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젖어버린 유언 외1편 / 김향숙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5/19 [21:28] | 조회수 : 85

 

 © 시인뉴스 포엠



 

젖어버린 유언                          

 

 

바닷가에 물고기 뼈가 널브러져 있다

바다가 발라먹고 남은 뼈 몇 조각

꼬리지느러미만 붙어 있다

저 꼬리로 죽음을 넘어 이곳까지 헤엄쳐 왔다

 

천적에게 쫓겨 있는 힘을 다해 꼬리를 저었던 기억

파도를 타고 하늘로 치솟던 전율이

아직까지 출렁거린다

 

꼬리를 떼어내지 못한 목숨 하나

가여운 생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다

가시를 뱉어내는 모래밭에

서쪽으로 수평선이 기울어진다

 

앙상한 뼈는 무슨 말을 남기고 싶었을까

마지막까지 놓지 못한 기억  

생선뼈는 물 위에서 노숙했던

크레타부족의 기호였다

미처 남기지 못한 유언은

동굴 속 벽화로 새겨졌다

 

바람의 추모사가 파도에 미끄러진다

알 수 없는 발음들

손짓 발짓을 거쳐 거품으로 태어난 문자들

뒷걸음질로 모래밭에 적어둔 말이 조금씩 지워질 때

 

뼛속 깊이 감춰둔 마지막 한 마디

젖어버린 유언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살과 피를 발라버린 앙상한 갑골문자가

또 한 번 파도에 몸을 뒤집는다

 

뼈의 말은 꼬리에 있다

사선을 넘나드는 꼬리는 끝까지 떨어지지 않는다

 

글자를 보호하기 위해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젖어도 찢어지지 않는 꼬리지느러미

 
 
 
 
 

 연두옹알이               

 

 

바람이 불어오면 잎이 꼬물꼬물

입속말은 봄의 첫 이처럼 눈부시다

새싹이 아장아장 나뭇가지를 비집고 나오면  

허공의 입술이 달싹거린다

 

뿌리에서 우듬지까지 새겨진 초록의 말

나무들의 언어는 연두

이파리가 열리고 소리가 흘러나온다

연한 잎이 오물거리는 저 여린 말이 자라면

얼마나 고운 말이 될까

 

가지마다 새싹들이 올망졸망 웃음을 단다

빗물을 받아먹고 숲의 공기를 마시며 포동포동 살이 붙는다(으며)

하얀 뭉게구름과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은 모빌이 되고

숲은 온몸을 살랑살랑 흔들며 방긋방긋 웃는다  

 

새순을 뾰족이 내밀어 까르르 옹알이를 시작할 때

야들야들한 목소리가 바람만큼 부드러워지는 계절이 오면

제비꽃 아지랭이 꽃들을 불러놓고 백일잔치를 벌인다  

 

초록 그늘이 주렁주렁 매달리는 계절

옹알이를 알아들은 바람은 하늘 높이 올라 노을을 펼치고

무지개가 깔린 길에 구름을 나른다

 

잎사귀엔 가지의 소리가 듬성듬성 지나간 자국

숲을 빠져나간 붉은 소리는 나뭇가지마다 푸른 말을 새겨놓는다

찬바람에 우수수 입이 닫히는 계절

옹알옹알 주고받은 손짓 발짓의 흔적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꽃잎의 말이 끝나면

단단해진 푸른 잎

연두의 첫 발음이 고요하게 울린다

 

 

 

 

 

약력

김향숙

2018년 평사리 문학상 대상 수상

2019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

2019년 최충 문학상 대상 수상

2019년 황순원 디카시 대상 수상 등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 공모전소식
[윤명선박사] 종교: 그 본질은 ‘참된 신앙’에 있다.
메인사진
  XVI. 종교: 그 본질은 ‘참된 신앙’에 있다.   신은 존재하는가 그...
[윤명선박사] ‘죽음’의 문제: 자연사가 마지막 행복이다
메인사진
XV. ‘죽음’의 문제: 자연사가 마지막 행복이다.   생물학적으로 죽음...
[윤명선박사] ‘예술’을 입힌 노년: 한 차원 높은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
메인사진
  XIV. ‘예술’을 입힌 노년: 한 차원 높은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
[윤명선박사] 노년의 사랑: ‘마지막 사랑’도 아름답다.
메인사진
 XIII. 노년의 사랑: ‘마지막 사랑’도 아름답다.   사랑은 인간이 추...
[윤명선박사] 노년의‘인간관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
메인사진
  XII. 노년의‘인간관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
[윤명선박사] 노년의‘일’: 의미 있는 일을 해야 마지막 보람을 느낀다.
메인사진
XI. 노년의‘일’: 의미 있는 일을 해야 마지막 보람을 느낀다.   노동...
[윤명선박사] 노년의‘경제력’: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갖추어야 한다.
메인사진
X. ‘노년의‘경제력’: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갖추어야 한다....
[윤명선박사] 노년의‘부정정서’: 노년의 행복을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메인사진
 IX. 노년의‘부정정서’: 노년의 행복을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