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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외 1편 / 이화영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5/12 [17:11] | 조회수 : 47

 

  © 시인뉴스 포엠



 

아무도 외 1

 이화영

 

 

 

티비를 보는 그녀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녀의 뒷모습이 웃는다

 

힘없이 흘러내린 색 바랜 벽지

구석으로 몰려있는 짧은 곱슬머리칼

뚜껑 있는 양은 요강

파리똥이 박혀있는 형광등이 이러한 것들을 환히 비추고 있다

 

그녀의 노추가 나를 공격했다

수 년 째 반복되는 불편한 일상들

조심스레 요강을 받쳐 들고 수돗가로 나왔다

 

물소리를 받아내는 요강 볼록면에 눈이 부시고

요강을 부시는 손은 얼얼했다

 

갈색으로 마른 몸을 가린 국화가

향이 겨운 듯 실눈 웃음을 지었다

달팽이 한 마리

느리게 배추포기 위로 올라 와

냄새의 방향으로 작은 더듬이를 세우고 잎을 뜯어 먹었다

 

얼굴은 티비를 보면서

뒷모습으로 말하는 그녀의 신기는

지금 어떤 마술을 부리고 있는지

내 눈길은 대문 밖 은행나무 너머 구름 너머를 쫓았다

 

그녀가 곱슬곱슬 웃는다

방안 그림자가 느리게 더디게 움직였다

 

 

계간 『애지』, 2020, 봄호

 

 

 

 

 

 

오후 5시의 말

 이화영

 

 

 

땀이 발작을 일으키며 등을 적셨다

과녁의 동그라미에

꽂히는 불과 얼음의 접신

꺼지고 켜기를 반복하며 감정이 저릿저릿 새나간다

 

살짝 살짝 건너는 흉내를 내지만

너는 다 젖은 줄 모른다

말로 다 주지 말고

오늘은 마지막 날처럼 허튼 액션이라도 취해 줄래

 

분홍은 까망 애인

온도가 다른 죄책감은 골반부터 작게 등을 말았다

너는 상한 우유처럼 하얗게 피었다

 

울지 않는 너는 독한 사람일까 슬픈 사람일까

 

네게서 빠져나간 말이

내 입속에 배김을 남겼다

 

물웅덩이에 빠진 말을 보았다

무너지고 세워지는 말

고요한 물은 말을 끌어안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계간 『애지』, 2020, 봄호

 

 

 

 

 

 

 

 

 

 

 

*이화영 약력

 

- 격월간 『정신과표현』, 2009년 등단.

- 시집 『침향』, 혜화당, 2009./『아무도 연주할 수 없는 악보』, 한국문연, 2015.

-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전공

- 한국시인협회원

- 한국작가회의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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