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계단과 욕조 외1편 / 이연희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5/13 [16:25] | 조회수 : 69

 

 

  © 시인뉴스 포엠



 

계단과 욕조

 

 

 

비닐에 싸여 있다 층계참에 욕조라니

먼지 낀 창으로 저녁 빛이 쏟아진다

물기 없는 욕조다

먼지들이 반짝인다

층계참에 놓인 욕조를 보면서

떠오른 게 고작 뜨거운 목욕물과

물속으로 잠기는 견갑골이라니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뒤통수라니

뒤에는 아직 올라야 할 계단들

계단에서 담배를 피우지 마시오

붉은 글씨가 적힌 종이가 벽에 붙어 있다

욕조에서 담배를 피우지 마시오

계단에서 욕조를 피우지 마시오?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진리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들은 말이었더라

어쩌다 욕조는 집 밖에 놓여 있고 진리는

모든 것의 바깥에 있다

병원엔 갔다 왔어?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도착한다

아니, 그런데 계단에 욕조가 있어

보내지 않을 답장을 적는다

 
 
 
 
 
 

해야만 하는 일

 

 

 

  허기가 퓨마를 맴돌게 한다 덤불에서 덤불로 몰고 다닌다 허기의 인내심이 바닥을 칠 때 허기는 퓨마로 자신을 채울 것이다 두발가락 나무늘보는 이동 중이다 나무에 매달려 1분에 2미터 남짓한 거리를 간다 바람 없는 날 난간에서 떨어지는 담요처럼 바닥으로 내려온다 1주일에 한 번 호젓한 곳을 찾아내야만 한다 미룰 수도 건너뛸 수도 없는 일이다 수풀 사이 쭈그려 앉은 나무늘보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한다 허기는 퓨마를 나무 뒤에 세워둔다 무성한 나무 그림자와 웃자란 풀들이 퓨마의 몸에 더 짙은 얼룩을 새긴다 나무늘보와 퓨마는 한 컷의 화면 안에 있다 왼쪽과 오른쪽, 끝과 끝의 경계 안에서 웅크리고 도사린다 퓨마의 한쪽 눈에서 출발한 카메라의 시선은 나무늘보의 웅크린 등에서 멈춘다 마지막 순간, 허기는 나무늘보를 향해 퓨마를 던진다

 

 

 

이연희

2018년 영남일보문학상·구상신인상으로 등단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 공모전소식
[윤명선박사] 종교: 그 본질은 ‘참된 신앙’에 있다.
메인사진
  XVI. 종교: 그 본질은 ‘참된 신앙’에 있다.   신은 존재하는가 그...
[윤명선박사] ‘죽음’의 문제: 자연사가 마지막 행복이다
메인사진
XV. ‘죽음’의 문제: 자연사가 마지막 행복이다.   생물학적으로 죽음...
[윤명선박사] ‘예술’을 입힌 노년: 한 차원 높은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
메인사진
  XIV. ‘예술’을 입힌 노년: 한 차원 높은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
[윤명선박사] 노년의 사랑: ‘마지막 사랑’도 아름답다.
메인사진
 XIII. 노년의 사랑: ‘마지막 사랑’도 아름답다.   사랑은 인간이 추...
[윤명선박사] 노년의‘인간관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
메인사진
  XII. 노년의‘인간관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
[윤명선박사] 노년의‘일’: 의미 있는 일을 해야 마지막 보람을 느낀다.
메인사진
XI. 노년의‘일’: 의미 있는 일을 해야 마지막 보람을 느낀다.   노동...
[윤명선박사] 노년의‘경제력’: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갖추어야 한다.
메인사진
X. ‘노년의‘경제력’: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갖추어야 한다....
[윤명선박사] 노년의‘부정정서’: 노년의 행복을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메인사진
 IX. 노년의‘부정정서’: 노년의 행복을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