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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하동 260 외1편 / 박미산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5/17 [09:48] | 조회수 : 135

 

  © 시인뉴스 포엠



 

 

누하동 260                                          

                           -은희에게

 

 

 

당신의 등 뒤에는 커다란 유리창이 있고

유리창 너머 더 큰 벚나무가 있다

당신의 등을 만지던 벚나무 가지가

햇살을 돌아 당신 앞에 앉는다

새까만 궁금증이

뜨거운 꽃으로 피어난다, 커피 한 모금에서

 

석양으로 온화해진 그곳

팔에 기브스를 한 당신에겐

멍게 향이 번져 나오고 남쪽 바다가 보인다

열에 들뜬 당신의 또 다른 시작이

캔버스에 가득 얹히는 것을 본다, 나는

 

팔 하나로 그림을 그리는 당신 옆에서 어깨를 대주고

북두칠성을 함께 바라보고

꿈을 꿀 수 있는 그곳

밤새 크레파스가 둥글게 번져나가는,  

밤새 벚나무가 가지를 뻗어 지켜주는,

누하동 260

 

 

 

 

 

 

 

 

 

 

 

 

 

 

중중무진重重無盡 

                                                                     

                                                                      -고 최정희 소설가에게

 

   회색빛 긴 코트를 바닥에 끌던 당신, 처음 선을 보던 정동 MBC2층 럭스, 당신 눈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이상이 백석이 김동환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그들의 바다에서 빠져나온 당신의 눈에 내가 떨면서 앉아있다 인드라망 구슬에 나를 그대로 담은 당신의 눈동자, 스물다섯 해 추위를 홀로 견뎌내던 나를 회색빛 긴 코트로 막아준다 창밖엔 눈보라가 친다

 

   당신은 진종일 화투를 치다가 통행금지에 쫓겨 4층까지 미친 듯이 올라간다 싸늘한 냉기가 맞아주던 마포아파트, 눈은 여전히 내리고 그녀가 떠난 자리에서 퍼렇게 언 줄봉사들이 둘러앉아 화투를 친다 화투판을 찾아다니던 당신은 지금도 우주를 돌며 화투를 칠 것이다 나는 명치끝에 달려있던 구슬 소리를 꾹꾹 눌러 삼킨다 정릉구락부 줄봉사들의 붉은 말들도 수런수런 그물에 걸려있다 우리들의 소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박미산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200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등단

『루낭의 지도』(2008년 문예진흥기금 수혜), 『태양의 혀』(2014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201411월 조지훈 창작지원상

20176~현재까지 《세계일보》 「박미산의 마음을 여는 시」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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