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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꽃 외1편 / 박완호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6/01 [08:58] | 조회수 : 112

 

  © 시인뉴스 포엠



파꽃

박완호

 

 

 

바람이 달려간 쪽으로 햇빛이 알싸한 폐곡선을 그리며 비껴갔다. 햇살 휘는 궤도를 거슬러 고개 돌리는 사이 작은 별 하나 공중에 떠올랐다.

 

초록 번지는 파꽃, 뿌리에서 멀리 떨어진 쪽에서 줄기가 전부인 식물의 한 생애가 꼿꼿이 일어서고 있었다. 

잎 없는 식물의 생이란 지느러미가 잘려나간 물고기의 전진처럼 가파른 것이어서 누군가는 아예 눈을 감아버리곤 하지. 

가도 가도 도무지 끝이 안 보이는, 손을 내저어봐야 아무것도 닿지 않는 어둠 속을 간다. 제 속의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려가며 스스로 길을 만드는 이의 걸음은 본적 없이 피어난 꽃의 둥근 궤적을 되짚어가는 중이다.

남쪽 어디선가 당신이 꽃을 피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대가 꽃을 피워낸 건지, 꽃이 기어이 그대를 피워 올린 건지. 단숨에 백 년을 늙어버린 내 귀로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다.

당신이 보냈을지 모를 소행성이 내 쪽으로 날아들었다. 거기서도 곧 어린 별 하나를 보게 될 것이다.

 
 
 
 
 

  

 박완호

 

 

 

사랑의 판에서 나는 언제나 을이었네

사랑한다는, 안녕이라는

첫 마디는 한 번도 내 몫은 아니었네

 

나는 다만

사랑이라는 말의 무한생산자이거나

낯선 기도문 앞에서 머뭇거리는 순례자였을 뿐,

 

그러니 사랑이여,

또 너를 위한 노래를 부르게 해 다오

 

깨물린 혀로 별빛을 스치는 바람 소리처럼,

영원의 어깨를 짚고 저물어가는 고요처럼,

 

창백한 글자들로 애인의 아침을 일으키기까지는

 

사랑에 눈먼 청맹과니가 되어

홀로 밤길을 헤매어도 좋으리

 
 
 
 

박완호199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 『기억을 만난 적 있나요?, 『너무 많은 당신』, 『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다』, 『아내의 문신』, 『염소의 허기가 세상을 흔든다』, 『내 안의 흔들림』 등. 김춘수 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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