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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계숙 시집『피스타치오』해설

사물과 삶을 접목한 절묘한 방식 마경덕(시인)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6/03 [10:15] | 조회수 : 914

 

  © 시인뉴스 포엠

 

 

 

홍계숙 시집『피스타치오』해설

 

사물과 삶을 접목한 절묘한 방식

 

 

                    마경덕(시인)

 

 

  시를 쓰기 위한 “대상”을 앞에 놓고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시가 될 확률이 낮다. 떠오르는 익숙한 것들을 제해버린, 생각 밖의 것들, 즉 생각하지 못한 “나머지”가 대부분 시의 소재가 된다. 이때 시인은 실제성을 고민하게 된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은 이미 남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작은 “인식의 전환”으로 시작된다. 시는 시인의 인식을 통해 이해되고 전달되기에 불확실한 것들을 의심하고 확인하며 시인은 교란(攪亂)을 유도한다. “안전망 없는 이미지의 시대에 발을 딛고 선 당신의 세계가 아주 잠깐이라도 흔들리기를 바라며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어느 작가처럼 작품 속에 교묘하게 덫을 놓고 독자가 미로에 빠지기를 잠잠히 기다린다. 바다나 호수의 수면으로부터 수십 미터까지 비교적 같은 온도를 유지하는 “물의 교란층(攪亂層)”이 있듯이 시인은 “시의 교란층” 어디쯤에서 형상화된 이미지가 뒤집히는 출렁거림을 기대한다.

  시의 표정이 달라져 일어나는 파동은 “즐거운 교란”이다. 답이 없는 “미궁”보다는 출구가 있는 “미로”가 흥미롭다. 예측하지 못한 어떤 것들은 신선한 자극제가 되어 긴장감을 유발한다. 시 쓰기는 어떤 충돌을 기대하며 마음을 작동시킬 스위치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곳곳에 장치된 문장에 감전이 되는 순간, 무릎을 치게 될 짜릿한 생각은 발명품과 같다. 시 쓰기는 보이는 것들의 뒤에 숨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찾아내는 다감각적 작업이다. ()의 기능 중 중요한 것은 창조와 창작이다. 누군가 먼저 발명해버린 특허권을 획득한 작품을 표절하면 문제가 된다. 남다른 시를 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홍계숙 시인의 시적 경향은 “사물에 대한 관찰”에서 출발한다.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해내는 특유의 도전적 성향은 익숙함을 “낯섦”으로 바꾸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평면적인 공간에 입체적인 리얼리티를 설치한 그의 시편들은 시적 상상력을 가미해 다양한 변주를 시도한다. 무엇보다 홍계숙 시인의 특장점은 사물이 지닌 이미지를 현실과 접목해 독자가 독해(讀解) 할 수 있는 새로움을 추구한 점이다. 시의 소비자인 독자들은 출시된 제품을 먼저 구입해 평가를 내리고 제품의 정보를 알려주는 ‘얼리 어답터’여서 소통은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계숙 시인의 공감력이 높은 상상력은 거부감 없이 작품 속으로 스며들게 한다.

 

 

  개 한 마리 키우실래요?

 

  죽기 살기로 부딪쳐 본 적 있나요 진퇴양난이 붉은 잇몸을 드러낼 때 느닷없이 달려드는 개를 보았죠 죽어야 사는 여자, 그 영화 포스터가 걸린 담벼락에서

 

  여섯 살 때 친구에게 달려든 개가 내 심장을 삼켜버렸어요 고통을 물어뜯은 타액이 뚝뚝 떨어지던 나는 심장 한쪽이 없죠 개도 안 물어갈 심장이 남아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요

 

 

  , 가끔 비명이 빛보다 빠르죠 소리의 누런 이빨 사이로 시큰한 통증의 향내가 풍겨요 오른쪽 팔을 들어 올릴 때,

 

  오르막길일까요, 내리막길일까요

  외투의 중턱에 지퍼가 끼어 웃지도 울지도 못하네요

  오십의 안감을 꽉 물고서

 

  사육에도 내공이 필요해요 내공은 어깨 근육 속에 있죠 개가 짖을 때, 끼인 지퍼의 기분을 살짝 들어서 올려야 하듯

 

  오십은 개가 물어뜯기 좋은 나이

  놓치고 돌아온 무지개를 되돌아보는 나이

 

  개에 물린 날들이 견갑골에 기록된

 

  컹컹, 어깨 깊숙한 짐승의 울음을 꺼내야 해요

                             ―「오십견()」전문

 

 

  동음이의어인 견()()은 퍼포머로 관계를 맺으며 “공간을 이동”한다. 그 둘의 사이를 은폐하며 어깨를 물어뜯은 개와 오십견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기억 속에 잠재된 개의 이빨은 어느 순간, 견갑골에 기록된 통증으로 환치된다. “컹컹, 어깨 깊숙한 짐승의 울음”으로 청각적 이미지를 발현시키고 어깨()와 개()의 간극을 하나로 일치시킨다. 흔히 50세 이후에 발생하는 오십견은 별다른 외상없이 어깨에 발생하는 질환이다. 심한 통증으로 팔을 위로 들어 올리기도 어려워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준다. “오르막길일까요, 내리막길일까요/ 외투의 중턱에 지퍼가 끼어 웃지도 울지도 못하네요/ 오십의 안감을 꽉 물고서”에서는 인생의 중반인 중년과 겉옷의 안감을 꽉 물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퍼의 모습을 통해 일상생활에 불편을 주는 오십견의 만성통증을 연상하게 한다. 주목할 것은 ‘물다’이다. 시인은 ‘물다’라는 동사를 통해 개가 지닌 이미지를 확장해나간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발생하는 장소는 사람의 몸인 어깨이다. 중년을 넘어서면 하나둘 나타나는 질병들은 이빨을 드러내며 건강을 위협하고 가해자인 견()은 쉽게 잡히지 않는다. 중의적의미를 지닌 견()과 견()이라는 혼재된 이미지의 다양한 변주를 통해 긴장감을 유지시키는「오십견()」은 질병에 노출된 중년의 건강에 적신호를 보내고 있다.

 

 

  독과 약은 같은 뿌리에요

  유전자의 출발이 같다는 말인데요, 콩에서 건너온 두부가 다시 콩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어머니는 새벽기도에 콩을 불려요 기도 속에서 토끼가 뛰쳐나오고  

 

  딱딱할수록 오래 불리고 곱게 갈아 푹 삶아야 한다고

  아버지 수의를 깁고 남은 베보자기, 그 밑으로

  콩물이 뚝뚝 떨어져요

 

  어머니 기도는 콩의 코딩부호를 해독 중,

  기도가 두부를 콩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요

 

  남편 복 없으면 자식 복도 없다는 수식의 모스부호는 0이거나 1,

  모 아니면 도, 라는 치기어린 질주로  

 

  콩이 기도에 끓여져 차가운 틀 안으로 들어갔죠

  양심을 간수하지 못했거나 바닷물의 염도가 맞지 않았거나

 

  물컹한 토끼는 어디로 달아났을까요

 

  틀 속에 콩물을 붓고 압력을 가하고

  흥건한 자유를 빼내며 말랑하게 혹는 단단하게 굳어가길 기다리는 시간,  

 

  잃어버린 기도를 불러와요

 

  달과 어둠의 값으로

             ―「두부와 기도에 관한 알고리즘」전문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차, 방법, 명령어들의 집합인 알고리즘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해 하나의 작업을 수행하는 방법의 서술이며 논리 요소와 통제 요소로 구성된다. 논리적인 어머니와 그 논리를 지배하려는 아버지는 알고리즘적인 관계이다. 마치 “콩과 두부”가 하나이며 “독과 약”이 한 뿌리이듯 불가분의 관계에서 억압하고 억압 받으며 살아온 부부의 모습이다. 아버지의 수의를 짓고 남은 자투리 베보자기 밑으로 떨어지는 콩물은 어머니의 눈물로 읽힌다. 아버지를 위해 드리는 어떤 기도도 두부를 콩으로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기도할 때마다 토끼처럼 뛰어나오는 기억 속에는 “남편 복 없으면 자식 복도 없다”는 탄식이 들어있다. 자식들이 아버지에게 받은 불운한 유전자의 출발이 같다는 말이다. 끝내 가족을 책임지지 못한 물렁한 토끼는 어디로 갔을까. 재바른 토끼처럼 잡을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찬 기억을 어머니는 왜 놓지 못하는 것일까. 두부는 평소에 아버지가 좋아하던 음식이었을 것이다. 콩을 삶아 두부를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두부를 만든다. 한 남자에게 매여서 자유롭게 살아보지 못한 한 여인은 오랫동안 길들여진 대로 여전히 죽은 남자의 지배 아래 살아간다. 그토록 간절하던 기도는 바뀌었지만 여전히 기도를 드리는 모습은 가족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의 모습이다. 기존의 사회문화적 관습과 알고리즘의 권력에 길들여진 어머니는 “암묵적인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맷돌에 갈려 콩은 두부가 되었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듯이 “사랑과 증오”도 한 뿌리였다. 사회문화적 측면들을 반영한「두부와 기도에 관한 알고리즘」은 한 남자의 보호와 지배아래 살아가던 전형적인 우리의 어머니들이다. 존재는 사라져도 끝없이 가동되는 기억을 붙잡고 살아가는 이 땅의 어머니들, 홍계숙 시인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들여다보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도출(導出)해낸다.

 

 

 

  거리를 걸어가는 모래시계들

  하루의 잘록한 허리 위에서 아래로 흐르며 내일을 꿈꾼다  

 

  물기는 시간의 감정

  흐르는 모래에는 물기가 없다 거꾸로 뒤집히거나 세차게 흔들려도 모래는 묵묵히 아래로 흐른다

 

  흐르는 강물을 수직으로 말리면 모래시계가 된다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들

  신은 중력의 방향으로 서서히 시간을 허문다

 

  나이는 삶의 밑바닥으로 모래를 쌓는 일, 모래의 심장이 깨어지거나 고꾸라지거나  

 

  뜨거운 사막을 직립으로 건너던 아버지

  한꺼번에 쏟아졌다

 

  횡단보도 앞 1톤 트럭 사이드미러가 시간의 뒤통수를 친 순간, 아버지는 길바닥으로 모래알처럼 쏟아졌다

 

  두 손은 자유로워도

  스스로 시간을 뒤집을 순 없다

                           ―「직립의 시간」전문

 

 

  모래는 점성이 없어 스스로 뭉치지 못한다. 한 알 한 알 개개의 모래들이 모여 더미를 이루지만 직립은 불가능하다. 물질과 물질을 접착하는 시멘트의 도움 없이는 그저 모래일 뿐이다. 14세기부터 사용된 모래시계는 이런 모래의 성질을 이용해 만들었다. 가운데가 잘록한 유리그릇에 크기가 일정한 마른 모래를 넣고 두 칸 사이의 구멍으로 떨어진 모래의 부피로 시간을 잴 수 있다.

  시인은 왜 시의 도입부에 거리를 걸어가는 모래시계들이라고 하였을까. 빠름, 빠름을 외치는 21세기는 속도를 다투는 전쟁에 뛰어들었다. 오늘날 세계를 작동하는 힘은 속도에 있다. 세계를 강타한 바이러스 팬데믹도 속도전이었다. 전 세계의 흐름을 유튜브나 SNS로 한눈에 알 수 있는 시대, 속도전에 휘말려 속도에 지배당하는 인간은 걸어 다니는 시간이며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그릇과 같다. 누가 흐르는 시간을 멈출 수 있으며 뒤집을 수 있을까. 시의 인트로에서 암시한 불안한 기류는 잠복 중이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시인의 아버지는 1톤 트럭 사이드미러에 부딪혀 길바닥으로 모래알처럼 쏟아졌다. 사고와 결합한 시점에서 이탈한 아버지, 그와 동시에 인간의 목숨은 모래시계와 같은 것이라는 허망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자유로운 두 손을 가지고도 뒤집힌 아버지를 직립으로 세울 순 없었던 시인의 상처는 가족사를 이야기할 때 극대화된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의 감정에 함몰되지 않고 차분하게 그 파국(破局)을 감당하고 있다. 아래「용인 가는 길」에서도 시인이 간직한 슬픔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목련꽃 한 다발을 안고 갑니다

 

  가도 가도 알 수 없는 길을, 알 수 없어 물을 수 없던 멀고 먼 어린 날을 지나갑니다

  절반의 꽃씨를 품었던 해바라기 날들을

  반그늘을 애써 감추던

  바람에 흔들리는 냉이꽃 같던 봄날을

  멀고도 가까운 풍경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갑니다

 

  푸른 벽 속으로

  돌의 내부 같던 터널 속으로

  산비둘기 속울음이 새벽의 껍질을 벗기고 있습니다

  끌어안을 수 없던 가시들이 가슴을 통과하여

  되돌아와 꽂히고

  단단히 박음질 된 길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 길에서 용서는

  인터체인지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둥지를 버리고 바람 속으로 날아가 버린 새

  봄날을 놓쳐버린,

  빈 가지에 두고 간 목련 꽃송이들

  나무는 홀로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슬픔이 만발한 가족공원 저 멀리

  냉이꽃을 입에 문 하얀 새 한 마리 날아갑니다

 

  불어오는 바람결에

  아버지…

 

  내 안에 남은 절반의 풀씨를 훌훌 날려 보냅니다

 

                             ―「용인 가는 길」전문

 

 

  산비둘기 속울음이 “새벽의 껍질”을 벗기는 시간, 목련꽃 한 다발을 안고 가는 길은 가도 가도 알 수 없는, 알 수 없어 물을 수 없던, 멀고 먼 어린 날을 지나가는 길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냉이꽃 같은 봄날은 흔들림을 감당한 “고통의 시간”이며 슬픔에 무방비로 노출된 시인의 어릴 적 모습이다. 시인은 자신의 처지를 가느다란 줄기로 꽃을 피우는 연약한 냉이꽃으로 표출한다. 아득한 봄은 늘 가까운 풍경처럼 한 장 한 장 선명한 상처로 남아 재현되고 슬픔도 함께 자랐을 것이다. “이 길에서 용서는/ 인터체인지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에서 보여주듯 시인이 품고 살았던 “상처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고속도로에서 만나는 인터체인지는 교통이 지체되는 것을 막고 교차지점에 신호 없이 다닐 수 있다. 시인은 “미움과 사랑”이라는 방향이 교차되는 곳에서 둥지를 버리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아버지를 용서라는 이름으로 갈아타야 함을 깨닫는다. 그동안 아버지의 빈자리를 차지한 숱한 눈물과 외로움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승효상 건축가의 “빈자의 미학”을 보면 어떤 공간을 기능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비워둠으로서 무한한 창조의 에너지로 채운다."고 하였다. “적당히 불편하고 적절히 떨어져 있어 더 많이 걷고 나눌 수밖에 없는 건축이 좋은 집이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남이 가진 것을 가지지 못해 가슴 아린 날들이 많았지만 그 가지지 못한 시간들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냉이꽃 같던 봄날을 기억하는 홍계숙 시인에게 슬프고 놀랍고 아픈 그 “빈자리”는 문학이 싹을 틔운 자리였을 것이다.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은 “시인의 시가 슬프고 절망을 드러냈다고 해서 그의 인생이 슬플 것이라고 판단하지 말라. 서러움을 글에 담을 수 있기에 그는 자유로워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냉이꽃을 물고 날아가는 하얀 새 한 마리는 “용서와 비움”을 상징한다. 어쩌면 홍계숙 시인은 자신의 아픔을 기록하며 “슬픔의 서식처”에서 빠져나올 출구를 찾아냈을 것이다.

  불어오는 바람결에 나지막이 불러보는 아버지…슬픔을 꾹꾹 누르는 모습이 선연하다. 오랫동안 숨겨둔 그리운 이름이 여운을 남긴다. 아름다운 서정시로 이루어진「용인 가는 길」은 비장미(悲壯美)가 넘치는 작품이다.

 

 

  아주 오래 전 연애,

  벌어진 틈 사이

  잘 구워진 슬픔은 담백한 맛일까

 

  단단한 기쁨을 깨뜨리면 그 안에 쫀득한 귀엣말

  사랑이 익으면 영원하리라 믿던

  피스타치오,

  저절로 벌어지는 소리를 줍던 달빛 아래

 

  솔깃, 달의 솔기가 터지고

 

  뭉친 먹구름을 빠져나온 아이가 어둠 속에서 손뼉을 치네

 

  쏙 빠져나온 쭈글쭈글한 두려움,

 

  자고 일어나 다시 깊게 잠들어버린 태아의 생애를 지나

 

  하루 권장량의 허무와

  허름한 강물 소리,

 

  초록의 안쪽은 물기가 사라지고

  말랑한 망각은 껍데기 속에서 빛을 바래, 꺼내지 못한 약속의 바깥은 쓸쓸해라

 

  버려진 두 쪽의 결기,

  온기마저 사라진

 

  골목길 옛집을 돌아 나온 바람의 귀가 말라가네

  오십천 버들가지 자꾸만 강물을 쓸어 넘기고 그녀의 껍데기도 점점 얇아지네

 

  벌어지는 소리를 주우려 피스타치오가 익어가는

  머나먼 사막 끝으로 술래잡기하듯

 

  드문드문 눈발이 날리네

                             ―「피스타치오」전문

 

 

  딱딱한 껍질을 벗기면 나타나는 초록색 열매 “피스타치오”, 단단한 껍질은 솔기가 터진 듯 반쯤 벌어져있다. 순간 우리의 시선은 벌어진 틈에 고정된다. 호기심을 작동시키는 “피스타치오”의 틈으로 들어가 보자. “아주 오래 전 연애, / 벌어진 틈 사이”에서 우리는 예감한다. 사랑의 간격과 간격을, 잘 구워진 슬픔의 맛을.

  골목길 옛집의 서툰 사랑의 간격은 딱 “피스타치오”의 틈만 하다. 금방 닿을 수 있는 좁은 그 틈은 끝내 메울 수 없었다. 사랑이 익으면 영원하리라 믿던 쫀득한 귀엣말도 딱 그만큼의 간격으로 멀어져버렸다. 시인은 껍데기 속에서 꺼내지 못한 약속이 그 안에서 빛이 바랬다고 고백하며 “자고 일어나 다시 깊게 잠들어버린 태아의 생애를 지나// 하루 권장량의 허무와/ 허름한 강물 소리”를 듣고 있다. 자라다만 미숙한 사랑은 빛을 보지 못한 태아이며 과거라는 시간 속에서 깊이 잠들어버렸다. 하루 권장량의 허무는 오직 시인만이 아는 “쓸쓸한 무게”이다. 결기가 사라져 이제 강물소리마저 허름하다니, 허름하다가 불쑥 가슴을 붙잡는다. “허름하다”는 것은 “사람이나 물건이 표준에 약간 미치지 못한 듯” 할 때 쓰는 말이 아닌가. 콸콸 흐르던 강물마저 시들해서 허름하다니, 시인의 감성과 우리말의 절묘한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는다. 현시대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대이다. 고액을 주고 구입한 브랜드의 이미지는 쓸모보다는 “믿음이라는 이미지 값”이다. 시집 표제작인「피스타치오」는 사물의 이미지를 잘 활용한 시인의 재치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파스타치오”의 틈에서 발견한 이 상큼한 재치는 홍계숙 시인을 보증하는 “이미지 값”이라고 계산해도 좋을 것이다.

 

 

 

  겨울은 초식성일까요 잡식성일까요

 

  빈 들판에 놓인 의문은 원통형이죠 파랗거나 하얀,

  의문의 밑바닥엔 단단한 침묵이 살고 그 속에는 수만 마리 고요의 애벌레가 꿈틀거려요

 

  농가의 공룡 알,

  탱탱해지는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부화를 기다리는 팽팽한 시간 바비큐 깜부기불 위에 구우면 겉은 바삭하게, 속은 자글거릴 달콤하게

 

  추수가 낳은 초식 공룡의 알, 때론

  버려진 것들이 겨울의 든든한 먹잇감이 되어요

 

  들판은 겨우내 질긴 고요를 되새김질 중이죠

  이삭이 잘리고 언 땅에 뿌리가 파묻혀도 견디어온 시간만큼 말없이 분주해요

 

  찔깃한 마시멜로를 오물거리며 겨울이 빈 들판을 건너가요

 

  커다랗게 젖은 눈망울로

 

  건초를 씹는 뜨거운 입김이 초록에 닿아있어요

                   ―「초록을 위한 마시멜로」전문

 

 

  언제부턴가 빈 밭에 뒹구는 하얀 물체가 필자의 눈에 띄었다. 무언가 궁금해서 알아보니 건초를 묶어둔 덩어리였다. 동물의 사료나 거름으로 쓸 볏짚더미를 압축 포장한 “곤포 사일리지”였다. 하얀 비닐에 꽁꽁 싸인 모습이 “마시멜로” 같기도 하고 커다란 “공룡알” 같기도 하다. 무언지 모를 의문의 밑바닥엔 단단한 침묵이 살고 그 속에는 “수만 마리 고요”가 애벌레를 낳고 번식한다. 어둠속에서 발효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들판은 농가의 소가 되어 질긴 고요를 되새김질하고 빈 논은 다가올 봄을 위해 말없이 분주하다.  

  여느 풍경화와는 다른 느낌이 들도록 자신이 보는 어떤 풍경과 그림 사이, 중간쯤 되는 지점에서 관찰자의 입장으로 바라보는 화가도 있다. 홍계숙 시인도 그 지점을 찾아 풍경을 바라본다. 사물을 작은 단위로 분해하고 들여다보는 시선은 들판의 은밀한 호흡까지 찾아낸다. 시인의 의식을 따라 멈춰버린 계절이 순환하고 시인은 사물들과 관계를 형성하며 시적 인식을 넓혀간다.

 “들판은 겨우내 질긴 고요를 되새김질 중이죠/ 이삭이 잘리고 언 땅에 뿌리가 파묻혀도 견디어온 시간만큼 말없이 분주해요”에서 알 수 있듯이 고요히 움직이는 정중동(靜中動) 기운이 시 곳곳에 흐르고 있다.  

 

   미세라는 새가 태어났습니다

 

 

  신종 조류입니다 먼데서 날아온 혹은 가까운 바닥에서 날아오른 아주 작은 새입니다 너무 작아 조류가 아니라는 설도 있지만 하늘을 덮는 힘찬 날갯짓으로 보아 새의 무리가 분명합니다  

 

  주로 ㄴ자 ㅅ자형 경로로 공중에 유입됩니다 모든 철새들이 그렇듯 번식지와 월동지를 가릴 줄 압니다 봄은 떠돌이새들이 창밖에 번식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무리가 많고 적음에 따라 하늘의 낯빛이 바뀝니다

 

  나쁨 아주 나쁨 보통으로 하늘의 컨디션이 손바닥에 전송됩니다 밀도가 다를 뿐 사시사철 공중을 장악하는 텃새로 점차 변해갑니다

 

  식욕이 좋아 검고 날카로운 부리로 푸른 하늘을 뜯어먹고 사람의 식도와 기도로 스며들어 위와 폐에 둥지를 틉니다  

 

  하늘에서 초록 눈이 내리는 곳도 있습니다  

 

  숲은 어린 산세베리아 고무나무 야자나무에게 방독면을 씌워줍니다 꽃들과 나비들은 호흡기가 사라지고 가만가만 숨을 몰아쉬는, 복면을 쓴 벌레도 생겨납니다  

 

  천적은 비와 바람입니다  

 

  비와 바람은 뿌리 없는 것들을 흩어놓습니다

  오늘, 힘찬 바람이 조류를 몰아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군요  

                        ―「새의 이름은 미세」전문

 

 

  “은밀한 살인자”로 불리는 미세먼지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입자가 작아 공중을 떠다닌다. 크기가 10마이크로미터 이하의 작은 먼지 입자들은 “폐와 혈중”으로 유입될 수 있기 때문에 건강에 큰 위협이 된다. 미세먼지는 환경 의학적으로 우리가 해결해야할 중요한 과제이다. “식욕이 좋아 검고 날카로운 부리로 푸른 하늘을 뜯어먹고 사람의 식도와 기도로 스며들어 위와 폐에 둥지를 틉니다”에서 시인은 미세먼지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공중에 떠다니는 미세먼지를 “신종조류”로 바라본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비와 바람은 뿌리 없는 것들을 흩어놓습니다/ 오늘, 힘찬 바람이 조류를 몰아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군요”로 마무리되는 미세먼지는 현재진행형이다. 시인은 여운을 남기며 계속 나아가고 있다.  

  최문자 시인은 시를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 “일반적 방식으로 좋음에 도달하는 다수의 방식과 새로운 방식으로 좋음에 도달하는 소수의 방식”을 언급하며 “새로워서 좋은 게 아니라 새롭기까지 하다면” “후자의 좋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홍계숙 시인의 작품들은 “터무니없는 환상”이나 “비현실적인 질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고 있음에 안도감을 준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만” “아무나 생각할 수 없”는 신선한 발상이 “시의 근육”이 되어 지탱점(支撐點)을 구축하고 있다.

 

 

 

  단추는 납작한 단서입니다

 

  언젠가부터 차를 마시면 사레가 들립니다

  찻잔 속 안부를 성급히 마시려 했기 때문일까요 기도로 들어선 불청객을 밀어내려 기침이 재채기로 바뀝니다

  재채기를 하는 날은 잠깐 나를 놓아버립니다

  단추가 물어옵니다

  놓아버린 것이

  나일까요 납작한 집착일까요

  실이 단추의 손을 놓았는지 단추가 실의 손을 놓았는지 손목은 알 수 없습니다 재채기는 옷소매로 가려야 하니까요

 

  단추는 구멍의 기록입니다

 

  단추가 달린 곳은 깊숙한 안쪽을 지녔습니다 궁금한 것은 대체로 깊숙하니까요

  순간 단추가 캄캄해집니다

  낙하의 속도까지 입술에 닿았지만 끝맛을 놓쳤습니다

  동그란 것은 굴러가기 유리합니다

  눈이 동그래지고

  조그맣게 몸을 말아 꼭꼭 숨어있던 저녁의 구멍을 떠올립니다

  매트 위를 두 번 연속으로 구르던 친구가 사라졌습니다

  책상 다리는 그의 행방을 알까요

  떨어진 단추는 천천히 술래가 되고 싶습니다

 

  실밥의 재채기를 귀에 꽂고

  떨어진 것은 더 둥글고 납작해집니다  

 

  아무도 단추의 그 다음을 적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단추는 어디에 숨는가」전문

 

 

  둥근 것은 바닥을 구른다. 그리고 이내 틈으로 숨는다. 놓쳐버린 한 알의 알약, 떨어뜨린 반지, 굴러간 병뚜껑, 어디쯤에서 실종된 단추… 둥글고 둥글어 잘 굴러간다. 이 “회전의 법칙”으로 타이어도 지구도 달도 둥글다. 사라진 단추의 단서는 실밥을 물고 있는 단춧구멍이다. 아무도 단추의 행적을 알지 못하니 그 다음은 없다.

  TV 동물 프로그램에서 애완견과 산책을 나갔다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사랑하는 개를 잃어버리고 가슴 아파하는 중년여인을 보았다. 그 애완견은 웬일인지 골목을 서성이고 있었지만 주인이 부르면 피해 달아나 버렸다. 까닭을 알 수 없어 전문가에게 물었더니 그 개는 “주인이 자신을 버렸다고 믿고” 있는 거라고 한다. 개가 즐겨듣던 음악을 틀고 개의 체취가 묻은 방석을 무릎에 올려놓고 애타게 부르자 놀랍게도 개는 달려와 주인의 품에 안겼다. 오해가 풀린 것이다.

 

  단추는 어디에 숨는가? 왜 자리를 이탈한 단추는 눈에 띄지 않을까? 단추의 입장에서 보면 버려졌다고 볼 수도 있다. 그 상처로 영영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풀린 실밥을 방치한 우리는 왜 단추의 심정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가. 이처럼 단추의 마음을 살피는 시인의 마음이 연민으로 다가온다.

  주변에서 발견한 작은 “픽셀”들이 하나의 의미로 인식되기 위해 시인은 긴밀하게 언어를 조합하고 연과 연의 여백에 “다양한 상상”을 남겨놓는다. 글을 읽는 독자는 한 문장의 끝을, 다음에 올 문장을, 다음에 계속될 페이지를 예측하며 자기의 예측에 들어맞거나 혹은 어긋나는 것을 기대한다고 한다. 홍계숙의 시편들은 독자의 감정을 획득할 “새로운 발상”과 “남다른 감각”이 있다. 서정시를 구현하는 홍계숙 시인의 문학적 기류는 각각의 이미지를 하나의 공간에 배치하고 “속도의 완급(緩急)”을 조절하며 “사물과 삶”을 매치시키는 방식이다. 무관한 것들에서 “뜻밖의 것들”을 찾아내어 현재와 연관된 “상호관계를 증명하는” 이 절묘한 기법은 홍계숙 시인의 시그니처와 같다. 긴장감은 시인이 의도한 디렉션(direction)을 끝까지 주시하게 만드는 힘일 것이다.

 

 

 

두부와 기도에 관한 알고리즘 외 6

 

홍계숙

 

 

  독과 약은 같은 뿌리에요

  유전자의 출발이 같다는 말인데요, 콩에서 건너온 두부가 다시 콩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어머니는 새벽기도에 콩을 불려요 기도 속에서 토끼가 뛰쳐나오고  

 

  딱딱할수록 오래 불리고 곱게 갈아 푹 삶아야 한다고

  아버지 수의를 깁고 남은 베보자기, 그 밑으로

  콩물이 뚝뚝 떨어져요

 

  어머니 기도는 콩의 코딩부호를 해독 중,

  기도가 두부를 콩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요

 

  남편 복 없으면 자식 복도 없다는 수식의 모스부호는 0이거나 1,

  모 아니면 도, 라는 치기어린 질주로  

 

  콩이 기도에 끓여져 차가운 틀 안으로 들어갔죠

  양심을 간수하지 못했거나 바닷물의 염도가 맞지 않았거나

 

  물컹한 토끼는 어디로 달아났을까요

 

  틀 속에 콩물을 붓고 압력을 가하고

  흥건한 자유를 빼내며 말랑하게 혹는 단단하게 굳어가길 기다리는 시간,  

 

  잃어버린 기도를 불러와요

 

  달과 어둠의 값으로

 

 

 

 

 

 

직립의 시간 

 

 홍계숙

 

 

 

  거리를 걸어가는 모래시계들

  하루의 잘록한 허리 위에서 아래로 흐르며 내일을 꿈꾼다  

 

  물기는 시간의 감정

  흐르는 모래에는 물기가 없다 거꾸로 뒤집히거나 세차게 흔들려도 모래는 묵묵히 아래로 흐른다

 

  흐르는 강물을 수직으로 말리면 모래시계가 된다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들

  신은 중력의 방향으로 서서히 시간을 허문다

 

  나이는 삶의 밑바닥으로 모래를 쌓는 일, 모래의 심장이 깨어지거나 고꾸라지거나  

 

  뜨거운 사막을 직립으로 건너던 아버지

  한꺼번에 쏟아졌다

 

  횡단보도 앞 1톤 트럭 사이드미러가 시간의 뒤통수를 친 순간, 아버지는 길바닥으로 모래알처럼 쏟아졌다

 

  두 손은 자유로워도

  스스로 시간을 뒤집을 순 없다

 

 

 

  

 

용인 가는 길

 

홍계숙

 

 

  목련꽃 한 다발을 안고 갑니다

 

  가도 가도 알 수 없는 길을, 알 수 없어 물을 수 없던 멀고 먼 어린 날을 지나갑니다

  절반의 꽃씨를 품었던 해바라기 날들을

  반그늘을 애써 감추던

  바람에 흔들리는 냉이꽃 같던 봄날을

  멀고도 가까운 풍경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갑니다

 

  푸른 벽 속으로

  돌의 내부 같던 터널 속으로

  산비둘기 속울음이 새벽의 껍질을 벗기고 있습니다

  끌어안을 수 없던 가시들이 가슴을 통과하여

  되돌아와 꽂히고

  단단히 박음질 된 길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 길에서 용서는

  인터체인지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둥지를 버리고 바람 속으로 날아가 버린 새

  봄날을 놓쳐버린,

  빈 가지에 두고 간 목련 꽃송이들

  나무는 홀로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슬픔이 만발한 가족공원 저 멀리

  냉이꽃을 입에 문 하얀 새 한 마리 날아갑니다

 

  불어오는 바람결에

  아버지...

 

  내 안에 남은 절반의 풀씨를 훌훌 날려 보냅니다

 

 
 
 

피스타치오

 

홍계숙

 

 

  아주 오래 전 연애,

  벌어진 틈 사이

  잘 구워진 슬픔은 담백한 맛일까

 

  단단한 기쁨을 깨뜨리면 그 안에 쫀득한 귀엣말

  사랑이 익으면 영원하리라 믿던

  피스타치오,

  저절로 벌어지는 소리를 줍던 달빛 아래

 

  솔깃, 달의 솔기가 터지고

 

  뭉친 먹구름을 빠져나온 아이가 어둠 속에서 손뼉을 치네

  쏙 빠져나온 쭈글쭈글한 두려움,

 

  자고 일어나 다시 깊게 잠들어버린 태아의 생애를 지나

 

  하루 권장량의 허무와

  허름한 강물 소리,

 

  초록의 안쪽은 물기가 사라지고

  말랑한 망각은 껍데기 속에서 빛을 바래, 꺼내지 못한 약속의 바깥은 쓸쓸해라

 

  버려진 두 쪽의 결기,

  온기마저 사라진

 

  골목길 옛집을 돌아 나온 바람의 귀가 말라가네

  오십천 버들가지 자꾸만 강물을 쓸어 넘기고 그녀의 껍데기도 점점 얇아지네

 

  벌어지는 소리를 주우려 피스타치오가 익어가는

  머나먼 사막 끝으로 술래잡기하듯

 

  드문드문 눈발이 날리네

 
 
 
 

초록을 위한 마시멜로

 

홍계숙

 

 

  겨울은 초식성일까요 잡식성일까요

 

  빈 들판에 놓인 의문은 원통형이죠 파랗거나 하얀,

  의문의 밑바닥엔 단단한 침묵이 살고 그 속에는 수만 마리 고요의 애벌레가 꿈틀거려요

 

  농가의 공룡 알,

  탱탱해지는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부화를 기다리는 팽팽한 시간 바비큐 깜부기불 위에 구우면 겉은 바삭하게, 속은 자글거릴 달콤하게

 

  추수가 낳은 초식 공룡의 알, 때론

  버려진 것들이 겨울의 든든한 먹잇감이 되어요

 

  들판은 겨우내 질긴 고요를 되새김질 중이죠

  이삭이 잘리고 언 땅에 뿌리가 파묻혀도 견디어온 시간만큼 말없이 분주해요

 

  찔깃한 마시멜로를 오물거리며 겨울이 빈 들판을 건너가요

 

  커다랗게 젖은 눈망울로

 

  건초를 씹는 뜨거운 입김이 초록에 닿아있어요

   

 

 

 

 

새의 이름은 미세

 

홍계숙

 

 

  미세라는 새가 태어났습니다

 

  신종 조류입니다 먼데서 날아온 혹은 가까운 바닥에서 날아오른 아주 작은 새입니다 너무 작아 조류가 아니라는 설도 있지만 하늘을 덮는 힘찬 날갯짓으로 보아 새의 무리가 분명합니다  

 

  주로 ㄴ자 ㅅ자형 경로로 공중에 유입됩니다 모든 철새들이 그렇듯 번식지와 월동지를 가릴 줄 압니다 봄은 떠돌이새들이 창밖에 번식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무리가 많고 적음에 따라 하늘의 낯빛이 바뀝니다

 

  나쁨 아주 나쁨 보통으로 하늘의 컨디션이 손바닥에 전송됩니다 밀도가 다를 뿐 사시사철 공중을 장악하는 텃새로 점차 변해갑니다

 

  식욕이 좋아 검고 날카로운 부리로 푸른 하늘을 뜯어먹고 사람의 식도와 기도로 스며들어 위와 폐에 둥지를 틉니다  

 

  하늘에서 초록 눈이 내리는 곳도 있습니다  

 

  숲은 어린 산세베리아 고무나무 야자나무에게 방독면을 씌워줍니다 꽃들과 나비들은 호흡기가 사라지고 가만가만 숨을 몰아쉬는, 복면을 쓴 벌레도 생겨납니다  

 

  천적은 비와 바람입니다  

 

  비와 바람은 뿌리 없는 것들을 흩어놓습니다

  오늘, 힘찬 바람이 조류를 몰아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군요  

 

 

 

 

 

 

 

단추는 어디에 숨는가

 

홍계숙

 

 

  단추는 납작한 단서입니다

 

  언젠가부터 차를 마시면 사레가 들립니다

  찻잔 속 안부를 성급히 마시려 했기 때문일까요 기도로 들어선 불청객을 밀어내려 기침이 재채기로 바뀝니다

  재채기를 하는 날은 잠깐 나를 놓아버립니다

  단추가 물어옵니다

  놓아버린 것이

  나일까요 납작한 집착일까요

  실이 단추의 손을 놓았는지 단추가 실의 손을 놓았는지 손목은 알 수 없습니다 재채기는 옷소매로 가려야 하니까요

 

  단추는 구멍의 기록입니다

 

  단추가 달린 곳은 깊숙한 안쪽을 지녔습니다 궁금한 것은 대체로 깊숙하니까요

  순간 단추가 캄캄해집니다

  낙하의 속도까지 입술에 닿았지만 끝맛을 놓쳤습니다

  동그란 것은 굴러가기 유리합니다

  눈이 동그래지고

  조그맣게 몸을 말아 꼭꼭 숨어있던 저녁의 구멍을 떠올립니다

  매트 위를 두 번 연속으로 구르던 친구가 사라졌습니다

  책상 다리는 그의 행방을 알까요

  떨어진 단추는 천천히 술래가 되고 싶습니다

 

  실밥의 재채기를 귀에 꽂고

  떨어진 것은 더 둥글고 납작해집니다  

 

  아무도 단추의 그 다음을 적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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