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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주먹 외9편 / 김 왕 노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4/27 [10:33] | 조회수 : 417

 

  © 시인뉴스 포엠



 

꽃 피는 주먹

김 왕 노

 

 

커다란 목련꽃 망울이 종주먹인 줄 알았다.

오래 나를 벼르며 꽉 움켜쥔 종주먹인 줄 알았다.

나를 오래 지켜본 목련이 깐죽거리며 죄 짓는

내게 본 때를 보여주려고 움켜쥔 종 주먹을

이제야 목련의 마음으로 하나 둘 펴는 것을 알았다.

 

목련의 종주먹 앞에서 졸았던 마음이 목련이 피자  

이제야 참회로 내 마음도 하나 둘 피는 것도 알았다.

 

 

 

 

별길

김 왕 노

 

 

타관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옥수수가 서걱거리는

별길을 따라 돌아오셨다.

아버지가 마당에 들어설 때는

아버지 구두에서 묵은 눈 같은

별가루가 이리저리 떨어졌다.

아버지를 따라왔다가

참죽나무 끝에 머물던 별에서

가끔 늑대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어머니 사랑이 모처럼

따뜻하게 깊어가는 별밤에

나도 아버지가 밤새 돌아온

별길을 거슬러 타관으로 떠난

순이를 찾아 나서고 싶었다.

그러라는 듯 별길은 푸르렀다.

 

 

 

 

  

수국, 수국, 수국 꽃 어머니

김왕노

 

 

저녁이면 집은 어머니가 죽어나간 자리가 된다.

아무리 세상에 아름다운 꽃이 있더라도

어머니가 죽어나간 자리에 핀 수국 꽃 같이

아름다운 꽃이 있을 수 있으랴.

어머니가 아름다웠던 것만큼

어머니가 죽어나간 자리에 핀 수국도 아름답다.

캄캄한 집을 밤새 환히 밝히는 수국이여.

백의민족의 꿈을 한 땀 한 땀 수놓는 어머니 꽃이여.

수국은 지지 않는 내 슬픔이고

꺼지지 않는 불멸의 눈부신 꽃등이다.

어두운 부뚜막에 정화수 떠놓고 아버지의 명복

자식의 무사 나라의 안녕을 빌던 어머니처럼

환한 새벽빛으로 타오르는 수국, 수국, 수국 꽃이여

거리에서 직장에서 자주 꺼뜨려버리는

희망의 등불을 다시 붙여주는 수국, 수국 꽃 어머니여.

고향을 떠나와도 다 보인다. 들린다.

어머니가 죽어나간 고향집에서

끝없이 피어나는 수국 꽃송이, 송이의 나직한 인기척이

 

 

 

 

 

 

김 왕 노

 

 

거친 바람에 시달린 풀은 다

날선 잎을 가졌다.

 

고통과 역경을 이겨내는

풀의 등줄기가 내민 잎

바람의 살을 거뜬히 베는

예각의 잎을 가졌다.

 

바람에 끝없이 나부끼면서도

무디어지지 않는 잎이여

녹슬지 않는 시퍼런 잎이여

큰바람을 작은 바람으로

난도질해버리는 풀의 정신이여

 

바람에 시달린 풀은 다

날선 잎을 가졌다.

세상에 시달리는 사람도

시퍼렇게 날선 낫을 가졌다.

 

 

 

 

 

  

마른별 아래서

김왕노

 

 

마른 별들이 하늘에서 서걱거린다.

별은 그리움이 하늘에 가꾸는 꽃인데

건기로 갈수기가 온 밤하늘인가.

 

사랑을 찾으려 누가 밤하늘을 건너고 있나

바삭거리는 별 사이로 메아리쳐오는 낙타울음

 

마른별 자욱한 밤하늘 아래서 나는

인공눈물 방울방울 눈에 떨어뜨린다.

 

 

 

 

  

짐승                          

김 왕 노

 

 

너를 모를 때는

나조차 내가 누구인지를 몰랐습니다.

너를 알고 난 후에 비로소 나는 나를 알았습니다.

나는 네가 그리운 만큼 달빛에 젖어

달을 향해 우우 울부짖는 짐승 한 마리였습니다.

 

나의 군주도 조물주도 아닌 네가

나를 짐승 한 마리로 만들어 온몸으로 울게 할 줄

몰랐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목숨이 다 닳도록

밤새 울어야 한다는 것을 너를 모를 때는

차마 몰랐습니다.

 

 

 

 

  

 

동백꽃 불사

 김 왕 노

 

 

몸을 아낌없이 버려 이루는 사랑이

가장 아름다운 사랑인줄 알지만

사랑을 위해 나를 버린 적 없었다.

 

내 사랑이 내 전부가 아니었던 것

내 전부를 위한 작은 사랑이었다는 것

하나 끝없이 뚝뚝 지며

내 사랑을 질타하는 동백

 

전부를 내려놓고 선운사의 봄을

우뚝 세워 가는 저 뜨거운 동백꽃 불사

화엄정토를 열어가는 무엇에도

꺾이지 않는 황소 뿔 같은 정염

 

낭자하게 뚝뚝 져 펼친 동백주단을 밟고

나도 나를 버리고 사랑을 찾아간다.

 

선지처럼 뚝뚝 져 이루는 동백꽃 불사

 

 

 

 

   

별의 문장

 김왕노

 

 

​하늘의 별을 쓸어 모으면 저녁이면 결정을 이루는 소금 같이 족히 수백 만 섬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피가 도는 별이 모여 밤하늘을 가득 채운 저 별의 문장들

고개가 젖혀져 꺾이도록 읽어도 싫증나지 않는 불후의 베스트셀러

 

내가 알던 죽어간 모든 사람은 별이 되어간 줄 안다. 어떤 별에서는 세상의 별처럼 살다간 한 사람의 생이 또박 또박 읽힌다. 백석, 윤동주, 나혜석, 전태일 그리고 나의 어머니 이옥남 나의 아버지 김종윤 나의 삼촌 김무웅, 나의 초등학교 친구 신후남, 옆집 숙희

어떤 별에는 한 사람이 하이에나처럼 울다간 세상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음악이 가득 차있는 별도 있고 어떤 별에는 수 천 수만의 바람개비가 돌고 우주의 바람이 분다. 어떤 별에는 정좌하고 앉아 별과 별 너머에서 들려오는 새벽 닭 울음을 기다리고 있다. 별은 영원히 닳거나 없어지지 않는 불멸의 명문장이다.

 

저녁이면 어딘가에 숨어있던 별들이 멸치 떼처럼 온몸을 반짝이며 나타나 하늘을 가득 채운다. 저 별에는 봉황이 앉는 벽오동나무가 자라고 있을 테고

저 별은 삼천갑자 동방삭의 별이라 동방삭이 아직도 답객난, 비유선생론이란 책의 후속타인 세상을 질타하고 가르치는 책을 집필하고 있을 것 같아

 

별 자욱한 밤하늘은 좋은 문장이 상전벽해를 이루어 약한 바람에도 물결치는 곳

 

시정잡배나 권모술수가나 어떤 모사꾼의 이빨도 들어가지 않는 곳, 투기나 투자가 불허 하는 곳, 무릉도원이 있고, 청정지역이 있고, 탕평책이 있고, 태평성대가 있고 순임금이 있고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떡하니 버티고 있는

아스라이 멀어져간 첫 사랑의 이야기도 시 한편으로 별에 나부끼는

우리의 역린이었던 편린이었던 이름마저 별의 모서리에 따뜻하게 자리잡고 있는

밤하늘은 우주의 커다란 문장이다. 우리의 족적이 별로 남기도 하는

 

사랑하는 사람아, 밤에는 밤하늘로 별 아래로 나가자.

 

별의 문장을 읽다가 보면 당신이 밑줄 그어놓은 별 문장 아래

나의 산책은 시작되고 하늘 가득 별꽃 이야기가 애절하게 흐르기도 하는

밤하늘이 가장 큰 말씀이고 우주의 푸른 예감이 파문으로 번지는

은하수 끝없이 흘러가는 소리에 우리의 모든 감각이 열리며 우리가 그렇게 망설였던

 

판을 갈아엎는 혁명을 꿈꾸기도 하는 때로는 아나키스트로 별의 당국, 별의 중앙, 별의 사직만 인정하는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도 별 아래로 나가 우리도 언젠가 시나브로 저물어 갈 별 하나 마음에 새기며 철철 피 흘려도 좋고 별의 울력으로 태양계 은하계가 이루어지듯이 우리의 울력으로도 또 다른 세상 하나가 눈부시게 열릴 곳으로

 

 

 

 

너무 늦은 중년의 편지

 김왕노

 

 

오래 전 너는 아카시아 숲에서 트럼펫을

밤하늘 깊이 불어 올렸지.

곡명을 몰랐지만 너무 애절해 듣는 사람의 심금을 올렸다는 말이 맞겠지.

실연의 아픔으로 망가져 어딘가로 가버린 너는 잘 있나.

네가 두고 간 바다에는 멀리서 배가 오고 아카시아 숲에는 벌이 들끓는다네.

그러나 그것들로 네가 가버린 빈자리를 채우기는 부족해

 

 

네가 있는 곳이나 내가 사는 곳이란 사람 살만한 곳이라 하지만

삶도 하나의 혁명 같아 사랑에 실패한 너는 녹슨 장총 같은

꿈의 입구를 닦아 입맞춤할 테지

꿈의 노리쇠를 당겼다가 놓을 때 한 발의 사랑이 장전되기도 할 테지

그러면 네 사랑이 다시 시작되어도 좋아

 

나는 주둔군의 노래 소리가 들렸다가 끊기는 이곳에서

불량한 그들의 꿈을 훔쳐보며 얼마나 화음을 맞춰 찬송가를 부르면

그들을 용서할지

무장해제 된 이 거리에서 사제 총을 만들어서라도 공포탄을 수없이 쏘며

갓뎀 갓뎀 외치고도 싶어 안방처럼 차지하고 마이웨이를 부르는

그들을 견딜 수 없어

 

고향을 떠나와 주둔하며 낯선 태양에 당황하기도 할 테지

보이지도 않는 적을 향해 적의를 불사르다보면 붉은 장미만 봐도 할 발작

하나 동두천 우리의 민들레 윤금이는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나

짐승이라도 그렇게 하지 못할 일을 한 주둔군의 발소리에

누구나 악몽을 꾸기 시작하는 아픈 밤이 시작 되었다.

 

아득히 멀어진 곳에서 네가 그리워하는 이곳의 나는 가난한 시인으로 살아

여행가가 되어 전 세계를 유랑하겠다는 꿈이 한 풀 꺾이기는 했나

하나 너는 먼 이국에서 시거를 태우다가 무대에 나가

트럼펫을 릴 암스트롱처럼 불어 댈 것 같아

이제는 중년의 네게 늦게 찾아온 사랑을 위해 장미를 바치고

아직 여긴 네 트럼펫 소리를 기억하는 아카시아 꽃이 수없이 지고 피는데

 

 

 

 

아카시아 숲이 바람에 물결칠 때마다 비릿한 네 사랑의 슬픔도 물결쳐

멀어져간 네 연인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네가 불어 올린

트럼펫소리를 도리어 네가 비처럼 흠뻑 맞고

그리움짐승으로 네가 오들오들 떨 때 난 어떤 위로도 없이

‘떠난 사람은 잊어 잊어라.’ 는 죄 많은 말만 되풀이 했다.

 

하여튼 이곳의 나는 가난한 시인 너를 찾아 집을 나서지는 못했어.

고백하지만 나는 예전부터 트럼펫 연주자인 너의 팬이었다네.

때가 되면 우리 이곳에서 한번 뭉치자.

옛이야기 하며 술잔을 나누다가 네가 비장하게 우리의 하늘, 아카시아 숲 위 밤하늘로

트럼펫을 불어 올리면 정박의 닻 내린 바다의 배마저 뱃고동 울리게

죽어간 사랑, 죽어간 청춘을 위한 진혼곡이 밤하늘로 빈 가슴마다 메아리치게

 

 

 

 

  

내게도 용 문신을 새기는 밤이 오리라  

김왕노

 

 

​오래된 TV 드라마에서

한 밤중에 마당에서 줄넘기를 하자 뭐 하느냐고 물으니

고독에 몸부림친다 해서 웃은 적이 있다.

그 때 웃을 일이 아니었고 지금 나도 고독해졌다.

친구와 휩쓸려 12차 술자리를 하다가 3차 노래방에서

그 겨울의 아침을 부르고 장밋빛 스카프를 부르던 날이 꿈이었나 싶다.

스마트 폰의 많은 연락처 중에 선뜻 눌러야 할 이름이 없다.

이렇게 고독한 날은

화투 패를 뜨거나 전신에 문신을 새기고 싶다.

 

​몸을 화판으로 더 이상 고독하지 말라고

나와 함께 살아갈 문신을 새기는 것

깍두기처럼 가끔 어깨에 힘을 넣고 꿈틀거리는 문신을 과시하는 것

닭 피로 문신을 새기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순하게 느끼도록 사군자를 새기던지 풀꽃을 새겨도 좋지만

용 문신을 새기고 싶다.

천지를 우레로 뒤흔드는 용, 여의주를 물고 청동의 몸을 꿈틀대며

어둠에 불의 칼을 휘두르듯 일획을 그으며

끝없이 승천하는 용꿈을 꾸고 싶어

 

​머지않아 용이 내 몸에서 벼락 치듯 날 것이다.

내 몸은 용의 터전, 나를 박차고 용이 치솟는 날을 기다리다보면

내 고독도 용꿈에 밀려 사라질 것이므로

앞으로 용 문신을 새길 몸에 피가 나도록 박박 문지른다.

용이 나를 낚아채 하늘로 오르다가 떨어뜨리는

악몽을 꾸더라도 고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므로 이 모든 것을 견디며 기다리리라.

다시 한 번 단언하지만 내게도 용 문신을 새기는 밤이 오리라.

 

 

 

 

 

 

 

김왕노 약력

 

 

매일신문 꿈의 체인점으로 신춘문예 당선

경북 포항 출생. 말달리자 아버지(문광부 지정도서)』『그리운 파란만장(2015세종도서 선정)』『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2016 세종도서 선정) 』『리아스식 사랑 (2019)』 『복사꽃 아래로 가는 천년 (2019)등 한국해양문학대상, 박인환 문학상, 지리산 문학상, 디카시 작품상, 수원문학대상, 한성기 문학상, 2018년 올해의 좋은 시 수상 등 축구단 말발 전 단장, 한국 디카시 상임이사, 현재 문학잡시와 경계주간. 한국시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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