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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설 마지막버스에서 가족애의 시학 / 맹문재 해설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6/19 [13:22] | 조회수 : 180

 

  © 시인뉴스 포엠

 

 

 

시인 약력:

 

 

 

허윤설

 

충북 단양 출생

 

2016월간 시로 작품 활동 시작

 

40회 근로자문학상 시부문 금상

 

부천시 문화예술발전기금 수혜

 

시집: 마지막 버스에서

 

 

 

가족애의 시학

 

       맹문재

 

1.

가족애는 한국인들에게 형성된 삶의 고유한 특성이자 근본적인 유형이다.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등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관습이자 풍속인 것이다. 그리하여 원초적인 생활 공동체인 가족 구성원들의 결속을 강화시키는 것은 물론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하는 데 토대가 된다. 사회 체계의 규범을 만들고 구성원들의 공동 가치를 생산하며 사회 통합을 이루는 기제가 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족애는 가족주의라는 용어로 불리면서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면이 크다. 가족애를 가치중립적인 개념으로 인식하기보다는 가족 이기주의 또는 연고주의 등과 연관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은 조선시대 중기 이후 자리 잡은 한국 특유의 유교적 가족주의가 뿌리 깊게 내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근대 국가 형성 과정에서 가족주의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부정적으로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서구의 문물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상황이었지만 19세기 말의 조선은 미처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황한 채 배척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개화를 내세우는 인사들은 조선의 가족주의를 가문 중심주의로 진단하고 비판했다. 특히 개신교 계열의 개화파들은 조선의 가족주의가 가족들이 절대 복종할 수밖에 없는 가부장제여서 남녀평등 사상을 가로막는다고 보았다. 유학 계열의 개화파들 역시 가족주의를 극복해야만 민족의 대동단결을 이룰 수 있다고 진단했다. 조선이 근대 국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족보다 국가를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고 호소한 것이다. 유학자들의 이와 같은 입장은 혁신을 통해 가족주의를 개선하려는 것이었다. 가족주의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가족애를 무조건 부정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추구할 필요가 있다. 마치 민족주의가 세계주의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민족의 자존을 확인하는 것처럼 가족애 역시 가족의 자존을 토대로 사회애로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가족애를 통해 가족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사회 구성원의 공동 이익과 보편적인 윤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허윤설 시인이 추구하는 가족애에서 그와 같은 면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는 물론이고 남편, 자식, 형제들에 대한 사랑은 작품의 토대이면서 지향점이 되고 있다. 자신의 가족 사랑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존재들을 품고 있는 것이다.

 

 

2.

 

 

꼭 맞고 말리라 다짐했던

봄 문턱은 높기만 해

춥고 어두운 새벽이 이어졌다

 

어머니 조금씩 무너지는 순간까지

걱정 놓지 못한 마늘밭

백 리 밖 병원에서도

숨 막히는 비닐 속에 꿈틀대는

마늘 싹 꺼내주지 못해 갑갑증을 내셨다

 겨울은 가난처럼 질겨

어머니를 잡고 놓아 주지 않아

지그시 눈을 감자 어둠이 빠르게 왔고

앰뷸런스는 급하게 소리를 냈다

걸어 나갔던 집 누워 오신 어머니

꾹 다문 입술처럼 감았던 눈

힘겹게 잠시 떴다 다시 감고

당신이 가고 싶어 하던

재 너머 가랑베 밭

한쪽을 웅크린 채 지키고 있다

 

마늘밭에 부는 바람 아리다.

―「마늘밭」 전문

 

위의 작품의 “어머니”는 “조금씩 무너지는 순간까지”도 “마늘밭”에 대한 걱정을 놓지 못했다. “백 리 밖 병원에서도/숨 막히는 비닐 속에 꿈틀대는/마늘 싹 꺼내주지 못해 갑갑증을 내”신 것이다. 어머니가 “봄”이 오는 것을 “꼭 맞고 말리라 다짐했던” 이유도 농사를 짓기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봄 문턱은 높기만 해/춥고 어두운 새벽이 이어”지고 말았다. “겨울은 가난처럼 질겨/어머니를 잡고 놓아 주지 않아/지그시 눈을 감자 어둠이 빠르게” 다가온 것이다. 그리하여 “앰뷸런스는 급하게 소리를 냈”지만 “어머니”는 “걸어 나갔던 집 누워 오”시고 말았다.

작품의 화자는 한평생 농사를 지은 “어머니”의 그 운명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땅을 사랑했기 때문에 계속 농토와 함께하길 기원했지만 그럴 수 없기에 아쉬워하는 것이다. 화자는 “어머니”가 농부로서의 삶을 영위한 것을 운명이라고 여긴다. 실제로 “어머니”는 “꾹 다문 입술처럼 감았던 눈/힘겹게 잠시 떴다 다시 감고/당신이 가고 싶어 하던/재 너머 가랑베 밭/한쪽을 웅크린 채 지키고 있”었다.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정성을 다해 땅을 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화자에게 “마늘밭에 부는 바람”은 아리고도 아린 것이다.

 

 

아버지 농사가 궁금해

늦은 밤 전화하니

끊이지 않는 무심한 신호소리

 

화장실 갔다 정신 차리니

당신도 모르게 쓰러져 있었다는 지난겨울 이야기에

꼬리를 무는 방정맞은 생각

다시 건 전화에 반가운 목소리

웃음 앞세우며 마늘밭에 물을 주고 오셨단다

 

자식 같은 농작물 생각에

어둠보다 더 까맣게 되었을 아버지 속을 생각하니

손이 닿지 않는 자식도 속이 탄다

―「가뭄」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아버지 농사가 궁금해/늦은 밤 전화”를 걸었는데 당신이 받지 않고 “무심한 신호소리”만 끊이지 않고 들린다. 그리하여 화자는 “화장실 갔다 정신 차리니/당신도 모르게 쓰러져 있었다는 지난겨울 이야기”를 떠올리고, 혹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하는 “방정맞은 생각”도 한다.

화자는 그와 같은 불행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다행히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당신은 “웃음 앞세우며 마늘밭에 물을 주고 오셨”다고 말씀하신다. 가뭄으로 “자식 같은 농작물”이 말라죽게 되자 당신의 마음속은 “어둠보다 더 까맣게 되”어 “마늘”을 살리기 위해 밤잠도 설치며 밭에 나가 물을 준 것이다.

이와 같이 「마늘밭」의 “어머니”나 위의 작품에서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농부이다. 그리하여 화자는 생을 다하는 순간까지 “마늘밭”을 걱정한 “어머니”나 날이 가물어 말라가는 “마늘밭”에 나가 물을 주는 “아버지”를 기꺼이 품는다. 농부의 자식답게 “아버지 농사”를 걱정하는 것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이 있듯이 농부는 하늘 아래에서 가장 근본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다. 사회적인 권세나 부를 갖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자연의 엄정함을 알고 그 질서에 삶을 맞추려고 애쓰는 것이다. 봄이 되면 씨를 뿌리고 여름이 되면 가꾸고 가을이 되면 거두어들이고 겨울이 되면 농사를 준비하는 것이 그 모습이다. 그리하여 농부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려고 하는 선한 마음과 지혜를 가지고 있다. 곡식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겨 마늘밭에 나가 물을 주는 “아버지”가 그 전형이다. 화자는 그 “아버지”와 “어머니”를 품으며 사랑의 본질을 배우고 있다.

 

 

투박한 감나무 잎 사이로

옹기종기 매달린 풋감들

하루가 다르게 자라면

나뭇가지 땅으로 향했다

 

해진 수건 머리에 쓰고

비탈 밭에 매달리던 어머니

호미질 단내 나도록 뜨겁던 날들

무쇠라던 몸 휘어져

땅을 입에 물었다

 

점점 야위어 가는 몸에

옹이처럼 암 덩이 자리 잡아

움켜잡은 배 놓지 못하고 마지막 가는 날도

내리 낳은 딸들은 밥그릇을 비워냈다

 

평생 어머니를 갉아먹었다.

―「어머니를 갉아먹다」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어머니”의 생애를 안타까워하며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을 죄송스러워하고 있다. 어머니의 삶은 “해진 수건 머리에 쓰고/비탈 밭에 매달”린 것이어서 “호미질 단내 나도록 뜨겁던 날들”이었다. 그리하여 “무쇠라던 몸 휘어져/땅을 입에 물”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점점 야위어 가는 몸에/옹이처럼 암 덩이 자리 잡아/움켜잡은 배 놓지 못하고 마지막 가”고 만 것이다.

화자는 어머니가 세상을 뜬 “날도/내리 낳은 딸들은 밥그릇을 비워냈다”고 자책하고 있다. “평생 어머니를 갉아먹었다”고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는 이와 같이 반성하는 자세로 가족애를 심화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확대하고 있다.

 

 

3.

 

 

공구상가 거리에 가면

이름 모르는 부속품과

어디에 쓰는지 알 수 없는 물건들 속에

한 남자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더 나은 것을 만들고자 

마음은 쉬지 않았고

생각은 수첩 속에 쌓여만 갔다 

 

틈만 나면 이 거리를 돌아다니다

돌아올 땐 부품 몇 개 희망을 들고 왔지만

얇은 지갑에 마음 놓고 꿈은 펼쳐보지도 못했다

 

해줄 게 없다며 의사도 포기한 몸  

땅이 꺼지는 미련을 버렸고

진한 아쉬움이 작은 부품에 떨어졌다

 

“이것 하나도 몇 만 원인데……”

―「공구상가 거리에서」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공구상가 거리에 가면/이름 모르는 부속품과/어디에 쓰는지 알 수 없는 물건들 속에/한 남자의 모습이 아른거린다”고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그 이유는 그 “남자”가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더 나은 것을 만들고자/마음은 쉬지 않았고/생각은 수첩 속에 쌓여”갈 정도로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남자”는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틈만 나면 이 거리를 돌아다니다/돌아올 땐 부품 몇 개 희망을 들고 왔지만/얇은 지갑에 마음 놓고 꿈은 펼쳐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해줄 게 없다며 의사도 포기한 몸”에 이르렀을 때는 “땅이 꺼지는 미련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진한 아쉬움이 작은 부품에 떨어”지고 만 것이다.

작품의 화자는 그 “남자”가 꿈을 이루지 못한 이유가 성실하지 않아서라거나 전문 지식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보력이 부족해서라거나 기획력이나 시장성이 부족해서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이것 하나도 몇 만 원인데……”라고 그가 토로한 것을 떠올리는 데서 볼 수 있듯이 자본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한다. 실험에 필요한 부품을 마음대로 구입할 수 없었고, 그에 따라 성과를 낼 수 없었다고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따라서 화자는 꿈을 이루지 못한 그를 탓하기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키워보려고 애쓴 그를 품는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적 토대가 열악한 개인이 자신의 뜻을 이루는 일이 결코 쉽지 않기에 그를 껴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화자의 사랑은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고 온몸을 다해 일한 부모님으로부터 체득한 것이다. 농사짓는 일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운명에 투사하는 모습을 귀감으로 삼은 것이다. 그리하여 화자의 가족애는 사랑의 가치는 결과에 있지 않고 과정에 있다고 인식할 정도로 품이 넓고 깊다.

  

문제집 위에 동화책 올려놓고  

내 얼굴 바라보던 딸

원하던 책 가슴에 안기면

봄꽃처럼 활짝 피어 나뭇잎에 살랑거렸다

 

어버이날,

내가 읽고 싶던 시집(詩集) 건네주고

창밖을 바라보는 딸  

조잘거리는 것 다 들어주던 아빠

너무 일찍 잠든 추모공원은

혼자 갈 시간도 엄두도 나지 않는다며

선물한 시집의 제목처럼

눈물을 눈꺼풀로 자르고 있다

―「눈물을 자르는 딸」 전문

 

“문제집 위에 동화책 올려놓고/내 얼굴 바라보던 딸”은 “원하던 책 가슴에 안기면/봄꽃처럼 활짝 피어 나뭇잎에 살랑거렸다”. 그와 같은 “딸”이 “어버이날,/내가 읽고 싶던 시집(詩集) 건네”줄 정도로 자랐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시집을 선물할 만큼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딸”은 자신이 “조잘거리는 것 다 들어주던 아빠/너무 일찍 잠든 추모공원은/혼자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선물한 시집의 제목처럼/눈물을 눈꺼풀로 자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빠”와의 사랑이 아주 깊어 이 세상에 “아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직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빠”에게 받은 사랑을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전하지 못하는 것이다. 위의 작품의 화자는 그 상황에 놓인 “딸”을 껴안는다. 자신에게 시집을 어버이날 선물로 준 것처럼 이 세상에도 선물을 주는 존재가 되리라고 “딸”을 믿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족애는 “아들 군대 보내고/하루가 열흘 같던 날들”을 보내다가 소대장이 만든 “핸드폰”의 “카톡”에 귀 기울이는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 “카톡, 카톡, 카카톡!/요란한 발소리/끝없는 글자들 행렬”(「야속한 봄」) 속에서 아들의 힘찬 걸음을 지켜본다. 국방의 의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기꺼이 수행하리라고 믿는 것이다. 결국 화자는 가족애를 가족 사랑으로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애로 확대시키는 것이다.

 

 

 

4.

 

산허리 휘어감은 신작로 돌아가면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곳

대문 없는 집처럼

마음을 열고 사는 사람들

 

산등성이 사방으로 길이 뚫리고

알 수 없는 차들

산골동네 적막 깨면

혼자 집 지키는 노인 몇 명

뉴스에 나오는 흉흉한 이야기에

마음을 빗장처럼 걸어 잠근다

 

소나무 아래 황금 구만 냥 찾아오니

꿈같은 시간에 굶어 죽은 가족들

황금과 함께 묻었다는 농부 이야기가

슬프게 전해지는 구만이

 

종일 이야기 한 번 나눌 사람 없이

잠자리에 드는 내 아버지

등 굽은 소나무처럼 홀로 사신다

―「구만이」 전문

 

위의 작품의 “구만이”는 “산허리 휘어감은 신작로 돌아가면/병풍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그 산촌마을에는 “대문 없는 집처럼/마음을 열고 사는 사람들”이 거주해왔다. “소나무 아래 황금 구만 냥 찾아오니/꿈같은 시간에 굶어 죽은 가족들/황금과 함께 묻었다는 농부 이야기가/슬프게 전해지는 구만이” 사람들이 대()를 걸쳐 살아온 것이다. 그들은 집집마다 대문이 없을 정도로 공동체의 삶을 영위해왔고, 길흉사를 함께 지낼 정도로 하나의 생활 단위를 이루어왔다.

그렇지만 마을 사람들이 공유하던 경험과 상호부조의 관행은 “산등성이 사방으로 길이 뚫리고/알 수 없는 차들/산골동네 적막 깨면”서 사라졌다. “혼자 집 지키는 노인 몇 명/뉴스에 나오는 흉흉한 이야기에/마음을 빗장처럼 걸어 잠”그게 된 것이다. 이렇듯 “구만이”의 공동체 의식은 내부의 사정보다는 외부의 사정에 의해 무너졌다. 도시화와 상업화의 유입으로 말미암아 전통 마을 사람들의 신뢰감이며 일체감이 허물어진 것이다.

 

이와 같은 모습은 1960년대 이후 국가의 도시화와 공업화 정책에 따라 대부분의 농어촌 마을에서 나타났다. 농어촌의 젊은이들이 교육과 취업의 기회를 찾아 도시로 빠져나감으로써 인구수가 감소하고 인구 구성도 바뀐 것이다. 그리하여 전국의 어느 촌락이나 인구 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다. “종일 이야기 한 번 나눌 사람 없이/잠자리에 드는 내 아버지/등 굽은 소나무처럼 홀로 사”시는 모습이 그 상황이다. 작품의 화자는 그 “아버지”를 품으며 자신의 고향 사람들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도 품는다.

 

원미시장 입구

‘시골막걸리집’ 천장에

매달려 있는 북어 한 마리

 

개업할 때 입에 문 만 원짜리 하나로

몇 년째 허기를 채우고 있다

벽에 붙은 빼곡한 메뉴만큼

다양한 사람들 모여들면

시원하게 속을 비우고 다시 채우는

노란 주전자에 눈이 멈춘 북어

 

바다를 떠나도 감지 못한 눈

긴장 속에 방을 지켰는데

중년의 여자는 내일이면

주인한테 가게를 돌려줘야 한다

 

바짝 마른 북어

몸 가운데 실타래를 감고

술술 풀리지 않는 이유 무엇일까

―「술집으로 간 북어」 전문

 

위의 작품에서 화자는 “원미시장 입구/‘시골막걸리집’ 천장에/매달려 있는 북어 한 마리”를 눈여겨보고 있다. “개업할 때 입에 문 만 원짜리 하나로/몇 년째 허기를 채우고 있”기에 “벽에 붙은 빼곡한 메뉴만큼/다양한 사람들 모여들면/시원하게 속을 비우고 다시 채우는/노란 주전자에 눈이 멈춘 북어”의 모습이나, “바다를 떠나도 감지 못한 눈/긴장 속에 방을 지”키는 “북어”의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것이다. 화자가 “북어”를 안타까워하는 것은 “중년의 여자는 내일이면/주인한테 가게를 돌려줘야” 하는 형편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바짝 마른 북어/몸 가운데 실타래를 감고/술술 풀리지 않는 이유 무엇일까”라고 묻는다.

 

“북어”와 생사고락을 함께해온 “시골막걸리집”의 형편이 어려운 것은 자본주의 체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서이다. 자본주의는 이익을 획득할 수 있을 만큼의 자본을 요구했지만 가게는 세를 내어 장사하는 형편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요구를 채우지 못했다. 또한 자본주의는 전문적인 기술과 전략을 요구했지만 가게는 자본의 부족으로 인해 전문적인 요리법을 계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가게 시설이나 마케팅 전략이나 단가나 임금 등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렇듯 가게의 형편이 어려운 것은 경영자의 성실함이나 창의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화자는 이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시골막걸리집”과 “북어”를 끌어안는다. 이 세계를 지배하는 물질 가치보다 인간 가치를,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경쟁 가치에 맞서 공동체 가치를, 유적(類的) 존재로서의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다.  

 

수원에서 부천 오는 마지막 버스 

터미널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자의 고개가 스르르 내 어깨에 넘어져

밀어내기 몇 번 해도 제자리다

 

십 년 넘게 이 길을 출퇴근했던

남편 생각에 얌전하게 어깨를 내주자

한 남자 삶의 무게가 전해진다

가장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고단했으면

낯선 여자 어깨에서 세상모른 채 단잠을 잘까

움켜잡은 빵봉지 놓치지 않는 집념

날마다 저렇게 하루를 붙잡았을 것이다

 

코까지 골던 남자 터미널 다가오자

벌떡 일어나 도리질로 잠을 털고

나는 어깨의 가벼움을 느끼며

자는 척 두 눈을 살짝 감았다

 

―「마지막 버스에서」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수원에서 부천 오는 마지막 버스”를 탔다가 “터미널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남자의 고개가 스르르 내 어깨에 넘어”지는 경우를 겪는다. 화자는 “밀어내기 몇 번” 했지만 그 상황이 “제자리”일 정도로 난감하다. 화자는 당사자에게 항의하거나 버스 기사에게 알릴 생각도 했지만, “십 년 넘게 이 길을 출퇴근했던/남편”이 떠올라 참는다. 참을 뿐만 아니라 “얌전하게 어깨를 내”준다. “가장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고단했으면/낯선 여자 어깨에서 세상모른 채 단잠을 잘까”라고, “움켜잡은 빵봉지 놓치지 않는 집념/날마다 저렇게 하루를 붙잡았을 것”이라고 그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모습에서 화자의 가족애는 이기적인 가족 사랑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인간 가치가 점점 훼손되고 있는 이 자본주의 시대를 극복하는 구체적이고 연대적인 사랑인 것이다. 자신의 가족을 사랑하는 일과 다른 가족을 사랑하는 일은 결코 분리할 수 없다. 따라서 가족애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에서 요구되는 역할을 감당한다. 사회와 문화로부터 영향 받고 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 가치가 철저히 지배하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족애는 매우 소중한 것이다.

가족이란 말을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이 드는가라는 질문에 ‘같은 피로 맺어진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대답한 한국 사람들의 경우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많았고(한국 48.8%, 미국 9.4%, 일본 34.3%), 성인이 된 자식이 진 부채에 대해 부모가 갚아주어야 한다고 응답한 경우도 그러했다(한국 50.8%, 미국 23.7%, 일본 30.3%). 부부가 이혼을 원해도 자녀의 장래를 생각해서 그냥 사는 것이 좋다고 표명한 경우도 마찬가지였다(한국 91.6%, 미국 30.4%, 영국 21.8%).1)

그렇지만 이와 같은 한국의 가족 관계는 점점 와해되고 있다. 혼자서 생계를 책임지는 1인 가구가 증가하고, 미혼 및 이혼이 높아지고, 독거노인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자가 있는 가족도 직장 문제나 자녀 교육 문제로 주말 부부 내지 기러기 가족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증가하면서 원만한 가족관계를 이루기가 힘들다. 노동 시장의 불안과 장시간 노동도 친밀한 가족관계의 형성을 가로막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허윤설 시인이 추구하는 가족애는 주목된다. 가족 사랑이야말로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인간들을 살려낼 수 있는 궁극적이면서도 구체적인 방법이기에 공감되는 것이다. 가족애는 감정적이거나 요행으로 추구하는 사랑이 아니라 꾸준하게 실천하는 사랑이다. 이기적인 가족주의를 극복하고 가족 구성원들의 사회화에 영향을 끼쳐 사회 통합의 규범이 되는 것이다.

 

孟文在 | 문학평론가 · 안양대 교수


1)  최상진, 『한국인 심리학』, 중앙대학교출판부, 2000, 270~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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