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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원 외9편 / 황성용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4/30 [17:50] | 조회수 : 123

 

  © 시인뉴스 포엠



 

고아원

 

 

보약에 해당된 인삼이나 녹용, 먹어야 합니까 입어야 합니까

 

입어야 합니다

 

따뜻하니까 감기에 걸리지 않습니다

 

의사들은 먹어야 한다고 하겠지만 사회는

의사만 살고 있지 않습니다

 

탄광에도 광부가 있지만 꼭 광부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입으려면 음식도 아니고 약도 아니어야 합니다

광부는 쓸쓸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검은 직종을 보약이라고 하십니까

 

적응해야겠습니다!

 

적응할 땐 숟가락 없이 손으로 먹고 밥그릇 없어도

신념으로 먹어야 합니다

 

밥을 사회화하면 밥알 흘릴 리 없지요

 

순응에 집착할수록 단독으로 키울 수 없습니다

 

봄바람이 부는 날에는

쓸쓸히 창문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입을 겁니까 먹을 겁니까

 

가로와 세로로 겹쳐 봅니다 십자가보다 공존이 먼저 생깁니다

 

먹겠습니다 먹습니다

 

 

 

 

 

기립

 

 

  원하는 것도 아니고 원했던 것도 아닌 운동장에서 일동 기립한 일을 두고 그건 동력이 아니라 습성이라고 밖에서부터 말하는 건,

 

  어쩌다 생리학적으로 대사나 체온 조절의 기능이 있다고 할지라도 진리 보다 관념에 편향된 부위라 더 놀랍다

 

 우리들은 이때 어느덧 넓은 벌판처럼 머물려 있으면서 아련히 떠오르는 윤슬을 그리워하고 있다 어제다 싶은 유년 운동장의 추억을 상기하면서 그 운동장의 사연이 더 만져진 통증에 민감해지고 있다 그래 운동장 하면 운동회가 생각나고 연병장이 생각나고 광장이 생각나는 것은 운동장의 넓디넓은 용도까지 확장되어서가 아니다 촛불 심지처럼 직립으로 타오르고 있다는 것,

  천형(天刑)인 양 태어났다는 것 때문이다

 

 

 

 

 

 

 

 

 

 

 

 

 

 

 

 

 

 

 

 

 

 

 

 

 

 

訂正(정정)

 

 

  자고 있는 프로쿠르스테스* 똥구멍에 뽐뿌*를 대고 펌프질을 기습에 해버리니 뒷일이야 어찌됐든 매캐한 웃음이 왈칵왈칵 쏟아진다 통증과 고난을 이겨 내야 하는 육체가 헛웃음을 참지 못하고 쓰러진다

 

  그렇다 보니 브랜드 가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로열 침대에 응급상황이 일어났다 병상의 과정을 밟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병명이 나오겠지만 당분간 응급실에서 그 가구적家具的 웃음만은 막을 수밖에,

 

  병상은 생각지도 않게 회진回診 중에 침상으로 정정되어 치료 보조제가 되었다 눕기만 하면 모든 질환이 완쾌되는 이 침대의 웃음, 그것도 신화의 웃음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 그리스신화 속 인물,‘프로크로테스의 침대’에 비유

* 펌프

 

외줄 

 

 

  길바닥에 줄이 놓여 있는데 그 줄은 버려진 것인지 놓아둔 것인지 알 수 없어 지긋이 시간을 내서 쳐다본다 색깔이 들어있는 줄이 빗물에 젖어도 그 용도는 우러나지 않는다 그 상태가 어떤 단계가 아니더라도 3단계로 구분해 보았을 때 2단계에 해당될 듯하다

 

  그러니까 방치 단계를 넘어 관심 단계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관심이란 고양이인 자기가 자기 입에 고양이를 물고 먹잇감처럼 걸어가는 것도 해당되지만 그것은 관심의 오용이다 무겁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하는 동작도 아닐 것이다 줄은 길이이다 길이를, 그렇다고 그 빗물에서 꺼내주려고 하는 구호의 기능으로 해석할 수도 없다 그 줄 자체가 아픈 허리 주변으로 뻗어 있는 힘줄의 다른 표현도 되지 못한다

 

  이렇다 보니 줄은 지렁이처럼 구불구불 땅에 붙어 있을 뿐이다 잠시 뒤, 3단계의 폐기 처분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령 전깃줄이나 쇠줄이나 밧줄로 되돌아갈 단계가 되지 못할 것 같은 판단에 이르렀다

 

  언젠가는 이 모든 아침이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인 아침보다 헐고 힘겨운 아침으로 전락하고 있을 것 같다 바닥에서 외면 받고 있는 줄 알면서 줄이 철퍽 넘어진 것이다

 

 

 

 

 

 

 

 

 

 

 

 

 

 

 

 

 

 

 

 

 

 

 

역사의 피

 

 

투하 형

우울해, 유럽!

 

어두운 일요일 Sombre dimanche1)

 

​애수,

악보를 박차고 나간 붉은여우,

조국,

 

세 건반을 켜면서도

핏줄이 터져

붉게 흐르는 핏물은 노도를 따라가고

 

​젊음 밖 허공

 

역사가 없는 피는

유작이 된다

 

 

 

 

 

 

 

 

 

 

 

 

 

 

 

 

 

척삭 동물

 

 

 

당연한 말; 차를 타고 왔다 당연하지 않는 말; 물고기가 바래다줬다 말이 되지 않는 말들이 말이 되어서 오억 만 년 까지 오고 있다 진화와 관련이 있는 듯 저절로 이어져 오고 있지만 화석처럼 뚜렷한 증거를 남기지도 못했다

 

새벽녘,

 

눈과 눈의 마찰음, 화들짝

원시적인 소음이 어떤 방에서도 들린다

 

폈다가 구부리면서 푸릇푸릇 불을 끄고 있는 청어

 

불 꺼진 후 불 켤 이유가 지금까지 없어

어머니 눈은 청어처럼 지내왔던 것이다  

 

파도 일렁이는 척추가 물을 보는 눈이 된 것이다

 

 

 

 

 

 

 

 

 

 

 

 

 

 

 

 

 

 

 

 

 

* 척삭 동물 : 발생초기 배()에 척삭()이 형성되는 동물문()

 

악상惡想

 

 

(1)

 

설원과 백색 야음, 그렇게 접점

 

혼자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오직 구부렸던 접면,

힘찬 수긍의 발진發疹

 

세상의 모든 세모와 마름모는 불안,

구악의 비극

 

동시대의 사건들 중 국가마다 있는 인면수심처럼

수일이 지나도 참혹한 적설, 그리고 안 보인 분노

 

눈과 안개 중에서

밤새 눈 내린 일은 악령으로

 

눈이 안개보다 내 몸에서 더 밀착한 까닭을 말하면,

네 처연한 붕괴와 외로운 모형 때문

 

 

(2)

 

내가 했던 나의 파멸은 항상 밤에

 

그들이 그쪽에서 보면 정면도 후면도 옆면

 

비둘기 날아오는 곳을 간절히 받는다

 

펑펑 날 새고 있는 고립, 정념情念

 

전체적으로 전향했으므로

 

낭떠러지가 아닌 잔잔 그 시원, 일단 깊이 들어간 격랑

 

 

 

 

 

 

굼벵이 스토리  

 

 

북위 34°1721″ 동경 126°31222)

 

외 날개 기러기

 

잠복되어 있는 기러기

주름 연보年譜

 

헛통증에 걸려,

 

퍼드덕 푸드득

 

오류를 정정한다며,

 

글썽글썽 위 하늘을 쳐다본다

 

그러니까

근원이다

 

 

 

 

 

 

 

 

 

 

 

 

 

 

 

 

 

 

 

사념을 겨누는 봉기

 

 

새벽에 이르러 이슬에 이르러 골육에 이르러

사이사이 홀로 떠도는 통렬

 

통렬한 염원은 물질 이전의 연원

그 질주는 살육의 외피에 싸인 잔혹한 역사이다

 

화살보다 더 빠르게 지나갔던, 그래서 그렇게 된,

지나간 사체(蛇體)는 모룻돌이 얹혀있는 격식이 아니다

 

포식처럼 풀이 아니라 야수의 곧은 이빨이고

사람의 이빨이 아니라 아류의 광풍인 걸

포효의 눈도 눈이지만 왜, 외딴섬의 적막처럼 아련한가

 

창과 원흉과 늑대와 바벨론 국가의

엄습을 느끼며 공중의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흉금을

탈취하는 표면의 맹금류를 본다

 

시원의 영령이 영혼이었듯

영혼이 되려고 계속 눈 내리는 3월 간청까지

암흑으로 파들어 가는 발톱처럼 하얘진다

 

눈 내리면서 깜깜한 사색(死色), 참혹한 본령 쯤 정도다 해도

숲마다 피어나는 여름에서 꽃, 꽃에서 생명

 

파도며 폭우며 불안이며 모두 모두

흘러가는 물이려니, 그건 밤마다 몰려드는 광분

 

죽창은 멈춰도 물은 흐른다

 

 

 

 

 

 

 

 

 

 

 

일요일의 프러포즈

 

 

두 눈에 쏙 들어온 노란 머리 아가씨

내릴 때 바로 빼버린 몰인정 아가씨

 

만나고 헤어지게 한 600번 시내버스를 원망한다

 

비어있는 옆자리는 항상 비어 있지 않는 옆자리

알록달록 원피스 색깔이다

 

이러 쿵, 저러 쿵, 요로 쿵

쿵쿵쿵 매일매일 생각난다

 

시화공단에서 만든 그녀의 유리컵은

뚜껑을 붙였다 뜯었다, 손잡이가 있다가 없다가

이 모양 저 모양 변덕이다

 

시내버스는 덜컹덜컹 느닷없이 변했다

 

그 마력에 엄마와 아빠 결혼 날짜 잡혔던 것이다

 

 

 

 

 

 

 

 

황성용

전남 해남 출생 2017 《광남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시집 「미련 없이 밤」

 

 

 

 


1)  프랑스 샹송 가수 다미아(Damia) 노래, 이 노래를 듣고 세계적인 대공항의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헝가리, 파리, 런던, 뉴욕에서도 자살하는 사람들이 발생했다고 전해졌다

2)  우리나라 남쪽 땅 끝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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