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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에 손을 얹다 외1편 / 서정임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5/15 [20:52] | 조회수 : 203

 

▲     ©시인뉴스 포엠

 

 

배롱나무에 손을 얹다 / 서정임

   

                

가만 가만히

소리도 없이 배롱나무 붉은 꽃이 흔들린다

바람도 없는데  

나를 불러들이는 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기척

 

가늘고 긴 손가락을 가졌던 당신인가

날마다 담장 밖을 향해 손을 내밀던

 

그러나 손에 손이 잡히지 않는

손에 손을 얹을 수 없는

그 손끝에서 피어나던 무한한 허공

 

그리하여 저 배롱나무가 피워 올린 붉은 꽃은

당신이 홀로 뒤집어쓰던 화관(話冠)이었다

당신이 당신을 위한 뜨거운 위로였다

 

배롱나무에 손을 대어본다

당신의 손이 머물렀던 자리에 얹은 손에 전해오는

조금은 서늘하고 매끈한 감촉

나는 마치 내가 당신이고 당신이 나인 것처럼 서러움이 몰려오고

멈추지 않는 그 사무침 속에서 피어나는 상사화

 

저 멀리 하늘에는 순두부 같은 구름이 떠가고

몇 백 년 묵은 고택 마당 안 굴뚝을 휘감고 있던 능소화가

소리도 없이 툭 한 송이 꽃을 떨군다

 

 

 

 

 

 

 

 

 

 

 

미세먼지를 날리다 / 서정임

 

 

낚시 바늘에 걸렸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아가미 걸린 눈앞이 뿌옇다

 

들려오는 울음소리가 드높다 집전화기 속에서 간절히 나를 부르는

 

내가 딸려간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떨리고 호흡이 가팔라지는 폐부

우리는 때로 메꽃과 나팔꽃의 명확한 구분 앞에 혼동하기도 하는가

 

휩싸인 미세먼지 속에서도 익숙했던 길과 나무가 그림자처럼 보이고

후크를 누른다 이내 그 단호함 속으로 밀려드는 정적

 

마스크를 쓴 듯 터져 나오지 않는 음성이 딸의 안부를 묻는다

스마트폰 속에서 들려오는 밝고 맑은 목소리

 

견고히 닫아두었던 문이라 생각했던 문틈을 비집고 들어선 미세먼지에

일평생 모아둔 돈을 한꺼번에 날렸다는 어느 노인을 말하던 친구는

국세청이라는 한마디에 통장비밀번호와 주민등록번호를 고스란히 불러주었다던가

 

깊은 숨을 내쉰다

허공에는 딸 아닌 딸이 딸을 가장한 미세먼지들이 떠돌고

그 낚시 바늘에 걸린 울음소리들이 뜨겁다

 

 

 

 

 

 

 

 
 

 

 

  약력

2006[문학선] 등단

2012년 창작지원금 수혜

시집 [도너츠가 구워지는 오후]

시흥문학상 굿모닝안산신문문학상

2020년 경기문화재단 지원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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