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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떨기 외 / 이만식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5/06 [11:34] | 조회수 : 134

 

▲     ©시인뉴스 포엠

 

 

 

수다 떨기

―창피한 일을 당하고 난 뒤

 

 

 

1. 친구가 같이 부끄러워하니,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확인된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친구의 기분을 다시 좋게 해줘야 한다.

 

2. “알겠어, 무슨 느낌인지 알아, 그래, 나도 그런 적 있어”(I get it, I feel with you, and I've been there)라고 말하며  공감한다기보다, “정말 안 됐다, 얘”(I feel so sorry for you)라고 동정하는 친구도 있다. 당신의 부끄러움의 폭풍을 더 끔찍하게 만들고 싶으면, “아이고, 이 불쌍한 것”(Oh, you poor thing)이라고 던지듯 말할 것이다. 또는 “당치도 않은 일이야!(Bless your heart)라고 수동적인 듯 능동적인 동정의 말을 내뱉을 것이다.

 

3. 당신이 진정성의 화신이어서 존경받을만하다고 믿는 친구에게 말하면, 당신의 불완전한 모습에 아주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4. 당신의 취약한 모습에 마음이 너무 불편해져서 당신을 비난할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그냥 놔뒀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니?(How did you let this happen? What were you thinking?) 아니면, 비난을 퍼부을 사람을 찾을 것이다. “그 녀석이 누구야? 우리 같이 혼내주자.(Who was that guy? We'll kick his ass)

 

5. 언제나 기분 좋게만 살려고 하는 친구라면 불편한 마음을 벗어나기 위해서, 당신이 실제로 미친 척하면서 그렇게 끔찍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인정하기를 거부할 것이다. “너무 과장하지 마. 그렇게 나쁘지 않았을 거야. 너는 바위 같거든. 너는 완벽한 사람이야. 그래서 우리 모두가 너를 사랑해.(You're exaggerating. It wasn't that bad. You rock. You're perfect. Everyone loves you.)

 

 

6. 당신보다 한 걸음 앞서 나갈 기회와 ‘인간관계’를 혼동하고 있는 친구라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예전에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봐!(That's nothing. Listen to what happened to me one time!)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7.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친구도 있다. “아이고, 맙소사. 아주 힘들었겠다. 나도 그런 짓을 한 적이 있지. 그건 아주 끔찍한 느낌이야!(Oh, man. That's so hard. I've done that dance. I hate that feeling!)

 

어떤 게 정말로 친구가 되는 길일까?

 

이건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의『불완전함이 주는 선물들: 당신이 그럴 거라고 추측하며 생각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실제의 당신을 받아들이자―참사람이 되기 위한 지침서』(The Gifts of Imperfection: Let Go of Who You Think You're Supposed to Be and Embrace Who You AreYour Guide to a WholeHearted Life)라는 책에 나온 수수께끼야.

 

답은 7번 하나뿐인 것 같은데,

 

그 깊은 뜻을

진짜로 알아차리는데,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면서 행복해지는데,

화두(話頭)처럼

오랜 시간이 걸릴 거 같네.

 

 

 

 

 

 

불법체류자

 

 

 

호주에서 통역사로 일하는 동안

불법체류자 수용소에 가곤 했었는데,

자주 갔어도, 갈 때마다 공연히 두려워지곤 했었다.

나는 유학생 신분이었고, 그래서

불법체류자가 될 가능성도 없었다.

불법체류자를 위해 통역을 하러 가는 길이었는데도,

이상하게도, 순식간에 모든 걸 다 잃어버릴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나는 근대국가의 법체계 속에서

임시로나마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게 순식간에 박탈될 수도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건 호주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 이전에 대한항공 직원이었을 때에도 그랬다.

언제든 해고될 것 같은 위협을 느끼면서 살았다.

그런데 지금도 그렇다.

아무리 정년이 보장된 교수라 하더라도,

소속된 대학교가 없어져 버린다면, 아니,

소속된 집단이 보호를 철회하기로 결정한다면,

나는 그저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한 마리일 뿐이다.

사실, 나는, 아니 우리는, 다 그렇다.

 

 

 

 

 

 

 

 

 

 

 

개그 콘서트

 

이만식

 

개그는 상식을 넘어서는 말이다.1)

무엇보다도 말을 막는 말이다.

그러니까 개그 콘서트는 서로의 말을 막으려는 전투다.

기억이 안 나거나 말이 안 나오게 만들고자 하면

그걸 얼버무리면서 즉석에서 말을 하면서 반격한다.

이건 목적에 봉사하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어떤 수단이 되지도 않는 말이다.

어떤 점에서는 근대사회의 압력을 평화롭게 배출하는 안전밸브다.

그렇지만 일상 속에 숨어있던 삶의 신비를 해방시키는 언어장애의 몸짓이다.

우리가 개그 콘서트를 좋아하는 이유는2)

개그가 사랑의 언어를 닮았기 때문이다.

상상을 넘어서는, 말문이 막히는 말이 필요한 게 사랑이기 때문이다.

 

 

 

 

 

 

 

 

 

 

 

 

애완동물

 

 

이만식

대형마트 애완동물 코너 주변에

아주 어린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토끼, 이구아나, 기니 픽, 햄스터 등을 쳐다본다.

아주 늙은 나는 멀찌감치 서서 쳐다본다.

어린아이들은 그들의 생명에 감염되어 쳐다본다.

나는 무엇 때문에, 어떤 깨달음 때문에 쳐다보는 것일까.

일주일도 더 지난 어느 저녁에 있었던 일이다.

애완동물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오래전의 일인데

왜 아직도 나는 무엇 때문에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토끼의 눈동자 때문일까.

이구아나의 멋없는 자세 때문일까.

아니면, 어린아이의 맹목적 사랑의 모습 때문일까.

애완동물의 무기력한 자세와

어린아이의 맹목적 사랑의 부조화 때문일까.

아주 늙은 내가 살아온

무기력한 자세와 맹목적 사랑의 부조화 때문일까.

 


1)  조르조 아감벤, 『목적 없는 수단』, 김상운·양창렬 옮김. 서울: 난장, 2009, 71-72: “몸짓은 항상 그 단어의 가장 적합한 의미에서 개그(gag)이다. 개그란 무엇보다도 말을 막으려고 입을 틀어막는 것[또는 도구]을 뜻하고, 이어서 기억이 안 나거나 말이 안 나올 때 얼버무리려고 배우가 즉석에서 하는 연기를 뜻한다. 몸짓과 철학뿐만 아니라 철학과 영화 사이의 근접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도출된다. 영화의 본질적인 ‘침묵’[무성성](이것은 사운드트랙의 현존이나 부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은 철학의 침묵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언어활동-안에-있음의 노출, 즉 순수 몸짓성이다. 신비로운 것이란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정의는 문자 그대로 개그에 대한 정의이다. 그리고 모든 위대한 철학 텍스트는 언어활동 자체를, 언어활동-안에-있음 자체를 기억의 거대한 구멍으로서, 치유할 수 없는 ‘언어장애’로서 전시하는 개그이다.

2)  “무한도전,” “12일”이나 “개그콘서트”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은 상대방의 말문이 막히게 하는 장면이다.

 

 

 

 

약력: 1953년 서울 출생

             1992년 『작가세계』 여름호로 등단

        현재 가천대학교 영문과 명예교수

             시집 『시론』, 『하느님의 야구장 입장권』, 『나는 정말 아주

                        다르다』, 『아내의 문학』, 『거꾸로 보는 한국문학사』,

             『너라는 즐거운 지옥』

             평론집 『해체론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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