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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옥 외9편 / 문현숙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5/21 [13:50] | 조회수 : 141

 

  © 시인뉴스 포엠



 

파리지옥

 

 문현숙

 

 

 

 

 

하양장이 서던 날,

백반 정식 소문난 중남식당은 파리지옥이었지

미식가라 자칭하던 것들이

잔칫날인 듯 차려진 밥상 위로

펄펄 끓는 국속으로 겁 없이 뛰어들어

입맛 다시는 노마드 청춘들  

천장이 내려 준 구름다리 타고 올라가

걸쭉한 훈장처럼 박제된 양 날개

까마득한 허공만 파먹고 살아도

지상에서 영원으로 갈수 있는지

산해진미 눈앞에 둔 처절한 전쟁터

입맛 찾아 떠돌던 여자

허기진 한 때, 모처럼 채우고 있었지

군내 나는 청국장쯤으로 여겨 밀친 사내도

제철음식 최고라 편식하던 그녀도

우화를 꿈꾸는 집파리처럼,  

사흘을 채 못 넘기던 부나비 사랑

기둥서방처럼 껴안다 불어터진 달콤한 지옥

 

 

 

 

 

무섬

 

문현숙

 

 

 

 

물살보다 천천히 흘러가는 모래알들

흐르다 멈추다 또 흘러간다

등을 맞댄 여자는 오래전부터

남자의 흘러가는 마음을 경전처럼 읽고 있다

여자는 남자의 어제가 익숙한 오늘이다

떠밀려가도 사라지지 않는 물그림자들이

지금껏 지워내지 못한 추억을 닮았다

흘러가기만 하는 남자와

흘러간 것조차 숨구멍이 된 여자는

무섬 외다리를 건너가 포개진

갈대숲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동행은 두렵고 불안한 무서움에 드는 일

벗어날 수 없는 소용돌이로 번져가는 일이다

따가운 갈볕에 휘어져 반짝이는 내성천은

버린 애인처럼 다시 만난 연인처럼

무섬을 껴안고 흘러가고 흘러온다

 

 

 

 

 

*무섬 ;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 원래 이름이다.

 

 

 

 

 

안개감옥

 

               

 

그들은 뭉쳐야 사는 종족들

산 자와 죽은 자도 반드시 들어서야하는

생의 정거장 같은 곳

선택받거나 버려진 자도 숨죽인 채,

주위를 곁눈질하다 슬쩍 스며들 수 있다

공중전화 부스를 닮았거나 골방의 눅눅한 공기 같은,

어쩌면 아우슈비츠 가스실 같은 곳

안개에 묶인 유대인들이 칸칸이 빼곡하다

안개를 닮은 사람들

흩어지지 않으려 서로 등을 기대고 있다

마주보면 불편한 먼 바다처럼 혼자 출렁이고 싶은,

그래도 그곳에선 외롭지 않겠다

실컷, 자유라는 안개를 뿜어 낼 수 있으니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 한 개비 돛대를 귀에 꽂고

안개 감옥으로 들어선 사람들

만국 공통어를 내 뱉고 있다

흡연공화국엔 수인번호가 없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뭉치기 위해 혼자라도 먼저 들어서야하는

안개 감옥 한 칸,

부옇다

             

 

 

 

 

와인터널  

 

 

 

“아가야, 언놈이 나를 노려보고 옷을 자꾸 벗으라 한다 내 좀 살리도 제발”

 

육지 속, 또 다른 섬

먼지 쌓인 입구 쪽으로

너울처럼 밀려오는 가르릉 가쁜 숨결

늘 더디 오던 봄처럼

출구를 끌고 갈 것들은 어디쯤 표류하는지 모를, 지금

한 방향으로만 타협했을, 막바지 질주는

감속기어 없는 시간의 풍속風速

세상 아닌 세상을 더디 지나며

얼마나 더 가야만 봄날의 정착지, 가 닿을지

흔한 안내문 한 줄 찾을 수 없다

이편과 저편 사이 경계인처럼 서성이던 십수 년

바람을 포용했던 돛의 기억은 낡고 삭아

밀물 빠진 갯벌에 홀로 정박해 있다

헤진 언덕 어디쯤

닻을 못 내린 채 부러진 노가

어두운 질감을 바닥에 켜켜이 꽂는다

굳은 관절들이 비틀어진 척추마다 등을 내 건다

 

비상등이 번쩍, 달려온다

한쪽 솔기가 막힌 와인터널처럼

어머니, 죽음을 숙성시키고 있다

 

 

 

 

 

 

케이크

 

문현숙

 

 

 

판도라 상자를 열면

풀어진 리본처럼 긴 안부들과

기척해오는 근황들

늦은 저녁처럼 참 오래도 견딘

아버지가 걸어 나온다

국화 한 아름 건네주시며

오래도록 이고 있던 무서리들을

, 툭 털어 주신다

밥통을 닮아가는 나의 생일이자

육수 빠진 멸치 같은 아버지의 제삿날

고사지를 떠나온 바람이 훅, 촛불을 끈다

저문 시월, 그때처럼

막걸리에 취하신 불그레한 모습

먼 곳으로 물러나 앓으신다

실밥이 터진 바지처럼

꺼풀을 물고 뜯겨진 누런 달력처럼

, 타오르는 기억 때문에

영원히 늙지 않는 아버지가

두고 나온 낡은 집처럼 기울어 갈 때

봄 햇살 담뿍 담긴 생일 안부를 묻고

다시, 상자 안에서 으슥하게

그리고 형형색색으로 늙어간다

 

 

 

 

 

좀 더 고전적인 김밥

 

문현숙                          

                                   

 

 

한 장 검은 세상을 펼친 조물주는

뜨겁고 둥근 흰 여의주를 가져와

넓고 넓은 세상을 한 겹 더 펴서 얹었다

푸른 강줄기들을 굽이굽이 펼치자

붉은 새들이 떼 지어 날아가고

몇 줄의 누런 사막이 길게 나타났다

그 사이, 검게 그을린 흔적들이

장방형으로 넓혀졌다, 좁혀진다

조물주는 두툼해진 몇 겹의 세상을 둘둘 말아

간석기로 툭, 잘라 놓았다

대륙별로 공정하게 나눠진 세상 속은

태초의 그곳처럼 보기에도 좋고 먹음직했다

더군다나 한 입에 털어 넣을 수 있으니

천지창조의 정신에 위배되지 않는다

길쭉한 오대양 육대주가 뱃속에서는

다시, 한 세상이 된다

칼질이 예리한 세상의 토막마다

신화적 포만감이 가지런하게 박혀 있다

 

 

 

 

 

 

노을을 익히다

 

문현숙

 

 

 

암술 담아 올린 샛노란 꽃잎들

공중으로 날개 풀어 헤쳐

황홀한 뜻 하나 새겨 두려는 듯

걸어온 길 되짚어 본다

새벽까지, 누운 노을을 닮아갔을 것이다

담벼락에 기대 오른 하늘 한 칸

곱게 불 타 오를 때까지

디뎌온 발자국마다 때론,

되돌리고 싶은 외마디 줄에 매달려

그래도 살아야 한다, 입맛 다셨을 것이다

날 선 칼날을 닮았거나

갓길 없는 생,

고비마다 넝쿨이 되고

생채기 난 천만사마다

노을이 지는 쪽으로 귀 기울였을,

그렇게 무대를 마감하고 싶었을,

애호박 한 통  

온몸으로 하늘을 인 채

허공에 띄운 등화(燈火)가 되어

노을을 끌어안고 둥글게 늙어갈

붉은 신호, 보내고 있다

 

 

 

 

 

PD,그리고R

 

 

 

아양철교 폐선로 위 불시착한 우주선

형형색색 가지각색의 외계인들

입술은 붉고 말들은 푸르다

태초의 새들처럼 날아들더니

철새처럼, 도래지를 버리고 간다

저녁밥 지으러 하나 둘 떠나고 나면

마지막 항해를 숨겨놓았던 우주인도 훅,

끼쳐오는 밥 냄새를 맡고 시동을 건다

 

P기어가 잠겨 R이 들어가지 않는다

아무리 용을 써도 뒤로 가지 않으니

착륙지를 벗어날 수 없다

PD사이만 들락거렸으므로

그저 가고서는 우주선이었는데

불현 듯, 진땀이 난다, 식겁먹는다

 

R이 잠기니 D로 갈 수가 없다

R이 잠기니 P로도 설 수가 없다

()은 항해가 불가능 할 수도 있다

PD사이

DP사이 외계인처럼 갇혀버린 날

scenario worked out

중력 견인 우주선을 기다리며

검은 매니큐어를 바르고 있다

 

 

 

 

 

 

건너가거나 건너오거나

 

 

노쇠한 관절에 이끌려가는 낡은 바퀴가

고행처럼, 노파보다 더욱 삐걱 거리는데

그녀의 꺾인 허리보다 더 낮은 세상은 없다

팔차선을 가로 지르는 유화 한 장면

바퀴들이 숙주인 푸른 신호는 기력을 다해

깊어진 주름은 저녁마저 위안이 되지 않는다

조등처럼 붉은 신호등은 비몽사몽,

타오르는 서녘하늘 경계 지우고 섰다  

저 세상에 드는 일은 한 순간

이승이 곧 저승

저승이 곧 이승이다

먼 기별처럼 길게 코를 늘어뜨리고  

건너가는, 갈 뿐 건너오지 않는다

바삐 오가는 차들을 아랑곳 않고

투명한 그림자처럼 건너가는 바퀴들

퇴적층처럼 쌓인 폐지산 아래

윤회의 바퀴살이

끝물의 도시풍경을 밀고 나간다

노파가 굴러간다

바퀴가 구르거나 노파가 구르거나 흔적이 없다

붙잡거나 놓아주거나

붉고 푸른 등이 노파의 한 생을 물고 있다

 

 

 

 

 

졸음체 운전법

 

 문현숙

 

 

 

 

사내가 잡은 핸들은

흘림체가 익숙하다

세상 향해 흘러들어 갈 때마다

만개한 붉은 꽃들 앞에서

잠시 숨을 죽였다가

푸른 잎들 사이로 건너가는 바람처럼 흘러간다

위태로운 비보호 구역은

비무장지대를 닮았다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불안한 생각도 잠시,

사내가 잡은 핸들은 졸음체가 된다

쉼표와 마침표를 번갈아 찍으며

여러 문체를 옮겨 쓰기도 한다

대구에서 서울까지

단 하루, 쉬지 않고 드나들어도

불완전 문장들만

그의 짐칸에 가득하다

 

 

 

 

 

 

 

 

이름 ; 문현숙

 

약력 ;

      *2015년 제39회 방송대문학상 대상 수상

      *2015년 제33회 마로니에 여성백일장 장려

      *2016년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장려

      *2018년「월간문학」등단

      *20163~현재, 대구신문「달구벌 아침」집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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