 체험하고 즐긴다.

 

  영화가 초기에는 대중들의 소일거리로 여겨지고, 예술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의 기술이 발달하고 콘텐트가 다양해지면서 영화도 예술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영화(screen)가 스포츠(sport), (sex)과 함께 3S로서 즐기는 문화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되었다. 영화는 보고 듣고 느끼는 ‘종합예술’에 속한다. 예술이 기계와 접목되면서 그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영화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가지게 되었다. 영화를 보면 그만큼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정보를 얻기도 하고 새 세상을 체험하게 된다. 짧은 시간에 쉽게 하나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므로 보는 재미가 무엇보다 쏠쏠하다.

  프랑스 영화 ‘사랑이 이끄는 대로’(원제목: 남과 여)를 보았다. 다른 영화들보다는 사랑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주인공들이 문제를 제기한 것처럼 남과 여가 만나면 어떻게 될까 의문이 생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남자 주인공 앙투안은 영화음악 작업 차 인도에 가서 대사관 만찬 자리에서 매력을 가진 대사 부인 안나를 만난다. 간지스 강의 도시 바라나시로 사랑의 신을 만나러가는 안나의 여정에 동참하면서 특별한 로맨스는 시작된다. 남자 주인공은 제일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니까 여주인공은 그러면 ‘사랑을 사랑하는 거냐’고 묻는다. 자기 종교는 ‘사랑’이라고 하는 그는 사랑을 쫓아 방황하는 낭만적인 음악가 파리장이다.

 

  결혼보다 더 좋은 것이 연애라고 하면서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사랑만을 추구하고 있다. 하나의 사랑 패턴임에 틀림없지만, 사랑의 정도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이 선택한 길이라면 굳이 비난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랑만이 모든 것을 구원할 수 있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사랑의 한 유형을 영화를 통해 간접 체험하는 것은 노년의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그런데 공항에서 몇 년 만에 만난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 간극을 보는 듯해서 그 잔영이 계속 마음속에 남아있다.

 

(11) ‘영화 속 사랑’을 보러 가는 마음은 행복하다.

 

  영화 The Note Book이 다시 보고 싶은 최고의 로맨스 영화 1위에 올랐다고 해서 보러 갔다. 노년에도 사랑 이야기는 가슴을 설레게 만드니까. 17살의 노아는 밝고 순수한 미소를 보이는 앨리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두 사람은 운명적인 첫사랑에 빠지지만, 그녀의 부모는 불장난으로 치부한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부모의 반대에 부딪쳐 앨리는 먼 도시에 있는 대학으로 떠난다. 노아는 잊지 못하고 365일 동안 매일 같이 편지를 보내지만, 앨리 어머니는 한 번도 전해주지 않는다. 그곳에서 앨리는 운명적으로 부유한 가정 출신의 새로운 사람을 만나 약혼까지 한다. 그러나 그녀는 약혼한 몸으로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노아를 찾아온다. 정신적 혼란을 겪으면서도 다시 몸을 섞고 사랑을 불태운다.

  며칠간 연락이 두절되자 약혼자는 이곳으로 앨리를 찾아와 두 사람 사이를 알게 되고, 다시 사랑한다는 다짐을 받고 돌아간다. 결혼을 하였음에도 그녀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다시 첫사랑에게 돌아온다. 주인공 두 사람은 끝으로 “사랑이 우리들을 같이 가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베드 위에서 나란히 누워 저 세상으로 여행을 떠난다. 첫사랑에 관한 추억이 가슴 아픈 스토리로 엮여 있지만, 세월이 흐른 만년에 돌아보는 것은 아름다운 풍경처럼 스크린 속에서 흘러간다. 누구도 그 사랑을 심판하지 말지어다. 그들에게는 그것도 아름다운 사랑이었으니까. 노년에는 이처럼 과거를 회상하면서 추억의 한 토막을 되돌아보는 것도 행복으로 이끌어간다.  

    

(12) 연극’을 보며 인생의 폭을 넓히고, 행복의 질을 높인다.

 

  섹스피어는 “세상은 무대이고 인생은 한 편의 연극”이라고 했다. 한 편의 연극을 보면 인생의 한 유형을 간접 체험하게 된다. 그것이 희극일 수도 있고, 비극일 수도 있지만. 노년에는 한 편의 연극을 보면서 인생의 뒤안길을 음미해보면 인생을 정리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인생이 새로워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연극은 ‘만남의 예술’이라고 한다. 배우와 관객이 무대 위에서 대사나 행동을 통해 영적인 교류를 하는 것이 연극의 특징이다. 괴테의‘파우스트’나 단테의 ‘신곡’을 보면서 내 정신은 새롭게 무장을 하게 된다. 이들 작품의 테마는 무엇인가 추구하고, 주인공들의 인생 역정을 추종하느라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보았다. 좋은 작품이 올라오면 찾아 관람하면서 인생의 폭을 넓혀 가는 것이 문화적 행복을 누리는 길이다.

  배우의 몸짓, 무대공간과 테크노로지들이 한데 어울려 극적 효과를 이루고자 한다. 물론 받아드리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연극 속에 나를 투영시켜 다른 인생을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새로운 스토리로 내 인생에 대입시켜보는 것은 마치 새 삶을 누리는 기분이 든다. 때로는 치유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분개하기도 한다. 그만큼 내 인생은 성숙해진다고나 할까? 그러므로 연극을 관람하면서 여가를 즐기면 인생의 폭을 넓히기도 하지만, 인생을 즐겁게 만들어 행복도를 높여갈 수 있다. 노년에는 시간의 여유가 있으므로 좋은 작품을 찾아 관람함으로써 행복을 쌓아가는 것이 행복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그 스토리를 되새김질하면서 행복을 쌓아올린다.

 

 

(13) 배우들과 소통을 하면서 그 세상의 ‘주인공’이 된다.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체홉 원작‘갈매기’(펠릭스 알렉사 연출)를 보러 갔다. 주인공 이혜영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울음을 터트리면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했다. “엄마의 잔정 없이 자랐고, 웃을 일도 행복할 일도 별로 없었어요. TV명화극장을 보면서 진저 로저스, 줄리 앤드루스 같은 여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도망치고 싶어도 물을 떠날 수 없는 갈매기의 숙명처럼 등장인물들은 방황하고 있는데, “어쩌면 그런 결핍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 연극에는 결핍과 그리움 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한다”는 철학이 흐르고 있다. 지루한 일상 속에서 변화를 구하지 못하는 인물들에서 죽음은 피할 수 없으니 그대로 받아드리고,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명제가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노년에는 이러한 일상 속에서 살고 있는데, 이런 환경을 극복하고 발전을 하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면 이 작품을 관람한 충분한 가치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중섭 화백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길 떠나는 가족’이 연희단거리패 30주년 기념공연으로 다시 서울 무대에 올랐다. 미술전시회가 정적으로 그의 예술 세계를 보여주었다면, 연극은 동적으로 그의 인생을 형상화하고 있었다. 이중섭은 천박한 상업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스스로 고립을 택하여 그림 그리기에만 전념하였으며, 자기 작품은 완성되지 못한 ‘가짜’라고 스스로 폄하하면서 ‘0’ 즉, 완전성을 추구하는 자세로 그림을 그렸다. 궁핍 속에서도 오직 그림만 그리며 살았기에 가족들은 가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일본으로 건너가고, 말년에는 홀로 방황을 하면서 고독한 생활을 했다. 전시회에서 받은 판그림 값은 사기를 당하고, 은박지 그림은 춘화로 몰리고... 부인과 자식들에 대한 사랑과 동경이 그의 작품에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영양 부족과 간장염으로 만 40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불멸의 작품을 남겨 우리들에게 미술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든다.

 

(14) ‘무용’이 새로운 형식으로 등장하다.

 

  세상은 변하고 예술도 변한다. 예술도 어느 장르든 시대정신을 반영하면서 새로운 방식과 기술 그리고 영역이 생겨나고 있다. 그 하나의 예가 ‘크레이지 호스 파리’이다. 다른 무용과는 달리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시비가 있었으므로 호기심을 가지고 공연을 관람하러 갔다.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1951년 프랑스 파리 조르주 생크가에 있는 한 전용 카바레 극장에서 처음 공연된 ‘누드 아트 쇼’다. 막이 오르자 여성 무용수 ‘크레이지 걸’ 12명이 등장한다. 상의는 벗고 T팬티로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거의 알몸으로 무대라는 공간에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관객의 오관은 무용수들이 율동하는 순간마다 자극을 받고 반응을 한다. 높은 하이힐 위에서 몸이 타오르고 있다. 무용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행위예술이다.

  불빛이 누드 위로 향하니 율동이 빚는 선율이 무대 위로 흐르고, 관객들의 눈길도 따라서 흐른다. 여체를 화폭 삼아 빛으로 그린 그림: 상상력을 매개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가슴과 골반으로 쓰는 시, 프랑스에서 온 19금은 율동을 한다. 옷을 벗기고 예술을 입힌 누드 아트 쇼, ‘크레이지 호스’는 춤추고 있었다. 외설과 예술 사이에서. 노년의 마음도 그 골짜기를 헤매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대리만족을 구하게 된다. 이처럼 예술의 형태가 여러 장르를 융합시키는 종합예술의 형태로 바뀌고, 과학과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예술형태가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를 섭력하면서 문화적 행복을 만끽하는 것이 노년을 행복의 세계로 인도하는 길이다.

 

 

(15)  ‘사진’ 속에 세상을 담근다.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사진술도 발전하게 되고, 기술의 일환으로 여겨지던 사진이 마침내 예술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오늘날 사진은 정보를 전달하거나 사실을 설명함에 있어서 중요한 매체가 되었다. 사진도 다른 예술 장르와 마찬 가지로 기본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이다. 그림이 화가의 개인적 주관이 표현된 예술이라면, 사진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예술이다. 사진가의 주관에 따라 전달하는 방법과 내용이 다르지만. 사진술 하게 되면 ‘술’()이 들어가는데, 이를 처음에는 기술의 의미로 사용했지만, 이제는 예술로 이해하게 되었다. 사진 촬영은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이다. 그래서 촬영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촬영자가 어떤 의도를 실현하거나 상황에 대한 느낌을 가지고 촬영함으로써 동일한 대상일지라도 다르게 형상화된다. 여기에 사진사가 만들어내는 사진의 예술성이 담겨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취미로 사진을 찍는 아마추어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전에는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으려면 카메라와 인화시설이 마련되고 기술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그런데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카메라 한 대만 있고 약간의 지식만 있으면 언제든 카메라를 메고 그 대상을 찾아 나설 수 있다. 특별한 장비도 유명한 장소도 필요치 않다. 새로운 모습으로 내 마음을 빼앗을 수 있고, 편안한 가슴을 끌어낼 수만 있으면 족하다. 카메라를 메고 집을 나서는 순간 그 자체로서 기쁨을 느끼게 되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며, 새로운 희망을 건지게 된다. 일상을 벗어나 자연이나 문화 속으로 들어가 이들을 촬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사진 속에 스토리를 담으면 그것이 곧 추억의 대상이 되고, 삶의 의미를 불어넣을 수 있다. 카메라가 동행을 하고 반갑게 맞아주는 곳이 있으니 결코 외롭지 않다. 그러므로 노년에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관심을 돌려 카메라와 동행을 하면 그 속에 행복을 담을 수 있다.

  샤른 스톤의 누드사진을 보고 있다. 뇌출혈로 언어능력과 시력이 떨어지고 왼쪽다리 감각이 마비상태까지 갔다가 병마를 극복하고 10년 만에 누드모습으로 돌아온 그녀의 모습이 여성 패션지 ‘하퍼스바자’ 20159월호에 실렸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세울 수 있다고 큰 소리 치던 오만함과 요염함을 벗어버리고.’ 젊었을 때 그녀가 뱉은 담배꽁초가 아스팔트 위에 서 있는 사진을 빗대어 풍자한 말이다. 누드 위에 시간의 열매가 장식하고 있으니 한결 무르익은 모습이 누드적인 교훈을 준다. 화려한 과거의 인기를 되찾으려는 추락한 여배우의 욕심과 누드 사진을 통해 판매 부수를 늘리려는 잡지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비판도 있지만, 자기극복의 한 성공사례로 보고, 힘든 세상살이에 용기와 위로를 보내주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받아드리면 좋지 않을까? 그 속으로 들어가 나도 누드가 되고 싶다. 세상을 향하여 교훈을 줄 수 있는.

 

(16) 사진 속 주인공은 그 대상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이다.

 

  어느 일요일에 다른 나라 민속행사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이화동으로 갔다. 혜화동 네거리부터 장터가 들어서 있다. 그 나라 특산물이 진열되어 있다. 더 소중한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이다. 필리핀·네팔· 베트남·태국·캄보디아 등 여러 나라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종로 5가 쪽으로 내려가니 민속행사가 경연을 하듯 펼쳐지고 있다. 그 나라의 고유한 장면들을 사진기에 담는다. 대충 둘러본 후 뒷산에 있는 공원을 향하여 올라간다. 골목마다 옛 모습이 남아 있고, 삶의 애환이 묻어 있다. 1950년대 들어선 판자촌에 벽화를 그려놓고 골목을 가꾼 덕분에 명소가 되었다. 카메라에 담기 좋은 장면들이 줄 서 있다. 공원에 오르면 북쪽으로 돈암동 일대가 눈에 들어온다. 어느덧 능선에 걸쳐있는 태양이 마지막 작업을 하고 있다. 카메라 속에 담긴 스토리는 추억의 세계를 장식하면서 다시 내 가슴속으로 돌아올 것이다.

 

  오늘은 양수역을 향하여 떠난다. 지금이 연꽃이 한창 피어있는 계절인데, 그 꽃이 아니라 정신을 담기 위해 가는 길이다. 강변 산책로를 따라 세미원으로 갔다. 활짝 핀 흰 연꽃들이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그 넓고 푸른 잎 위에는 물방울이 하나 얹혀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방울이다. 진흙탕 물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넓은 가슴으로 필요한 만큼만 담고 있는 그 청빈의 정신을 카메라에 꽉꽉 눌러 담는다. 이곳 분위기 때문에 여성들이 훨씬 많다. 사진을 찍고 있는 여성까지 배경으로 담으니 하나의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여기서 나는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낭만을 꿈꾸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양을 하고 있다. 카메라가 만들어주는 이런 기회가 나를 행복의 나라로 인도하고 있다.  

  하루는 서울역이 역사와 문화 공간으로 모습을 바꾸었다고 해서 지하철을 타고 갔다. 옛 서울역의 사적번호 284를 문화공간의 이름으로 만든 ‘문화역 서울 284’ 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서울과 지방을 연결하는 교차로로서 항상 사람들이 붐비는 곳인데, 여러 가지 문화행사들이 열리고 있으니 그 앞 광장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사람들은 단순한 행사장면이 아니라 역사를 담으려고 이곳을 찾는다. 그 옛날 추억을 상기하면서. 마침 ‘반 고흐 인사이드: 빛과 음악의 축제’ 전이 한참 열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사진 찍기에 가장 좋은 배경이 흘러내리고 있다. 보아하니 외국 관광객들이 대다수다. 이곳에서는 한국인인 내가 이방인처럼 보인다. 카메라 소리가 쉴 틈 없이 터져 나온다. 이 풍경은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실어다 선물로 안겨줄 것이다.      

 

(17) ‘새로운 경향의 예술’이 우리들을 유혹하고 있다.

 

  흔히 사람들은 ‘예술의 종말’이란 말을 한다. 이는 예술이 없어진다는 말이 아니라 예술의 방식이 자유로워진다는 말이다. 예술은 정신활동의 산물로써 ‘예술=미적 추구’라는 전통적 개념이 깨지고 있다. 이제 아름다움이 예술의 필수조건은 아니고, 새로운 경향의 예술은 ‘충격미’를 보여주고 있다. 미적 감각의 다양성을 인정하니 예술의 형태 또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사진·영화·텔레비전·비디오 등 새로운 예술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디지털의 발달로 디지털매체예술이 번창하고 있다. 또한 회화와 조각을 융합하는 ‘설치미술’처럼 예술장르 간 장벽이 해체되고 있다. 예술의 두 요소인 기교와 영감에 대하여 중점을 어디에 두느냐를 둘러싸고 계속 논쟁을 하고 있다.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선도 무너졌다. 이처럼 오늘날 예술에의 길은 광범하게 열려 있지만, 그 본래의 기능이 ‘인간의 구원에 있다’는 근본정신은 변함이 없다고 본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감상하거나 직접 창작활동을 함으로써 누구나 행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세상은 변하고 예술도 변한다. 예술도 어느 장르든 시대정신을 반영하면서 새로운 방식과 기술 그리고 영역이 생겨나고 있다. 백남준 서거 10주기를 맞아 여러 곳에서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그의 작품은 음악에서 출발하여 전위적인 퍼포먼스로 변화하더니 마침내 비디오를 예술세계로 끌어올렸다. 그의 예술세계는 유럽으로 건너가 플럭서스 운동에 참여함으로써 형상화되었다. 플럭서스는 1963년 창립되어 해프닝 퍼포먼스와 전시 활동을 벌이기 시작한 국제적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으로 ‘흐름, 변화, 이동’을 의미하며, 삶의 방식을 표현하는 것을 주제로 하는 이 정신은 오늘날에도 계승되어 오고 있다. 그는 비디오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세계적인 예술작가로서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적인 삶을 살았으며, 이러한 그의 삶을 반영하는 작품들이 다시 한곳에 모여 그를 추모하고 있다.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라는 실험정신이 작품들 속에 녹아들어 다음세기를 예견하는 작품들이 다수 제작되었다. 166개의 TV 모니터가 거북 형상을 하고 있는 초대형비디오 설치작품 ‘거북’이 이 페스티벌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그는 “인생은 싱거운 것이다. 짭짤하고 재미있게 만들려고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예술은 페스티벌”이라고 했다. 그의 작품들이 이곳에 모여 지금 페스티벌을 벌이고 있다. “인생에는 되감기 버튼이 없다”고 그는 말했지만, 그는 작품들 속에서 되감기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으면서 우리들을 회상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그는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마지막 소망이 ‘연애’라고 했는데, 이러한 그의 욕망과 정신이 이들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노년에도 작가정신은 늙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나는 그의 일생을 섭렵하고 나온 기분이다.

  

(18) ‘이색적인 작품’을 통해 나의 세계도 넓혀간다.

 

  리우 올림픽이 세계인들의 걱정과는 달리 특별한 사고 없이 여러 가지 감동을 주고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10-10 목표는 금메달 한 개가 부족해서 달성하지 못했지만, 몇 선수의 드라마틱한 장면 연출로 국민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주었다. 가장 감동을 준 것은 개막식이었고, 그 중에서 가장 이색적인 장면은 개막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성화 봉정식이었다. 성화 봉송의 마지막 주자인 브라질 마라토너 반데를레이 라마가 점화하는 순간 불꽃이 금속 꽃잎에 반사되어 밤하늘에 별꽃을 장식하였다. 이 성화대는 미국조각가 앤서니 하우의 ‘키네틱 아트’(Kinetic Art)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바람이나 물리적인 동력을 이용해 움직이는 모습을 형상화하는 ‘움직이는 예술’이라고 부른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디자인하고, 레이저 커터로 금속 조각을 한 후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 과학을 접목시킨 이 작품은 ‘4차원의 작품’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는데, 이는 예술이 과학과 상상의 날개를 달고 새로운 비상을 시도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감동을 통해 사람들은 예술에 더 접근할 수 있고, 새로운 행복 메뉴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예술이 새로운 기술과 접목되어 확장되어가고 있는데, 새로운 경향의 작품들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고 추적해보면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다. 노년에도 관심을 넓혀 가면 새로운 영역이 얼마든지 있으므로 행복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 마지막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길이다.    

 

(19) TV 프로그램’ 중에서 ‘선별’해서 시청하면 행복의 탑을 쌓아올릴 수       있다.

 

  TV는 바보상자라고 불린다. 그러나 좋은 프로그램을 선별해서 봄으로써 지식을 구하고 감동을 받으며 힐링 할 수 있으니 시청하지 않을 수 없다. 노년에는 유용한 정보를 얻어 삶을 풍부하게 만들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보면서 즐거움을 얻기 위해 TV 시청도 해야 한다. 오늘날 인터넷이 개발되어 그 기능을 많이 빼앗겼지만, 아직도 그 유용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노년에는 부부 간에 대화가 안 되거나 함께 자리를 하지 않는 경우에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함께 보는 것은 노년생활에 윤기를 주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채널권을 둘러싸고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이는 한 사람이 양보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다. 프로그램 전체를 보고 선별해서 적정한 시간을 함께 시청하면서 행복도를 높여가는 것이 중요하다.  

 

  TV 시청을 하면 기본적으로 시사프로그램은 반드시 본다. 노년에도 세상 돌아가는 것은 알고 있어야 하니까. 연속극은 보지 않는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그러나 좋아하는 연속극을 보는 것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보면 될 것이다. 저자는 여행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여행기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는 음악과 체육 프로그램을 선별해서 보는 편이다. TV 프로그램 중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그 속으로 몰입을 하게 되면 그 순간 나는 없다. 노래가 끝나고 나로 돌아오니 그 순간 행복했다는 것을 느낀다. 음악 트렌드가 다변화되고 있다. 그 만큼 음악이 시대변화에 따라 변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노래에 공감을 하면 그만큼 행복지수도 올라간다.

  체육프로그램도 좋아하는 편이다. 스포츠는 스크린과 섹스와 함께 ‘3S’에 속하면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니까. 축구와 야구를 좋아했는데, 미국에서 돌아온 후 국내선수들이 하는 경기는 보지 않는다. 외국에서 보던 것에 비하면 너무 스케일이 작다고나 할까. 그래서 국제대회에서 벌어지는 우리나라 경기만 본다. 탁구·배구·배드민튼·농구·아이스하키 등 구기종복은 물론 권투·K 복싱·레슬링 등도 즐긴다. 운동경기가 벌어지는 동안 승패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스릴과 서스펜스를 느끼면서 본다. 그 순간 몰입을 하면서 무의식중에 행복에 잠긴다. 국제경기가 외국에서 벌어지게 되면 밤중에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잠을 설레면서 보게 된다. 그 스릴 때문에. 노년에도 운동경기를 즐기면 행복의 폭은 넓어진다.

   그런데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아니 시간을 죽이기 위해 하루 종일 TV만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노년의 여가활동 중에서 TV 시청과 라디오 청취가 60%를 넘어 가장 비중이 높다고 한다. TV에 매몰되어 세상과는 담을 쌓고 TV만 시청하는 것은 금물이다. 몇 가지 프로그램을 선정해서 교양과 기쁨을 얻기 위해 시청하되, 전적으로 이에 의존하는 것은 건강에도 안 좋고, 정서적으로도 좋지 않다. 신문을 읽는 것도 매한가지다. ‘과유불급’의 원칙이 여기에도 적용된다고나 할까. 이렇게 시간을 죽이는 것은 노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른 취미생활을 개발하고, 인간관계를 지속하며, 봉사활동을 하면서 삶의 영역을 넓히고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 마음만 먹으면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건강하고 유익한 삶을 사는 것이 마지막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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